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 --------------------/에스겔

겔 34장 25-31절(화평의 언약) - 허창수

by Preacher 2023. 8. 27.
728x90
반응형

겔34장 25- 31

화평의 언약

허창수 목사 6.08.28 1

동성교회 [창원시] https://https://cafe.daum.net/huhcs48/

 

우리나라의 5대 그룹에 하나인 롯데 그룹의 부사장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모두 들었을 것입니다. 그가 왜 자살을 해야만 했든가는 한 마디로 그 마음속에 화평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재산을 가졌다 해도 화평이 없으면 살 소망이 없습니다. ‘화평’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합니다. 부귀영화도 화평이 없으면 복이 될 수 없습니다. 부귀영화보다도 더 큰 복이 ‘화평’입니다.

 

본문에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25)란 말씀이 있습니다. ‘화평의 언약’이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은 ‘곧 이스라엘 족속’(30)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과 화평의 언약을 맺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므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포로가 되어 70여 년 동안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였습니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5)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족속의 관계를 성경은 ‘목자와 양’이라고 했습니다. ‘목자와 양’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특수한 관계라는 것을 의미해 줍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와 안전하고 평화로운 인도하심을 받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대 순종과 신실한 의뢰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목자 없는 양’ 같았습니다.

 

목자는 양을 잘 돌보아야 하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오히려 양을 괴롭히고 죽였습니다.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였습니다(3). 연약한 자를 강하게 하지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다스렸습니다(4). 그래서 백성들은 목자 없는 양처럼 흩어지고 들짐승들의 밥이 되었습니다(5). 흩어진 양떼는 높은 산으로 유리하고 온 지면에 흩어졌으나 찾는 목자가 없었습니다(6).

 

이 말씀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포로생활의 어려움을 의미해 줍니다. 포로가 되어 당하는 어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해 백성들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통회 자복했습니다.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찾았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평의 언약을 맺어 주신 것입니다.

 

‘화평의 언약’을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맺어 주셨습니다. 저들에게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건이 주어진 것도 아닙니다. 구제불능의 사람들입니다.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인데 일방적으로 언약을 맺어 주신 것입니다.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우고”(25),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26), “그들이”, “그들이” 29절까지 계속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을 맺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들이 내가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며 그들과 함께 있는 줄을 알고 그들 곧 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 줄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30)고 마치 계약서를 쓰고 싸인하는 것처럼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고 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언약을 맺어 주셨다는 것은 포로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맺어주신 언약은 한 마디로 ‘화평을 주실 것’ 입니다. 백성들에게는 무엇보다도 화평이 가장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화평의 언약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화평의 언약은 흩어진 양들 찾으셔서 가장 평화롭게 잠들게 해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양 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고 양들을 목자들의 입에서 건져낼 것이며 보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0). 잃은 양들을 찾아서 안전하게 보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흐리고 캄캄한데서 건져낼 것이라’고 했습니다(12). 하나님은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니라”(15)고 하셨습니다. ‘누워있다’는 말씀은 모든 걱정을 잊어버린 마음의 평안함과 육신적인 풍요로움과 안전함을 의미합니다.

 

찾은 양들을 더 이상 악한 짐승으로부터 두려워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호해 주실 것을 언약을 맺어 주셨습니다. ‘그들이 빈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서 잘지라’(25)고 했습니다. 빈들이나 수풀은 위험한 곳 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 이상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시므로 평안히 잘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편히 잠을 잘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곳이 되어 질 것을 언약으로 맺어 주셨습니다. 평안히 잠든 이보다 더 평화스러운 장면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맺어 주신 화평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화평의 언약을 맺어주셨습니다. 주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더 이상 악한 사탄 마귀로부터의 위험도 막아 주시는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은혜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면 더 이상 불안과 공포에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화평의 언약을 맺어주시고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다음으로 풍부한 물질적인 복을 주실 것을 언약으로 맺어주셨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26)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안하게 해 주실 뿐 아니라 넉넉한 물질적인 축복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복된 소낙비’를 내려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가뭄으로 타 들어가던 땅에 ‘소낙비’는 축복입니다. 동식물의 생존과 생장을 위한 필수적인 물을 소낙비 같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뭄으로 식물이 타 죽어갈 때 소낙비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생활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어 주시고 때를 따라 비를 내리고 특별히 복된 소낙비를 내리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물질적인 축복을 주실 것을 언약으로 맺어 주신 것입니다. 소낙비는 반가운 축복입니다. 포로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낙비 같은 은혜는 말할 수 없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좋은 꼴과 살찐 꼴을 먹이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그것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여러 백성 가운데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13-14)고 말씀하셨습니다.

 

흩어져 열방들의 손에 잡혀 괴로워하며 죽어가던 그들을 주께서 친히 구해내시고 그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해 두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셔서 안전한 보호를 받으며 우리에 누워 좋은 꼴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평화로운 모습입니까? 무엇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안전함과 풍족함을 누리는 축복입니다.

 

그리고 밭에 소산에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소득이 없으면 화평이라 할 수 없습니다. 물질적인 소득이 있어야 화평이 됩니다. 배고플 때를 화평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업이 어려우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도 평안이 없습니다. “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니라”(27)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먹고 사는 것에 어려움이 없어야 화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멍에에서 건져낼 것을 언약으로 맺어 주셨습니다. ‘그들의 멍에의 나무를 꺾고 그들을 종으로 삼은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낼 것’(27)이라고 하셨습니다. ‘멍에의 나무’는 가축의 목들미 뒤에 얹어 여러 마리의 가축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입니다. ‘멍에를 꺾는 다’는 것은 바벨론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더 이상 바벨론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무언가에 억눌린 것처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무언가에 눌려 있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멍에에 매인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러한 멍에의 나무를 꺾고 건져내 주실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었던 멍에를 하나님께서 꺾어버리고 나를 멍에에서 벗어 날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그들이 멍에의 나무를 꺾고 건져 낸 후에 내가 여호와 인줄을 그들이 알겠고’(27)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멍에 나무’는 아무리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멍에 나무’를 꺾어버리고 나를 건져 주실 때 비로소 나를 도와주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도 능히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나의 멍에 나무를 꺾어서 나를 멍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을 언약으로 맺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말씀입니까?

 

그리고 평안이 거주하도록 해 주실 것을 언약으로 맺어 주셨습니다. “그들이 다시는 이방의 노략거리가 되지 아니하며 땅의 짐승들에게 잡아먹히지도 아니하고 평안히 거주하리니 놀랠 사람이 없으리라”(2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은 바벨론이나 에돔과 모압과 같이 이스라엘의 대적들입니다. 포로가 되어 고생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보고, 목자 없는 양 같이 흩어져 두려워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죽었느냐?’, ‘하나님이 잠들었느냐?’, ‘하나님이 왜 안 도와주시느냐?’ 이런 저런 비웃음과 조롱을 받아 왔습니다. 그들의 노략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방의 노략거리가 되지 않도록 해 주실 것을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맺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땅의 짐승’은 이스라엘 백성들 약탈하고 괴롭혔던 악한 지도자들입니다. 이방인들로부터 당하는 비방과 조롱도 괴로운 일이지만 이스라엘의 악한 목자들이 백성들을 많이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스라엘의 악한 지도자들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평안하게 지켜 주실 것을 언약으로 맺어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파종 할 좋은 땅을 주셔서 기근으로 멸망하지 않도록 해 주실 것을 언약으로 맺어 주셨습니다. 성도가 농사를 하면서 소출이 많이 나면 축복이지만 소득이 떨어지면 수치입니다. 성도가 사업을 하다가 어려움으로 시달리든지, 망하면 수치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해 주실 것을 언약으로 맺어 주셨습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파종할 좋은 땅을 일으키리니 그들이 다시는 그 땅에서 기근으로 멸망하지 아니 할지며 다시는 여러 나라의 수치를 받지 아니할지라”(29)고 언약을 맺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좋은 땅을 주시고 그 땅에서 기근으로 멸망하지 않고 수치를 받지 않도록 해 주실 것이라는 언약입니다. 포로에서 벗어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씨를 뿌려 풍족한 수확으로 풍요로움을 누릴 것을 언약으로 맺어 주셨습니다.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놀라운 축복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화평의 언약을 맺어 주시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심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 대신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어 주심으로 그들은 잊었던 하나님을 깨달아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내 백성인 줄을 알리라”(3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줄을 몰랐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교회 안에도 자신의 하나님의 백성인줄을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드리는 것도 즐겁지 않습니다. 억지로 나와서 시간만 채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 않습니다. 예배 시간에 졸다가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와 더불어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화평의 언약을 맺어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찾아주시고 품에 앉아 주시고 평안의 복을 주시고자 언약을 맺어 주십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말씀을 하십니다.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 이 말씀은 오늘 우리를 다시 일깨워주시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놀라운 은혜요 축복의 말씀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는 화평의 언약을 맺어주신 이 말씀을 우리 모두 ‘아멘’으로 화답합시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