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 --------------------/갈라디아서

갈 5장 25-26절(성령님과 동행하십니까?) - 이삼규

by Preacher 2023. 6. 2.
728x90
반응형

갈5장 25-26

성령님과 동행하십니까?

이삼규 목사 20160124

낙양교회 http://nakyang.onmam.com

 

갈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갈 5: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신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한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많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 화합하여 동행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신자들에게서 성령님의 능력과 평안이 발견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에게서는 하나님의 영이 주실 수 있는 선한 특징과 은사와 유익이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가 사랑과 순종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정말 원하는가?” 라고 묻고 싶습니다.

 

암 3:3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우리 인간들도 두 사람이 뜻이 맞지 않으면 동행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요즘 보면 야당에서 탈당하여 다른 야당으로 가는 사람도 있고 또는 아예 여당으로 입당하여 완전히 반대 당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뜻이 맞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도 뜻이 맞지 않으면 하나님과도 동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을 보십시오.

 

창 5: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창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 5: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창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뜻이 맞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합하지 못하면 우리는 조화와 축복의 열매 맺음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할 것입니다. 두 사람이 동행하려면 어떤 점에서 그들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동행하려면 자기들이 동행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동행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 동행이 자기들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으면 절대로 동행은 불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유형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모든 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1)보험을 드는 태도로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에 매우 관심이 많지만 그들은 기독교의 ‘보험적 가치’ 때문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것입니다. 믿기 힘든 얘기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돌봄과 보호를 원합니다. 또한 그들은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기를 원합니다. 결국 그들은 천국을 보장 받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 그들은 헌금을 하고 교회가 하는 이런저런 사업들에 재정적 후원을 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기독교의 ‘보험적 가치’에 끌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은 기독교가 제공하는 것을 원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기쁘게 여기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고 장차 심판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까? 천하고 상스러운 쾌락들을 멀리하는 건전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런 삶이 이생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고 죽어서 천국에 가도록 보장해주는 보험 계약금이기 때문일까요?

 

일본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 귀신을 섬깁니다. 야스쿠니 신사로부터 시작하여 알 수도 없는 수많은 신을 섬깁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이 바로 보험적 성격입니다. 어떤 신이 잘 되게 할지 모르니 아무튼 어떤 신이라도 섬기고 보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도 혹시 그런 이유로 믿음 생활을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2)사교적 그리스도인들

 

신앙을 영적인 눈으로 보지 않고 사교적(社交的)인 눈으로 보는 사람들은 성령 충만한 삶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약 성경의 기독교에 물을 타버렸기 때문에 기독교는 더 이상 그들에게 힘도, 생명도, 활력도 줄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들은 신약성경의 기독교에 안이한 사고방식을 주입하여 그것을 묽게 해버렸습니다. 그들은 아주 통이 큽니다. 그러나 너무 커서 성령님과 동행하는 좁은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교(社交)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가 사교의 한계를 넘으려 할 때에는 그들이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독단적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나는 그들이 성령님과 동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본질적으로 영적인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진리가 성령님을 통하여 인간의 영혼 안에서 작용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사람으로 변해합니다.

 

성경의 영향보다 세상의 영향을 더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성령님과 교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성령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만 아직 그분과 동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사람들이 또 있는데, 그들은 바로 짜릿한 느낌을 얻기 위하여 성령충만을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짜릿한 느낌을 맛볼 수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다고 나섭니다. 하지만 그들이 치르겠다는 대가에는 자신과 세상과 육신에 대해 죽은 것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성령님과 거룩한 교제를 나누는 법

 

영적으로 굶주린 자들은 그리스도를 단지 지옥을 면하기 위한 보험으로 삼지 않으며, 기독교를 단지 선한 사람들과 교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살아 계신 분으로 느낀다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을 진정으로 갈망한다면, 나는 여러분들에게 성령님과 거룩한 교제를 나누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1)성령님을 더욱 깊이 알라!

 

성령님은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가까이 가면 우리와 그분의 관계는 더욱 친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인격체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한 번 만나는 것으로는 그분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중생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양자 삼으심의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알게 된다는 잘못된 생각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또한 회심 후에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우리도 성령님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격성은 무한히 풍부하시고 다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천녀 동안 깊이 연구하고 그분과 교제를 나눈다고 할지라도 그분의 영광스러운 본질의 표피만을 알게 될 뿐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그리고 성령님과의 사귐은 지금 시작되어 평생 동안 성장하고 증거하고 성숙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은 살아 계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과 교제하면서 그분을 깊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께 속삭이면 그분은 우리가 사랑하는 성경구절이나 찬송가 가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시 속삭이십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일을 반복하면 그런 습관이 길러집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공연히 잡담이나 하면서 시간을 때우지 마십시오. 그런 시간에는 하나님의 영과 교제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더 깊이 알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아름답고 은혜로운 일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몰두하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몰두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서서 다음과 같이 외치신 사건을 그의 복음서에 기록했습니다.

 

요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 7: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신 다음에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오순절 날에 성령님이 오셨을 때 베드로가 일어나 설교를 했는데, 그는 설교하면서 예수님의 약속을 상기시켰습니다.

 

행 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더 주님으로 인정하고 따를 때 성령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들을 취하여 그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3)예수 그리스도를 높여라!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높이면 성령님은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동행할 때 우리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높임을 받는 곳에 언제나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사람을 높이십니다. 그분께 합당한 직함을 드림으로써 그분을 높여야 합니다. 그분은 ‘주님’이라고 부르십시오. 그분이 주님이심을 믿으십시오.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불러야 합니다.

 

행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엡 1: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엡 1: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엡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높일 때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실 때 성령님은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여 우리와 교제하고 우리에게 그분 자신을 주시며, 태양은 떠오르고 천국은 가까워집니다.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교회가 할 일입니다. 예수님의 영과을 드러내는 것은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내가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과 동일한 일을 할 때, 내가 성령님이 가시는 방향과 동일한 방향으로 갈 때, 내가 성령님이 가시는 속도와 동일한 속도로 갈 때, 나는 성령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4)의(義) 가운데 행하라!

 

우리가 성령님과 더욱 깊은 교제를 나누려면, 의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살지 않는 사람들과 교제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에 대해서 더 이상 왈가왈부해서는 안 됩니다.

 

딛 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딛 2: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불경건과 세상적 정욕을 거부하고 진실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라고 가르칩니다. 이런 가르침은 우리가 인생의 세 가지 차원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나 자신을 향해서는 진실하게, 이웃을 향해서는 의롭게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하지 않으면서도 신령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습니까? 내가 동행해야 할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만일 내가 거룩하지 못한 길을 간다면 나는 성령님과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5)당신의 생각을 지켜라!

 

내가 또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의 생각을 거룩한 성소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일부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군가 “생각들이 곧 현실이다. 불꽃 같은 눈길로 우리를 살피시고 우리의 모든 이야기를 옆에서 들으시고 우리를 온전히 사랑하시는 성령님은 우리의 생각들이 깨끗하기를 원하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악의적이고 사악한 생각들을 마음에 품은 사람이 사랑으로 충만한 성령님과 교제할 수 있겠습니까? 철저히 이기적인 사람이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남을 속이는 사람이 성령님과 복된 교제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6)성령님의 임재를 훈련하라!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성령님의 임재를 느끼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주님의 영은 온 세상에 충만히 거하십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여기에 계십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임재를 피해 숨을 곳을 없습니다. 그분의 임재를 피해 숨으려고 애썼던 다윗도 그가 하나님을 피하여 숨을 수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시 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시 139: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시 139: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피하여 숨을 곳은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여러분에게 있다면 여러분이 지금 있는 곳에서 당장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완전히 둘러싸고 계십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신문에 머리를 파묻지 말고 먼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십시오. 성령님과 사귀는 훈련을 하는 것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지만, 아주 편하고 즐거운 의무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정말 여러분이 성령님과 동행하기를 소원하십니까?

 

1)성령님을 더욱 깊이 알라!

 

2)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몰두하라!

 

3)예수 그리스도를 높여라!

 

4)의(義) 가운데 행하라!

 

5)당신의 생각을 지켜라!

 

6)성령님의 임재를 훈련하라!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