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 --------------------/요한복음

요 15장 12-15절(참 좋은 친구 예수!) - 신만교

by Preacher 2023. 6. 27.
728x90
반응형

요15장 12-15

참 좋은 친구 예수!

신만교 2016.04.24

화평성결교회 [의정부시] http://whttp://www.hpehc.org

 

본문내용

 

(요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이분이 누구에요?

 

탤런트 김수미 씨지요. 통칭 누구 엄마? 일용이 엄마지요. 김수미 씨가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때였습니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김수미 씨의 남편이 사업 실패를 겪으면서 빚더미에 올라 앉아 쩔쩔 매는 상황까지 맞았다고 합니다. 이때 돈이 많던 친척들도 김수미 씨를 외면했습니다. 김수미 씨는 급한 대로 동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몇 백만 원씩 돈을 빌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안 동료 탤런트가 김수미 씨에게 정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얘, 넌 왜 나한테 돈 빌려달라는 소리 안 해! 추접스럽게 몇 백씩 꾸지 말고 필요한 돈이 얼마나 되니?” 하며, 김수미 씨 앞에 통장을 꺼내 놓았습니다. “이거 내 전 재산이야. 나는 돈 쓸 일 없어. 다음 달에 아프리카에 가려고 했는데, 아프리카가 여기 있네. 다 찾아서 해결해. 그리고 갚지 마. 혹시 돈이 넘쳐나면 그 때 주든가.” 대단한 친구지요?

 

여러분, 이 탤런트 친구가 누군지 아세요? 바로 이 사람이에요. 남산감리교회 김혜자 권사에요, 김수미 씨는 그 통장을 받아, 그 때 지고 있던 빚을 모두 청산했습니다. 그 돈은 나중에야 갚을 수 있었지만, 피를 이어받은 형제도 아니고 친해 봐야 남인 자신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내준 것에 김수미 씨는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김수미 씨는 김혜자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언니, 언니가 아프리카에 포로로 납치되면 내가 나서서 포로 교환 하자고 말할 거야. 나 꼭 언니를 구할 거야.” 아프리카는 제가 협력위원으로 섬기는 월드비전에서 기아 어린이를 돕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자신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전 재산을 내어준 김혜자 씨에게, 김수미 씨는 자신의 목숨도 내놓을 수 있을 정도의 강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옆에 분과 인사합시다) “제가 그런 친구 돼 줄게요” 친구는 참 좋은 것입니다. 친구가 없는 사람은 인생을 고독하고 외롭게 살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노라면 좋은 친구가 그리울 때 있습니다. 그런데 친구라고 다 똑 같지는 안아요. 만나면 왠지 편해서 헤어지기 싫은 친구가 있지요. 자꾸 무엇이든 주고 싶은 친구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친구는 만나면 편치 않고 빨리 헤어지고 싶은 친구도 있어요.

 

속담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친구를 따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친구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따라 인생이 변화되고 미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친구를 바른길로 선도하기도 하고 주님께로 인도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좋은 친구를 갖고 있는가?

 

제가 진짜 좋은 친구 한 분을 소개시켜 드릴까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친구입니다. 누군지 아세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친구라고 하니까 실감이 안 나지요. 여러분이 잘 몰라서 그렇지, 예수님과 같은 친구가 없어요. 여러분, 세상에서 제아무리 좋은 친구가 100명이 있다 해도 예수님 같은 친구 한 분과 바꿀 수가 없습니다. 이런 복음성가 알지요.

 

󰁖예수 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예수 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예수 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예수 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괴로울 때 다가와서 마음에 평화 주는 신실하신 나의 참 친구

외로울 때 찾아와서 친구가 되어주는 사랑 많은 나의 참 친구

 

예수님을 진정한 여러분의 친구로 삼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과연 어떤 친구인가?

 

1.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목숨까지 버리신 참 좋은 친구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친구를 사랑한들 그 친구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 무슨 좋은 것을 친구에게 줄 수 있겠는가? 친구를 위해 어떤 궂은일을 한다는 것 쉽지 않습니다.

 

옛날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집의 아들이 친구를 사귄다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너에게 진실한 친구가 몇이나 되는가?”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아주 많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정말 진실한 친구가 있는지 시험을 해보자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돼지를 한 마리 잡아서 아들에게 지우고 아들의 친한 친구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친구한테 “내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는데,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서 자네를 찾아왔네.”라고 도움을 청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들은 하나 같이 문전 박대를 하며, 한 사람도 그를 맞아주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자 이제부터 내 친구를 찾아가 보자”고 하고 아버지의 친구를 찾아갔는데 아버지 친구들은 달랐습니다. 가는 곳마다 두말없이 어서 들어오라고 하고 걱정을 함께 나누었답니다.

 

여러분도 이런 친구 있는가?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도와준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떤 친구인가?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짐을 대신 담당해 주신 친구입니다. 어떻게 나의 죄를 대신 담당하는가? 친구의 죄 값을 대신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려고 자기 목숨까지 버리셨습니다. 엡 2:1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친구가 어디 있는가?

 

#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는 친구가 어디 있는가? 이 사랑이 희생적인 사랑이요, 조건 없는 사랑이요,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사랑 중에 가장 고귀한 사랑은 ‘목숨까지 주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고귀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나니

 

이런 친구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우리가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아무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 죄인들의 목숨을 구하시고자 존귀하신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범죄 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나를 대신해서 목숨까지 버리신 참 좋은 친구 예수를 찬양합시다.

 

#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워라

산 밑에 백합화요 빛나는 새벽 별 주님 형언할 길 아주 없도다

내 맘이 아플 적에 큰 위로되시며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이렇게 여러분을 사랑하는 친구, 예수님을 여러분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어떤 친구인가?

 

2. 예수님은 마음이 통하고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참 좋은 친구입니다.

 

예수님은 12 제자를 친구처럼 대하시고 천국 비밀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종’이 아니라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친구인 제자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종’은 ‘둘로스’ 노예로서,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해도 됩니다. 단지 주인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친구’는 마음속을 다 알고 사랑을 주고받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일만 하는 ‘종’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친구’를 원하고 계십니다.

 

친구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입니다. 기쁨도 나누고 슬픔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친구입니다. 좋은 친구 사이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담이 없습니다. 감추는 것도 없습니다. 부모에게는 하지 못할 말도 친구에게는 다 말합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은 마음이 통하고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참 좋은 친구입니다.

 

인생길은 때로 외롭고 고달프고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부부끼리도, 부모와 자식 간에도, 형제간에도 서로 속마음을 터놓을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친구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좋은 친구가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혜의 왕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잠 18:24)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예수님은 여러분과도 친구처럼 비밀을 나누고 소통하고 대화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하는가? 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 친구처럼 교제하려면 대화의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도 시간을 내야 합니다. 때로는 골방에서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친구라면 함께 하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합니다.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가야 합니다. 주님과의 교제를 충분히 즐겨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과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마음이 통하고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친구 관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구약에 하나님과 통하고 비밀을 나눌 수 있는, 하나님의 친구가 한 사람이 있는데 누군지 아세요? 아브라함입니다.

 

(사 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리켜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이 유독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특권을 얻게 되었을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마음이 통했습니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관계였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씀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창 18:16)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창 18: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또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절친’이라는 증거가 바로 그의 믿음과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의 절정은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고 절대 순종하는 신앙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런 아브라함을 가리켜 하나님은 ‘나의 벗 아브라함’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여러분도 주님과 마음이 통하고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친구관계로 회복되기를 축복합니다.

 

끝으로

 

3. 우리가 예수님의 친구라면 ‘친구인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친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친구가 진짜 친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버린 친구십니다. 우리를 그토록 하는 친구 예수님이십니다. 그런 분의 명령하는 바를 실천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참 친구입니다.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예수님이 원하는 것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은 친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명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친구라면 적어도 ‘친구인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친구의 부탁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친구라면 적어도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세상에서도 친구의 마음이나 형편을 헤아려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입니다.

 

어떤 분의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몇 년 전 우리 여동생 결혼식 때 친구가 축의금을 백만 원이나 하였기에 그때는 친구에게 참 고마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친구 아들의 결혼 청첩장을 받고 보니 축하의 마음보다 걱정이 앞섰습니다. 늘 하루하루 살기에도 빠듯한 삶이기에 어떻게 그 큰 축의금을 준비할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마누라와 상의를 한 결과 축의금은 빌려서라도 받은 만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급하게 돈을 빌려서 기쁜 마음으로 예식장에 갔습니다. 친구는 연신 와줘서 고맙다면서 그 분주한 틈에도 자식들 안부까지 물어주기에, 나는 돈을 빌려서라도 참 잘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등기우편이 배달돼 보니, 며칠 전 아들 결혼식을 치렀던 친구에게서 온 것이었습니다. ‘웬 인사장을 등기로 보냈지?’ 하면서 뜯어보니 눈에 익은 친구의 글씨가 보이는데, “이 사람아! 자네 살림 형편을 내가 잘 알고 있는데 축의금이 뭐냐. 우리 우정을 돈으로 계산 하냐?”면서 990,000원의 자기앞 수표를 보내 왔습니다. 그러면서 이어진 편지에 “이 사람아! 나는 자네 친구야. 자네 형편에 백만 원이라니, 만원이면 족하네. 여기 99만원 보내니 그리 알게나. 만일 이 돈을 받지 않으면 자네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겠네. 다시 한 번 힘든 삶에 결혼식에 와줘서 정말 고맙네.” 이 글을 읽고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진짜 좋은 친구지요? 친구의 마음과 생활 형편을 헤아려주는 정말 좋은 친구입니다.

 

사실은 예수님이 바로 이런 우리 친구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이 여기시는 친구이십니다. 우리의 입장을 너무 잘 헤아리시고 중보하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히 4:14) 우리에게는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히 4:15) 우리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할 수 없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그분은 모든 점에서 우리처럼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죄는 없으셨습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는 불쌍히 여기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담대하게 하나님의 보좌로 가까이 나아갑시다.

 

그러므로 이런 ‘친구인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마땅하지 않는가? 예수님이 부탁하신 것, 분부하신 것, 유언으로 명하신 바를 마음에 새기고 행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친구입니다. 우리 모두 ‘친구인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행하는 예수님의 좋은 친구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결코 친구를 깎아내리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친구인 예수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거나, 주님의 명예를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 어디 가서 내 친구라고 말하지 마” 허긴 예수님은 가룟유다 보고도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 마태 26:50절에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못난 나를 ‘내 친구’라고 부르시는 예수님께, 나를 친구로 여기시고 나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신 참 좋은 친구, 예수를 이용해 먹는, 가룟 유다 같은 기회주의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나사로’를 친구라 부르셨습니다.

 

(요 11: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죽은 자를 살리시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로 접근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생과 제자와의 관계도 아닙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도 아닙니다. 아주 친밀한 관계, 아주 각별한 관계, 바로 ‘친구’로 여기셨습니다. 심지어는 바리새인들이 비난했듯이,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도 되셨습니다.

 

(눅 7:34)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만왕의 왕이요,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저에게도 ‘내 친구’라고 말씀하십니다. 말로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친구인 나를 위해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마음이 통하고 비밀을 나누는 참 좋은 친구십니다.

 

이런 예수님을 친구로 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정말 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도 참 좋은 ‘친구인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예수님의 참 좋은 친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영혼의찬양 107장을 부릅니다(‘예수 보다 더 좋은 친구’).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