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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민수기

민 25장 1~13절(이스라엘의 음행과 비느하스의 질투) - 김준범

by Preacher 2023.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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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25장 1~13

이스라엘의 음행과 비느하스의 질투

김준범 목사 2020.08.09

양의문교회 http://www.asheep.org/

 

민수기 25 장

 

1절: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절: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절: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5절: 모세가 이스라엘 사사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6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온지라

7절: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8절: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9절: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명이었더라

10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1절: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12절: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13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 말씀요약 ----

 

발람 사건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모압 평지에 머무르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발람은 일어나 자기 곳으로 돌아갔다고 했지만(민 24:25), 그냥 곱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발람은 이미 발락에게 많은 것을 받은 뒤였고, 공짜밥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발락에게 사악한 계략을 던져주고 갔습니다. 그의 계략은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다면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행음하게 하여 타락시키라는 것이었습니다(민 31:16; 계 2:14). 마귀는 저주와 핍박이 통하지 않으면 미혹과 유혹으로 타락시켜서 넘어뜨리곤 합니다. 이것이 마귀가 사용하는 오래된 계략입니다.

 

바알브올에게 부속된 이스라엘 백성들(1-3절)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러한 미혹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서 매우 가까운 싯딤이라는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가나안 땅으로 건너가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들은 모압의 여자들과 음행하기 시작했습니다(1절). 모압의 여자들은 바알 신에게 제사하는 축제의 때에 잔치를 벌이면서 이스라엘 남자들을 그 잔치에 초대하여 함께 먹고 마시면서 바알에게 함께 절하게 했습니다(2절). 모압의 여자들은 계획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했습니다. 군사력으로 무너뜨릴 수 없으니까 윤리적으로 무너뜨리려는 전략이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바알브올에게 부속되었습니다(3절).

 

‘바알브올’이란 ‘브올의 바알’이라는 뜻으로, 브올은 지명이고 바알은 가나안의 신의 이름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다수는 광야세대로, 일종의 모태신앙을 가진 세대였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들어왔지만, 막상 모압의 여자들이 친절하게 와서 잔치에 초대하고 좋게 해주었을 때에 그들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거기에 빠져들었습니다. 바알은 풍요의 신으로, 바알 숭배자들은 축제 기간에 바알의 신전에 나아가서 여사제들과 난잡하게 뒤섞여서 부정을 저지르는 것으로 바알을 섬기는 예를 삼았습니다. 그래야 바알이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해서 비를 많이 내려주어서 땅이 복을 받아 풍요롭게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바알 숭배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을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거기에 갔다가 바알에게 부속된 것입니다. 우리의 친구로 자처하고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지만 결국 우리를 죄짓게 만들고 우리를 윤리적으로 무너뜨리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우리의 친구가 아닙니다. 그들은 모압의 여자들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혹독한 박해가 올 때에 믿음을 잘 지킬 수 있기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미혹이 올 때에 죄를 짓고 거기에 부속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악된 본성과 부패함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미혹되고 넘어집니다. 모든 것이 풍족한 오늘 우리 시대에도 우리의 눈과 시간과 관심과 정력을 빼앗아서 거기에 완전히 부속되도록 만드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상숭배와 음행의 죄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므리에게 진노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 것을 인하여 진노하셨습니다(3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4절)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두령들을 잡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도록 태양을 향하여 목매어 달도록 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사사들에게 명령하기를 자신들이 관할하는 백성들 중에서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도록 하셨습니다(5절).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 회중에는 전염병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언약에서 경고하신 그대로였습니다(레 26:16). 그리하여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는 총 이만 사천 명이나 되었습니다(9절).

 

이 두려운 일을 당한 이스라엘의 회중들은 회막문에 모여서 슬피 울며 회개하며 기도하였습니다(6절). 그런데 바로 이런 엄중한 시기에, 너무나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이 보는 앞에서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자기의 장막으로 들어가서 음행하는, 대담하고 뻔뻔한 악을 저지른 것입니다(6절). 이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온 남자는 시므리라는 사람으로, 그는 시므온 지파 중 한 족장이었습니다(14절). 이 때는 온 나라가 전염병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많은 이들이 여호와의 성막에 모여서 울며 회개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한 지파의 족장이라는 자가 이방 여인을 이스라엘의 진영으로 데리고 와서 음행을 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죄에 미혹되고 거기에 부속된 시므리는 때와 시기를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심히 무감각해지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무감각함과 무분별한 모습이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인지 모릅니다. 지금 온 세계는 코로나19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우리나라에 최악의 물난리가 나서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보았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영적 환경은 점점 척박해지고 있습니다. 선을 악이라 하며 악을 선이라고 하는 시대가 되어서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염려하며 울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는 것처럼 살면서, 이미 맛본 죄악에 빠지고 거기에 부속되어서 때와 시기를 분간하지 못하고, 그런 죄악들을 우리의 장막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이 그럴 때입니까?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음행하는 남녀를 죽이고 이스라엘을 속죄하다

 

이때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이 광경을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서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장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그 자리에서 그 두 사람을 처벌하였습니다. 이것은 제사장에게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의 행동을 이렇게 평가하셨습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11절). 이 말은 비느하스가 바로 하나님이 하시려고 했던 일을 하였다는 말입니다. 비느하스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였습니다. 비느하스는 이스라엘을 향해 있던 하나님의 분노를 돌이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멸되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비느하스가 그 두 사람을 죽였을 때,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퍼져 나가고 있던 전염병이 즉시 그쳤습니다(8절).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와 그의 후손에게 계속하여 제사장 직분을 맡기시겠다는 언약을 세워주셨습니다(12-13절). 우리에게도 비느하스가 가지고 있던 이 질투심과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사람들을 필요로 하시고, 그런 사람들을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악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자리잡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선과 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곳이어야 합니다.

 

저주는 이스라엘을 넘어뜨리지 못했지만, 음행과 우상숭배의 죄는 이스라엘을 크게 넘어지게 한 것을 기억합시다. 죄는 이렇게 강력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40년을 다 겪고도 그렇게 넘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고전 10:12).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엇에 부속되어 때와 시기도 분별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무감각해진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을 그치고, 회막 문에서 모세와 회중들이 울며 기도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를 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고 교회를 지켰던 것을 생각하고, 우리도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교회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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