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64장 6- 12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다
허창수 목사 5.03.15 1
동성교회 [창원시] https://https://cafe.daum.net/huhcs48/
오늘 나에게 숨겨 놓은 아들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지금부터 22년 전 1994년 8월에 백두산을 관광할 때 가이드를 하셨던 분으로부터 서너 달 지나 그가 아들을 낳았으니 이름을 지어 달라는 전화를 받고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으로 믿고 기도하여 ‘許聖賢’(거룩한 것이 나타났다)이라고 지어 주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성은 같지만 本은 다릅니다. 그때부터 나는 그 아이를 기도로 키운 아버지가 되었고 그 아이는 내 아들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몇 번 보았고 고2년 때 앞으로 목사를 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에 고신대학교에 입학하고 고려신학교를 다니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그렇게 할 뜻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신학을 공부하려면 영어를 많이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약 3년간 전혀 소식이 없었고, 나도 한국으로 초청하고 대학에 입학을 시키기 위해서 더 이상 노력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신학기에 고신대 영어 영문학과에 입학하였다는 메일이 왔습니다. 나는 메일을 받고 진흙과 같은 나를 통해 토기장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고 감사하며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두려웠습니다. 그 아들을 오늘 교회 앞에 인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허성현이는 허창수의 아들이요 동성교회의 아들입니다. 토기장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저 아들을 통해서 또 무엇을 어떻게 하실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이끌어 오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자신의 뜻을 따라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본문 8절에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말씀하셨습니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토기장이와 진흙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시고 우리는 진흙이라고 하신 것은 진흙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말해줍니다. 진흙은 무능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진흙 자체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햇볕과 물을 주시므로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진흙 같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면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진흙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해야 엄청난 생명을 살릴 수 있게 됩니다.
진흙은 발에 밟히는 무능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토기장이에 의해서 쓰임 받는 온갖 그릇이 만들어 집니다. 땅은 모든 식물과 동물들이 자라고 살 수 있는 터전입니다. 흙은 모든 풀과 채소와 모든 식물을 낼 수 있습니다. 흙이 없으면 식물이나 동물들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흙은 신비합니다. 흙 속에는 엄청난 생명체를 품고 있습니다. 흙이 아니면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습니다. 큰 나무를 비롯해서 작은 풀 한 포기도 흙을 통해서 존재합니다.
사람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실 때 토기장이의 절대적인 주권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어리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롬9:21)고 말씀했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자기 맘대로 그릇을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도 사람을 만드실 때 자기 주권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렘18:6)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토기장이신 하나님의 손에 의해 만드셨고 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였습니다. 포로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진흙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포로였지만 무한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토기장이신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그 가능성을 나태 주시기를 호소하는 말씀입니다.
범죄로 인하여 포로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넓으신 아량으로 사죄의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는 말씀입니다.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발에 밟히는 진흙처럼 비천하고 연약함을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6)라고 자신들의 무능함을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진흙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진흙입니다. 더러운 죄로 인해 스스로 일어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탄 마귀의 사슬에 매여 끌려 다니며 짓밟히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 ‘우리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8)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물이지만 말씀으로 창조하신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들을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다른 피조물은 ‘있으라’, ‘내라’는 말씀을 하시므로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마치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들을 만드는 것처럼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코에 생령을 불어넣으시므로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창2:7).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며 영원히 하나님과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어떤 존재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지 못했지만 사람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죄를 범하므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범죄하여 바벨론에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사29:16) 라고 외쳤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인생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계심을 인식하고 그 앞에서 항상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지으신 토기장이시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나를 그분의 만드신 뜻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분의 절대적인 주권에 따라 나는 존재할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다 주의 백성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9)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의 백성이라’고 외쳤습니다.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토기장이는 혼신을 다해 진흙으로 그릇을 만듭니다. 진흙을 아주 보드랍게 부시고 풀이나 잡티가 없도록 다 가려내고 물을 부어 반죽을 해서 적당하게 숙성을 시켰다가 한 덩어리를 도르래에 올려 돌리며 손으로 그릇을 만듭니다. 그리고 햇볕에 말려서 불에 굽습니다.
언젠가 옹기굴을 구경한 일이 있습니다. 약간 비스듬한 언덕에 흙으로 만든 긴 굴이였습니다. 그 안에 토기장이가 만들어 햇볕에 말린 그릇들을 넣고 불을 지핍니다. 잠도 자지 않고 밤낮 이틀 정도 불이 꺼지지 않게 계속 나무를 넣어 1500도 이상 가열이 되면 입구를 막고 불기운이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모든 구멍을 흙으로 다 막습니다. 그리고 며칠을 기다렸다 그릇을 끄집어냅니다. 중요한 것은 이때입니다. 토기장이는 그동안 만든 그릇들을 하나 하나 자세히 살펴봅니다. 그리고 망치를 들고 사정없이 깨는 것입니다. 그릇들을 깨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토기장이는 그동안 힘들게 만든 것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깨뜨립니다. 작은 흠이라도 있는 것은 박살을 내는 것입니다. 약간의 흠이 있다고 해서 사용하는 데는 아무 이상이 없지만 토기장이는 깨뜨려 버립니다. 깨뜨리지 말고 나 한데 주면 고맙겠는데, 토기장이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작은 흠이라도 있는 것은 절대로 밖으로 반출하지 않습니다. 깨뜨리는 것도 남에게 맡기지 않고 반드시 자기 손으로 깨뜨립니다.
토기장이는 다 깨뜨리고 그 중에 몇 개만을 골랐습니다. 그것은 아주 귀한 상품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가마에서 나온 그릇 모두를 깨뜨리지 않으면 흠 없는 몇 개는 가치가 없게 됩니다. 많은 것을 깨뜨리므로 남은 몇 개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보물급 최고의 상품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토기장이는 그 몇 개를 위해 흠 있는 것을 아끼지 않고 깨뜨리는 것입니다.
짝통이 많으면 진품이 가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 진품처럼 짝통을 만듭니다. 그러나 경찰은 짝통을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않고 소각해 버립니다. 진품과 비교해도 전문가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모든 것을 아깝게 여기지 않고 사정없이 태우는 것은 진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이사야는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소서’(9)라고 호소했습니다. 토기장이가 분노하여 토기를 망치로 깨뜨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사람들에게 분노하신 것입니다.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하셔서 바벨론에 사로 잡혀 포로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황폐 하였나이다”(10)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거룩한 성읍이 범죄한고로 광야가 되고, 시온이 광야가 되었습니다.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이 죄로 말미암아 황폐하도록 하나님께서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범죄 한 백성들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습니다. 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 사람들의 손에 붙여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죄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요 분노였습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엄격히 진행되었다면 그들은 모두 흔적조차도 없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토기장이가 가마에서 나온 그 많은 것들을 아낌없이 깨뜨리고 몇 개만을 골라 상품을 만들었던 것처럼, 그 중에 얼마를 남겨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마땅히 우리는 죄로 인하여 버려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백성 된 것은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동이나 철로 만든 그릇은 깨어져도 재생하면 다시 새로운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흙으로 만든 그릇은 깨어지면 재생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은 범죄한 사람을 재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회복하셔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버려진 죄인을 다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고 다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깨어버릴 존재들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닙니다. 토기장이가 흠 있는 것을 아낌없이 깨뜨린 것처럼 예수를 구주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낌없이 지옥불 속으로 던지셨습니다. 오직 예수를 믿는 자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발에 밟히는 진흙입니다. 그러나 토기장이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임 받는 그릇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목적대로 쓰임 받는 그릇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만족을 줄 수 있는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자로서, 주의 백성으로서 감사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약 -------------------- > 이사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 55장 1-5절(꼭 필요한 수고) - 배혁 (0) | 2023.06.27 |
---|---|
사 61장 10절(우리의 최고의 행복 속에서 구하시는 하나님의 영광 3) - 박경호 (1) | 2023.05.21 |
사 61장 1-3절(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낼 그 분) - 안효관 (1) | 2023.05.21 |
사 66장 7-9절(해산하게 하시는 하나님) - 안효관 (0) | 2023.04.23 |
사 66장 10-14절(위로하시는 하나님의 품) - 안효관 (0) | 2023.04.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