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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누가복음

눅 24장 13-27절(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 허창수

by Preacher 2023.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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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4장 13-27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허창수 목사 8.04.01 1

동성교회 [창원시] https://https://cafe.daum.net/huhcs48/

 

오늘은 모든 교회가 부활주일로 지킵니다. 성탄절은 양력지만 부활절은 음력으로 지킵니다. 주후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매년 춘분을 지나 첫 만월(음력 보름)이 온 후 첫 번째 주일을 부활절로 지키기로 정한 것을 오늘날까지 교회가 지키고 있습니다. 성탄절도 최고의 절기이지만 부활절은 더욱 큰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어 삼일 째 되는 날 새벽에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삼일 만에 살아나실 것을 여러 번 가르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보고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살아나셨지만 기쁨보다 슬픔으로 낙심을 하였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도 예수님의 죽음과 살아나셨다는 말을 듣고 슬퍼하며 고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 두 사람과 함께 동행하셨지만 예수님이신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은 슬퍼하며 예수님의 죽음과 살아나셨다는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고 하며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예수님에게 큰 기대와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대에 대한 큰 실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예수님을 믿고 따라던 것을 크게 후회하는 말을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꿈이 있고 소망을 가진 존재입니다. 우리가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소망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속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무너진 건물속에 갇힌 사람들 중에는 밖에서 자신을 구하는 사람의 소리를 듣고 살 소망을 가진 사람은 일 주일을 넘어 열흘이 지나도 죽지 않고 살아 날 수가 있었습니다. 먹지 않고 마실 물이 없어 자신의 소변을 마시면서도 자신을 구하고 있다는 소망이 있었기에 살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은 9절에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라는 말씀에 ‘모든 이에게’ 속했던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글로바이지만 다른 한 사람은 이름을 밝히지 않아 누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병자들을 고치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기적을 베푸시는 것이나 오병이어와 그 외의 많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이적과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에게 소망을 걸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가 오셔서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신앙으로 어려움도 참고 이겨 냈습니다.

 

마침내 메시야가 오셨습니다. 행하시는 일이나 권위있는 말씀, 그 능력과 이적을 볼 때 그는 바로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였습니다. 두 사람은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21)고 말한 것을 보아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생업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열심히 따랐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이기를 소망하였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을 보고 그들은 절망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속할 메시야라면 당연히 높은 보좌에 않아야 하고 왕이 되어야 하고 호령을 하여야 할 분이 왜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의롭고 거룩한 분이 비난을 받고 고통을 받고 왜 십자가에 달려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하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기막힌 능력을 가지신 분이 그렇게 죽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무덤에 장사까지 되었습니다. 소망이 절망으로 바뀌어 졌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라섰던 것을 후회하며 고향인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제일 먼저 만나주신 사람은 이른 새벽에 무덤을 찾았던 막달라 마리아가 아닙니다. 수제자인 베드로나 사랑하시던 제자 요한도 아닙니다. 예수에게 소망을 걸었다가 크게 실망하고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돌아가는 두 사람을 제일 먼저 찾아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눈이 가리어져서’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에게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 글로바가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예루살렘에 있었던 사람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몰라서 묻는 것처럼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19)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선지자라고 믿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21)고 말했습니다. 예수라는 능력 있는 선지자가 그 능력을 발휘하여 악의 세력에서 이스라엘을 구원시키기를 원했다는 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로부터 억압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로부터 해방을 시켜 줄 수 있는 유대인의 왕이 될 자라고 믿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도 믿었던 예수님이 잡혀 죽으심으로 그들의 믿고 바라던 기대가 무산되고 말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또한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22,23)고 말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무덤을 찾아간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마18:1)가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향유를 가지고 무덤을 찾아갔을 때 무덤을 막았던 돌을 굴려 옮겨져 있고 무덤 안에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않고 두 천사가 예수님이 살아 나셨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와 마리아가 돌아와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천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말은 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에 달려가 보았으나 세마포만 보았고 예수님의 시체를 보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 했습니다.

 

예수님의 살아나셨다는 말을 듣고 크게 실망하여 엠마오로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두 사람이 슬퍼하며 엠마오로 가는 것은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미련하고 선지자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25,26)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미련하고 선지자의 말한 것을 더디 믿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 두 사람 뿐 아니라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함께 있었던 여자들까지도 같이 들어야 할 책망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믿지 못한다면 예수님께서는 ‘미련하고 선지자의 말한 것을 더디 믿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십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가장 믿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예수 믿는 많은 사람들이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교리에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고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병 고침과 이적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난 파도가 고요하라는 말씀 한 마디에 잔잔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구원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살아나실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도 예수님으로부터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나 베드로나 요한이 무덤에 시체가 없어졌다는 것을 보았을 때 예수님의 말씀대로 ‘더디어 살아나셨구나’라고 외치며 감사 찬송했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는 죽은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고 슬퍼하였습니다. 시체가 없어졌다는 것은 실망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기 때문에 시체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셔서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고 동산 지기인줄 알고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요20:15)라고 말 했습니다.

 

부활은 성도들에게 기독교의 생명이요 소망입니다. 문제는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26)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믿었더라면 올바른 메시야 관을 가졌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영광에 들어가는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을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면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덤에 시체가 없어진 것을 보았을 때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과연 우리 주님이 살아나셨다고 큰 소리를 치며 찬송으로 영광을 돌려야 했습니다.

 

문제는 죽음에서 살아나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서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들 뿐만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동산지기인줄로 알았습니다(요20:14).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한동안 길을 함께 걸어가면서 성경을 풀어 주셨지만 그래도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음식을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예수님이신 줄을 알았습니다(30).

 

오늘도 마찬가지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함께 하셔도 영안이 어두운 자는 깨닫지 못합니다. 영안이 밝아져야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떼어 주시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줄을 알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알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형체에 대한 오해를 합니다. 부활하신 몸은 신비한 영체라고 생각합니다. 부활하신 몸은 신령한 몸입니다. 육체에서 영혼이 떠나면 육체는 죽어 무덤에 장사되지만, 육체를 떠난 영혼이 다시 돌아오면 육체는 살아납니다. 이렇게 다시 살아난 몸은 문을 닫았음에도 들어오실 수가 있는 시공간을 초월하는(요20:19) 신령한 몸입니다. 신령한 몸이란 육체가 없는 천사와 같은 영체가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24:39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살과 뼈가 있는 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에 못자국과 허리에는 창에 찔린 자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운 생선도 잡수셨습니다(눅24:42).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영원히 죽지 않는 거룩한 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영으로 충만한 영광의 몸의 형체’라고 했습니다(빌3:21). 변화산에서 변화하셨던(마17:2) 거룩한 모습과 같은 몸입니다. 장차 우리가 죽어 부활했을 때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이 될 것입니다. 우리도 부활하면 시공간을 초월하는 거룩한 몸이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늘로 올리어져 가셨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 다시 오시는 날 부활해서 하늘로 올리어져 가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부활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믿음의 핵심입니다.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성도가 될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장차 자신의 부활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은 자가 어찌 살아날 수 있느냐? 고 의심합니다. 죽어 천 년이 지나 무덤도 형체도 없는데 어떻게 살아나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1: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을 믿는 성도라면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죽은 나사로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느라”는 말씀 한 마디에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죽은 자를 향하여 ‘일어나라’고 외치실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죽은 자들이 살아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몸으로 살아나셨던 것처럼 우리도 거룩한 몸으로 살아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늘로 올리워져 가셨던 것처럼 부활한 모든 주의 백성들은 하늘로 올리워져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지 못한 모든 사람들도 다시 살아나지만 그들은 거룩한 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지은 죄로 말미암아 지옥 불속으로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부활은 믿음의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부활을 믿지 못해서 슬픈 빛으로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은 예수님으로부터 부활의 진리를 배우고 깨닫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가서 제자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오늘도 부활을 믿지 못한 자가 있다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을 듣고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천국에 올라가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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