본문 바로가기
신약 --------------------/빌레몬서

몬 1장 8-16절(주님의 사역을 하는 원리는) - 조영식

by Preacher 2024. 9. 29.
728x90
반응형

몬1장 8-16

주님의 사역을 하는 원리는

조영식 목사 2014.11.9.일

김포한신교회 http://kimpohansin.onmam.co.kr/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0. 들어가는 글

 

11월 둘째 주일입니다. 지난주 교육 당국은 지난해 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이 오답이었다는 실수를 인정했습니다. 세계지리 오답 정정으로 등급이 오르는 학생은 48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제 피해 학생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교육의 이념 중 하나는 학생들에게 진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육 당국 일년이 다되도록 진실을 은폐하였습니다. 교육 당국도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실수를 인정했다면 피해 학생들이 상처 받지 않도록 구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실수하며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감추지 않고 얼마나 진실 되게 회개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이 빌레몬에게 모든 것을 감추지 않고 진실 되게 부탁하는 서신입니다. 그의 편지 내용에 주님의 사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들이 바울을 통하여 주님의 사역을 어떻게 하는 지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1. 바울은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가?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은 노예였던 오네시모의 문제입니다. 빌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가 도망을 쳤습니다. 당시에는 노예가 도망치는 것은 불법으로 큰 죄였습니다. 그러나 도망쳤던 노예 오네시모가 전도를 받은 후에 바울의 심복이 되었습니다(12절). 바울이 오네시모의 문제를 주인이었던 빌레몬과 어떻게 풀어가고 있습니까? 첫째로 명령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라고 합니다(8절). 여기에는 바울의 사도적 권위가 담겨져 있습니다. 얼마든지 바울은 대사도의 권위로 신앙생활의 규율을 만들어서 마땅히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연장자로 요구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빌레몬에게 나이가 많은 어른으로서 부탁할 수도 있었습니다(9절). 당시의 사회는 원로에 대한 예의가 각별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고난으로 도움을 요청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9절). 그는 주를 위한 고난으로 빌레몬에게 충분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명분이 있었습니다. 만약 바울이 사도의 권위로 명령하고, 연장자로서 요구하고, 자신의 고난을 내세웠다면 세상의 방식과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세상적인 방법만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는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였습니까? 첫째로 명령이 아니라 사랑으로 간구했습니다(9절). 여기서 사랑은 빌레몬이 오네시모에게 사랑으로 대해달라는 것입니다.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빌레몬이 보여준 사랑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고 합니다(7절). 바울의 강요가 아니라 빌레몬의 사랑으로 해결되기를 원했습니다. 둘째로 노예였던 오네시모를 위해 간구했습니다(10절). 바울은 빌레몬에게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예였던 오네시모를 위하여 부탁하였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전도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는 자신보다도 전도했던 빌레몬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따뜻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셋째로 합당한 절차를 밟아서 해결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옥살이를 하는 자신을 보살펴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전도했던 오네시모가 적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연을 들어보니 노예생활을 하다가 도망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의 사역에 오네시모가 필요했지만 용서 받을 수 있도록 빌레몬에게 돌려보냈습니다(12절). 그는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용서받은 후에 자신을 섬기도록 합당한 절차를 밟았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합당한 절차들을 무시하면은 덕을 세우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바울의 방법을 너무나 닮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도 명령이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고, 일보다도 성도들을 더 위하고, 합당한 절차를 통해 교회가 세워져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

 

바울이 오네시모가 필요했지만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합당한 절차를 밟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오네시모에 대하여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라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11절). 그는 빌레몬에게 오네시모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과거에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집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도망칠 때는 무익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오네시모가 유익한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믿으면 무익한 자에서 유익한 자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형식적인 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위기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유익한자로 변화되지 않는 교인들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주를 위해 유익한자로 변화되었는지 각자의 믿음을 증명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어떻게 해결되기를 원하는가?

 

바울이 오네시모를 돌려보냈을 때 빌레몬에게 어떤 마음을 기대했습니까? 그는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14절). 바울은 필요하다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상대방의 승낙을 통하여 해결되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되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소통의 원리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승낙을 받아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결되기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의 해결방법은 옳고 그름의 흑백논리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주인과 노예의 대립 관계로 보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바울이 조금이라도 이런 마음을 가졌다면 한 영혼은 얻을 수 있지만 한 영혼은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는 주인과 노예가 대립하는 관계지만 모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으로 해결하였습니다. 바울은 주인이었던 빌레몬도 세워주면서 노예였던 오네시모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았습니다. 이것이 주인의 입장도 아니고 노예의 입장도 아닌 모두의 영혼을 살리는 제3의 길이었습니다. 저는 제3의 길이 예수님이 제시한 사랑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세상은 갑의 입장과 을의 입장으로 갈라져서 길을 찾기에 갈등과 대립이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제3의 길을 찾아서 해결할 수가 있습니까? 바울은 육신의 관계가 아니라 영적인 관계의 사랑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고 합니다(16절). 여기서 종과 같이 대하는 것은 육신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사랑 받는 형제로 대하는 것은 영적인 관계입니다. 육신의 관계는 주인과 노예의 대립관계라서 절대로 갈등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종이 아니라 사랑받은 형제의 관계가 되면 더 이상 갈등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교회에서 꿈꾸는 것은 갑과 을처럼 육신의 관계가 아니라 주안에서 사랑받는 형제가 되어 영적인 관계로 모두가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교회가 명령이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고, 일보다도 성도들을 더 위하고, 합당한 절차를 통해 세워질 수 있게 하소서. 이런 교회를 세우기 위해 무익했던 우리들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유익한 사람으로 변화되게 하옵소서. 또한 교회에서 육신의 관계로 서로 대립하지 않게 하시며 영적인 관계가 되어 주안에서 형제로 사랑하며 만날 수 있게 하옵소서.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