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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갈라디아서

갈 5장 1절(신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에 관하여) - 피영민

by Preacher 2023.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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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5장 1

신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에 관하여

피영민 목사 2014.11.09.

http://revpee.kjbc.or.kr/

 

침례교회의 특징은 국가교회제도에 반대하여 자유교회, 종교의 자유를 주장한 것입니다. “종교의 자유원리”가 나오게 된 근본원리가 신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입니다. 갈5:1은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신자의 자유에 대한 대선언입니다. 역사 속에서 인간의 양심의 자유는 두 가지 세력에 의해서 위협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취했던 것처럼 교황을 중심으로 한 성직자 등이 교권에 지나친 권위를 부여하여 성경에 없는 교리나 제도를 만들어서 맹목적인 순종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일부 개신교 국가에서 취했던 것처럼 국가의 권위를 지나치게 확대하여 신자들의 신앙 내용을 통제하고 획일화하여 국가교회제도를 만든 것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1534년에 수장령을 내려서 영국 국왕이 영국교회의 머리라고 선언한 Henry 8세입니다. 1558년에 왕이 되어서 1603년까지 무려 45년을 통치한 Elisabeth 여왕은 1559년에 소위 “통일령”을 내려서 영국국민들은 신앙문제에 관해서 교회의 머리인 국왕의 명령에 순종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영국 성공회의 통일령은 3대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국민은 구교도 아니고 신교도 아닌 중도노선(Via Media)의 신학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39개 조항”입니다. 둘째는 모든 국민은 왕이 정해준 예배양식에 따라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동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입니다. 셋째로 모든 국민은 왕이 임명한 감독의 명령에 순종하는 “감독정체(Episcopal polity)”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분리주의자들이나 침례교인들은 신앙문제에 관한 국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국가교회로부터 분리됨으로 인해서 반역자라는 죄목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된 것입니다. 루터를 중심으로 한 루터교회나 칼빈,즈빙글리를 중심으로 한 개혁교회도 종교문제를 정치 관료들을 의존하여 개혁하려 했고, 한 국가나 한 지역에는 한 가지 교회만을 강요했다는 점에서 성공회의 원리와 이런 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론 개혁교회는 양심의 자유를 실현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 것입니다. 옳은 종교는 국가가 강요해도 괜찮다는 논리도 역시 양심의 자유를 해치는 일입니다.

 

오직 침례교회만이 양심의 자유를 완전한 종교의 자유로 실현한 교회입니다. 침례교회는 교권의 위협도 거부하고, 국가의 위협도 거부했습니다. 하나님과 각 개인의 양심 사이에는 교권도 개입할 수 없고 국가도 개입할 수 없음을 선언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 양심에 명령하시고 믿음의 내용을 주시고, 믿을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이심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양심의 자유입니다. 신자의 자유나 양심의 자유는 같은 뿌리이지만 개념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Ⅰ. “신자의 자유”가 포함하는 내용은 무엇일까요?(1항)

 

신자들 즉 성도들은 구약의 성도들도 있고, 신약의 성도들도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율법 아래 있던 신자들이요, 신약의 성도들은 복음 아래 있는 신자들”입니다. 신앙고백서는 이 두 가지 개념을 구별하며, 두 종료의 신자들이 누리는 자유의 범위에 차이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먼저 복음 아래 있는 신자들이 누리는 자유는 무엇일까요? “자유”라는 말은 소극적인 면으로는 “무엇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느냐? 라는 측면이 있고, 적극적인 면으로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느냐는 측면이 있습니다.

 

1) 먼저 신자들이 얻은 소극적인 자유는 세 가지입니다.첫째, 죄책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죄책(guilt)이란, 죄의 결과로서 인간이 져야 할 책임을 가리킵니다. 죄에 대해서 인간이 져야 할 책임은 “지옥의 형벌”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 죄책에서 자유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법적인 의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런 자유를 “칭의(Justification)”라고 부릅니다.둘째로, 죄의 영향력으로 부터의 자유입니다.

 

신자의 3대 원수는 악한 세상, 신자를 미혹하는 사단, 그리고 신자의 안에 남아있는 죄성인데 육신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영향력으로 부터의 자유는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자유는 “성화(Sanctification)”와 관련되어 있습니다.셋째로, 죄의 존재로부터 자유입니다. 신자들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죄의 존재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입니다. 신자의 영혼은 낙원에 거하다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육신의 부활을 얻어서 새 하늘과 새땅에서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유는 미래적인 자유이며 “영화(Glorification)”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2) 신자들이 얻은 적극적인 자유는 두 가지입니다.첫째, 하나님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구약시대의 대제사장조차 일 년에 하루 대속죄일에만 누린 자유를 항상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둘째,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마귀의 노예된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유를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왕의 노예된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껏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신자들은 노예 같은 두려움이 동기가 되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마음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동기가 되어 순종하는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율법 아래 있던 구약의 신자들이 누리던 자유는 무엇일까요?복음 아래 있는 신약의 성도들이나, 율법 아래 있던 구약의 성도들이나 공통으로 누리는 자유의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1) 구약의 성도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롬4:3에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며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2) 구약의 성도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의 세력으로부터 승리를 얻었습니다. 히11:33~34에 “(11:33)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11: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라고 했습니다.

3) 구약의 성도들에게도 성령이 역사하셨고 성령이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성령이 내주하지는 않으셨고, 불순종하면 떠나기도 하셨습니다.

 

3. 신약의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구약의 성도들보다도 세 가지 면에서 자유가 확대되었습니다.

 

1) 구약의 성도들이 복종하였던 “의식법”의 멍에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의식법은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모두 실체로서 실현되었기 때문입니다.

2) 은혜의 보좌 앞에 항상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확대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3) 성령님이 내주하시고,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시며, 성령님과 더 긴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확대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Ⅱ. 신자의 자유의 논리적인 귀결로 얻게 된 양심의 자유란 무엇일까요?(2항)

 

양심의 자유(liberty of conscience)란 신자의 자유를 선행조건으로 해서 얻는 자유입니다.

 

1. 양심의 자유는 그 근본원리가 무엇일까요?“하나님만이 인간 양심의 주가 되신다”는 원리가 양심의 자유의 대선언입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양심에 명령하실 수 있고, 이것을 믿으라 저것을 믿지 말라는 믿음의 내용을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의 자유를 얻은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서 중보자이신 예수그리스도 이외에는, 어떤 왕이나 어떤 직분을 가진 인간도, 어떤 교권을 가진 존재도,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신앙 내용을 믿음이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순종을 요구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2. 양심의 자유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양심의 자유는 인간이 어떤 권위도 두어서는 안 되고, 어떤 스승도 두지 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서에 합당한 권위나, 성서의 내용을 바르게 가르치는 스승을 거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포함되지 않는 내용을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인간의 양심에 강요할 때 거부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의 자유는 필연적으로 국가교회제도를 거부하고, 교권제도를 거부하며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양심의 자유는 요구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1) 먼저 정치지도자나 종교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성경과 어긋나는 내용을 성도들에게 강요하고,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옳은 진리라고 해도 전도와 설득으로서 인간 양심에 요구하는 것이 옳으며, 총칼과 국가권력으로서 강요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말살하는 것입니다. 국가 권력이나 무력으로 진리가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성령의 역사로 인간양심의 진리를 가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성경과 어긋나는 교리를 권력이나 교권의 압박에 못 이겨서 양심을 거스르면서 순종하는 것은 스스로 양심의 자유를 위반하는 것입니다.

 

Ⅲ. 신자의 자유를 주신 목적은 무엇일까요?(3항)

 

1. 신자의 자유를 주신 목적은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받아 아무 두려움없이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왕 바로의 압박에서 자유케 된 것은 하나님을 올바르게 경배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2. 그러므로 “신자의 자유”를 왜곡하게 자유를 핑계삼아 죄를 짓고 정욕대로 사는 사람은 자유를 주신 목적을 거스려 방종의 기회로 삼는 사람입니다. 천국 갈 자유를 얻었으니 “이제는 마음대로 죄짓고 살자”는 원리는 그리스도인에게 합당치 않은 것입니다.더구나 “신자의 자유”를 왜곡하여 성서의 진리에서 어긋난 자유주의신학 사상을 마음대로 말하고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을 우롱하는 처사입니다.

 

<결론>

 

성도들은 신자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빼앗기지도 말아야 하고, 왜곡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자유를 주신 목적은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기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경배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출애굽기가 이 진리를 그림처럼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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