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 --------------------/데살로니가전서

살전 5장 6절, 벧전 4장 7절(우리의 마음을 조종하려는 세상의 소리를 거부하라!) - 이삼규

by Preacher 2023. 6. 20.
728x90
반응형

살전5장 6, 벧전4장 7

우리의 마음을 조종하려는 세상의 소리를 거부하라!

이삼규 목사 20130908

낙양교회 http://nakyang.onmam.com

 

살전 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벧전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교회 안에 생긴 영적 무감각 때문에 교회는 원수의 간사한 공격에 매우 취약한 상태에 빠져버렸습니다. 우리가 세상과 세상의 영향에 무릎을 꿇지 않기 위해서는 원수 마귀의 공격과 함정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우리의 영혼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는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노예 상태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몸을 노예로 만드는 것인데 이것은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여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이 끌려와서 노예가 된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마음의 노예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교묘한 사상에 한 번 사로잡히면 우리는 자발적으로 그 사상에 순종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원수의 선전에 속아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사상에 만족하기 때문에 원수의 선전의 덫에서 빠져 나오겠다는 생각조차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손과 발목에 쇠사슬을 채웠다면 즉시 자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마음을 노예로 만들어도 그는 잘 알지 못합니다. 해로운 사상이 선전을 통해 우리에게 빈번히 제시 될 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사상에 따라서 살아갑니다.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모른 채 말입니다. 요즘 보면 신천지 이단이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저한테도 가끔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자신의 이름을 ‘정진실’이라고 쓴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마음의 노예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자신들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대중매체의 중요성

 

가장 악랄한 전쟁은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가장 악랄한 전쟁은 오늘날 진행 중입니다. 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사고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다양한 형태의 문화입니다.

 

1)대중매체-딱딱한 뉴스에서부터 연예오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우리의 안방에 매일 침투하는 대중매체를 접하고 삽니다. 조용하게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대중 매체가 여러분의 마음에 침투하여 여러분을 노예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을 것이며 다시 자유를 얻기 위해 아마도 며칠은 금식해야 할 것입니다.

 

2)학교제도- 물론 학교는 유용한 것이므로 사회에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교육은 자라나는 세대의 사고를 통제하는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3)메스미디어-라디오, TV, 영화, 잡지, 그리고 책을 통해서 펴져 나가는 세상의 사상들입니다. 대중 매체를 장악한 자가 현대인들의 사상과 사고를 움직입니다.

 

4)광고-대중의 생각을 조종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무기들 중 하나는 광고입니다. 광고업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육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침대는 가구가 아냐?”라는 광고가 있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침대가 가구라고 생각해왔는데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고 광고합니다. 그러면 침대가 무엇입니까? ‘침대는 과학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할 때 그렇구나!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야 라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많은 비용을 들이고 정교한 계획을 세워서 만들어낸 방법들을 통해 우리의 사고를 움직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인생, 사랑, 돈, 즐거움, 결혼, 가치, 종교, 미래,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같은 주제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사고하도록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모든 것에 대해 동일하게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세상 철학의 영향력을 조심하라

 

소수의 직업적 철학자만 철학자가 아닙니다. 직업적 철학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도 모두 철학자입니다. 쉽게 말씀드려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개똥철학’을 갖고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이유로 어떤 행동을 했다면 여러분도 철학자입니다. 그러므로 철학자가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에 따라 인생을 봅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의 철학을 조종하는가? 아마도 ‘내가 그렇게 한다.’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철학이 어디로부터 올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대중매체, 즉 학교교육, 메스미디어, 광고 등에서 옵니다. 여러분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사랑이 아닌가를 알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텔레비전을 켜 보시기 바랍니다. 그 바보상자가 다 가르쳐 줄 것입니다. 요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스마트폰이 다 가르쳐줍니다. 요즘 가만히 보십시오.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들은 저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이 수시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봅니다. 거기에는 뉴스도 있고, 정보도 있고,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스마트폰을 다 빼앗아 버리면 공황상태가 올지도 모릅니다.

 

돈의 철학은 어떠합니까? 언론이나 학교 교육의 영향이 우리의 돈의 철학을 좌우합니다. 정당한 즐거움이든 잘못된 즐거움이든 간에 즐거움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세상의 영향을 통해 형성됩니다.

 

그들의 전략은 우리가 그들의 철학을 받아들이고 그 철학에 따라 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불경건한 자들의 지혜를 비판하는 성경은 그들의 지혜를 따라 살지 않는 사람이 복되다고 가르칩니다. 세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시작된 모든 것은 악하고 불경건하다는 것을 우리는 늘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라

 

경건한 자들이 불경건한 자들의 지혜를 거부하도록 가르치기 위해 성경이 주어졌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 배운 사람들은 대중매체의 영향에서 벗어나 성경적인 사상으로 무장하게 됩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주시고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올바른 해석을 주십니다. 성령의 해석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하나님께 통제를 받습니다. 사랑과 복의 원천이신 창조주께서 그들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들을 새 인간으로 만들어주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통제하기 원하시며, 주저 없이 “너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의 통제 받고 사십니까? 학교입니까? 대중 매체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통제입니까?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간에 누군가의 통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누구의 통제를 받는가 하는 것입니다.

 

시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무지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지혜로워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 주는 지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잘못된 철학을 바른 철학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 주는 지혜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사도 바울은 길거리에서 노예를 흔히 볼 수 있었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도 바울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롬1:1)라고 말했습니다. 종이라는 말은 ‘둘로스’라고 하는데 노예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노예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자신을 아침 9시 출근해서 오후 5시에 퇴근하고 돈을 받는 그런 의미의 종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개념의 종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능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사랑은 노예 상태를 속박이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노예상태라고 불렀던 것은 “그리스도를 향한 순종”이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속박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노예 상태는 자유와 사랑에서 나오는 즐거운 노예 상태였습니다. 그런 노예 상태에 있는 자들이 바로 하늘의 천사들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가장 가까이 있는 그들은 가장 거룩하고 자유로운 존재들입니다.

 

영적 무감각에서 벗어나라

 

우리는 소돔에서 살았던 롯과 그의 가족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소돔으로 가서 살게 된 이유는 소돔에서 경제적 번영을 얻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롯은 빠른 속도로 번영을 이루어서 소돔에서 유력 인사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성문에 앉았다는 사실에 잘 드러납니다. 그의 가족들은 소돔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되었지만 소돔의 문화에 서서히 물들어 갔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뇌된 것입니다.

 

하지만 롯은 저항했습니다. 소돔으로 이주하기 전 그는 아브라함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지낼 때 그는 아브라함의 기도 소리를 들었고 그가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소돔성에 살고 있었지만 소돔성의 세뇌를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롯의 고뇌에 대해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벧후 2: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롯이라는 동일 인물에 대해 ‘의로운’이라는 단어와 ‘상함이라’는 단어가 모두 사용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롯의 심령이 상하였습니다! 그는 소돔의 일부였지만 소돔의 악을 미워하였습니다. 소돔의 화려한 환경이 그를 유혹했지만 그는 아브라함의 기도소리를 기억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소리가 여전히 그의 귓가에 울렸고 소돔의 쾌락의 유혹을 무력화시켰습니다. 하지만 그가 소돔에서 당장 뛰쳐나올 정도로 강하게 소돔에 저항한 것은 아닙니다. 경제적 이유로 그는 소돔을 미워하면서도 그곳에 계속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롯의 가족들은 롯처럼 소돔에 저항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세뇌되어 소돔에 동화되어 버렸습니다. 소돔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신 전능한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려서 소돔을 멸하실 때 롯은 두 딸과 함께 그곳을 빠져왔지만 그의 아내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소돔의 문화에 완전히 세뇌된 그녀는 소돔을 못 잊어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소돔과 동일하게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경고하십니다.

 

눅 17:32 롯의 처를 기억하라

 

더 나아가 롯의 두 딸은 아버지와 함께 소돔에서 빠져나왔지만 이미 그들은 소돔의 문화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통간하여 아들들을 낳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400여 년 동안 종살이했습니다. 애굽에 완전히 동화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굽의 종교에 세뇌되어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그들 중에는 우상숭배자가 많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세가 시내산에 율법을 받으러 올라갔을 때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아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을 때 그들에게서 우상이 제거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간 후 여러 나라가 그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들이 헷 족속이나 여부스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주변 나라들의 악한 행위를 본받아서 우상숭배에 서서히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결국 우상 숭배의 죗값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고, 바벨론 포로생활은 우상숭배를 끝내게 만들었습니다. 70년 포로 생활이후에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상의 세뇌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법을 받아들인 사람은 세상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습니다. 세상을 위해 선한 일을 하려면 세상의 방법을 거부해야 합니다. 저항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세뇌와 작업을 경계하기 위해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벧전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세상과 구별된 그리스도인이 되어라!

 

우리보다 앞서 순례의 길을 간 믿음의 조상들은 매우 편협했습니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안식일에 웃지 말라”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편협한 것입니다. “안식일에 아내에게 키스를 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은 지나친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에 텃밭의 양파를 캐서 먹거나 과일을 따서 먹으면 안 되고, 텃밭에서 태양을 바라보며 ‘추수 때가 되었구나!’라고 말해도 안 된다는 그들의 주장은 지나친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세상과 타협해서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들처럼 지난 것이 낫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극단적으로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 세상을 거부하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마땅합니다. 세상이 “당신들 그리스도인은 왜 그렇게 유별납니까?”라고 비난하십니까? 심지어 다른 교회들이 “당신들만 거룩합니까?”라고 비웃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나는 더 거룩해져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쓸 뿐입니다. 내가 지나치다면 이해해 주십시오. 말씀대로 사는 일이라면 모자라는 것보다 지나친 것이 차라리 더 낫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권하는 유일한 멍에는 복된 멍에입니다.

 

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멍에는 선하고 바람직스럽고 권할 만하 모든 것을 향해 우리를 이끌고 가는 사랑의 멍에입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멍에를 메면 세상의 멍에는 결국 다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정신을 똑 바로 차리고 근신해야 할 때입니다. 세상의 영향력을 온 몸으로 거부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