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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사무엘하

삼하 18장 9-15절(압살롬의 머리털) - 안효관

by Preacher 2024.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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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18장 9-15

압살롬의 머리털

안효관 목사 2018-07-29

전주남성교회 https://https://www.nsc.or.kr/

 

우리는 어떤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미궁(迷宮)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미궁이라는 말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를 일컫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미궁’이라는 말이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크레타의 왕 미노스(Minos)는 괴물 미노타우르스(Minotauros)를 가두기 위해 건축과 공예의 명인인 다이달로스(Daidalos)에게 그를 가둘 미궁(Labyrinth)을 건축하도록 하고는 괴물 미노타우르스를 거기에 가두어버립니다. 다이달로스가 건축한 미궁은 그 안에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미궁을 만든 다이달로스가 미노스 왕의 미움을 사서 그의 아들 이카로스(Icaros)와 함께 자신이 만든 미궁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곳에서 다이달로스는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아들과 함께 미궁에서 탈출하게 됩니다. 그런데 탈출하던 도중에 밀랍 날개로 하늘을 날고 있다는 것에 너무나도 신이 난 아들 이카로스가 너무 높이 날다가 태양으로 말미암아 밀랍이 녹으면서 바다에 떨어져 죽게 됩니다. 비록 다이달로스는 탈출에 성공하여 시칠리아 섬에 안착하지만 귀한 아들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나온 말이 ‘다이달로스 콤플렉스’(Daidalos Complex)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곤경에 처하거나, 지난 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오늘 자신의 삶에 걸림돌이 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다이달로스는 지혜의 여신 아테네(Athene)로부터 기술을 전수 받은 건축과 공예의 장인이었습니다. 남들이 갖지 못한 엄청난 기술을 가졌습니다. 그 기술로 미궁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미궁에 자신이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미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자신이 가진 기술로 밀납으로 날개를 만들어 아들과 함께 탈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높이 날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아들이 따르지 않은 결과 소중한 아들을 잃는 비극을 맛봐야 했습니다.

 

그런 다이달로스 콤플렉스는 기업 경영에도 종종 언급되곤 합니다. 경영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만든 제도가 어느 순간 경직되어 오히려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현상을 나타낼 때 다이달로스 콤플렉스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복사기 화사인 제록스(Xerox) 사입니다. 한 때 제록스는 복사기의 대명사처럼 여겨졌습니다. 그 분야에서 최고를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제록스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20년 동안 세계 복사기 시장을 지배하면서 축적된 막대한 자금으로 미래 기술을 개발하는데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애플의 창업 기반이 된 GUI(Graphic User Interface) 기술을 비롯해 현재의 실리콘 벨리의 초석이 되는 최고의 기술들을 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개발된 수많은 기술들이 복사기에 적용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개발하여 보유한 핵심기술인 복사기 기술이 다른 어떤 기술에도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미궁에 빠지면서 제록스 사는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만든 미궁에 빠진 다이달로스처럼, 제록스사 역시 자신들이 개발한 신기술의 미궁에 빠져 오히려 회사 발전에 엄청난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과거의 성공을 이끌어낸 자신의 핵심역량과 장점에 발목이 잡혀서 현재 실패하는 경우를 일컫어 ‘다이달로스 콤플렉스’라고 말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을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압살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세 번째 아들입니다. 성경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사무엘하 14:25) 최고의 외모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의 외모 가운데 가장 눈에 띠는 것은 그의 머리털이니다. 이어서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세겔이었더라.”(사무엘하 14:26) 무게가 200세겔이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이해기 쉽게 표현한다면 2.3kg이나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압살롬이 2.3.kg의 머리털을 갖고 살았다는 뜻이 아니라, 머리털이 너무 잘 자라서 연말마다 깎아야 했는데 1년에 한 번씩 깎은 머리털의 무게를 달아보니 2.3kg이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1년에 한 번 머리털을 깎는데 그 때마다 2.3kg이나 될 정도였다면 그의 머리털이 얼마나 잘 자랐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압살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가 최고의 외모를 가졌다, 흠잡을 데 없을 정도였다.’라고 말하면서 바로 이어서 머리털이 그렇게 잘 자랐고 머리털이 많았다고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고대 세계에서 머리털은 힘과 생명 그리고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물론 나라마다 머리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왕들은 권력의 상징으로 머리털을 길게 하고 다녔습니다. 압살롬은 왕자입니다. 어쩌면 다윗 왕을 이어 왕이 될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압살롬이 외모도 출중하고 권력의 상징인 머리털도 길게 잘 자랐습니다. 누가 보아도 왕이 될 자격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외모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압살롬에게는 또 다른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말을 아주 잘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 왕과 아들 압살롬 사이가 틀어진 것은 암논과 다말 사건 때문입니다. 다윗의 큰 아들인 암논이 이복여동생인 다말을 짝사랑하여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다말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너무너무 힘들어하는 암논이 친구의 꾐에 빠져 다말을 욕보이고 말았습니다. 다말을 욕보인 암논은 마음이 변하여 다말을 매몰차게 박대했습니다. 그러자 다말의 친 오라버니인 압살롬이 그 사실을 알고는 이복형인 암논을 죽이고 맙니다. 이복 형 암논을 죽인 압살롬은 다윗 왕을 피해 외갓집(그술)으로 가버립니다. 3년 동안이나 아들 압살롬을 만나지 못한 다윗이 압살롬을 너무나도 보고 싶지만 그가 지은 죄 때문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데, 요압 장군의 지혜로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불러오게 됩니다.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오긴 왔지만 다윗 왕은 아들 압살롬을 왕궁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2년 동안이나 말입니다. 그러자 압살롬은 아버지가 자신을 너무나도 미워한다고 생각하고 반역을 일으키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성문 곁에 머물면서 왕에게 재판을 받으러 오는 사람에게 자신이 대신 재판을 해 줍니다. 압살롬이 지혜롭게 재판을 잘 하자 백성들은 ‘압살롬이야말로 우리의 왕이 될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은 그런 압살롬의 모습에 대해서 ‘압살롬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훔쳤다.’(사무엘하 15:6)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에게 재판을 해준다고 하면서 백성들의 마음을 다윗에게서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백성들이 다윗보다 자신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자 아버지 다윗에게 반역을 들고 말았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 왕은 왕궁을 버리고 도망을 가야 했습니다. 일부는 자신을 따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대부분이 압살롬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압살롬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다윗 왕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 전쟁을 하게 되는데 결국 압살롬은 전사하고 맙니다.

 

그런데 여러분, 압살롬이 어떻게 죽은 지 아십니까? 오늘 본문에 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 왕의 군대 장관 요압과 압살롬이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점차 전세가 압살롬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압살롬이 노새를 타고 도망을 치다가 그의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리고 말았습니다.<사진1> 여러분 당시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다. 오늘 본문에 그 상수리나무를 ‘가지가 번성한 큰 상수리나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큰 상수리나무 아래도 압살롬이 적군을 따돌리기 위해서 노새를 타고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노새를 타고 가는 압살롬의 긴 머리가 출렁출렁하더니 상수리나무 가지에 걸리고 노새는 급하게 빠져나갑니다. 결국 압살롬은 마치 교수형을 당하는 사람처럼 상수리나무 가지에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에 의해서 발각이 되고, 결국 요압 장군이 던진 창에 심장이 찔리고 맙니다.

 

압살롬은 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기던 두 가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첫 번째는 머리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고대사회에서 긴 머리털은 힘과 권력의 상징입니다. 그는 그 머리털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겼던지 전쟁터에서 투구도 쓰지 않았습니다. 머리를 휘날릴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는 아버지를 배반하고 나라를 차지한 그는 지금 백성들로부터 왕이라는 환호성을 듣고 있습니다. 전쟁을 통해서 아버지 다윗의 남아 있는 군대만 제거한다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권위에 대해서 저항할 수 없는 한 나라의 왕이 됩니다. 그런데 그 압살롬이 그가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던 그 머리털 때문에 상수리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백성들로부터 왕으로 추앙받는 사람의 모습 치고는 너무나도 불쌍한 모습으로 나무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압살롬이 자랑스럽게 여기던 또 하나는 그가 타고 있던 노새입니다. 노새는 구약성경 당시 대개 왕족이나 귀족들이 타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할 때 노새 그러면 사람이 타기에는 볼품없는 동물처럼 여겨지지만, 구약성경에서 노새를 처음 탄 것으로 언급된 사람이 다윗 왕입니다. 다윗만이 아니라 부와 영화를 다 가졌던 솔로몬도 노새를 탔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노새는 다윗 시대에는 왕이나 왕족 또는 귀족들이나 타던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왕이 되어 노새를 타고 간다는 것은 굉장한 영광이었고, 아무나 누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새를 타고 가다가 상수리나무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압살롬의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압살롬이 대롱대롱 매달렸는데도 노새는 그냥 제 갈 길을 가버립니다.

 

압살롬은 자신이 가진 장점 때문에 결국 비극적으로 그의 삶을 마감짓고 말았습니다. 긴 머리털은 힘과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그가 타던 노새는 부귀 영화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언변이 좋았습니다. 화려한 외모, 그가 가진 왕자라는 배경,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언변,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없을만큼 그의 삶에 화려한 이력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결국 그를 비극으로 몰아내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무언가 장점이 있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이나 기술을 가졌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그런 은사를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노래 잘하는 은사를 주셨고, 어떤 사람에게는 운동을 잘하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림을 잘 그리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글을 잘 쓰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똑똑한 머리를 주셨고, 어떤 사람에게는 멋진 외모를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말을 잘하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좋은 가정 형편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부모님을 만나는 만남의 복을 받은 사람도 있고, 똑독해서 남들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들보다 돈 버는 재주가 좋아서 부유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재능이나 은사를 가졌느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잘못 사용하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신이 가진 그 재능이나 은사가 자신에게 올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내게 주신 그 재능이 내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압살롬에게는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특별한 재능과 은총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외모,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머리털,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언변, 왕자라고 하는 신분 등입니다. 만일 압살롬에게 그런 특별한 재능이나 은총이 없었다면 그는 어쩌면 평범한 삶을 살았을지 모릅니다. 아버지를 반역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는 이스라엘 역사에 큰 비극을 만들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이어 나오는 18절에서는 압살롬이 자기의 기념비를 왕의 골까지에 세워놓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왕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동쪽을 흐르는 기드론 계곡입니다. 지금도 기드론 계곡에는 압살롬의 기념비가 남아있습니다.<사진2> 유대인들은 압살롬의 무덤으로 알려진 이 기념비 앞을 지날 때면 돌멩이를 던진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반역하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한 불효자식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압살롬에게 화려한 외모, 멋진 머리털, 왕자라는 지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언변 등 그가 그런 재능을 가지지 않았다면 아버지에게 대항하여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그런 재능을 가졌고, 그것을 잘못 사용한 결과 3천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로부터 저주를 받는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 때는 자랑거리였고 매력이었던 것이 그로 하여금 그런 저주받는 존재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능을 주셨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남들보다 다른 무언가가 주어졌다는 것이 우리의 인생을 망치는 것이 분명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그 재능과 매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다른 누군가와 다른 재능이나 매력이 있다면 우리는 먼저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런 재능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 나서 그런 재능이나 매력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그런 재능이나 매력을 가졌다고 남들 앞에 뽐내거나 그것으로 남들을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가진 매력을 뽐내려다가 낭패를 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이 교만해 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재능이나 매력이 자신이 잘나서 가진 것처럼 생각하는 순간 우리 마음에 교만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교만은 곧 그의 인생을 망하게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언에서 이렇게 교훈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언 16:18) 우리 마음이 교만에 빠지지 않는 첫 번째 방법은 내가 가지고 있고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남들보다 더 나은 재능이나 매력을 가졌다면 그것을 선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선한 역사에 도구로 쓰임 받아야 하고, 누군가에게 유익을 주는 일에 쓰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어가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도구로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재능도 주셨고, 은사도 주셨고, 남이 갖지 못한 매력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하나님의 얼굴이 미소를 드릴 수 있는 모습으로 우리가 쓰임 받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남들보다 더 나은 재능이나 매력을 주셨을까 하고 말입니다. 내가 잘 먹고 잘 살고, 내가 남들에게 인기를 얻고 자랑거리가 되게 하시려고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오직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갈라디아서 6:14)고 선언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자랑할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엄청난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최고의 학문을 배운 사람입니다. 그의 집안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질 정도로 뼈대 있는 집안이었습니다. 율법으로도 흠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율법을 지켰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도 그는 3층천의 경험을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살아 있을 때 천국에 가서 주님으로부터 사람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거룩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병자를 고치는 능력을 가졌었습니다. 우리가 갖고 싶어 하는 것 중에서 참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요? 그래야만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자아가 날마다 십자가에 죽어야만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이루어짐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진 어떤 재능이나 내게 있는 매력이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자랑거리가 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올무에 걸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압살롬의 머리털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이 있다면 주님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야 하는지 기도하십시다. 그것을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뜻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남들이 부러워하는 나만의 매력이 있다면 그것으로 내 인기를 얻으려 하지 말고 그것을 통해서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뼈아픈 훈련을 하십니다. 그래야만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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