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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출애굽기

출 23장 20-26절(앞서 가시는 주님의 뒤를) - 안효관

by Preacher 2023.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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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23장 20-26

앞서 가시는 주님의 뒤를

안효관 목사 2019-01-06

전주남성교회 https://https://www.nsc.or.kr/

 

창세기 2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자기의 아들 이삭의 아내를 얻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 여인을 며느리로 맞아들이길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종을 자신의 친족들이 살고 있는 하란으로 보냅니다. 그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40세였고,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의 나이는 40세였습니다.(창세기 25:20) 한 집안에 며느리를 맞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더구나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입니다. 단순히 100세라는 늙은 나이에 낳았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아니라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중에 ‘네 후손이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약속을 이룰 아들이 바로 이 이삭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하나님의 약속으로 낳은 아들이요, 번성케 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아들의 아내를 얻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중차대한 일을 아브라함은 자신의 집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늙은 종에게 맡깁니다. 성경은 단순히 ‘아브라함의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창세기 24:2)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성경학자들은 그 늙은 종이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이 자신의 상속자로 언급했던 ‘엘리에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이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 자신의 상속자로 지목할 정도로 아브라함의 신임을 얻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대에는 자식이 없을 경우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종들 가운데서 지혜롭고 성실하고 성품이 좋은 사람을 양자로 들여 대를 잇게 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80세가 다 된 아브라함은 자신의 힘으로 자식을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종들 가운데 가장 신뢰할만한 엘리에셀을 자신의 상속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는 아브라함에게 ‘반드시 네게 씨를 주리라.’고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이 100세 때에 이삭을 아들로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브라함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어 상속자로 거론되던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되진 못했지만, 아브라함의 모든 살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들의 아내, 즉 며느리는 얻는 아주 중요한 일을 그 늙은 종 엘리에셀에게 맡긴 것입니다. 당시 아브라함이 머물고 있던 헤브론에서 아브라함의 친족들이 살고 있는 하란까지의 거리는 무려 800km나 됩니다. 140세의 고령인 아브라함이 그 먼길을 가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아브라함은 자신이 신뢰하는 엘리에셀을 그곳으로 보낸 것입니다.

 

막중한 책임을 지고 떠나면서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에 이렇게 묻습니다. ‘만일 이삭의 며느리 감으로 좋은 아가씨를 선택했는데, 그 아가씨가 이곳으로 오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요? 주인님의 아들 이삭을 그리로 데려가서 아가씨에게 이삭을 보여주고 아가씨를 데려와야 할까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상황입니다. 비록 지금으로부터 거의 4천 년 전의 고대사회라고 하지만 남자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않고 자신의 고향을 떠나 그 먼 곳으로 오겠다고 하는 아가씨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에셀은 그런 상황을 가정하여 아브라함에게 물은 것입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이삭을 그리로 데려가지 말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해줍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창세기 24:7)

 

아브라함에게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를 앞서 보내셔서 모든 것을 준비시켜 놓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엘리에셀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앞서 가신 하나님만 믿고 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만일 아브라함의 확신과 달리 하나님께서 인도하지 않으신다면 아브라함의 늙은 종 엘리에셀은 거의 한 달이나 걸려서 가야하는 그 먼 길을 갔다가 허탕만 치고 돌아와야 합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전혀 두려움이나 걱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이란 분명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엘리에셀이 하란에 갔을 때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리브가였고, 그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친척임을 알고는 그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데리고 옵니다. 모든 길에 조금도 착오가 없이 이삭의 아내를 데리고 오는 일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란에 있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와 가족들 그리고 친족들과 함께 살던 그 하란을 떠나온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란을 떠나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140세가 될 때까지 65년 동안 자신의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깊이 경험했습니다. 특별히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은 여호와이레의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죽이려 하는 순간 아브라함을 제지시키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받으셨고, 이삭 대신에 한 숫양을 준비시켜 그것으로 번제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그 사건 이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으시고, 늘 가장 정확한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자신의 삶에 복을 주셨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이번에도 그 하나님을 신뢰한 것입니다. 한 번 실수하면 늙은 종 엘리에셀은 하란까지 다녀오는 두 달이 넘는 시간을 허비하고 맙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일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언제나 가장 정확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기의 종 엘리에셀을 하란으로 보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2018년이라는 한 해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2019년을 맞았습니다. 올 한 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함께 하셔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확신하고 계십니까? 지난 한해 우리의 삶에 여호와이레로 함께 하신 하나님을 경험하셨습니까? 때로는 우리가 걸어온 길에 어려움이 있고 고난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그 어려움의 순간을 잘 견디어 왔습니다. 때로는 내 삶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지만, 그래서 삶이 너무 혼란스러워 어찌해야 할지 알지 못해 방황할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과정을 잘 이겨내게 하셨습니다. 좋은 일, 기쁜 일도 있었지만 내 힘으로 견디어내기 힘든 순간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나로 쓰러지지 않도록 도우셔서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때로는 누군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하셨고,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의 상황을 통해서 우리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런 모든 일들이 지금 되돌아보니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는 순간이었고,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도우심은 아브라함의 삶에만 역사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도 역사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4천 년 전 아브라함의 시대에만 살아계신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에도 살아 역사하십니다. 지난해에만 우리를 지켜주신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된 2019년 새해에도 우리의 삶을 지켜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면서 주신 말씀입니다.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탈출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아래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산 위로 부르시더니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고 싶다.’고 말씀하십니다. ‘언약을 맺고 싶어 하신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은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싶다는 뜻을 모세에게 알립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모세의 중재로 언약을 맺게 됩니다.

 

언약의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백성이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백성이 된 이스라엘을 끝까지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것이 언약의 핵심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언약백성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장면입니다. 오늘 본문 2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고 많이 남았습니다. 특별히 그들이 가야할 길은 광야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광야는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운 길입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 쬐입니다. 반대로 밤에는 추위에 몸이 덜덜 떨릴 정도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광야에는 수없이 많은 위험요소들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는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을 구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는 남자만 무려 60만 명이 넘습니다. 한 가족이나 작은 무리라고 한다면 어떻게든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자만 60만 명이 넘고 여자와 어린아이들까지 하면 거의 200만 명이나 될 텐데, 그 많은 사람이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을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양식을 구하는 데만 어려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에는 전갈과 불뱀 등 작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전갈이나 광야의 불뱀에 물리면 살아날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곧 죽음입니다. 가나안까지 가는 여정에 만나게 될 이방민족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이고, 그들이 들어갈 땅에 있는 가나안 족속들도 두렵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길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자를 앞서 보내셔서 가나안까지 가는 길에서 보호해 주시고,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40년 동안 광야생활하면서 그런 모든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뜨거운 태양을 막아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추위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안식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만나를 주셔서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하셨습니다. 건조한 땅 광야를 건너면서 물이 없을 때에는 반석을 깨뜨려서라도 물을 내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그 40년 동안 광야에 득실거리는 불뱀이나 전갈이 나타나 그들을 괴롭혔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지금도 그렇거니와 옛날에 광야를 지나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전갈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야를 지나는 나그네들은 야영을 할 때 가장 먼저 주변에 있는 돌들을 하나하나 뒤집어 전갈을 퇴치하고 나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무서운 전갈이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벌을 내리셔서 불뱀이 나타나 불뱀에 물려 죽는 사람이 있기 했지만, 그 외에는 그 많던 광야의 불뱀이나 전갈에 물려 고통스럽게 죽어간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생활 40년을 거의 마쳤을 때 모세는 그 40년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 끝없고 두렵던 광야, 불뱀과 전갈이 우글거리고 물이 없어 타던 땅에서 너희 발길을 인도해주시며 차돌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해 주시지 않았느냐? 또 너희 선조들이 일찍이 먹어보지 못한 만나를 너희에게 먹여주시지 않았느냐?”(신명기 8:15-16, 공동번역성경) ‘불뱀과 전갈이 우글거린다.’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광야는 전갈과 불뱀이 우글거리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광야생활하는 40년 동안 신발도 헤어지지 않고, 옷도 헤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의 사자를 우리 앞서 보내시어 우리의 길을 예비해 놓으시고 모든 위험요소들을 제거하여 우리가 안전하게 그 길을 가게 하십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그렇게 하시진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하던 중에 단 한 번도 전갈의 공격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 많던 불뱀의 공격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보내시어 백성들을 물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가는 길목에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말씀에 따라 살면 하나님께서 그들이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원수와 친히 싸워주시고, 그들의 대적을 친히 대적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신해서 싸워주시기 때문에 그들이 가는 길에는 언제나 승리가 있을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셔서 당신의 백성들의 삶을 책임져주십니다. 마치 자신의 아들이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아버지가 온 힘을 다해 아들을 그 고통에서 건져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셔서 그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그 어려움에서 그들을 건져주십니다. 그들이 힘들어할 때 그들을 안아주시고, 그들이 고통스러워할 때 그 고통의 자리에서 벗어나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광야와 같을지라도 그 모든 힘들고 험한 인생길에서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올 일년의 삶, 그 삶이 때론 힘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광야라 하더라도 그 길을 걷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찌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때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그렇습니다. 힘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불평스러운 상황을 만나기도 할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우리의 삶의 길에도 당신의 사자를 보내주셔서 우리보다 앞서 가게 하십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보다 앞서 가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서 하나님을 놓치지 마십시다. 때로 하나님께서 멀리 가시는 것처럼 보인다면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하여 빨리 쫓아가십시다. 때로 하나님께서 천천히 가신다면 우리가 하나님보다 앞서려 하지 말고 하나님과 보조를 맞춰 하나님과 같이 가십시다. 그리고 귀를 기울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귀를 기울이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해야 합니다. 청종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쉐마’입니다. ‘쉐마’라는 말은 ‘경청하다, 유의하다’라는 뜻일 뿐만 아니라, ‘응답하다, 순종하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그 말씀에 응답하여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 인격으로 반응하여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여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보호해 주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한다는 것에 대조되는 것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노엽게 하다’는 말은 슬프게 하다, 가혹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잃어버린 채 하나님 없는 사람처럼 사는 것이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복을 받길 원하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기에 당신의 백성에게 복을 주실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슬픔을 안겨 드리는 것입니다. 복을 주시고 싶어 하시는데 복을 받아야 할 사람이 복을 받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주시고 싶어도 주실 수가 없어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인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당당하게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용기를 가지고 사는 것을 보실 때 그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고 늘 세상에 져서 믿음의 패배자로 살아간다면 그 모습을 보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에는 걱정과 근심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노엽게 한다는 말은 단순히 화나게 한다는 말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걱정과 근심을 안겨드리는 것도 포함됩니다.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올해 내가 네 앞서 가겠노라.’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앞서 가시며 우리의 원수에게 원수가 되시며, 우리의 대적에게 대적이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말입니다.

 

때론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습니다. 때론 하나님께 실망시켜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광야생활하던 중에 그들은 참 많이 원망하고 불평하며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끝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광야생활하는 내내 말입니다. 광야생활을 마감하고 이제 곧 요단강을 건너기만 하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 때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신명기 1:29-30)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여호수아에게도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신명기 31:7-8)

 

그렇습니다. 광야생활을 시작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앞서 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생활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들보다 먼저 가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은 오늘에도 유효한 약속입니다.

 

여러분, 올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계획을 세우고, 때로는 기대하기도 한 일들이 있지만 그 일들이 어떻게 되어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두렵기도 하고, 때로는 설레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결코 주님보다 앞서지 않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면 때로 우리가 계획한 길과 다를지라도 그 길이 복된 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다른 일들이 우리 앞에 일어날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더없는 축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는 길에는 결코 뚫리지 못할 장애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에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이사야 45:2) 여러분, 이 말씀을 붙잡고 한 해를 시작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앞서 가십니다. 앞서 가신 주님의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우리 앞에 험한 길이 있을지라도 그 길이 평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뚫을 수 없는 놋문이 우리 앞을 가로막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놋문을 깨뜨리십니다. 그 놋문에 쇠빗장까지 달려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쇠빗장까지 꺾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길이 캄캄한 흑암같아 보일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그 흑암은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흑암 중에 보화와 재물을 숨겨놓으셨기 때문에 앞서 가신 주님 뒤를 따라 담대히 나아가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하늘의 보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올 한 해 우리 모두 믿음으로 사십시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으시고, 그 말씀에 응답하는 삶을 사십시다.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그 주님의 뒤를 따라 가십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에 모든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형통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늘 보화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 믿음과 기대로로 한 해를 사십시다. 26(동서학동 239-1번지) Tel 063-286-8283, 063-284-8283 Fax 063-282-8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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