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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창세기

창 39장 1-5절(주님이 함께 하면) - 문기태

by Preacher 2023.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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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9장 1-5

주님이 함께 하면

문기태 2020.09.05

창원침례교회 http://whttp://www.changwon.or.kr/

 

요셉이 이집트로 끌려갔다. 요셉을 이집트로 끌고 내려간 이스마엘 사람들은, 바로의 신하인 경호대장 이집트 사람 보디발에게 요셉을 팔았다.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 요셉은 그 주인 이집트 사람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 주인은,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님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

 

주인은, 요셉이 눈에 들어서, 그를 심복으로 삼고, 집안 일과 재산을 모두 요셉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였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안 일과 그 모든 재산을 맡겨서 관리하게 한 그 때부터, 주님께서 요셉을 보시고, 그 이집트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리시는 복이, 주인의 집 안에 있는 것이든지, 밭에 있는 것이든지, 그 주인이 가진 모든 것에 미쳤다. (창39:1-5)

 

창39장은 요셉이 형들에 의해 팔려 이집트로 끌려가 타향살이를 하는 내용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계시며 돌보셔서 그가 하는 일마다 잘 되고 앞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계시며 돌보셨습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집안 일과 재산을 모두 맡기자 하나님이 요셉을 보고 그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셔서 그 집에 모든 것이 복을 받습니다.

 

요셉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자 이번에는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계시며 돌보아 주십니다. 요셉이 간수장의 눈에 들게 되어 감옥 안의 모든 죄수들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도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계셔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잘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성경은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하였다고 기록되지 않고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계셨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요셉이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기도도 열심히 하며 기회 있는 대로 찬송을 열심히 불렀다고 하면 하나님이 복 주신 것이 쉽게 이해가 될 텐데 성경은 반대로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그를 돌보아 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왜 주님이 당시에 많은 사람 중에 요셉과만 함께 계셨을까요? 요셉이 잘 생겨서 일까요? 착해서일까요? 먼저 하나님께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요셉을 사랑하시고 복을 많이 부어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셉이 먼저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 만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먼저 찾아가셔서 사랑하시고 도와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요셉이 형통하도록 주님께서 요셉을 위해 일하십니다. 요셉이 노예로 이집트에 팔려가도 하나님은 이집트까지 따라가셔서 함께 계시며 돌보십니다.

 

요셉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도 하나님은 감옥까지 좇아가셔서 함께 계시고 형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이런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잘나서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꼭 무엇을 잘해서 은혜를 입혀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자격이 없고 부족함이 많지만 하나님이 사랑해 주시고 먼저 찾아와 은혜를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찾아오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요셉에게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전적인 주님의 은혜이지만 우리가 죄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 주님이 함께 계시기에 불편하십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찾아오신 주님이 함께 계시기를 기뻐하시도록 거룩함을 유지했습니다.

 

요셉은 스스로 원해서 이집트로 온 것이 아닙니다.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집트에 여행 온 것이 아닙니다. 형들에 의해 팔려서 노예의 신분으로 강제로 끌려왔습니다. 기분이 좋았을까요? 즐겁게 이집트 생활을 시작했을까요? 형들이 얼마나 미웠을까요? 억울하고 섭섭하며 분한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과 현실이 정반대로 전개되고 있음을 보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의심도 솟아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미움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분노심에 불타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도 의심을 품지도 않았습니다. 가나안에서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대로 여전히 믿음을 붙잡고 생활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창50:19,20절에서 보복을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요셉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습니까?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해치려고 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악을 선으로 바꾸어주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미움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복수심에 불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의심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요셉에게 하나님이 오셔서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계시며 보살피시고 도우실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억울한 일을 만나면 미움에 사로잡혀 사는 것을 봅니다. 어떤 이는 원망에 붙잡혀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분노와 증오심이 그를 사로잡아 그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심을 느낄 수 없고 오히려 마귀가 그를 사로잡고 있음을 느낍니다. 점차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의 형상도 잃어버립니다. 형통과도 점점 멀어집니다. 마귀에게 속아 마귀에게 끌려 다니는 그를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불행하고 비참한 인생으로 변해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믿기 어려운 때에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억울한 일을 만나면서도 하나님을 굳게 믿었습니다. 누가 자신에게 어떤 해를 입히려고 해도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자신을 죽이려고 하고, 먼 나라에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그 믿음으로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고 감옥에 갇히게 한 보디발의 아내도 용서하고 잊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자신에게 은혜를 입고도 그 은혜를 잊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술 맡은 관원장도 용서하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아무에게도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에게 큰 잘못을 저지른 이가 많았지만 요셉에게는 한 사람도 원수가 없었습니다. 요셉은 오직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실 수 있도록 마음에 사단이 심으려고 한 미움, 원망, 분노, 의심 등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계셨고 앞 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며 돌보아 주셨기에 하는 일마다 다 잘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요셉으로 인하여 주위에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셔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최근에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조금 힘들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살았는데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37년 전일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할 무렵, 교회를 개척하고 싶은 소원을 주님이 주셨습니다. 도와주는 이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어떻게 하나? 고심을 하다 결혼 자금을 주님께 드려서 개척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내를 만나 그 계획을 말하고 살림 아무것도 해오지 말고 돈으로 가져오라고 꼬셨습니다. 나는 가진 돈이 없으니 결혼식을 아주 간소하게 하고 축의금을 전부 합치면 교회당 전세는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아내가 고맙게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어머니와 형님들에게도 그 계획을 승락 받아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고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런데 작은 형수가 축의금을 가로채 안주는 것입니다. 사업도 크게 하고 서울에 좋은 집도 있는 부자인데 그 돈을 움켜쥐고 안 내놓는 것입니다. 큰 형이 찾아가서 말해도 요지부동입니다. 당시에 저에게는 전 재산이고 큰 돈인데 그렇게 날아갔습니다. 아내가 준비한 돈으로 세를 얻어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그것도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죽어라 고 형수를 미워하고, 내 돈 내놓으라고 수시로 형수를 찾아가 싸웠다면 목회를 못했을 것 같습니다.

 

마음의 분노의 칼을 갈고 살았으면 주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며 빨리 잊고 목회에만 전념하도록 도와주셨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러자 속상한 생각이 사라지고 감사한 마음이 저를 감쌌습니다. 돈은 잃었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니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만약 돈은 찾았어도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 아무것도 없을지 모릅니다.

 

여러분, 형통을 바라십니까? 주님의 임재가 먼저입니다. 임재 없는 형통은 가짜입니다.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고 다 실패한 것 같아도 주님의 임재가 있으면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형통합니다. 지금 내 눈에 어떻게 비추어져도 주님께서 길을 열어 주십니다. 억울한 일을 만나도 주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지금 내려가도 곧 다시 올라가게 해 주십니다. 주님께서 내리시는 복이 모든 것에 미치고 주위에까지 흘러 넘치게 됩니다. 요셉과 함께 계셨던 좋으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언제나 함께 계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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