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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빌립보서

빌 4장 4-9절(새해에는 이렇게 살게 하소서!) - 이삼규

by Preacher 2023.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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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4장 4-9

새해에는 이렇게 살게 하소서!

이삼규 목사 20181230

낙양교회 http://nakyang.onmam.com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 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노만 필 목사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더 이상 못 살겠다고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이 문제를 해결하면 저 문제가 터지고, 저 문제를 해결하면 이 문제가 터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걱정도 근심도 없이 살 수 있는 곳은 없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만 필 목사는 “이 세상에 걱정도 근심도 없이 살 수 있는 곳은 딱 한 곳이 있습니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곳을 알려달라고 애원하자 노만 필 목사는 주소를 적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주소를 따라 찾아간 곳은 공동묘지였습니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발전의 원동력입니다. 그러므로 성공하고 발전하는 사람은 많은 문제를 만난 사람이고 고난과 역경을 돌파고 극복한 사람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십시오. 우리가 얼마나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까? 그러나 한 해를 돌아보면 남는 것은 후회뿐입니다. 아쉬운 일들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새해에 대한 결단입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2018년 마지막 이틀이 남았습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마지막 권면을 통해서 새해에는 이렇게 살겠다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뻐하며 관용하는 삶을 삽시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바울 사도는 앞 장에서 권면한 것 같이 또 한 번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뻐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기뻐하되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바울이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가르친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참된 기쁨이란 상황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시며 인도하시는 주님 안에 거할 때 누릴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항상’(always) 기뻐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어려운 고난이 닥쳤을 때도 변함없이 기뻐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 상황은 로마 옥중에 감금된 상태였습니다(1:14,17).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끊임없이 기뻐했으며, 오히려 자신을 염려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자신과 함께 기뻐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빌 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빌 2: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바울이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그분을 위해 살았고, 또 살아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그가 기쁨을 강조한 것은 체험에서 우러나온 영적 권고였습니다.

 

빌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기쁨이란 자신과의 개인적인 문제라면 관용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관용’(gentle spirit)이란 공동번역 성경을 보면 “너그러운 마음”이라고 번역합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관용의 대상이라고 말하면서 그 대상을 무한정으로 넓힙니다. 가까운 사람에게도 관용을 베풀기 힘든데,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이 가능한가요?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대하려면 관용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관용은 우리 속에 있는 착한 본성 혹은 타고난 성품이 아닙니다. 관용은 우리가 예수님을 얼마나 닮았는가와 관계가 있지, 타고난 성품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관용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즉 주님의 재림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감쌀 수 있는 포용력을 갖추라는 말입니다. 편을 가르고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는 마음으로, 즉 웃는 낯으로 모든 이를 배려하고 존중하라는 말입니다.

 

지난 목요일에 임시노회가 모였습니다. 세 가지 안건을 처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노회 안에 있는 분쟁이 있는 교회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의 보고를 받는 것입니다. 제가 서기로 활동했기 때문에 분쟁조정위원회에서 결정한 1안과 2안을 놓고 토론을 벌였습니다. 1안은 법대로 처리하는 것이었고, 2안은 지난 모든 잘못을 일으킨 당사자들이 노회 석상에서 사과 및 유감을 표명하고 그동안 재판국에서 시벌한 모든 것을 해벌하며 사면을 해 주자는 것입니다. 본인들이 나와서 사과와 유감표면을 하였고 회원들이 2안을 받아 결의를 했습니다. 단서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에서 시무사임을 한 장로님과 시무투표를 해서 무임이 된 장로님들도 원래대로 복직을 시키라는 것이었습니다. 노회에서 공동의회에서 결정하라고 지시하였기 때문에 이번 연말 예결산을 위한 공동의회에 안건을 상정하여 잘 결정되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난 3년 동안 끌어왔던 분쟁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3년 동안 교회가 받은 상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고 본인들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이제 서로를 용서하는 마음 너그러운 마음으로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들인다면 그 교회는 새롭게 도약을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풍지박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영원한 것 때문이 아니라, 이 땅에서 잠시 쓸 것들에 손해를 입었을 때 관용하지 못합니다. 물질의 손실을 입었을 때, 누가 욕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내 의견이 묵살되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이 곧 오신다.”,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왔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늘나라에서 필요 없는 것이라면 기꺼이 관용을 베푸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해 동안 기뻐하며 사셨습니까? 진정한 기쁨은 주안에서 누리는 기쁨이요,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상황이 최악에 있다 할지라도 기뻐하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십시오. 주님이 가까이 오십니다. 새해에는 더욱 기뻐하며 관용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삶을 삽시다!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특징적인 삶으로 기쁨과 관용을 제시한 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라고 가르칩니다. 직역하면 “염려를 중단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을 소개합니다. 바로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염려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바울은 기도의 자세를 바꾸라고 권면합니다. 기도할 때 찾아오는 염려를 던져 버리고, 그 빈자리를 감사로 채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기도하는 사람이 변합니다. 환경이 변하는 것보다 기도하는 사람이 바뀌는 것이 더 놀라운 응답이라는 것을 바울은 잘 알았습니다.

 

바울도 빌립보 성도들도 염려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감금된 상태였고, 빌립보 성도들은 핍박의 위험에 늘 노출된 상태였습니다. 바울은 이런 현실에서 염려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것에 대해 기도하고(prayer), 간구하며(petition),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뢸 것(request)을 강조하였습니다. 바울이 사용한 이 세 단어는 기도를 각기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유사한 단어의 반복을 통해 지속적으로 기도할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바울이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기 위해 ‘모든 일’에 기도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중대하고 거창한 기도만 받으시는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부모가 자녀의 작은 일까지 듣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바울이 지속적인 기도와 더불어 또 강조하는 것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감사함으로 기도할 때 염려가 사라지기 시작할 줄 믿습니다. 염려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염려하지 않고 감사하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그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고 바꾸십니다. 우리는 바깥에 있는 것을 바꾸려 합니다. 하지만 기도의 본질은 기도하는 사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바뀌면 염려거리였던 환경은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됩니다. 감사하면서 기도하면 염려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고, 평강의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우리를 가득채웁니다. 이야말로 가장 큰 기도의 응답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에는 우리의 입술에서 불평과 원망의 말이 사라지게 합시다. 대신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룁시다.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삶을 지배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배우고 듣고 본 바를 행하는 삶을 삽시다!

 

빌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바울은 ‘끝으로 형제들아’라는 말로 이 단락의 마지막 당부를 남깁니다. 여기서는 더 높은 윤리적 기준을 제시합니다. 성도들의 삶은 고귀한 도덕적 삶으로도 표현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무엇에든지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정결한 것, 사랑받을 만한 것, 칭찬받을 만한 것, 덕이 있는 것, 기림이 있는 것들을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 이것들의 원어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참된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및 성령 안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경건한 것은 신성함을 추구함으로써 존경받을 만한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옳은 것은 바르고 참된 것을 말하고, 정결한 것은 도덕적으로 더럽혀지지 않고 깨끗한 것을 말합니다. 사랑받을 만한 것은 친절하고 우호적인 것을 말합니다. 칭찬받을 만한 것은 존경받고 좋은 평판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의 믿음과 윤리적인 삶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로는 좋은 선생이지만 행동은 그렇지 못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영향력을 끼칠 수 없을 때가 언제입니까?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여러분은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라고 가르칠 때입니다. 자기도 못하는 것을 회중들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의 권위가 떨어집니다. “나를 본 받으라!”는 말처럼 부담스럽고 하기 어려운 말도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 있게 선포합니다.

 

빌 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바울은 말한 대로 살았고, 가르친 대로 행동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도 주님을 본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오늘 본문에서도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중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언행일치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의 삶은 단순 그 자체였습니다. 사람에게 하는 말과 보이는 행동 사이에 복잡한 계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혼자 있을 때나 군중 속에 있을 때나 어떤 차이점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을 속이려 하거나 자신을 포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살려고 했다면 바울의 삶은 평안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복잡한 까닭은 말과 행동이, 가르침과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말한 대로 살고, 가르친 대로 사는 단순한 삶이 참 평강을 줍니다. 실로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에는 더욱 기뻐하며 관용하는 삶을 삽시다. 염려대신 감사하며 기도하는 삶을 삽시다.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는 삶을 살아서 더욱 풍성한 새해를 맞이하시기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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