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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이사야

사 53장 4-6절(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 신만교

by Preacher 2024.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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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53장 4-6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신만교 목사

화평성결교회 [의정부시] http://whttp://www.hpehc.org

 

(사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오늘은 종려주일이며, 고난주일입니다. 금 주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주간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끔찍하고 치욕적인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셨습니다. 오늘 종려주일에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수난의 한 주간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오는 금요일 오전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오후3시 운명하실 때까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십니다. 사형틀인 십자가 나무 기둥에 산 사람을 못 박아 매달아놓습니다. 체중에 의해 양손과 양발이 찢겨지고 붉은 피가 쏟아져 내립니다. 심장이 압박되기 시작하면서 으깨는 듯한 고통이 가슴속 깊이 파고듭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극한 고통의 신음 소리를 토해냅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내가 목마르다!” 그리고 주님은 운명하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왜 이런 수난을 당하셔야 했는가? 예수님이 무슨 죄를 지었는가? 예수님은 의로우시고 진실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런 고통을 당하실 이유가 전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왜 이런 수난을 당할 해야 했을까요?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의 의미는 무엇인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1. 예수의 십자가 수난은 나의 죄를 대신한 하나님의 징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작은 죄라도 용납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죄는 반드시 응징하시고 죄 값은 반드시 치러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요, 정의입니다.

 

(사 5:16)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

(사 30:18)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지었습니다.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 죄 값으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왔습니다.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요, 심판의 결과는 지옥의 형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롬 3:10)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나님의 공의는 율법에 나타나 있습니다. 율법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범법자이며,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범죄 한 인간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죄인이라고 내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공의의 속성 말고 또 다른 속성이 있는데 바로 사랑의 속성입니다.

 

(요일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만약에 하나님께서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해서 죄인을 모두를 멸망시켜버린다면, 하나님은 폭군과 같은 하나님입니다. 반대로󰡐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여 무조건 죄인을 용서한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좋은가? 죄인을 그냥 용서하자니 공의가 용납지 않고 율법대로 심판하자니 사랑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는 벌하고 죄인은 구원하는 방법을 찾으셨습니다. 이것은 암 병에 걸린 사람에게 있어서 암 균은 죽이고 암에 걸린 사람은 살리는 방법만큼이나 어려운 것입니다. 암 균을 죽이려고 독한 약을 쓰다 보니 사람이 견디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길을 찾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입니다. 독생자 예수로 하여금 인간의 죄를 짊어지게 하고 죄 값을 대신 받게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양이나 염소에게 죄를 전가시켜 대신 죽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희생양 되심을 예표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자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참으로 가슴 아픈 말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 말을 여러분의 자녀나 손자 손녀들을 가리키며 했다면 기절할 말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짐승처럼 희생양이 되어 죽는가?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짊어진 희생양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래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한 사람이 죄를 짓고 재판정에 끌려 왔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는 재판장의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를 보자 “아버지 저에요. 저 용서해 주세요.” 애원합니다. 그때 아버지 재판장이 “그래, 내 아들아. 걱정 마라. 곧 석방해주마” 할 수 있는가? 안됩니다. 그러면 공의가 무너집니다. 재판장과 죄수의 사이는 공의의 관계입니다. 법 앞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의미가 없습니다. 재판장은 아들에게 법에 따라 무거운 벌을 내렸습니다. 아들은 법대로 감옥으로 끌려갔습니다. 벌금을 내던지 아니면 징역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형 집행이 된 후 재판장은 아버지의 자격으로 아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어떻게든 벌금을 마련해 보마’ 아버지 재판장은 집으로 돌아가 가능한 모든 돈을 다 끌어 모으고 그래도 부족하자 집까지 처분해서 아들을 대신해 벌금을 내고 아들을 석방시켰습니다. 재판장으로서 공의도 이루고 아버지로서 사랑도 이룬 것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율법대로 정죄를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 스스로는 내가 지은 죄 값을 다 치를 길이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죄 값을 그의 독생자로 하여금 담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내가 지은 죄는 예수님에게 전가시켜 대신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예수님의 의는 나에게 전가시켜 나를 의인(義認)되게 하셨습니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의 십자가 수난은 나의 죄를 대신한 하나님의 징벌입니다. 우리 모두의 죄악을 예수님에게 담당 시켜 해결하신 것입니다. 이게 구원의 복음의 진수입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믿는가? 그렇다면 이제부터 사도바울처럼 남은 생애는 이 복음을 위해 살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구원을 얻습니다. 그리고

 

2. 예수의 십자가 수난은 내가 떨어질 지옥문을 가로 막았습니다.

 

죄의 형벌은 잔혹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죄인이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롬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쫓아 나타나나니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결과는 지옥입니다. 과연 지옥이 있을까요? 사랑의 하나님이 지옥을 만드셨을까요? 예, 지옥은 분명 있습니다. 거짓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옥을 수없이 증거합니다.

 

(마 13:42)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막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 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 9: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막 9: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계 21:8)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만약 지옥이 없다면 왜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는가? 지옥이 있으니까 죄인이 떨어질 지옥문을 가로 막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지옥이 없다면 복음의 진수가 예수 십자가와 부활이 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옥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 믿지 않는 여러분의 부모와 아들딸이 지옥불에 떨어질 것을 생각하며 눈물로 기도하며 전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관심한 성도들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식을 구타해서 죽인 어미보다 더 악한 사람입니다. 지옥에 대한 여러 증언 가운데 가장 구체적인 증거가 눅16장에 나옵니다. 거지 나사로가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고 부자는 죽어 지옥불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고통 중에 있는 부자가 멀리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자 애원했습니다.

 

(눅 16:24)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었습니다. 이 운명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운명을 예수님이 바꾸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내가 떨어질 지옥문을 가로막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지옥문이 닫혀 진 줄 믿습니다. 죄 사함 받고 심판에서 면제받고 영원한 천국이 열렸습니다. 예수 믿는 여러분은 절대로 지옥 갈 수가 없습니다. 사해 바다에 빠져 자살 할 수 없는 것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건물에 피뢰침과 같습니다. 천둥, 번개가 무섭게 치는 날 피뢰침 밑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피뢰침이 대신 벼락을 맞아주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이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이 당해야 할 지옥의 심판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요 5:24)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는 이 믿음으로 영혼을 구하기를 힘써야합니다. 예수님은 지옥문 앞에서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오른편 강도가 바로 지옥문 앞에서 건짐 받은 자입니다. 그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눅 23:43)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서도 전도를 하셨는데 우리는 이 좋은 환경에서 왜 전도를 안 하는가? 여러분, 전도 대상자가 있는가? 전도대상자는 여러분이 아는 사람 중에 지옥 가서는 안 될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분들에게 이 복음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이번 아가페만찬에 꼭 초청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3. 예수의 십자가 수난은 나의 구원의 선물을 위한 값비싼 대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천국에서 영생하기를 원하십니다(딤전2:4). 그런데 죄인이 어찌 구원을 기대하겠는가? 무슨 수로 사형 언도를 받은 자가 죄 사함을 받는가? 우리 힘으로는 안 됩니다. 내 노력으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비용은 하나님이 다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 값을 다 치르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됩니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여러분, 이 구원의 선물, 다 받으신 줄 믿습니다. 오늘 죽어도 천국갈 수 있는가? 왜 여러분이 천국 갈 수 있다고 믿는가? 여러분의 행함 때문인가? 예수 믿기 때문인가? 여러분은 구원을 선물로 믿는가? 선물은 값을 주고받는가? 거저 받는가? 아무리 비싼 선물도 거저 받습니다. 값은 선물 주는 사람이 지불합니다. 다만 구원의 선물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믿고 감사하므로 받으면 됩니다. 선물 주는데도 받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구원의 선물, 다 받으셨지요? 이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처럼 살아야 합니다.

 

행함과 삶으로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결코 세속화 되어서는 안됩니다.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천국 백성답게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성도가 되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이 헛되지 않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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