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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사사기

삿 7장 2-8절(기드온 삼백 명) - 강대식

by Preacher 2023.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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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7장 2-8

기드온 삼백 명

강대식 목사 2020.07.26

한가족교회 http://ahttp://afamily.ijesus.net/

 

1. 2만 2천 명에 속하지도 말고!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삿7:2)

 

적과의 전쟁터에 오긴 왔지만 두렵고 떨리기만 하는 자들이다. 이방인의 뜰에 있거나 마당만 밟고 가는 자들이다. 출애굽에 참여했던 잡족들이다. 말씀이 길가와 흙이 얇은 돌밭에 뿌려진 자들이다. 말씀이 전혀 자랄 수 없는 토양이요 잠시 기뻐 받았다가도 환난에 금새 버리는 자들이다. 교인인 것을 부끄러워하고 숨기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두렵고 심판이 무섭다.

 

강 저쪽의 신들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이다. 교회는 나오기는 해도 내용물은 전혀 바뀌지 않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 상이요 샤머니즘과 유교 불교의 혼합신이다. 미국은 기독교 국가라고 불리지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고 오히려 힌두교의 구루들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초베스트 셀라가 되게 한다. 초대형교회를 이룬 릭 워렌이나 빌 하이벨스, 핸리 나웬 등이 구루들과 교제하고 책을 추천한다. 토저의 스승은 페넬롱이고, 신비주의자다. 귀용 부인, 캠피스, 깊은 영성을 말하는 대부분이 신비주의 계열에 속한 자들이다.

 

그 영적 계보를 위 한 단계만 살펴봐도, 교제하는 자들이 누구인지만 봐도, 그 정체를 알 수 있다. 관상기도나 침묵기도 명상 등은 강 저쪽에서 섬기는 신들이 현대판 영성으로 나타난 것이다. 성경은 그런 식의 영성 그 자체를 추구하거나 신비 체험을 구하는 것을 절대로 권하지 않는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지켜 행하면 복이요 아니면 저주를 선언할 뿐이댜.

 

신비주의나 경건주의는 그 영적 계보가 동양 신비주의나 인도의 불교이다. 사막의 교부들이 처음 수도원을 하며 이 수련 방법들을 도입하였다. 다 성경을 멀리 하기에 경건주의가 자유주의를 낳고 그 아비들이다. 성경을 멀리하고 영성 자체를 추구하는 것은 항상 에덴 동산의 옛뱀을 만나는 지름길이다. 성령의 지혜로 가르치는 성경을 만나야 이 암흑과 혼돈의 신비세계에서 해방될 수 있다. 성경은 진리의 보고요 성령의 서재인 것을 청교도들을 통하여 확실히 배워야 한다.

 

2. 남은 만 명에 속하지도 말고!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따로 세우라 —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삿7:4-7)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은 세상에 무릎을 꿇고 자기 일에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고 있다. 두려워 떠는 수준은 아니지만, 전쟁터에서도 마음은 콩밭에 있는 사람들이다. 전쟁터에 나와서도 전쟁에는 마음이 없고 물 마시는 일에만 무릎을 꿇고 있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말씀이다.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다. 말씀을 받기는 하는데, 그 가시들에 가로막혀 결실을 하지 못한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다. 혈통과 육정으로 사람의 뜻으로 난 자들이다. 사람의 지혜만 알고 성령의 지혜를 모른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더 생각한다. 주의 일보다 자기의 일이 우선이다. 하나님 나라보다 자기 왕국이 먼저이다. 거주하고 있는 땅의 신들을 섬기는 자들이다. 그 시대사상의 하수인들이다.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다. 제도권 종교를 장악하고 바벨탑을 높이 세우며 그 권세와 부를 자랑한다. 큰 교단, 유명 신학교, 대형 교회를 이루며 그 위세를 자랑한다. 큰 문, 넓은 길로, 많은 숫자를 자랑하며 거짓 목사들을 따라 멸망으로 가는 자들이다.

 

2만 2천 명에 속한 자들도, 일만 명에 속한 자들도, 하나님은 다수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고전10:5) 홍해는 건넜으나 광야에서 멸망한 다수들이다. 요단은 건넜으나 가나안에서 멸망한 다수들이다.

 

가나안을 사사시대로 만들고, 중세 천년을 암흑시대로 만든 자들이다. 같은 물을 먹고는 있는데, 주여 주여 하기는 하는데, 내 아버지의 뜻대로는 행하지 않는 자들이다. 아버지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는 관심도 분별력도 없다.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고 있는 자들이다.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해석하는 성경 밖에 모르는 자들이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으로 삼아 가르치니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자들이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먼 자들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사랑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고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듣고 좋아한다. 그래서 다수를 이루고 큰 교회 큰 교단, 유명 신학교를 이룬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도 적다고 하셨다. 주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 자들이다. 모래 위에 집을 지었기 때문에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면 무너지고 그 무너짐이 심하게 된다.

 

노아가 방주를 120 년 동안 짓고 있을 때 조롱하다가 홍수에 쓸려 죽은 무리들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모르고 외면한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만이 빼앗는다는 것을 모르고 세상만을 침노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라의 본 자손들이지만,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택한 백성인 북이스라엘이 멸망하였으며, 남유다도 멸망하였다. 포로생활에서 돌아왔지만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70년에 멸망하고 말았다.

 

1900년 만에 이스라엘이 다시 세워졌지만,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과 율법 밖에 모른다. 이제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자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자가 영적 이스라엘이요 참 이스라엘이다. 이면적 유대인이 참 유대인이요,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가 참 할례파이다.

 

3. 기드온 삼백 명에 속하자!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주리니”(삿7:5,7)

 

물을 보아도 무릎을 꿇지 않고 개가 핥듯이 혀로 물을 핥을 뿐이다. 물에 무릎 꿇지 않는다. 마음은 온통 전쟁을 준비하고 적과의 싸움과 승리를 향해 시선을 향하고 있다.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장성한 자들이고,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할 줄 아는 자들이다. 옥토에 말씀이 뿌려져 30배, 60배, 100배 결실을 맺는 자들이다.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 그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은 자들이다. 성령의 지혜로 가르침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지려 힘쓰는 자들이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성화를 이루며 성숙을 이루어 가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고 이들을 아신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7천 명, 그루터기의 거룩한 씨들을 항상 남겨 두신다. 이들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났고, 하나님께 속하였기에, 사람들의 교훈에 요동하지 않는다.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사로잡히지 않고, 모든 이론과 사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킨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말씀으로 충만하기를 힘쓴다. 성령으로 살았으니 성령을 따라 행한다.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은 이만 이천 명에 속한 자들도 아니고, 일만 명에 속한 자들도 아니고, 오직 기드온 삼백 명이 필요하다. 교회는 주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 이들을 길러내야 한다. 한가족교회와 청교도아카데미, 두 수조에, 기드온 삼백 명씩, 큰 물고기들로 가득 채워야 한다. 언약궤를 어깨에 매고 요단물을 밝는 자들이 바로 기드온 삼백 명들이다.

 

언약궤를 매고 요단을 건너는 것도, 갈렙처럼 기럇 아르바, 산지를 정복하는 것도, 다윗처럼 시글락을 청산하고 헤브론에 오르는 것도, 목적은 오직 하나다. 기드온 삼백 명을 길러내기 위한 것이다. 성령의 지혜로 쓴 청교도들과 개혁자들의 책을 공부하며 그들의 믿음과 영성을 본받아야 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시간을 내어 집중적으로 공부하며 성경을 다시 배워야 한다. 우리 몸에 베어 있는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들을 씻어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지 못하고 그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지 못하는 것은 내게 유익하던 것들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고 버릴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신선한 생수를 마시며 묵은 찌꺼기들을 씻어내고 몰아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이다. 헌 부대는 비워 버리고 헌 포도주는 쏟아 버려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말이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말씀의 개혁이 있는 곳에 하나님은 항상 성령의 부흥을 주셨다. 헤브론에 오르면, 기럇 아르바 산지를 주시면, 하나님은 기드온 삼백 명을 기르기 위해 열심과 헌신의 영을 부어주실 것이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천국이 가까이 온다. 내가 정말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정말 성령으로 회심했는지, 인생관과 세계관이 바뀌는 대전환이 있었는지 점검해야 한다.

 

없었다면 구해야 하고, 있었더라도 그후 진전과 자람과 성숙이 없었다면, 더 늦기 전에 회개하고 열심을 내고 달려가야 한다. 세상 것은 붙잡고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줄어들고 없어지고 멸망으로 인도한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다. 하늘의 것을 붙잡아야 모든 것을 더해 주시고 이 땅에서도 상을 주시고 천국에서도 상을 주신다. 주님이 오시는 것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려는 것이다.

 

주님은 내 말이 곧 영이고 생명이라고 하셨다.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성경을 만나야 그 말씀이 영이 되고 생명이 되는 것을 경험한다. 주님의 생애가. 사도와 선지자들의 삶이,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삶이, 말씀은 곧 영이고 생명인 것을 증언하고 있고, 본을 보이고 있다. 인생을 바꾸고 운명을 바꾸고 환경을 바꾸고 가문을 바꾸고 싶은가? 그러면 말씀 앞으로, 말씀을 통해 주님 앞으로, 말씀을 통해 성령 안으로 나오면 된다. 우리를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면서 광야 생활의 고난과 연단을 주시는 것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게 하기 위함이다.

 

마음으로부터 말씀으로 살게 되면 광야의 고난과 연단은 끝이 나는 것이다. 마침내 복을 받게 하신다고 하셨다. 마침내 가나안에 이르고 가나안 기업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인생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고 운명이 바뀌고 가문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는, 생명을 낳는 아버지 스승들을 만나, 말씀을 새롭게 공부하는 과정이 없이는, 결코 알 수도 없고, 결코 맛볼 수도 없다. 예수님의 제자훈련처럼 3년은 집중적으로 말씀을 공부해야 한다. 슬렁슬렁 하는 것은 10년을 공부해도 별 진전이 없는 것을 보아 왔다.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헤브론에 오르게 하시고, 기럇 아르바 산지를 주시면, 기드온 삼백 용사에게 가르칠 커리큘럼과 시간표를 10년동안 준비하였다. 성막 구조도와 그 안에 채울 성물도 준비하고 있다. 우림과 둠밈이 주시는 계시와, 그 꿈 이루어 주십사고, 찬송하며 기도하고 있다.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고,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고 있다. 기드온 삼백 용사는 오직 나팔(말씀)과 횃불(열정)만을 들고 미다안 대군을 물리쳤다. 갈렙은 유다지파 용사들만을 가지고 기럇 아르바 산지를 점령하였다. 다윗은 아둘람굴 용사들만으로 헤브론에 올랐고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하나님께서 마침내 축복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나님은 홍해와 요단을 마르게 함 같이, 지금도 역사하셔서, 여호와의 손의 강하심을 땅의 모든 백성이 알게 하시고,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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