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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이사야

사 66장 10-14절(위로하시는 하나님의 품) - 안효관

by Preacher 2023.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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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66장 10-14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품

안효관 목사 2014-

전주남성교회 https://https://www.nsc.or.kr/

 

사람들은 힘들 때 누군가의 위로를 받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위로를 받음으로 다시금 용기를 내어 힘있게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모든 순간이 위로를 받아야 할 순간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이 위로를 받아야 할 때를 맞게 됩니다. 특별히 오랜 기간 동안 큰 슬픔이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때론 작은 위로의 말 한 마디가 그 사람의 인생에 엄청난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 뉴 호프 커뮤니티교회(New Hope Community Church)의 데일 갤러웨이(Dale Galloway) 목사의 글 중에 ‘테디 스톨러드’라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분이 시무하던 교회에 톰슨이라는 여교사가 있었는데, 그 여교사가 초등학교 5학인 테드 스톨러드라는 아이를 담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항상 왕따를 당하는 아이였습니다. 멍한 얼굴에 가까이 가면 그 아이에게서 심한 냄새까지 났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보면 채점할 것도 없이 죄다 틀린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아이의 생활기록부를 살펴보았습니다. 1-4학년까지 그 아이의 생활기록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1학년 때에는 ‘착한 아이이다. 미래가 보인다.’ 2학년 때에는 ‘조용한 아이이다. 그러나 조금 폐쇄적이다. 어머니가 불치의 병을 앓고 있다.’ 3학년 때에는 ‘학업 성취도가 떨어진다. 금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아이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4학년 때에는 ‘미래가 없다. 아버지는 가출했고 현재 이모가 양육하고 있다. 학대당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아이의 생활기록부를 읽은 톰슨 선생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한 생명이 자신을 비롯한 교육자들의 방관과 유기로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보는 듯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톰슨 선생님은 테디에게 교사로서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톰슨 선생님은 방과 후 개인적으로 테디의 공부를 도와주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성탄절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성탄절에 아이들이 선생님께 선물을 하는 풍습이 있는데, 모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은 일일이 그 선물을 풀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테디 차례가 되어 테디의 선물을 열었습니다. 그 안에는 가짜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손때가 가득 묻은 쓰다 만 싸구려 향수가 들어 있었습니다. 가짜 목걸이는 알까지 여러 개 떨어져 나간 형편없는 상태였고, 향수는 거의 비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테디의 선물을 보고는 평소 멍청하던 테디가 형편없는 선물까지 했다면서 조롱하며 비웃었습니다. 그때 톰슨 선생님은 많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 목걸이를 직접 목에 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쁘지 않니? 나는 이런 목걸이가 제일 좋더라.” 그리고 향수를 뿌리면서 “나는 이 향수를 가장 좋아해. 테디, 고마워. 최고의 성탄절 선물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비웃고 조롱하던 아이들은 금새 조용해졌고, 테디는 톰슨 선생님의 품에 안기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 목걸이는 생전에 엄마가 하시던 목걸이에요. 향수도 엄마가 뿌리던 향수예요. 그 향수를 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한테 엄마 냄새가 나서 좋아요.”

 

그리고 그 일은 잊혀졌습니다. 6, 7년이 흐른 뒤 톰슨 선생님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테디에게서 온 편지였습니다. “사랑하는 톰슨 선생님, 고등학교 졸업 소식을 선생님께 가장 먼저 알리고 싶었어요. 저 반에서 2등으로 졸업했습니다.” 다시 4년 뒤 또 한 통의 편지가 왔습니다. “사랑하는 톰슨 선생님, 저 과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4년 뒤 또 편지가 왔습니다. “사랑하는 톰슨 선생님, 제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멋지죠? 그리고 이제 곧 결혼합니다. 제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것은 아시죠? 결혼식 때 선생님께서 제 어머니 자리에 앉아주세요. 선생님은 저에게 어머니이시니까요.”

 

초등학교 5학년 때 보여주었던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과 위로의 말이 그 아이의 꿈을 살려주었고, 아이의 인생을 바꾸어주었던 것입니다. 가만 두었다면 테디 스톨러드라는 아이는 사회에 문제아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파멸되어가던 그의 인격 속에 위로를 통해서 그의 재능을 깨워주니까, 병들어가는 사람을 치료하여 생명을 살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진정한 위로는 삶에 용기를 선물하고, 그의 인생에 새로운 세상을 열어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대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말씀을 나누었던 것처럼 이사야 66장의 말씀이 선포되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하던 시대였습니다. 주전 586년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나라가 망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의 군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해야 했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대부분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폐허가 되어버린 이스라엘 땅에 남은 있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들은 두 가지로 인해서 낙심하고 절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첫 번째는 그들의 힘으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너무 나약한 사람들뿐입니다. 그들이 힘을 모아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싸우거나 투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 역시 포로지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나라의 독립은 고사하고 지금 당장 먹고 살기 힘들 정도로 어려움에 처한 그들이 어디에다 희망을 두고 살아야 할 지 막막한 상황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 가운데 하나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나쁘고 힘들어도 뭔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이 있을 때에는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다시 시도해볼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가망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새로운 것을 시도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절망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이 바로 그런 절망의 상황이었습니다.

 

또 하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절망케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셨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을 섬기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망하게 하시지는 않을꺼야.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시진 않을꺼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셨습니다.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예루살렘 성전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던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거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더욱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어주신다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당한 일들을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신 것만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조금이라도 자신들을 사랑하고 계신다면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내버려두실 리가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약속의 땅 가나안 대부분이 폐허가 되어버린 이 상황은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를 영영 잊으신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사야 40-66장의 말씀이 기록된 것입니다. 어디에서도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절망만이 가득한 상황 속에서 낙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로해 주십니다. 그래서 나라가 멸망당한 이후에 선포된 첫 번째 말씀은 위로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사야 40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이사야 40:1)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위로였습니다. 절망감으로 가득 찬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서의 마지막 부분인 오늘의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위로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을 계시하십니다. 지난주에 읽었던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해산하게 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오고 잃어버린 나라를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없는 상황은 ‘아이를 가졌으나 해산할 힘이 없는 모습’에 비유되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그렇습니다. 자기들 스스로 나라를 회복하거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수 있는 힘이나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희망을 갖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요, 그런 희망대로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해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기뻐하라고 외치며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아이를 갖지 못한 이스라엘에게 아이를 갖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는데도 아이를 해산할 힘이 없는 이스라엘에게 아이를 해산할 수 있게 해 주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의 회복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예루살렘과 함께 기뻐하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회복시켜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오늘 본문 11절에서는 ‘갓난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빤 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해산하지 못한 이스라엘은 해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이를 해산하게 됩니다. 그리고 해산한 그 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겨 엄마의 젖을 빱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가운데 하나가 갓난아이가 아무 걱정 없이 엄마의 젖을 빨고 있는 모습니다. 앞으로 이스라엘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해산할 힘조차 없던 엄마의 품에서 갓난아이는 만족하도록 젖을 빨아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본문 11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갓난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겨 아무 걱정 없이 젖을 빤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하나님의 품에 안겨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주시는 젖을 빨게 됩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긴 이스라엘에게는 이제 더 이상 걱정이 없습니다. 풍족한 은혜 속에서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12절에서는 엄마의 품에 안겨 젖을 먹은 아이가 배부름을 얻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놀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엄마의 무릎에서 뛰어노는 아이, 그 아이는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과 다름없는 기쁨으로 뛰놀고 있는 것입니다. 엄마의 품에 안겨 있으면서도 배고픔에 풀이 죽어 있는 그런 아이의 모습이 아닙니다. 풍족하게 젖을 먹고 배가 부른 아이가 아무 걱정 없이 엄마와 함께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렇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이가 행복한 모습으로 엄마의 품에서, 엄마의 무릎에서 놀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평강을 강같이, 그리고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만들어 주십니다. 12절에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주리니’라는 동사는 강이 넘침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물줄기가 생겨나는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스라엘 지역에는 ‘와디’라는 것이 있습니다. ‘와디’라는 것은 골짜기이긴 한데,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는 물이 하나도 흐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곳이 골짜기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비가 많이 오는 우기가 되면, 빗물이 모여서 그 골짜기를 타고 흐릅니다. 그러면 그 골짜기에는 큰 시내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비가 풍족하게 오면 와디라는 골짜기에만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골짜기의 물이 넘쳐 흘러서 그 옆으로 새로운 시내가 만들어집니다.

 

오늘 본문 12절의 말씀은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강을 잃어버린 채 살았습니다. 영광을 다 잃어버린 채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켜 주실 때에는 평강이 넘쳐날 것입니다. 골짜기에 가득한 물처럼 평강이 넘쳐날 것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골짜기까지도 넘쳐 전에는 없던 새로운 시내가 만들어져 그곳에까지도 평강이 넘쳐흐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여 주실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 나라들로부터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골짜기에 가득한 물처럼, 그리고 골짜기를 넘어 시내들이 만들어져 그곳에까지 물이 넘쳐흐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광을 가득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방 땅에까지 넘쳐 흐르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인 순간에도 엄마가 아이를 품에 안고 풍족하게 젖을 먹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우리 인생에 위로의 손길로 다가오셔서 우리의 삶에 풍족한 것들로 채워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평강과 은혜와 영광을 가득하게 채워 주십니다. 모든 것이 꽉 막힌 것과 같은 상황에서도 길을 만들어 앞을 향해 나갈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의 메마름으로 인해 고통 가운데 울부짖을 때 위로의 하나님께서 우리 곁으로 찾아오셔서 우리의 삶에 시내가 흐르게 해 주십니다. 골짜기에 물을 흐르게 하시고, 골짜기가 넘쳐 시내를 만들어 물을 흐르게 하시듯이 우리의 삶에도 넘치도록 풍성하게 은혜의 강물이 흐르게 하십니다. 엄마를 잃은 고아와 같이, 그래서 엄마의 젖을 먹을 수 없어 비쩍 마른 아이처럼 불쌍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하늘의 생명의 젖을 풍성하게 먹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나님의 품 안에서 평안케 하시고, 엄마의 무릎에서 뛰어노는 아이처럼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품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무리 끌어안으려고 해도 엄마의 품에 안기길 거절하고 도망치는 아이에게는 젖을 먹일 수가 없습니다. 배가 고픈 아이는 엄마의 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엄마로부터 젖을 얻어먹을 수가 있습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이 많은 아이는 모든 것을 엄마에게 털어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엄마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이 세고 강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때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인생의 장벽으로 인해 고달픈 인생을 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나를 엄습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원치 않는 고통이 나를 힘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로 인해서 내 삶의 모든 것이 흐트러질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내 주변에 나를 도와줄 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그래서 나 혼자인 것처럼 생각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의 위로자가 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그 모든 것을 아뢰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위로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하늘의 평강으로 함께 하십니다. 세상이 알 수 없는 하늘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우리의 삶에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의 품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사람은 세상에서 맛보지 못한 하늘의 기쁨을 맛보며, 그 기쁨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하늘의 기쁨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혹 우리 가운데 내가 세운 계획대로 일이 풀려지지 않아서 마음이 아픈 분 계십니까? 삶이 너무너무 버거워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싶은 분 계십니까? 내 주변에 아무도 없이 외톨이가 되어 깊은 외로움에 홀로 눈물 흘리며 지내시는 분 계십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 깊은 절망감과 무력감으로 인해 삶에 기쁨이 없이 하루하루 견디듯 살고 계신 분은 없습니까?

 

하나님 품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품에 안기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품에 꼭 안아주시며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풍성하게 공급해 주십니다. 하늘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순간의 행복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을 얻는 방법도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당당하게 승리하며 살 수 있는 방법도 오직 하나 하나님의 품에 안기어 하나님께서 주신 하늘 양식으로 힘을 얻어 사는 것입니다.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 우리는 세상 그 무엇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을 소유하며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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