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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히브리서

히 13장 17-19절(영적 지도자를 존경하라) - 김승규

by Preacher 202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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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3장 17-19

영적 지도자를 존경하라

김승규 목사 2015. 5. 24

광명교회 [시흥시] http://www.kmchurch.com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신정주의 국가입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이 세운 선자자의 말을 잘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지자를 배척하고 죽였습니다. 엘리야가 도탄에 빠진 이스라엘을 보며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19:10) 느혜미야는 조상들의 죄를 이렇게 자복하며 회개하고 기도합니다.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지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주를 심히 모독하였나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사 그들이 곤고를 당하시매”(느9:26) 예수님은 멸망해 가는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23:37)

 

우리나라도 지도자를 끌어 내리는 것이 전통이 되어 있습니다. 조선왕조는 정도전의 군신공조정치의 이념하에 세워졌습니다. 임금과 신하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왕도정치를 표방하였습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왕과 신하와 또 신하와 신하들이 서로 싸우고 다툽니다. 연산군의 폭정으로 왕권은 땅에 떨어지고 신권이 강화되게 됩니다. 선조 때에 이르러 동인과 서인 북인과 남인이 나눠지고 사색당파가 심하게 됩니다.

 

선조를 이어 광해군이 즉위하게 되는데 광해군은 세자로서 임진왜란을 슬기롭게 극복해 내고 중원의 중심세력으로 떠오르는 후금과도 관계를 개선하는 영민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적을 죽임으로서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려는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광해군은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리고 폭군으로 변질되게 됩니다. “광해”라는 영화가 이를 잘 그리고 있습니다. 심리학에 대상관계이론이라는 것이 있는데 인간의 자아는 참 자아와 거짓자아가 있습니다. 참 자아란 그가 가진 본연의 자아를 말하며 거짓자아는 후천적으로 길들여지는 자아를 말합니다. 광해군은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는 영민한 왕이었는데 신하들의 등살에 그의 참자아는 죽고 거짓된 자아가 살아나 그가 변질되게 됩니다. (광해라는 영화에 보면 광해가 병으로 요양을 가고 똑같이 닮은 가짜 광해를 내세우게 되는데 그가 정치를 잘합니다. 그러나 병들었던 광해가 다시 살아났을 때는 가짜 광해를 죽이고 그는 폭군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하들에게 시달리면서 변화되는 그의 거짓된 자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자아가 탄생하여 폭군이 되고 이로 말미암아 인조반정이 일어나 폐주가 되고 인조가 왕위에 즉위하게 됩니다. 인조는 적통도 아니고 신하들에 의해 추대된 왕이었으니 힘이 없습니다. 신하들에게 빚을진 빚쟁이 왕입니다. 친 후금 정책을 펴던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된 인조는 친명배금 정책을 폅니다. 후금을 청으로 바꾼 청태종이 화가 나서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에 쳐들어옵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 피신해 갔으나 결국 47일만에 청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는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여야만 했고 손자 정조는 즉위 이후 수없이 그의 목숨을 노리는 세력들에 의한 암살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정조가 죽고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안동김씨 김조순에 의해 세도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조정을 손아귀에 넣고 허수아비같은 왕을 내세우고 똑똑한 왕족은 귀향 보내고 죽여 버리고 국정을 떡반죽 주무르듯 마구 휘두르며 매관매직으로 나라를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헌종은 두려워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게 되고, 왕족의 씨가 말라서 권문세가들은 결국 강화도까지 가서 철종을 데려다가 허수아비 왕을 세웁니다. 시골에서 농사나 짓던 철종이 왕이 되어 보니 궁궐에 수만은 궁녀들이 향수를 풍기고 다니는 것을 보고 주색잡기에 빠져 살게 되고 정치는 세도가들이 주무르게 됩니다. 결국 철종은 정력이 말라 누렇게 얼굴이 떠서 죽게 되고 흥선대원군의 아들 고종을 데려다 왕을 삼으나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결국 조선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뼈아픈 일제 36년 강점기라는 혹독한 시련을 치르게 됩니다.

 

이같은 치욕의 역사 눈물의 역사가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역사가들은 시대를 읽지 못한 쇄국정책도 문제의 원인이지만 본질적인 조선의 실패는 국론의 분열과 지도력 상실에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지도자를 존중히 여기지 않고 자행자지 하며 분열과 암투가 가득한 사회와 국가는 패망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너희를 인도하는 영혼의 지도자를 존중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도자를 끌어내리는 사회적 민족적 전통이 고스란히 교회안에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세례주고 안수해 주고 말씀을 가르치던 주의 종들을 하루아침에 강단에서 끌어 내리고 고소하고 좇아냅니다. 물론 일부 목회자들이 부도덕하고 세속적인 모습을 사람앞에 언론앞에 보인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영적 지도자를 매도하고 매장하는 여론몰이로 돌려져서는 안됩니다. 이런 것이 빌미가 되어 교회를 모독하고 거역하는 세력들에 의해 부풀려지고 기독교가 매도되도록 버려두고 부하뇌동하여 교회를 분열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심령에 이런 것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우리들의 신앙마저 지도자를 경시하는 풍조로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영혼의 지도자를 존경하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잘 따르며 복받는 성도가 되어 살 수 있습니까?

 

1.즐거움으로 사역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한마디로 근심으로 목회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목회하다 스트레스 받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의 종의 사명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바로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엡4:12) 온전하게 한다는 것은 꿰맨다는 뜻이 있는데 잘못된 것을 다시 뜯어서 정비하고 꿰매어 신앙인격을 구비시켜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는 것이 주의 종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의 흠이나 잡고 순종하지 않고 깔아 내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이를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 곧 우리 성도들이 복을 받는 길입니다.

 

2.하나님의 사자를 귀하게 여겨야 됩니다.

 

옛날 임금의 사자가 사약을 가져 오면 귀향 가있던 신하는 ‘상감마마 만수무강하옵소서’하고 절하고 받아 먹었습니다. 고후5;20절에 보면 영혼의 지도자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리스길라 아굴라는 롬16:4절에 보면 바울을 위해 자기의 목숨마저도 줄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자신을 천사와 같이 아니 예수님처럼 영접하고, 눈이 아픈 것을 보고서는 자기들의 눈이라도 빼줄 심산으로 섬겼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갈413-15)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6:6)

 

3.영혼의 지도자의 권위와 지도력을 존중히 여겨야 됩니다.

 

목사가 교인과 당회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어디서 인정받겠습니까? 교인들이 우습게 여기는데 어떻게 세상 사람들이 목사를 존중하고 가르치는 말씀을 따르겠습니까? 다행이 우리교회는 천사같은 당회원과 성도 때문에 제가 아직까지 목회를 잘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영혼의 지도자가 불범과 불의를 행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노아의 허물을 까발렸던 함처럼 나는 보았네 보았네 하고 까발리지 말고 눈물로 기도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밀하게 찾아가 권면하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를 위하여 덕스럽게 처리해야 됩니다.

 

오늘 스승의 주일을 맞이하여 다시한번 영혼의 지도자를 존중히 여기라는 주의 말씀대로 항상 주의 종을 존중히 여기고 잘 섬기며 복은 받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축원합니다. 집에서는 부모님을 존중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을 존중하고 나라에서는 대통령을 존중히 여기고 교회에서는 목사님을 존경하고 섬기는 아름다운 전통을 바로 세워 나갈 수 있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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