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5장 16-18
다른 힘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이삼규 목사 20190609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저는 지금까지 양승헌목사님이 지은 “크리스천다움”이라는 책에서 밝히고 있는 내용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이다”라는 큰 그림을 가지고 말씀을 계속해서 드렸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른 원리로 살아가야 하고, 다른 목표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 마지막 시간으로 다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른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비행기 안타보신 분은 거의 없으실 것입니다. 요즘은 제주도만 가려고 해도 비행기를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커다란 비행기가 하늘을 날 수 있을까요? 보잉 747-400 기종으로 말하면 자체 무게가 180톤, 화물 220톤, 사람이 탑승하면 약 400톤이 나갑니다. 그런 엄청난 무게로 지상에서 3천 미터 상공으로 치솟아 시속 900km 속도로 비행할 수 있습니다. 100kg도 안 되는 사람도 날 수 없는데 어떻게 우리 몸무게의 5천 배도 넘는 쇳덩어리가 하늘을 날 수 있을까요? 비행기에는 중력을 이기는 추진력과 양력(揚力)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우리는 바른 정체성, 바른 목적, 바른 관계, 바른 목표로 살기를 원하지만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소원이 있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배가 끝날 때마다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무너져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비상을 발목 잡는 영적 중력(重力)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문제
우리의 문제는 동력(動力)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바른 정체성, 바른 목적, 바른 관계, 바른 목표를 갖고 살기 원하는 것과 그렇게 살 능력이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가능성에 대한 오해에 있습니다.
제자리에서 50센티미터도 뛸 수 없는 사람이 삼천 미터 상공에서 시속 900키로로 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적 취미 생활이 아닙니다. 고상한 교양이나 정신 수양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싸움입니다. 거대한 두 개의 힘이 부딪치는 싸움입니다.
첫째 힘은 위로 올라가려는 힘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바른 정체성, 바른 목적, 바른 관계, 바른 목표로 살기를 원하는 갈망이 있습니다. 비행기는 공항 활주로를 이륙하면 기수를 당겨서 계속해서 상공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둘째 힘은 그것을 발목 잡는 영적 중력입니다.
영적 중력은 마귀와 세상과 육의 연합된 힘입니다. 왜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질까요? 지구의 중력이 끌어당기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사탄이 끊임없이 비상하지 못하도록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사탄의 목적은 언제나 같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우리를 갈라놓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영적 비상을 방해하는 온갖 방해 세력의 몸통입니다.
사탄이 사용하는 강력한 무기가 두 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世上)과 육(肉)입니다.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이란?
하나님 없는 세상 시스템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을 삭제하며, 제거하려는 세상 시스템을 말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유혹하여 우리 생각과 삶에서 하나님을 삭제하려고 합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약 4: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육(肉)이란?
육은 우리의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고전 6: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육(肉)은 우리 속에 있는 죄악 된 근성(sinful nature)을 말합니다. 육은 우리 속에 있는 영적 고정간첩입니다.
롬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세상이 외부에서 우리를 자극할 때 우리 내부에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불순종하도록 부추기는 고정간첩이 바로 육(肉)입니다. 육은 우리가 하나님께 반역하여 “내 맘대로, 내 힘으로!”라는 삶을 살게 하려는 사탄의 내부 첩자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과 육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비상하지 못하게 하는데 해결책이 있을까요?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하나님이 그런 삶을 우리에게 왜 요구하셨을까요?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절대로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가능하기 때문에 요구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믿습니까?
헨드릭스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적 삶이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반응을 통해 신자의 삶에 재생되는 그리스도의 삶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내 밑천이 아닌 하나님의 밑천으로 사는 삶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이 바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오직 그리스도만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실 수 있으며,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서 사십니다(요15:1-8, 고후 2:14).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는 성령님이라고 부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끌어 올리는 영적 양력입니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육의 중력(重力)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의 양력(揚力)을 얻는 길뿐입니다. 비행기는 엔진의 출력을 고도로 높이면 처음에는 바퀴가 미끌어지면서 달려 가다가 어느 정도 달려가면 지상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르게 됩니다. 성령님은 바로 비행기의 엔진과도 같습니다.
성령의 양력(揚力)을 얻는 세 가지 방법
1)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양력(揚力)을 얻으려면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누가 하늘을 날 수 있습니까? 비행기에 탑승을 해야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날고뛰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비행기에 몸을 싣지 않으면 절대로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이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가지가 나무를 떠나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농부는 좋은 열매를 맺게 하려고 쓸모없는 가지를 잘라버립니다. 전지작업을 합니다. 그래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가지라 할지라도 나무를 떠나면 바로 죽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분 안에,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있을까요?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죄값을 치르시고 다시 사심으로 천국을 선물로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계시다가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10일 후에 약속하신 대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전도자가 전한 복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주님으로 영접할 때 예수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분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은 여러분 안에 계시고, 우리는 그분 안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교리적으로 인식할 뿐 아니라 삶의 실체로 인정하고, 삶에서 그것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2)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양력(揚力)을 얻으려면 예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날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떠나면 안 됩니다. 주제도 모르고 비행기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순간 돌덩어리처럼 추락하여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단지 예수님과 신분적 관계뿐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그리스도와 동행할 때만 그리스도께서 의도하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 나라에 승천한 에녹을 보십시오.
창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은 아들 므두셀라를 낳고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않았습니다. 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도 역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창 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성결교 부흥사였던 이성봉 목사님은 항상 오른손을 꼭 쥐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손을 붙잡고 그분과 동행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을 붙잡는 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동행의 다섯 손가락을 '5P'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⓵엄지-‘하나님의 계획’(Plan)
우리를 향한 하나님은 계획은 막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의 통로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축복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계획입니다. 엄지를 펴고 외쳐 보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위한 놀라운 계획을 세우셨다!”
⓶검지-‘하나님의 임재’(Presence)
신 31: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지금 검지를 펴서 사방을 가리키면서 선언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⓷장지-‘하나님의 보호’(Protection)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 43: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손가락 중에 가장 크고 긴 손가락이 장지입니다.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크고 놀라운 주님이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장지를 잡고 선언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지켜주신다.”
⓸약지-‘하나님의 공급’(Provision)
이스라엘 민족을 40년 동안 먹이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아우성 칠 때 한 달 동안 고기를 먹게 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목마를 때 생수를 공급해 주신 분이십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빌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⓹애지-‘하나님의 약속’(Promise)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민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고후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프라미스 키퍼’(Promise keeper)이십니다. 그러므로 새끼 손가락을 치켜들고 선어하십시오. “하나님은 내게 하신 모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
3)말씀을 읽고 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양력을 얻으려면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연결 되어 있어야 합니다. 마치 전원에 꽂는 플러그에 두 개의 전극이 있듯이 우리의 영적 플러그에는 말씀과 기도라는 두 개의 전극(電極)이 필요합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이 힘쓴 것이 무엇입니까?
행 6: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우리가 성화되는 비결도 바로 말씀과 기도입니다.
딤전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말씀과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예수님과 동행하며 떼는 왼발 오른발과 같습니다. 한 발로 걷는 것은 대단히 불안정하고 위험합니다. 이와 같이 말씀과 기도는 상호 보완적입니다. 말씀은 기도의 기초가 되고, 기도의 방향을 잡아주며, 우리의 기도에 확신과 열정을 불어 넣어줍니다. 반면, 기도는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고, 순종할 힘을 공급함으로써 말씀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말씀없는 기도는 쭉정이에 물과 거름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기도 없는 말씀은 씨를 심었지만 물과 거름을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새의 이야기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를 두 마리 새의 이야기로 정리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⓵벌새-‘허밍 버드’(Humming Bird)입니다. 이 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 가운데 하나입니다. 몸길이가 6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안쓰러운 것은 이 새가 가장 힘들게 사는 새라는 것입니다. 이 새는 정지 비행을 하여 꽃의 꿀을 빨아 먹고 삽니다. 정지 비행을 하려면 1초에 50-70회의 날개짓을 해야 합니다. 디지털 카메라에는 아예 날개가 찍히지 않을 정도로 빠릅니다. 이렇게 고된 삶을 살기 때문에 벌새의 평균 수명은 4년에 불과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벌새와 같은 삶이 아닙니다. 힘들고, 불안하며, 좌절하고, 염려하며, 걱정하고, 아등바등하며 사는 삶이 아닙니다.
⓶알바트로스(Albatross)라는 새입니다. 알바트로스는 현존하는 새 가운데 가장 큰 새입니다. 일명 바보 새라고도 불려지는 새입니다. 몸길이가 90cm에 이르고, 쭉 편 날개의 길이는 무려 3.5m나 됩니다. 알바트로스라는 새는 가장 큰 새일 뿐 아니라 가장 높이 그리고 가장 멀리 날아가는 새입니다. 이들의 비행 구간은 북극과 남극사이입니다. 이 새는 약 8500km를 비행한다고 합니다. 한번 비행을 시작하면 3200km를 쉬지 않고 날아갑니다. 또한 새끼 때는 북극에서 보내고, 성체가 되어서는 남극에서 지내다 새끼를 낳을 때가 되면 다시 북극으로 돌아옵니다. 알바트로스는 가장 오래 사는 새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평균 수명이 40-50년인데 85년까지도 사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알바트로스는 어떻게 가장 높이 가장 멀리 가장오래 날면서도 가장 오래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소위 역동적 활상과 활강이라는 비행 원리에 그 비결이 있습니다. 이 새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폭풍입니다. 높은 벼랑 위에서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에 몸을 내던집니다. 그리고 바람을 향해 날개를 펴고 폭풍 꼭대기까지 솟아오른 다음, 바람이 잦아들면 미끄러지듯 먼 거리까지 활강하는 방식으로 납니다. 이 새는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 98퍼센트를 바람에서 얻고 나머지 2퍼센트만 날개 짓으로 얻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이 새의 이름을 ‘신천옹(信天翁)’이라 번역했습니다. ‘하늘을 믿는 노인’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청옹과 같은 우리가 벌새처럼 내 힘, 내 노력에 의지하여 아등바등 사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힘을 믿는 새, 신천옹처럼 우리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멀리 그리고 높이 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힘은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 데 있습니다. 성령님은 ‘두나미스’입니다.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폭발적인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능력을 힘입어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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