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6장 6-8
하나님께 선한 것
이백민 목사 2019.07.14
브니엘교회 [호주] http://ghttp://gcpeniel.org/xe/
불교문화권인 동남아 일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들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농부가 바위 틈새로 삐쭉 나와 있는 호랑이 꼬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집으로 줄행랑을 치고 싶었으나 호랑이가 자기를 발견하고 쫓아올 것이 두려워 결국 그 꼬리를 움켜쥐고 말았습니다. 일단 호랑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하겠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바위틈을 사이에 두고 호랑이와 농부 사이엔 필사의 힘 겨루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얼마간 계속 되었을 때 마침 그곳을 지나는 중이 있었습니다. 농부는 중을 향하여 소리쳤습니다. "스님, 저기 있는 저 낫으로 이 호랑이를 찍어 죽여주십시오 제가 이 꼬리를 붙들고 있는 한 스님에게는 절대로 위험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중은 근엄하고 온화한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농부여, 불교의 계율에는 살아 있는 동물을 죽이지 말라는 계율이 있소이다. 당신의 처지가 딱하기 는 하나 내 어찌 평생을 지켜온 불살생의 계율을 범할 수 있으리오." 하고는 아미타불을 연발한 뒤 자기 길을 갈려고 하였습니다. 희망이 사라져 버린 농부는 이제 지칠 대로 지쳐 하는 수 없이 쥐고 있던 꼬리를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농부는 중을 향하여, "스님 저는 지금 너무 지쳐서 이 꼬리를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호랑이는 저나 스님 중 하나를 잡아먹을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 보시다시피 뼈와 가죽만 남은 저보다는 살이 퉁퉁한 스님을 잡아먹을 것이 분명합니다. 스님이 정말 계율 때문에 호랑이를 죽일 수 없다면 제 가 잠깐 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스님께서 이 호랑이 꼬리를 잠시 동안만 함께 잡아주십시오."
이에 한참을 생각하던 중은 "그래 계율에 호랑이 꼬리를 잡지 말라는 것은 없으니 내 잠시 함께 잡아주지."하면서 크나큰 자비를 베푸는 양 한껏 뻐기며 호랑이 꼬리를 잡았습니다. 농부는 중이 호랑이 꼬리를 확실하게 잡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잽싸게 꼬리에서 손을 떼고 말았습니다. 이에 당황한 중은 순간적으로 소리쳤습니다. "여보게 제발 부탁이니 저기 저 낫으로 이 호랑이를 찍어 죽여주게."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농부는 빙그레 웃으면서, "스님 저희 집안도 사실은 대대로 불교를 믿어온 집안인데 이제 와서 불살생의 계율을 어길 수 없는지라 혹 이곳에 살생을 예사로 여기는 망나니가 지나가거든 그때 부탁을 해 보시지요," 하고는 농부는 휘파람을 불면서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계율에 얽매여 사는 종교인들의 위선을 풍자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이 이야기를 통하여 참 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우리에게 “선”은 어떤 것입니까?
1. 사람에게 선한 것 – What is “good” to man?
“선하다”는 말을 국어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는 데가 있다.” 이 정의에 의하면 도덕적 기준에 맞으면 선하고 도덕적 기준에 맞지 않으면 악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도덕적 기준은 시대, 문화, 민족, 국가, 지역, 종교, 개인에 따라 많은 차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싸우는 이유 중의 하나도 서로의 도덕적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호주 대표팀 왈라비스(Wallabies)의 톱 플레이어 폴라우(Israel Folau)는 평소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성경 구절을 올리고 신앙을 가감 없이 표현해오던 선수였습니다. 자신의 “신앙관을 지키겠다”며 수백만 달러의 연봉과 거액의 후원금을 포기하는 사태를 불사하였습니다. 그가 올린 성경구절과 의견은 이러합니다.
(고전 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고전 6: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갈 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 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갈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회개치 않으면 지옥에 간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죄로부터 돌이켜 당신께로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주고 기다리고 계신다” 동성애에 대한 차별금지법과 신앙과 종교적 신념에 대한 표현과 자유 사이에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동성애를 정죄하고 있지만 호주법으로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마리화나가 합법화 된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그것을 사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어떤 곳에서는 그것을 거래하다가 사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에게 선한 것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선하다고 볼지 몰라도 성경은 다르게 가르쳐 줍니다.
(롬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2. 하나님께 선한 것 – What is good to God?
성도들, 심지어 성직자들이나 신학자들 중에서도 동성애가 죄 인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동성애에 대하여 어떻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롬 1: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롬 1: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동성애을 인정하는 성도들, 성직자들, 신학자들에게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 마음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롬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면 무엇이 선한 것인지 무엇이 악한 것인지 가르쳐 주시고 분별할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음으로 선악을 분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버리고 미혹하는 악한 영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딤전 4: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아담과 하와가 바로 미혹하는 사탄의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에 선악을 분별할 수 없었습니다. 사탄의 가르침과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일치하였습니다. 사탄의 가르침이 좋게(선하게) 보였기에 하나님께서 선하다고 하신 것을 버리고 자신에게 좋게 보이는 것 곧 자신의 선을 따랐던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기록한 미가 선지자는 이사야와 동시대의 인물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종교적인 행사, 규례, 전통만 잘 지키면 선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오히려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켰습니다. 그들의 삶 자체가 종교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것이 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 6: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미 6: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예배와 제물을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 선의 반대말인 “악”이고 “죄”입니다.
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 What does God require of you?
성도들에게 선한 것은 무엇입니까?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곧 선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되는 것이 선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악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시면서 가장 많이 하신 표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입니다. 창세기 1장에만 7번 나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 선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자녀의 행동이나 삶이 부모가 보기에 좋다면 그 자녀는 부모에게 선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고 부모가 보기에 좋지 않다면 악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선과 악이 일반인들이 보기에 구분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했는데 요나는 니느웨로 가는 것이 싫어서 다시스로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요나가 니느웨로 가든 다시스로 가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나에게는 니느웨로 가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고 다시스로 가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니느웨로 가는 것은 ‘선’이고 다시스로 가는 것은 ‘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는 것은 분명 제자들에게는 좋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런 일을 당하시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결코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한다고 예수님께 소리쳤습니다.
(마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어떻게 분별하는지를 베드로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기도하시면서도 원하시는 것이 ‘선’이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본문 말씀에도 미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곧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정의가 없었고, 사랑이 없었고, 하나님이 없이 종교적 전통과 의식만 가지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의와 사랑과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선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나는 지금 그것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적 용>
* 미가 6:6-8
1. 지금까지 경험한 가장 선한 것과 가장 악한 것은 무엇입니까? 선과 악을 어떻게 구분합니까?
2. 사람들에게 선한 것 또는 악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3. 하나님께 선한 것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선한 것들은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요 14:26, 고전 2:13, 딤후 3:16)?
4.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선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나만이 가진 개인적인 선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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