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4장 1-11
오늘 영원한 안식을 선택하라!
이삼규 목사 20190804
[히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히 4: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히 4: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히 4: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히 4: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히 4: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히 4: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히 4: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히 4: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히 4: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히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장 크레이지 조지의 <클리프 행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유명한 산악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오르지 못한 높은 산 정상에 오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몇 년간 만반의 준비를 한 그는 정상 탈환의 영광을 독차지하기 위하여 홀로 등반길에 오릅니다. 종일 등반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저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올라갔습니다. 그때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달빛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덮였습니다. 그는 정상을 코앞에 두고 미끄러져 절벽에서 떨어졌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추락했습니다. 그러나 허리에 묶여 있던 로프가 그를 붙잡아 주었습니다. 그는 어둠과 추위 속에서 떨며 공중에 매달린 채, 절박하게 허공을 향해 외쳤습니다.
“하나님, 저를 좀 도와주세요!”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널 살려줄 수 있다고 믿니?”
“물론이죠!”
“그럼 내 말에 순종할 수 있겠니?”
“네, 그럼요.”
“그러면 로프를 끊어라!”
순간 침묵이 흘렀습니다. 사나이는 허리에 두른 로프를 더 단단히 조였습니다. 다음날 산악 구조대가 올라와서 보니까 한 사람이 로프에 매달려 얼어 죽어 있었습니다. 불과 땅에서 1미터 위에 매달린 채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같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을 붙들고 있는 로프는 무엇입니까? 얼어서 죽든 떨어져서 죽든 죽는 것이 매 한가지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까? 바로 하나님께 맡기고 로프를 끊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히 4: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오늘’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먼가를 선택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오늘은 ‘내게 아직 생명이 남아 있는 동안에’, ‘아직 기회가 남아 있는 동안에’, ‘더 늦기 전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세상의 헛된 기쁨과 즐거움에 빠져 살지 말고 즉시 응답해, 바로 오늘 영원한 안식(미래)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안식”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안식’은 ‘카타파우시스’라고 하는데 히브리서 기자는 이 단어를 세 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⓵사람이 고단한 일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삶속에서 평안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⓶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⓷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 가운데는 율법이 주는 구원 약속만을 굳게 신뢰하며 선민사상을 가지고 구약의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영도로 출애굽 했던 백성이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은 사건을 상기시키고, 또 여호수아가 백성을 인도해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참 안식을 누리지 못한 것을 볼 때, 아직도 들어가야 할 진정한 안식이 남아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 지도자나 이 땅의 안식에 만족하지 말고, 모세보다 뛰어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위의 것을 사모하라고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안식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
하나님은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마지막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의 노동이 너무 힘드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모든 창조를 마치시고 인간과 온전한 관계를 맺으시려는 의도에서 하루를 안식일로 구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단순히 놀고먹는 휴일과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7일 째 안식하셨지만 그날 이후로도 지금까지 계속해서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며 생명을 유지시키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요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다만 그분이 바라시는 것은 주님을 떠나 안식이 없는 인간들이 창조주와 참된 관계를 맺음으로써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취하신 안식에는 일을 마쳤을 때 느껴지는 성취의 기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안식으로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약속하신 안식에 들어오길 원하십니다. 그 안식은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는 진정한 안식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완전한 안식의 맛보기에 불과합니다.
여러분! 대형 마트에 가면 맛보기가 많이 있습니다. 맛을 보고 맛이 있으면 사가라는 것입니다. 맛보기로 배를 채울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맛보기는 맛보기에 불과합니다. 우리에게는 일을 다 마치고 하나님과 함께 누릴 참된 안식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이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안식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히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지만 그 안식에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그 약속에 이르지 못할까요?
[히 4: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출애굽 하여 광야 길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당도하기 전에 가데스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을 두루 다니며 땅을 탐지하고 풍성한 과일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절망과 원망으로 반응하였습니다. 결국 두 명을 제외하고 아무도 두 번째 의미의 안식(가나안 입성)에 들어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 곧 그분의 약속을 믿지 않았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그분이 예비하신 ‘안식’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약속을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복된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왜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이 되었을까요? 복음을 들었지만 자기의 믿음과 결부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말씀하십니까? 바로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다른 김 집사나 박 집사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바로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복음을 들을 때 자기에게 적용시키지 않고 다른 사람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과 결부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단지 본인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신이 하나님 노릇하며 살아가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이 마련하신 안식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았다는 것은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 4: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안식의 땅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순종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도 그 땅을 밟아 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복음을 말씀을 듣고 믿음과 결부시키십니까?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우리 자신에게 안식을 받기에 합당한 믿음이 있는지 스스로 시험하고 확증해야 합니다.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혹시 말씀에 순종해야 할 때 말씀이 아닌 내 생각을 따르지 않는지 돌아보십시오. 믿음이 없는 자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
복음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들만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이 없다는 것이 하나님을 거절하는 행위라면,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진정 우리 삶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삶의 모든 부분에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입으로는 고백하면서도 삶의 현장에서는 전혀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참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행함이 없이 입술로만 고백하는 믿음은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믿음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진지하고 헌신적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또한 진정한 믿음은 처음 가졌던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을 포함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흔드는 고난의 순간이 닥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환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끝까지 인내하는 믿음이야 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참된 안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누가 들어갔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순종했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들어갔습니다. 물론 이 두 사람도 12명의 정탐꾼의 일원이었습니다. 이들도 다른 10 명의 정탐꾼이 보았던 것을 똑같이 보았습니다. 열 명의 이야기를 듣고 반역을 일으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민 14: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민 14: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민 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민 14: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뭐라고 말합니까?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고 평가합니다. 그 아름다운 땅에 누가 들어갈 수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합니까?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고 했습니다. 개역 성경에는 ‘밥’이라고 했습니다. 밥 먹기가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쉽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밥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의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불평과 원망과 절망적인 말이 나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옵니까? 그 말로 여러분의 믿음 상태를 진단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없다. 못 한다.”라는 부정적인 말을 하면 그 사람은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면 능히 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꼭 해내고야 맙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뭐라고 권면합니까?
[히 4: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히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고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이 무엇입니까? 광야에서 쓰러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약속하신 참된 안식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놀라운 복음을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복음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안식이 없습니다. 불신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복음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끝까지 순종함으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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