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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에스더

에 4장 14-16절(때를 위한 준비) - 김창진

by Preacher 2023.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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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4장 14-16

때를 위한 준비

김창진 목사 2016.10. 23

https://https://blog.naver.com/hinsem/

 

● 에스더서 66권의 성경 가운데 여자의 이름으로 기록된 성경이 두 권 있는데 룻기와 에스더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있는 에스더서는 “하나님”, “여호와”, “주”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에스더가 정경에 들어가야 하느냐, 마느냐하는 논쟁도 한 때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스더서를 읽어보면 직접적으로 하나님이란 단어는 나오지 않지만 에스더서에 기록된 사건 이면에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에스더서를 “하나님이 숨겨져 있는”성경이라고 말합니다.

 

▶ 에스더서는 BC 586년에 남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간 뒤,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것처럼 70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3차에 걸쳐 귀환을 합니다. 1차는 스룹바벨, 2차는 에스라, 3차는 느헤미야의 지도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에스더서의 배경은 예루살렘으로 귀환 하지 않고 여전히 바벨론에 남아 있는 유대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에스더서의 이야기에 중요한 인물은 에스더와 모르드개라는 에스더의 사촌오빠(에2:6-7)입니다. 모르드개는 바벨론을 무너뜨린 페르시아(페르시아)제국의 관리입니다.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 계획을 알고 막아내는 충성됨의 모습도 갖춘 인물입니다. 이 모르드개가 참으로 애쓴 것이 있는데 사촌 여동생 에스더를 왕후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왕후가 됩니다. 에스더를 왕후로 만드려는 의도가 무엇일까? 부귀영화 때문일까? 성경은 그 이유를 구체적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에스더가 왕후가 되므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게 되는 큰일을 하게 됩니다.

 

● 에스더서의 배경

 

에스더서에는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반대편에 서 있는 중요한 인물이 있는데 하만입니다. 하만은라는 페르시아제국의 고관대작으로 유대인들을 몹시 싫어합니다. 싫어하는 이유는 하만은 아각의 후손인데, 아각은 아말렉 족속의 왕으로 이스라엘에게 멸망당한 족속입니다. 사무엘상15장을 보면 하나님이 사울 왕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말렉 족속을 쳐서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하십니다(삼상15:1-3).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고 르비딤이란 곳에 이르렀을 때에 아말렉 족속이 지쳐있는 이스라엘의 배후를 공격합니다.

 

이 때 여호수아를 앞세운 유명한 전투가 시작되는데, 모세가 산에 올라가 손을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게 됩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양손을 잡고 모세의 손을 들고 있으므로 결국 이스라엘이 전쟁에 승리하고 그곳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부릅니다.

 

이 전쟁 후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출17:14)고 말씀하시고 약 400년 뒤 사울 왕 시대에 진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좋은 가축들과 아말렉 족장인 아각을 사로잡아 옵니다. 그 때 사무엘에 유명한 말씀을 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나으니)”(삼상15:22) 그리고는 아각을 죽입니다.

 

그 아각의 후손이 바로 하만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유대인들이 미웠겠습니까? 그런 민족적 감정을 가지고 페르시아제국의 유대인들을 말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비를 뽑아 학살의 날짜를 잡고, 왕에게 뇌물로 은 일만 달란트를 주고 개가를 받습니다. (에3:9 - 은 밀만 달란트, 3:13 - 시비월 아달월 13일)

 

하만이 페르시아왕(아하수에로) 왕에게 준 은 일만 달란트는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페르시아 제국의 연간 수입이 은 일만 오천달란트로 페르시아 제국의 한 해 수입의 2/3를 뇌물로 주고, 어인을 받습니다. 그 만큼 하만은 어마어마한 부자였습니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왕은 그리스와의 전쟁이 실패한 이후 왕의 내탕고가 텅 비어 있었기에 하만의 일만 달란트 뇌물을 거절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 도움을 청하는 모르드개

 

막강한 부를 통하여 페르시아 제국의 모든 유대인들을 몰살 하려는 하만의 계략을 모르드개가 알게 되고 왕후가 된 에스더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 요청에 대한 에스더의 대답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14.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에4:14-16)

 

▶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왕궁 법도중 하나는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감히 왕 앞에 나간다는 것은 죽임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도 왕 앞에 나갈 때에 왕이 자비를 베풀어 왕의 지팡이를 내밀지 않으면 그 사람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말하기를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결연한 말을 합니다.

 

에스더의 이러한 각오로 왕 앞에 나가게 되고, 모르드개가 과거 왕을 암살로부터 구해준 인물이며, 하만이 왕에게 뇌물로 눈을 어둡게 한 후에 페르시아제국의 유대인들을 말살하려 획책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왕은 새로운 명령을 내리고 하만과 그 가족들과 하만을 추종하던 세력들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그 날이 하만이 제비를 뽑아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했던 날입니다.

 

그 날을 유대인들이 “부림절”이라고 부르며 기념하며 지키는데, “부림”이란 말은 “제비를 뽑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절기상 마지막 절기입니다. 그래서 역사서의 시간적 순서상 느헤미야서(아닥사스다 왕, 느1:1)가 에스더서(아하수에로 왕, 에1:1) 다음에 와야 하지만 유대인들의 마지막 절기인 부림절 때문에 에스더서가 역사서 맨 마지막에 자리합니다.

 

● 우리는

 

이런 에스더서의 말씀 속에서 비록 ‘하나님, 여호와, 주’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안 나온다 할지라도 모든 역사 이면에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한 말을 기억해 보십시오. 14절 뒷부분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모르드개가 어떤 목적으로 에스더를 페르시아 제국의 왕후로 만들려고 애를 썼는지 성경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모르드개의 생각은 에스더가 왕비가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민족적 어려움 속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왕비가 됐다는 것입니다.

 

▶ 잠시 우리 이야기를 하고 마치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지금 우리의 위치가 어떤 위치입니까?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위치에 있던 분명한 것은 우연(偶然)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은 어쩌다 그 자리에, 그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과 위치는 내일을 위한 준비의 과정이며, 또한 지금 우리의 모습과 위치에 맞게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내일 해야 할 일을 계획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준비케 하시는 것이고, 지금의 우리의 모습 속에서 원하시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에 쓰임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내일을 준비하는 모습이 필요하며, 오늘 하루 내게 주신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때론 에스더의 말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의 심정을 가져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때론 에스더처럼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금식”의 절박함이 있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모든 때에 에스더처럼 하나님께 쓰임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잘 준비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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