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4장 10 - 17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허창수 목사 16.05.01
동성교회 [창원시] https://https://cafe.daum.net/huhcs48/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어려움에서 구하실 때 반드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유다인들이 전멸의 위기를 당했을 때 한 작은 여인을 통해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나와 여러분을 통해서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본문에서 에스더라고 하는 한 여인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더는 유다사람입니다. 유다사람이면서 유다가 아닌 바사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에스더는 디아스포라입니다. 유다민족이 흩어져 남의 나라에 사는 것을 ‘디아스포라’라고 합니다. 남의 나라에서 살면서 많은 구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하나님의 은혜로 아하수에로 왕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남의 나라에서 그 나라의 왕후가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입니다. 앞날의 영광을 보장 받았습니다. 에스더는 한 여자로서가 아닌, 그야말로 한 나라의 왕후로서 일생동안 왕궁에서 살아갈 수가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때 왕궁 밖에는 유다인들이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시기와 질투로 말미암아 유다인들이 수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만이라고 하는 아주 사악한 사람이 온 유다인을 다 죽여 없애려고 음모를 꾸민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루 만에 다 죽여 말살시킬 수 있는 건의안을 만들어 왕으로부터 그 허락을 받았습니다. 왕의 인을 찍은 법령이 온 나라에 선포되었습니다.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들은 다 죽게 되었습니다(3:13).
왕궁에 있는 왕후 에스더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에스더의 삼촌인 모르드개는 대궐문을 지키는 문지기였습니다. 문지기는 대궐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하만의 궤계로 모든 유다인들이 죽게 되었다는 것을 에스더에게 알려 줄 수가 없었습니다. 모르드개는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을 한 내시가 보고 에스더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왕후 에스더는 삼촌 모르드개가 굵은 베옷을 입고 대성통곡을 한다는 것을 알고 내시에게 무엇 때문인가를 알아보라고 했습니다(5).
모르드개는 내시에게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유다인을 멸하려고 하는 하만의 음모를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왕의 인을 찍은 조서 초본을 주어 에스더에게 알게 하여, 왕에게 나아가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8).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부탁을 받았지만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 누구든지 왕 앞에 나아가면 죽이는 법이였고 이미 에스더는 왕의 부름을 받지 못한지가 삼십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왕에게 나아갈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왕후 에스더의 말을 전해 들은 모르드개는 다시 말을 전합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13,14)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에스더는 왕의 부름 없이는 왕 앞에 나아가면 죽을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당시 바사 왕국의 법이였습니다. 왕의 부름 없이 누구도 왕 앞에 나아갈 수 없도록 법을 제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부탁을 들을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모르드개는 다시 에스더에게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13)라고 말했습니다. 굳이 에스더를 통하지 않고서라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유다 민족을 구원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이미 조상들에게 주어진 이스라엘에 대한 보호와 언약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방법으로 택한 백성을 반드시 구원해 내십니다. 에스더가 협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유다인은 죽임을 당하지 않고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모르드개는 믿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신앙입니다. 모르드개는 사람을 의지 하는 대신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신앙만을 갖고 있다면 현재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주어진 기회에 그 일을 하지 않으면 그에게 임하는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보호와 믿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는 자에게 임하는 심판을 믿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내려지는 무서운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와 내 집이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위해 일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불러 세워주셨습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 여러분은 교회를 위해 생명을 바쳐서라도 살려야 합니다. 그 일을 마땅히 해야 할 사람이 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가만 두지 않는 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네가 그 일을 하지 않을 때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고 말했습니다. 무서운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성도들은 이 말씀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집이 세상적으로는 더 잘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멸망’은 영적인 멸망입니다. 사업이 망하고 자녀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세상적인 멸망이라기보다는 영적으로 그 집이 멸망한다는 말씀입니다.
모르드개는 구원의 유다인의 구원을 확신했지만, 이왕이면 왕후의 지위를 가진 에스더가 구원의 수단이 될 것을 희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권능으로 구원의 손길을 뻗칠 뿐 아니라 때로는 인간을 통해 구원의 사역을 수행하심을 모르드개는 믿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일하시기 위함이였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에스더가 누구입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나라도 없는 남의 나라에 끌려왔습니다. 부모도 없는 고아입니다. 삼촌 모르드개가 키워준 에스더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별 볼일 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바사 왕국에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가 된 것입니다. 별 볼일 없는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다는 것은 우연이라고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내가 누구며 여러분은 누굽니까? 별 볼일 없는 버려진 존재가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여 주셨고 불러서 주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더럽고 추한 죄악도 주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셔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나와 여러분은 왕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축복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몸된 교회를 받들어 섬기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멸망당할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수종들도록 주신 사명입니다. 어려운 교회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주신 사명입니다. 교회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일으켜 세우는 일을 하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 교회를 섬기는 사명을 주신 것은 교회가 어려운 이때를 위함이 아닌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힘들고 어려운 이때를 위하여 나를 불러 주셨고 사명을 주신 것이 아닌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는 이 말씀을 듣고 에스더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심령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자기 민족을 위해 죽기를 각오했습니다.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르드개의 계속하여 구원의 확신을 주는 말씀을 듣고 에스더는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기 위하여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민족을 구하는 길이라면 생명이라도 내던질 수 있다는 순교자적인 신앙고백이였습니다. 우리는 에스더의 성숙한 신앙의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이처럼 신앙인은 하나님나라 확장을 위해 자기를 날마다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제 에스더는 수산성에 있는 모든 유다인들을 모으고 자신을 위해 금식을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시녀와 더불어 밤낮 삼일을 금식을 했습니다. 금식을 하는 것은 최악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서 육체적 금욕 뿐 아니라 기도가 수반된 절규의 몸짓이었습니다. 에스더는 살신성인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자적인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이 고백이야 말로 멸망될 위기에 처한 유다민족을 살릴 수 있었던 신앙고백 이였습니다.
위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새로운 역사 창조의 새 기회가 된 것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숨은 역사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미처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역사를 진행시키고 계셨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숨은 가운데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절박한 위기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높이시고 이방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이 영광을 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위기가 창조적인 기회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신앙적 응답과 신앙적 결단이 요구됩니다. 우리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이란 단순히 ‘아멘’이 아닙니다. 운명을 걸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감상적인 생각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정하다고 해서 그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분명히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자적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말씀은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한 말입니다.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 때’와 ‘이 때를 위함’이란 말씀입니다. ‘이 때’란 유다인들이 멸망의 위기를 당한 위기의 때 입니다. 최악의 어려움의 때 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때’는 교회와 주의 백성들이 위기를 당했을 때를 의미합니다. 교회가 어렵고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당할 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에스더는 하나님의 큰 섭리 안에서 자기가 해야 할 현실적 사명의 의미를 깨달아 알았습니다. 여러분을 향하신 주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입니다.
에스더는 자기 존재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여기에 용기가 필요하고 새로운 믿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한번 생각해 봅시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왕후가 된 것이 유다인이 전멸을 당해야 하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하여, 바로 이 사건을 위하여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아니겠느냐? 그래서 네가 세상에 태어나고 그래서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에스더의 극적인 이야기로만 즐겨 듣지 말고, 내가 에스더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태어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으며 비로소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까지 되어 온 모든 일들이 ‘이 때에’,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자적 신앙으로 위기를 당한 교회와 택한 백성을 살릴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분명히 도우실 것입니다. 대적들은 무너지게 되고 대 승리를 할 것입니다.
에스더는 금식하고 왕 앞에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에스더를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고 멸망의 위기를 당한 유다인을 살렸습니다. 그리고 대적자 하만과 그의 가족을 멸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나와 여러분을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때’ 우리는 잠잠하지 말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자적 신앙으로 일합시다. 그래서 교회를 살리고 죽어가는 주의 백성들을 살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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