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5장 16-18
감사의 조건
조원건 목사 14-11-23
켈러한인제일침례교회 http://fkbckeller.org
여러분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점수로 계산한다면 10점 만점에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 한 조사기관에서 각 나라별로 점수를 계산해서 행복순위를 발표했습니다. OECD 34개국중에서 1위가 덴마크, 2위가 호주, 3위가 노르웨이, 미국이 17위, 한국이 32위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이 거의 꼴찌에 가깝습니다. 어린이 청소년들의 행복순위에서는 스페인이 1위, 미국이 10위, 한국이 23위이었습니다.
얼마전 한국의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들에게 사회자가 자신들의 행복점수를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은 10점만점에 9점, 어떤 사람은 8점, 어떤 사람은 7점을 주었습니다.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자신에게 7-9점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출연한 일본사람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행복점수를 10점만점에 1점만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일본사람들의 국민성은 대체로 인생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합니다. 컵에 물이 반이 담겨있으면, 보통 사람들은 “컵에 물이 반이나 담겨 있네”라고 말하는 반면 자신의 국민들은 “물이 컵에 반밖에 없다”라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으신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특징을 가장 잘 설명한 구절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즉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리스도인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기뻐하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갈만한 충분한 조건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돈을 잘 벌게 되고 건강하고 자녀들이 모두 잘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러한 것들만이 감사와 행복의 조건이라면 불행한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난하게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북한이나 이슬람국가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도 못하며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많은 돈이 감사와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또 몇 일전 신실하게 예수님을 잘 믿던 김자옥씨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듯이 건강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건강해야만 감사할수 있다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감사하고 행복하게 살아갈수 없을 것입니다.
옛날에는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행복하게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사람들이 먹는 것과 집이 해결되었다고 행복하게 느끼지 않습니다. 예를들어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었는데, 남들은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를 갖고 있으면 열등감을 갖고 불만족스럽게 살수 있습니다. 또 학생들의 경우 아무리 잘 먹고 따뜻한 집에서 살아도 다른 친구들이 갖고 있는 스마트폰이나 게임도구를 갖고 있지 못하면 불평이 생기고 소외감을 느낄수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먹는 것과 입을 것과 살 집이 해결되고 나면 문화적인 새로운 욕구가 생기게 됩니다. 영화도 보고 스포츠도 즐기고 여행도 다니면서 더 큰 행복을 느끼고 싶어 합니다. 그럼 그런 문화적인 욕구가 다 해결되면 사람들은 행복해 집니까?
의식주의 문제나 문화적인 욕구가 다 해결되어도 사람들은 또 따른 욕구를 채우지 못해서 만족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며 살아갈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얻게 되면 사람들은 그때 인생의 허무함에 빠지게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왜 인생을 사는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며 살아갈수 있습니다. 이러한 욕구를 영적인 욕구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사람은 마지막으로 영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행복을 느낄수 없고 감사하며 살아갈수도 없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람의 힘으로 결코 채울수 없는 커다란 빈 공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전도서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3:11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들은 누구나 영원한 것을 알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채워질때까지 사람들은 결코 만족하며 행복을 누리며 살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처럼 과학이 발달하고 스포츠, 게임, 영화 등 사람들을 즐겁게 할수 있는 것들이 그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근심걱정하며 우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과학이 엄청나게 발달했는데도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것입니다. 그럼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바로 사람의 힘으로는 채울수 없는 영원한 것으로 채워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의식주가 해결되고 문화적인 욕구가 해결되면 그러한 것들이 영원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영생을 얻고 싶어서 불로장생초를 구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는 예쁜 궁녀들과 영원히 살려고 아방궁이라는 집을 지었는데 그곳에서 단 하루도 못 살고 불과 50세에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리 의식주가 해결되고 문화적인 욕구도 다 해결되었다 할지라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수 없기 때문에 마음 깊은 곳에 언제나 허전함이 있고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문화적인 욕구를 다 채우지 못하며 살지라도 바로 영원한 것을 해결했기 때문에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일을 예수님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요한복음 4:14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사람들에게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그러한 갈증을 영원히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진시황은 영원히 살려고 불로장생초를 구해도 못구했지만 예수님은 영원히 살수 있는 생명의 물을 주실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어떻게 그러한 생명수를 얻을수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3:16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영원한 갈증을 해결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 이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영원한 갈증을 해결하고 영생을 얻은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물질적으로 부족하여 가난하게 살지라도 또 몸에 질병이 있을지라도 감사하며 살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질보다 건강보다 더 귀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갈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한번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처럼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평소에 감사를 더 많이 하십니까 아니면 불평과 원망이 더 많은 것 같습니까? 물론 우리도 연약한 사람인지라 불평하고 원망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잠시동안 불평하고 원망할수는 있지만 그것이 오랫동안 지속되어서는 안됩니다. 신속하게 불평과 원망에서 벗어나 감사하는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모든 죄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범죄했습니까? 물론 마귀가 유혹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감사하는 마음이 조금씩 사라지고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이외의 모든 나무의 열매는 다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풍성하고 아름다운 수많은 나무의 열매를 먹을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었지만 한가지 먹지 말라고 금한 나무에 대한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사탄은 그렇게 감사하지 않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틈타서 그들을 유혹한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물질적인 것을 소유하고 문화적인 욕구를 다 채웠어도 영원한 것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적인 것들을 갖지 못했다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하나님이 가장 슬퍼하시는 모습일 것입니다.
바울은 말세에 사람들의 특징을 여러가지 열거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1-5을 간추려서 읽겠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말세의 특징을 여러가지 열거하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사람들이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감사하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과는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염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에볼라가 왜 무서운 것입니까? 전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감사를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어야지 원망과 불평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혹시라도 내 안에 원망과 불평이 생기기 시작하면 스스로 깜짝 놀라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귀한데 내가 왜 이러지?” “범사에 감사하며 살라고 하셨는데 이러면 안되는데!”라고 생각하며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를 빨리 회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이미 받은 것들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충분히 감사하며 살수 있지만 하나님이 그것만 주셨습니까?
우리에게 사랑하는 가족을 주셨고, 좋은 이웃들도 주셨고, 교회안에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여러 형제자매들을 주셨는데 다 감사의 조건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귀한 가족, 이웃, 교회를 무너뜨리는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는 에볼라가 아니라 원망과 불평이라는 바이러스입니다. 미국에서는 에볼라에 감염되었던 사람들이 백신을 맞고 완치되었다고 합니다. 저희도 원망과 불평이라는 바이러스에 전염된 사람들에게 감사의 백신을 공급하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깊이 감사하시며 날마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에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저희가 억지로 감사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감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기에 그렇게 명령하심을 깨닫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아무리 먹고 마시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문화적인 욕구가 다 해결되었다 할지라도 영원한 것을 얻지 못해서 목말라하며 만족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며 살수 있지만 저희에게 가족과 이웃과 교회를 주셔서 이 땅에서도 행복을 누리며 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혹시라도 저희안에 감사 대신 불평과 원망이 생긴다면 빨리 깨닫고 감사를 회복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불만과 불평과 원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감사의 백신을 제공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적은 예물을 드립니다. 또한 저희에게 주신 물질과 시간과 은사를 불평과 원망이 있는 곳에 감사를 심는 도구로 값지게 사용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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