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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히브리서

히 1장 1-3절(하나님의 섭리) - 피영민

by Preacher 2023.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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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장 1-3

하나님의 섭리

피영민 목사 2014.05.25.

http://revpee.kjbc.or.kr/

 

신약성경 가운데 가장 유명한 말씀이자 가장 인기 있는 구절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입니다. 이 말씀에는 사도바울의 강한 확신이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건대” 혹은 “우리가 믿기로는” 이런 정도의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알거니와”라는 강한 확신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도적인 확신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가장 근본이 되는 확신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는 이런 확신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가슴으로는 확신하는 것이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세속적인 사상이 성도들의 마음속에도 많이 침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신론(deism)의 사고가 은연중에 침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기는 하셨으나 만물에는 자연법칙을 주셔서 만물을 시계태엽을 한번 감아놓으면 저절로 풀어지듯이 자연법칙을 따라서 자연히 돌아가고 있다는 사상입니다. 하나님은 마치 멀리 떠난 집 주인처럼 만물의 운행에는 관여하지 않으시고 자연법칙에 맡겨놓으셨다는 사상입니다. 이런 사상을 시계태엽신관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신론적인 사상을 철저히 배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을 하나님이 직접 섭리하고 계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성도의 올바른 반응은 무엇일까요? 롬 8:31~35이 성도가 보여야 할 올바른 반응입니다.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8:34) 누가 정죄하리요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대적할 자도 없고, 송사할 자도 없고, 정죄할자도 없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자도 없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입니다. 옛날 성도들은 “Deus Pro Nobis“ Deus=하나님, Pro=위하신다 Nobis=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표어를 슬로건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말씀이 “하나님의 섭리론”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론은 매우 중요한 교리입니다.

 

Ⅰ. 섭리의 개념

 

1. 섭리(Providence)란 무엇입니까?

 

우선 어원적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섭리라는 영어단어는 라틴어 Providentia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pro는 미리 라는 말이고, videntia는 video를 본다는 하나님이 미래에 일어날 일을 모두 미리 보시고 미리 공급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Provision 공급이라는 영어단어도 같은 어원에서 나온 것입니다.

 

가정에서 남편의 책임은 “공급”의 책임입니다. 앞으로 무엇이 필요하게 될 것인가를 미리 보고 공급해 주는 것이 남편의 책임입니다. “너희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많이 오해되는 말씀입니다. 내일 일을 두려워하고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지 내일 무엇이 필요할 것인가를 미리 보고 계획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남편이 가정의 모든 필요를 미리보고 공급해주는 것처럼, 하나님이 피조물의 모든 필요를 미리 보시고 미리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것이 섭리입니다.

 

2. 섭리의 개념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곳이 창22장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 했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질문했습니다.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 22:7)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창 22:8)”. 하나님이 미리 준비해 놓으셨다는 이것이 바로 섭리의 어원적인 의미입니다.

 

3. 신앙고백서 제5장 1절에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신학적인 정의를 잘 내려놓고 있습니다. “가장 큰 것부터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창조된 목적을 따라서 모든 피조물과 만물들을 지극한 지혜와 거룩한 섭리로써 보존하고 지도하고 처리하고 통치하신다”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미리 계획하셔서 보존하시고 통치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되는 제1원인은 하나님의 작정(Decree of God)이고, 시간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작정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제2원인이 하나님의 섭리(Providence of God)인 것입니다.

 

Ⅱ. 섭리의 두 영역

 

하나님의 섭리는 보존(Preservation)과 통치(Government)라는 두 영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의 섭리는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보존”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성서에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다고 할 때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는 바라(בָּרָ֣א)입니다. “바라”는 단지 만들어 놓고 끝났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만드신 것을 계속해서 보존(sustain, preserve)해 주신다는 사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에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라고 했습니다. 만물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보존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도행전 17:28에도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나를 지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나를 보존해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내가 숨 쉬고, 움직이고, 기동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존의 섭리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세속문화는 이 세상이 독립된 기계처럼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자연법칙에 따라서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연법칙이란 하나님이 만물을 보존하시고 통치하시는 정상적인 수단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정상적인 수단 이상으로 역사하시고, 기적을 행하실 수도 있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선포합니다. “창조”도 하나님의 활동이시오, 만물이 보존되는 것도 하나님의 활동임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 섭리의 두 번째 영역은 피조물을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사상 가운데 가장 악한 사상이 온 우주와 인간이 우연히 움직이고 있다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우연(Chance)”이란 하나의 수학적인 개념에 불과한 것이며 “우연”이 무슨 일을 발생케 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백서 5장 2절 중반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또한 하나님의 섭리의 개입 없이 일어나는 일도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29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다니엘 4:35은 7년을 짐승처럼 지내는 형벌을 받은 느부갓네살이 7년 만에 제정신이 돌아와서 한 말입니다.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고 했습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일어난다는 사상은 성도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는 사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치하시되, 우리 편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주시는 통치를 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우리의 범사와 생명, 우리의 직업, 우리의 가정 모두가 하나님의 손안에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내일 일을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Ⅲ. 동시작용 혹은 동시발생의 교리(Doctrine of Concurrence)

 

1. 하나님의 섭리의 교리를 공부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동시발생의 진리입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섭리하시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도 자율적인 의지를 가지고 행하기 때문에 다른 의미에서는 인간이 행하는 일도 되는 것입니다.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하나로 만나듯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과 인간이 행하는 일이 결국은 한가지 목적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 동시발생의 교리입니다.

 

2. 그렇다면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에 그 죄도 하나님이 행하신 것입니까? 신앙고백서 5장 4절 후반부에는 “하나님은 가장 거룩하며 가장 의로우시눈이시므로 죄의 조성자 이거나 승인자도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3. 하나님의 뜻은 명령적 의미(Preceptive Will)와 작정적 의지(Decretive Will)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아우인 요셉을 사랑하지 않고 노예로 팔아먹은 것은 하나님의 명령적 의지를 거스리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팔아먹으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 형들의 죄도 하나님의 작정적 의지 안에서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까지도 모두 선으로 바꾸어 놓으시는 무궁한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창세기 50:20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가롯유다도 자기 뜻을 따라서 예수님을 팔아먹은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예수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로 바꾸신 것입니다. 그러나 가롯유다 개인의 책임은 면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작정적 의지를 이루었다고 해서 명령적 의지를 거역한 죄가 무마되는 것은 아닙니다.

 

<결론>

 

우리 성도의 삶에 분명한 진리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보존하시고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3) 하나님은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합하여 선이 되게 하시고,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는 “특별 섭리”인 것입니다.

 

섭리의 진리에서 큰 위안과 확신을 얻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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