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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창세기

창 37장 29-36절(아버지 야곱과 아들 요셉) - 허창수

by Preacher 2023.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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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7장 29-36

아버지 야곱과 아들 요셉

허창수 목사 14.05.11

동성교회 [창원시] https://https://cafe.daum.net/huhcs48/

 

하나님께서 동식물을 창조하시면서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대로 각종 식물들은 씨를 맺어 번성하고 있으며 동물들은 새끼를 낳아 번성하고 있습니다(창1:22).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동식물은 암수가 있고 부모와 자녀 관계가 있고 또 새끼를 키우는 모성애가 있습니다. 식물들은 모성애가 없습니다. 자연에다 맡깁니다. 나무 밑에 새끼 나무를 키우지 않습니다. 식물들은 많은 씨를 맺고 땅에 떨어뜨리지만 어디서 어떻게 자라는 지를 엄미 나무는 전혀 알지도 못하고 돌보지도 않습니다. 떨어진 씨는 자연에 맡겨 스스로 자랍니다. 식물들에게는 부성애나 모성애가 없습니다.

 

그러나 동물들에게는 식물과 달리 모성애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성애가 있는 동물도 있지만 대부분의 동물들은 부성애가 없습니다. 어떤 동물은 수컷은 새끼를 키우는 데 전여 관여하지 않고 암컷이 새끼를 키웁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면 어미는 더 이상 새끼를 돌보지 않습니다. 사람을 닮았다고 하는 원숭이나 고릴라는 가족적인 집단생활을 합니다. 동물들은 새끼를 키우기 위해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먹입니다. 이처럼 동물들은 모성애가 대단합니다.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동식물들은 자기 종을 퍼뜨리고 키우는 것을 최선을 다합니다.

 

사람에게 부성애와 모성애는 대단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낳고 키우는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자신을 낳고 키워준 부모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부모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사람 외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습니다. 그 어떤 동물도 자기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에게 감사하며 공경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부모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며 공경합니다.

 

성경에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 대한 대표적인 이야기는 아버지 야곱과 아들요셉이라고 생각합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요셉은 열한 번째 아들입니다. 야곱은 요셉을 다른 아들들 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창37:3). 야곱이 요셉을 더 사랑하므로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였습니다. 시기하고 미워하는 것도 혼자하면 별로 힘이 없는데 여럿이 함께 시기하고 미워하면 살인적입니다. 열 명의 형들이 들에서 양을 치면서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요셉을 죽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때 마침 요셉이 오는 것입니다.

 

요셉이 오는 것을 보고 죽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요셉을 잡아 옷을 벗기고 웅덩이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미디안 장사꾼에게 요셉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옷에 염소피를 발라 아버지에게 보이며 요셉이 짐승에게 잡아 먹혔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의 옷을 보고 짐승에게 잡아 먹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애통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심부름을 보낸 것이 더욱 마음 아파하며 슬퍼하였습니다. 요셉이 짐승이 찢겨 죽었다는 것은 야곱에게는 엄청난 슬픔이요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피 묻은 옷을 보고는 틀림없는 요셉의 옷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분명이 요셉이 찢겼도다’고 하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애통하였습니다. 심부름을 보내지만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에서 미안함과 죄책감에 더욱 슬픔이 컷을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의 형들이 슬퍼하는 아버지를 위로했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은 부모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진도 앞 바다에서 세월호 침몰로 300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그들 중에 어린 학생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들의 부모들은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어린 자녀들이 부모보다 먼저 죽었다는 것을 온 국민들이 안타까워하니까 일반인 실종자의 가족들은 ‘다 같은 희생자인데, 왜 우리만 소외돼야 합니까’라고 합니다. 학생들 외에도 여행객들이나 사업가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의 죽음은 별로 생각하지 않고 아이들이 죽은 것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녀들의 부모들의 고통이 너무나도 커기 때문입니다. 그 부모들에게는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엄마는 아들을 장례하고 삼일 지나 ‘아들아 엄마도 너와 함께 갈께’라는 유서를 써 놓고 수면제를 먹고 죽으려고 하다가 발각되어 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분들에게는 무슨 말로 위로해도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야곱은 ‘내가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스올’은 지옥을 뜻합니다. 야곱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지옥이라도 요셉과 함께 지내고자 하는 마음이였습니다. 이것이 아버지 야곱의 부성애입니다. 이렇게 야곱은 13년을 괴로움을 안고 살았습니다.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셉을 도우셔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를 하루인들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총리가 되었지만 아버지만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형들이 요셉 앞에 섯습니다. 형들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을 만나자 가장 먼저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버지를 애굽으로 모셔오고자 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아들 요셉이 살아있다는 말을 듣고 그 말을 믿지 못하고 어리둥절하였습니다(창45:26). 그러나 요셉이 아버지를 모셔오라고 보낸 수래를 보고서야 야곱은 기운이 소생하였습니다(창45:27). 야곱이 기운이 소생하였다는 말씀은 13년 동안 기운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6.25 전쟁에 나간 아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지 못하는 부모는 그 아들을 생각하며 한을 품고 슬픔으로 일평생을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남북 이산가족들이 만날 때 아들이 북한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아들은 만났습니다. 그때 부모의 한 마디는 ‘이제 죽어도 좋다’고 합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였습니다. 요셉이 살아있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고 말했습니다(창45:28). 야곱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제사를 지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야곱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서 요셉을 만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만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마중하기 위해 고센까지 내려와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아버지 야곱과 아들 요셉은 서로 만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었습니다. 야곱은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창46:30). 행복의 절정은 죽어도 좋다는 말을 할 때입니다. 최고의 행복은 ‘이제 죽어도 좋다’는 말을 할 때입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가장 바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 물론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자녀들이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을 제일 좋아 합니다. 자녀들이 병들면 부모님들은 아픈 자녀들보다 더 마음으로 괴로워합니다. 부모 앞에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가장 큰 효도입니다. 부모님의 입에서 자녀들에게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는 말씀을 하신다면 그때가 최고의 행복한 시간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자기 아들들을 데리고 아버지에게로 왔습니다. 아버지는 ‘이들은 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 요셉은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의 두 아들은 야곱에게는 손자들입니다. 야곱은 손자들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든지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고 하시며 손자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야곱의 축복으로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요셉을 대신하여 가나안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므낫세 반지파는 요단 동편 초원이 풍부한 곳을 분배받았고, 에브라임 지파는 유다 지파와 같이 예루살렘과 가까운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야곱의 축복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는 큰 축복이였습니다. 부모님을 가쁘시게 해 드리는 것 중에 하나가 손자 손녀들을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되고 보니까 손자 손녀를 날마다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손자 손녀가 없는 분들은 잘 모릅니다. 야곱에게 요셉이 낳은 아들들이 얼마나 예쁘고 좋았는지 할아버지로서 손자들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시편 128편 6절에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집에 가장 큰 축복은 자식의 자식을 보는 것입니다. 자식의 자식은 곧 손자 손녀입니다. 잠언 17:6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손자 손녀는 면류관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셉의 두 아들은 야곱에게 면류관이였습니다. 죽었다든 아들이 살아있을 뿐 아니라 두 손자까지 데리고 왔으니 야곱에게 최고의 기쁨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손자 손녀를 보고 싶어 합니다. 자녀들은 손자 손녀들을 할아버지 할머님께 자주 데리고 가서 보여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서 부모님께 보여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자 손녀들을 축복해 주십니다. 야곱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부모님 앞에 자녀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하는 시간은 가장 행복한 때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님께 손자 손녀를 자주 데리고 가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없는 말씀이지만 제 생각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또 하나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 할머님 손에 쥐어 드리는 선물입니다. 손자 손녀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께 선물해 보세요. 얼마나 좋아하시는가? 그러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좋아 할 뿐 아니라 더 큰 축복을 하십니다. 이러한 가정이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따르는 지상 최고의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눈을 감겨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창46:4). 이미 하나님께서 야곱이 죽을 때 요셉의 손으로 눈을 감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님에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는 부모님의 마지막 부모의 눈을 감기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눈을 감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는 죽음은 부모님의 가장 외로운 시간입니다. 그때 자녀들이 눈을 감기워주는 것은 가장 큰 효도가 됩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손으로 눈을 감기워주기를 바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님의 눈을 감기워 드릴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요. 그것이 부모님을 마지막으로 행복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야곱은 아들 요셉의 손으로 눈을 감기워 주는 축복 속에 잠들었습니다. 성경에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처럼 사랑하는 아들의 손으로 눈을 가리워 주는 축복속에 조용히 눈을 감은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야곱의 죽음은 최고로 복된 죽음입니다. 사람들이 죽을 때 자녀들과 형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는 것은 매우 행복한 죽음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와 같은 행복한 죽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야곱은 애굽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이방인의 땅 애굽에 장사하지 않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함께 조상들의 묘에 장사하였습니다. 장례식을 보면 자녀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별 볼일 없는 자녀들이면 부모의 장례식은 초라합니다. 그러나 성공한 자녀들의 부모의 장례는 대단합니다.

 

창세기 50장에 보면 야곱의 장례식은 대단했습니다. 애굽의 국장으로 애굽 사람들을 칠일동안 곡하였습니다(창50:3). 야곱의 장례와 같은 장례는 아무도 없습니다. 바로의 모든 신하와 원로들이 요셉의 온 집의 형제들과 그의 아들들이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행렬을 지어 올라가는 그 떼가 심히 컷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일찍 마련해 놓은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아들 요셉 때문에 노년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죽음도 매우 행복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창조의 질서요 가장 행복한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도 아버지 야곱과 아들 요셉과 같은 부모와 자녀들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가장 복된 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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