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5장 13-17
가장 큰 사랑
김창진 목사 2018.7. 8.
https://https://blog.naver.com/hinsem/
● 가시고기 사랑
가시고기라는 물고기 이름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가시고기는 동해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에 사는 7cm 정도의 민물고기입니다. 대부분의 물고기들은 암컷이 산란하고, 부화될 때까지 보호하는데 반해, 가시고기의 암컷은 알만 낳고 가버립니다. 그러면 수컷이 산란된 알들이 부화 될 때까지 보호하며 지켜냅니다. 알들이 부화하면 가시고기의 수컷은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기 위하여 자신의 머리를 돌에 부딪쳐 죽는답니다. 그리곤 자신의 살을 새끼들의 먹이로 줍니다. 그래서 가시고기는 부성애가 강한 물고기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가시고기와 같은 부성애를 그린 소설이 조창인 작가가 ‘가시고기’란 소설입니다.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도 않고 너무나 헌신적이었던 아버지, 결국 아버지는 불치병의 아들을 살려내고, 자신은 병들어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비단 가시고기 수놈과 소설 가시고기에 등장하는 아버지만 그러한 사랑이 있겠습니까? 대부분의 부모님들의 사랑이 가시고기와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예수님과 가장 닮은 사랑을 말하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의 사랑을 말할 겁니다.
▶ 그런데 가시고기와 같은 부모님의 사랑 보다 더 큰 사랑을 오늘 본문이 말씀합니다. 본문 13절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왜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 가장 큰사랑이라고 하실까? 부모의 사랑은 혈육의 본성으로 감히 목숨을 던질 수 있지만, 친구는 관계입니다. 혈육의 본성이 없습니다. 그런데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성경이 말한 대로 가장 큰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사춘기 감정으로, 욱하는 심정으로, 의리라는 명분으로 한 순간에 솟구치는 감정으로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버린다.”라는 단어는 다분히 계획적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한 순간의 감정으로 자기 목숨을 버릴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친구를 위하여 버릴 것을 계획했다는 겁니다. 생각할 만큼 생각해보고, 계산할 만큼 계산해 보고 내린 결정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자기 목숨을 버릴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계산하면 계산할수록 버릴 수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왜요? 자기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을 것입니다.
● 친구로의 초대
흥미로운 것은 오늘 본문 14-15절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십니다.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이 말씀의 배경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마지막 설교 중의 한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을 “종에서 친구로, 제자에서 친구로, 백성에서 친구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렇게 친구 된 제자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십니다. 아주 오래 계획된 준비 속에 피조물을 친구의 반열에 올려놓으시고, 그 친구를 위하여 계획된 대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심으로 가장 큰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야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의 친구가 되어주겠다.”가 아니라 “너희들이 나의 친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는 하향 조정이 아니라, 제자들을 스승이며, 창조주이신 예수님의 친구로 상향 조정을 하신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같이 죄인 되심으로 친구 됨이 아니라, 제자들이 예수님과 같이 거룩하고, 영광스럽고, 고귀한 친구 됨을 말씀합니다. 그것을 본문 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 친구의 조건
문제는 내가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14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그런데 예수님께서 명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의 전제가 되는 12절 말씀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친구의 반열로 올리시고 자기 목숨을 버리심으로 가장 큰 사랑을 보여 주었듯이,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최소한의 조건은 예수님처럼 친구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결론인 17절은 말씀하기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결국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 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요한일서 3:14-16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말씀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친구가 되지 못하고, 예수님의 친구가 되지 못함은 예수님이 베풀어 주신 축복과 은혜를 누리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고 까지 하셨습니다. 하물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너무 쉬운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주 언급하신 말씀 중에 하나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 어떻게 사랑할까
그럼 어떻게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분당 짓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이 외적으로는 모범적으로 보이는 빌립보 교회에도 문제가 있어서 보낸 편지가 빌립보서입니다. 모범적으로 생각되는 빌립보 교회 내에서도 성도간의 미움과 시기가 있고, 그로인해 교회 내에 분당이 생기고 교회가 깨어질 위기까지 가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2:1-4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마음을 같이하라고 하십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고 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며, 그런 모습을 가진 사람이 예수님의 친구가 되고, 예수님의 친구가 된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위하여 예수님은 기꺼이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 마무리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은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로 불러주셨습니다. 친구 된 우리를 위하여 친히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가장 큰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가장 큰 사랑을 보여 주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 서로 사랑해야 할 대상을 함께 신앙 생활하는 성도일 수도 있고, 하나님이 맺어주신 가족일 수도 있고, 우리 주변의 이웃과 우리가 자주 만나게 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친구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사랑은 생명 되시는 예수님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의 친구로서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어주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약 -------------------- >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 15장 16-17절(나를 택하신 예수님) - 이백민 (0) | 2023.06.18 |
---|---|
요 16장 13-15절(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 이백민 (0) | 2023.06.01 |
요 15장 26~27절(보혜사이신 성령님) - 김준범 (0) | 2023.05.27 |
요 16장 5-7절(내가 떠나가는 것이 유익이라) - 신만교 (1) | 2023.05.27 |
요 16장 23절(기도에 힘쓰라) - 박경호 (0) | 2023.05.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