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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요한복음

요 16장 25-33절(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허창수

by Preacher 2023.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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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6장 25-33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허창수 목사 17.04.09

동성교회 [창원시] https://https://cafe.daum.net/huhcs48/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닷새 전의 주일로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아시면서도,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를 외치는 군중들에 둘러싸인 채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십니다(12:13). 군중들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을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종려나무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찬송하며 환영하였다고 해서 종려주일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종려주일은 곧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잡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시게 됩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하였지만 공생애 3년간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에 3분의 1 이상이 종려주일인 마지막 한 주간에 집중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래서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루시는 최고의 날들입니다. 이 한 주간은 기독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주간입니다.

 

예수님은 생애 마지막으로 유월절을 지키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 새끼를 타고 군중들의 호산나 찬송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 바라보고 계십니다. 바로 십자가 전야에 열두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성만찬 예식을 행하십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들에게 귀한 유언적인 교훈을 말씀하셨습니다. 13-16장에는 유언적인 교훈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16:33에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곧 바로 잡혀 끌려가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다 아셨습니다. 막연한 근심도 아닙니다.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다 아시면서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것은 놀라운 승리의 선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선포하신 의미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엄청난 선언을 하셨습니다. 역경이 계속되고 환란이 있고 고통이 있을 뿐만 아니라 눈앞에는 바로 십자가의 죽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공생애를 정리하십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고는 영광스러운 부활에 대한 예고와 아울러 주어지고 있는데 이는 자신의 죽음이 제자들을 절망으로 몰아넣는 대신 오히려 큰 기쁨과 소망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래서 16절에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다’는 말씀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무덤에서의 3일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는 말씀은 죽어 무덤에 3일을 지나면 부활하셔서 다시 보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17절에 제자들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지니는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여 엉퉁한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18)고 하며 다시 묻고자 했습니다. 제자들뿐만 아니라 오늘의 많은 사람들도 이 진리를 잘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하물며 교회 안에서도 이 진리를 아는 자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듣고 배운 제자들도 무슨 말씀인지 깨닫지 못하여 묻고자 할 정도였으니 오늘 우리들이야 더욱 이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혀 가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 다 도망하고 흩어졌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제자들이 이해 할 수 있도록 예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21절에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고 여자의 해산의 고통을 기쁨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있어 슬픔이 변해 기쁨이 되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여자의 해산에 관한 것을 비유로 들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임박한 해산을 염려하던 산모의 근심은 잠깐의 고통을 이겨내면 아이를 낳으므로 인해 기쁨으로 변하는 것처럼 제자들의 근심은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을 통해서 기쁨으로 변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22)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제자들은 잠시 근심을 하게 되지만 예수의 부활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빼앗을 자가 없을 만큼의 큰 기쁨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빼앗을 자가 없을 만큼의 큰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곧 영원한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는 빼앗을 자가 없는 영원한 기쁨이 되는 축복이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패배가 아닙니다. 산모가 낳은 아이를 통해 온 집안이 기쁨을 누리듯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잠시 후 제자들이 엄청난 기쁨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의 역할을 하실 것을 말씀하심으로 하나님과 타락한 인간 사이의 관계 회복을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살아나실 뿐 아니라 아버지께로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2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인해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와서 세상에 오심으로 성육하신 분이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죽음과 부활, 그리고 아버지께로 다시 하늘로 올라가시는 승천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 왔다가 그 사명을 다 하시고 다시 하나님께로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예루살렘 안에는 복잡한 사건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예수님에게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사건을 통해서 ‘왔다가 가노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 일을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 목적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들의 거짓된 재판이나 빌라도의 사형선고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갈보리 언덕의 비난이나 회초리로 내리 치는 것이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이나 아픔이 눈앞에 다가오지만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고난이 세상에 온 목적을 다 이루시고 다시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30)라고 대답을 하였다.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분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31)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제자들의 믿음은 온전하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흩어질 것도 미리 아셨습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3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이 다 흩어지겠지만 실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다 도망하고 떠났지만 예수님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고 했습니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도망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늠늠하게 걸어가실 수가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보호하심에 대한 절대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도 항상 아버지가 함께 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요8:16)고 말씀하신바가 있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으니라’(요8:29)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가실 때도 아버지께서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제자들이 다 도망하였지만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겼노라고 승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곧 바로 잡혀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이겼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이겼다고 하는 세상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세상’은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환난과 핍박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자신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불의와 거짓으로 가득찬 세상입니다. 제자들까지도 다 흩어질 것이라는 말씀에서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을 다 떠나는 세상입니다. 배반이 있고 배신이 있는 아픔이 세상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타락된 세상입니다. 세상은 ‘죄’를 의미합니다. ‘죄’는 멸망이요 영원한 지옥형벌입니다.

 

대통령도 죄로 인하여 잡혀가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대통령이 어떤 분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대통령 앞에 굽실거리며 존경하고 따릅니다. 국가와 백성을 책임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죄가 탄로 나는 그 순간부터 그는 그의 모든 영광 다 빼앗기고 무능력한 존재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온 백성들로부터 비난의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죄란 이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는 존재도 죄로 인하여 무능력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 인류는 죄로 인하여 사탄 마귀에게 잡혀 종이 되었습니다.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죄는 반드시 형벌이 따릅니다. 그래서 죄로 인하여 영원한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제 죄인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들을 대신 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 죽음이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그 죽음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곧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는 죽음 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저주가 아닙니다. 죄인들의 죄값을 대신 치루는 죽음입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죄인들의 죄를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 후에 다시 살아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죄인들의 죄를 용서받게 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의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죽음은 곧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겼다’는 말씀이 요한복음에 한 번, 요한일서에 여섯 번, 계시록에는 열일곱 번 나옵니다. ‘이겼노라’, 승리를 말씀하십니다. 승리란 무엇입니까? 여수님이 말씀하시는 승리는 망각이 아닙니다. 해탈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승리는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사건입니다. 역사적 사건이요,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그것이 바로 승리입니다.

 

승리는 생명입니다. 이것은 중요합니다. 영생입니다. 승리는 곧 생명의 문제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승리는 영광입니다. 단순히 얻었다는 것이 승리가 아닙니다. 빼앗았다고 승리가 아닙니다. 출세했다고 승리가 아닙니다. 얻었지만 두려워하고 있으면 승리가 아닙니다. 지위를 얻었지만 부끄러움이 있으면 승리가 아닙니다. 적어도 성경이 말하는 승리는 얻었느냐 잃었느냐가 아닙니다. 영광이요 의로운 승리입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무한한 자유를 향유하는 승리입니다.

 

참 승리란 평안입니다. 화평입니다. 샬롬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승리입니다. 내 안에 평안을 누리는 것이 승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에게는 평안을 누릴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승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죄로 인하여 영원한 지옥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구원하여 주심으로 영원한 천국에서 평안을 누릴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의 승리는 곧 우리의 승리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주신 평안의 복을 받은 우리는 환난을 당해도 담대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 주신 평안의 복을 영원히 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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