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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히브리서

히 12장 5-8절(축복을 만들어 가는 사람) - 김승규

by Preacher 2023.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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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2장 5-8

축복을 만들어 가는 사람

김승규 목사 2016. 4. 24

광명교회 [시흥시] http://www.kmchurch.com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3월에 심방을 해보니 더욱이 우리 성도들이 잘되고 축복받는 가정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더욱 간절히 간구하게 되었습니다. 심방을 하고 난후 저는 제 기도 수첩에 우리 성도들을 세가지로 구분하여 기록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교회 일을 열심히 하고 충성하는 사람), 소망의 사람들(조금만 노력하고 가르치면 소망이 있는 사람들) 사랑의 사람들(믿음이 연약하고 교회에 잘 안나오는 사람들 그래서 사랑이 많이 필요한 사람) 이렇게 기록해 놓고 기도 할 때마다, 또 부흥회 다니면서도 늘 한분씩 떠올리며 기도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정말 잘 풀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나보다도 하나님이 더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 성도들이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가 잘되기를 바라시는지 그 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축복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징계를 받는 아들이 잘 됩니다.

 

기독교 인물 가운데 중세 교회시대에 교회의 아버지라 불리우던 어거스틴이라는 훌륭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젊은 날 유명한 탕자였습니다. 세상에서 할수 있는 아주 못된 짓은 다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 하였습니다. 주변 사람에게도 “우리 아들은 하나님께 돌아와 큰일을 할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럼에도 어거스틴의 행동은 더 심해졌고 동네 사람들은 모니카에게 그만 아들을 포기하라고 말렸습니다. 그때마다 모니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탕자라도 그는 내 아들입니다. 나는 포기 할수 없습니다. 내가 포기하는 순간 아들도 없으며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아들은 그래도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모니카는 14년 동안 눈물로 하나님께 매달렸고 그런 어머니의 기도를 하나님은 받으셨습니다. 어거스틴은 기독교 역사에 “성자”의 칭호로 불리며 위대한 인물로 쓰임 받았습니다.

 

왜 성경은 징계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직도 그 인생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하고 계시다는 표징인 것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자녀로 붙잡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정말 무서운 것이 “포기”하는 것입니다. 방치하고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징계의 밑바닥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숨어 있습니다. 그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애정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라”(신8:5) 오늘 말씀에서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 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 아들이 아니니라”(히12;7-8) 사생자란 ‘버린자’라는 뜻으로 해석할수 있습니다. 자녀이니까 야단치는 것이고, 아들이니까 아파도 때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여러가지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께 야단을 맞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사람 막대기와 인생의 채찍’이라고 하였습니다.(삼하7:14)

 

우리는 때때로 그래도 이만하면 착하게 사는데, 나보다 훨씬 못되게 사는 사람도 많은데 그들은 그냥 두시고 왜 하나님은 나만 이렇게 야단치는가? 서운한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만큼 우리를 더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거는 기대가 크고 더 잘되기를 바라고 복주시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자녀도 부모가 기대하는 자녀는 더 야단 칩니다. 자녀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35명중 33등을 했고, 하나는 3등을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33등을 한 자녀는 야단을 안치는데 3등을 한 자녀는 야단을 칩니다. “너 좀 열심히 했으면 1등을 했을 것 아냐? 그렇게 놀더니만 3등 했잖아, 그래가지고 대학은 갈수 있겠어” 33등한 아이에겐 “그래도 꼴찌는 안했네, 잘했어” 오히려 칭찬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똑같은 자녀라도 거는 기대가 크고 작은 차이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세계 역사상 저들만큼 수난당하고 시련과 역경을 당한 나라가 없습니다. 그것은 세상 어느 민족보다도 이스라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2등도 원치 안했습니다. 선민 백성으로서 세상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기를 바라셨던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오늘날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는 이 시대의 성도들입니다.(벧전2:9)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는 기대가 크십니다. 징계를 받을때 너무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말고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그만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아끼시고 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한달을 기도하지 않아도 나는 괜찮던데” 이것은 자랑이 아닙니다. 대부분 성공한 크리스챤들의 간증을 들어 보면 “나는 일주일만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매가 즉각 옵니다” 라고 말합니다.

 

징계를 받는 것이 오히려 복이 됩니다. 야단을 맞는 자녀가 더 복이 있습니다. 옛날에 자녀가 네 다섯명이 있으면 장남이 더 많이 혼났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은 그래도 장남이 공부도 좀 더 잘하고 잘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생이 형을 돕는 것보다 형이 잘 되어 동생을 돕는 것이 부모의 입장에서는 더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남을 더 혼내고 야단쳤던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심정인데 그것을 모르는 장남은 속상해 합니다. 우리도 때로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면 속상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징계를 통해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모습이 사탕을 주시는 모습, 돈을 주시는 모습일 수도 있지만 때로 야단을 치시는 모습, 나무라시는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징계를 통해 보여 주시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기대에 부흥하는 성도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야고보서1:12절에 말합니다.“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도다” 시험은 두가지 있는데 사단 마귀가 주는 유혹이라는 시험이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연단이고 훈련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더 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오히려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합니다.(약1:2) 물질의 시험, 환경의 시험, 사람의 시험등이 왔을 때 잘 통과하고 나면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하다 보면 반드시 시험이 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우 관계에서 시험이 올때 이런 말을 합니다. “교회에 사랑이 없다” 어떻게 이런 시험을 참고 이길수 있을까요? 이런 분들은 정말 자기가 교회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내가 교회를 사랑해서 어떤 물질적 헌신을 한적이 있는가?’ ‘내가 교회를 사랑해서 어떤 그 무엇인가를 헌신한 적이 있는가?’ 교회에 내 땀이 있고, 내 물질이 있고, 내 시간이 있고, 내 정성이 있다면 교회가 사랑스러워지게 됩니다. 남의 자식보다도 자기 자식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 뱃속에서 10달 동안 아이를 데리고 있다가 낳아 자기가 그 아이를 알뜰히 살피고 돌봐주면서 키우는 쉽게 말로 표현할수 없는 내 사랑과 내 정성이 그 아이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헌신한 자녀에게 엄마는 “내 자식이 사랑이 없다”고 자식에게 시험들지 않습니다.

 

3.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습니다.

 

벧전3:14절은 말합니다.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쉽게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고난 받으면 그 사람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과 상급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선교를 준비하느라 김치도 담그고, 헌옷도 수거하여 판다고 합니다. 정성이 들어가고 수고가 들어가고 헌신이 들어갑니다. 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드린 헌신과 수고들입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그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상급으로 우리 삶에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복 받을 상이 많이 쌓여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복만 달라고 하지 말고 복 받을 만한 일들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징계와 시험과 의를 위한 고난이라는 세가지 축복의 원리를 말씀드렸습니다. 세가지 모두 좋지 않아 보일수 있습니다. 징계는 우리를 힘들게 하고, 시험도 별로 우리를 기분 좋게 하지 않습니다. 고난도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변하여 결국에 축복이 됩니다. 우리가 이런 징계나 시험, 고난을 승화시켜 축복으로 만들어 가는 진정한 축복의 주인공들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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