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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다니엘

단 5장 24-28절(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 강대식

by Preacher 2023.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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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5장 24-28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강대식 목사 2017.10.22

한가족교회 http://ahttp://afamily.ijesus.net/

 

1. 메네 메네,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메네 메네 두 번 반복한 것은 강조요, 확실하고 변동이 있을 수 없음을 뜻한다. 히브리어로 갈대아어로, ‘그가 세었고 끝나게 하셨다’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 즉 이 나라가 지속될 연한과 날수를 세셨나이다. 그리고 끝나게 하셨나이다. 이런 뜻이다. 이제 이 나라를 내 놓아야 하나이다의 뜻이다. 나라도 왕의 시대도 하나님의 시계로 세어서 끝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개인의 운명도 나라의 운명도 하나님이 똑딱 똑딱 시계로 세어서 끝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모든 피조물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그 끝이 정해져 있음을 말씀한다.

 

벨사살 왕은 자기와 나라의 시대가 오래 오래 갈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이렇게 쉽게 끝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나라의 정권을 쥐면 하나 같이 왜 저러는지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좋은 것을 쥐면 오래 오래 갈 줄로 여기고 온갖 패악을 저질른다.

 

벨사살 왕은 느브갓네살 왕의 아들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죄악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불러온 갈대아 왕이 느브갓네살이다. 예루살렘 성을 불태우고 성전을 허물고 성전 안에 있는 금은 집기들을 다 자기 나라로 가져갔다. 그 아들 벨사살 왕은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 때에 벨사상 왕은 명하여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 그릇을 가져오라 하여 그것으로 술을 마셨다. 그리고 우상들을 찬양하였다.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 편 석회벽에 글자를 썼다.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보고서는 ‘왕의 즐기던 얼굴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쳤다.’ 왕이 크게 소리 질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의 지혜자들에게 말하였다. ‘누구를 막론하고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리니 그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누구도 능히 그 글자를 읽지 못하고 그 해석을 왕께 알려주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벨사살 왕이 크게 번민하여 그의 얼굴빛이 변하였고 귀족들도 다 놀랐다. 왕비가 있다가 왕에게 말했다.

 

‘왕의 부친 때에 있던 자로서 ---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세워 --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을 삼으셨나이다. 이 다니엘(벨드사살)은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풀 수 있었나이다.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단5:11-12)

 

다니엘이 불려와 대답하였다. (이런 상 좋아하다가 쇠고랑차는 고위직들이 많이 있다,)

 

“왕의 예물은 왕이 친히 가지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그럴지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뢰리이다”(단5:17)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세상 나라와 그 운명도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그가 교만하여 왕위가 폐한 바 되어 짐승과 더불어 7년을 산 적이 있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자리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에 이르렀나이다”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그의 성전 그릇을 왕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구리, 쇠와 나무, 돌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그의 성전 그릇으로 술을 마시고 우상들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우습게 알고 그분을 멸시하는 작태를 보인 것이다.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 글을 쓰는 것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그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무섭고도 놀라운 하나님의 심판이 그에게 기적으로 임한 것이다.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그는 알지 못하였다. 다니엘이 그것을 깨우쳐 주었을 때는, ‘때는 이미 늦으리’ 였다. 메네 메네로 끝이 났다.

 

그 날 밤에 갈대와 왕 벨사살은 죽임을 당하였다. 때와 기한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사람은 알 수가 없다. 모세처럼 우리도 기도해야 한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고대의 헬라 왕 알렉산더는 세계를 정복해서 제국을 이루었지만, 한 광대로 하여금 ‘당신은 언제고 죽을 것입니다’라고 외치게 해서 깨달을려고 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죽으며 유언으로 자기의 빈 손 둘을 관 밖으로 내놓게 했다고 한다.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반드시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인생은 역설임을 주님은 말씀하셨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눅17:33)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막8:36). 그런데도 사람들은 살려고만 하고 죽을려고 하질 않는다. 얻을려고만 하고 보전할려고만 하지, 잃을려고는 하질 않는다. 하나님이 잃게 하고 빼앗기게 할 때에야 무지함을 깨닫게 된다.

 

주를 위해 죽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죽고자 할 때 사는 길이 열리고, 축복과 형통의 문도 열린다.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거룩함이다. 우리의 성공이나 출세나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야망과 탐심에 대해서 우리는 죽어야 한다. 그것이 지옥을 불러온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4:3)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4:7-8)

 

일용할 양식을 주심으로 족하고 우리의 시선을 하늘에 돌려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이 우리 생활의 염려를 채워주실 것이다.

 

대 바벨론 제국의 왕 벨사살도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메네 메네로 심판을 맞닥뜨리는 것을 보았다. 다 쥐었다고, 다 가졌다고, 즐기는 순간에 그의 종말은 다가왔다. 우리의 종말과 연한도 언제까지인지 물으며 준비해야 한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서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시39:4-5)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이 메네 메네 하고 계심을 알자. 친히 세어서 끝나게 하실 것을 알고 주의 뜻을 따라 거룩함에 흠이 없도록 깨끗하게 하자. 성공은 멸망을 부르고, 성결이 영광을 부름을 믿자.

 

2. 데겔,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메네 메네 두 번 반복하여 그의 시대를 세어서 끝낸 이유가 이것이다.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나라를 더 다스리기에 부족하였다. 인생을 더 살기에 부족하였다. 한없이 부족한 것이 다 된 줄로 알고 교만을 떨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이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고 용서하지 않으시는 것이 사람의 교만이다. 하나님이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야망을 품고 비전을 세운다고, 달음질을 잘한다고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얻는 것이 아니다. 패망과 멸망이 오직 그들의 품삯으로 끝이 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거룩과 공의로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사람의 저울은 믿을 것이 못 된다. 법원에 정의의 여신상(디케)을 세워놓고 정의와 형평을 세우겠다고 한다. 눈을 가리고 오른 손에는 형평을 뜻하는 저울을 높이 들고 왼손에는 법전(칼)을 들고 있다. 여신상은 그렇게 세워 놓고, 눈을 뜨고서 형평이 맞지 않는 저울을 가지고 칼만 휘두르고 만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고 공감을 일으키는가? 다른 분야들은 한번씩 개혁의 바람이 불었지만, 유독 사법부만은 한번도 손을 보지 못했다. 이번에는 좀 저울로 달아보아도 부족함이 없는 개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사실은 교회가 개혁되어야 하나님이 세상도 개혁하게 해주신다. 16세기 종교개혁은 천년의 암흑시대를 끝내게 했고 세상을 빛으로 변화시켜 주었다. 하나님이 저울에 달아도 부족함이 없는 교회가 될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성도가 개혁되어야 한다. 개혁은, ‘주를 위하여 목숨을 잃고자 하고’, ‘주의 말씀으로만’ 살 때, 될 수 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만 살 때 개혁이 이루어져 왔다.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궁핍에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을 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할 줄로 알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능력 주셔서 개혁과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해 주셨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으로 우선순위가 바뀌었을 때, 하나님은 필요한 개혁도 축복도 다 채워주셨다. 하나님이 저울로 우리의 인생을 달아보실 때 부족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거룩으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우리 속을 채울 때, 하나님의 저울에 부족함이 없어질 것이다. 하나님이 ‘데겔’ 하셨을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축복과 영광을 부어주실 것이다.

 

3. 베레스,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다.

 

‘우’는 ‘그리고’, ‘바르신’은 히브리어로 바사 사람들을 뜻하고, ‘베레스’는 갈대아어로 나뉘다의 뜻이다. 다니엘은 둘을 합쳐서, 바사가 나뉠 것으로 해석한다. 왕의 나라가 나뉘어져서, 마치 노략물이 분배되듯이 메대와 바사 사람들에게 준 바 되었다고 한다. 메네 메네 데겔 하신 결과 이에 대한 보상이 따르는 것이다.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이다. 상을 받는 자와 벌을 받는 자로 갈라지는 것도 베레스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심판 때에 양의 무리와 염소의 무리가 갈라진다고 하셨다. 최후의 베레스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염소의 무리는 영벌에, 양의 무리는 영생으로 판가름이 난다. 하나님은 바벨론 제국에 대한 심판으로 메대와 바사로 분할하게 하셨다.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 덕분으로 왕이 되어 축복과 영광을 누렸지만, 말년에 우상을 섬겼다. 그 심판으로 그 아들 르호보암의 때에 나라를 둘로 나뉘게 베레스 하셨다. 열 지파는 예후에게 떼어주어 북 이스라엘을 세우고, 두 지파만 남아 남 유다가 되게 하셨다.

 

‘메네 메네 대겔’ 하여 ‘베레스’ 하신 것이다. 솔로몬이 당하여야 할 베레스였지만 다윗을 생각하셔서 아들 대로 미루어 주셨다. 솔로몬은 아비를 잘 만나 큰 덕을 보았지만, 그의 죄로 인하여 나라가 베레스하고 말았다.

 

다윗은 위대한 왕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지만, 노년에 범죄로 이런 비극을 낳았다. 그 많은 양들을 가지고서도 손님이 오니까 한 양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의 양을 잡아서 대접한 것이다. 자기의 음란으로 임신한 밧세바를 감추려고 그 충성스런 우리야 장군을 억울하게 죽게 했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삼하12:10)

 

그후 유대가 멸망할 때까지 칼이 다윗의 가문에서 떠나질 않았다. 다윗이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섬기고 그 법도를 지킬 때는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다 형통케 하셨지만 축복과 영광에 취해 방심하고 교만하여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여 가문을 몰락으로 이끌고 말았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러하노라”(신8:12-14)

 

죄는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하시지만, 벌은 당하게 하신다. 정화작업이라 할 수 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축복과 심판을 다루면서 이스라엘의 범죄 사실을 낱낱이 기록하였다. 우리에게 교훈과 책망과 위로와 소망을 주시기 위함이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 교회와 성도들도 똑같은 범죄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 자기들이 곧 이스라엘인 것을, 아니, 더 악한 이스라엘인 것을 모르고 있다. 노아의 때에 홍수가 임한 것 같이 즐기고 유쾌할 때에 심판은 임할 것이다.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하는 것이 순서인데, 회개는 하지 않고 복음만 좋아하고 노래하고 있다. 죄를 범하고서도 회개할 줄을 모른다. 남탓, 환경탓만 한다. 천국을 따놓은 당상처럼 여기지만 그들이 당상처럼 따놓은 것은 지옥일 가능성이 높다.

 

주님 말씀에, 큰 문, 넓은 길의 멸망 길로 가는 자들이 많다고 하셨고, 좁은 문, 협착한 길의 생명 길은 찾는 이조차 적다고 하셨다. 살고자 하는 자는 생명을 잃을 것이고, 주를 위해 죽고자 하는 자는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메네 데겔 베레스’는 죽음, 심판, 지옥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죽을 때에 죄인의 날수는 세어져서 끝이 난다. 심판 받을 때에 죄인은 저울에 달아져서 그 부족함이 발견될 것이다. 심판 후에 죄인은 갈가리 찢겨져서 마귀와 그 사자들의 밥으로 주어질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과 교회를 메네 메네 하셔서, 세어서 끝장을 낼 때에도, 그리고 데겔 하셔도, 저울로 달아 보셔도, 거룩함에 부족함이 없도록 깨어 기도하며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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