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전1장 12-17
긍휼을 입을 까닭은?
이삼규 목사 20180429
딤전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딤전 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 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딤전 1: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동영상 하나를 시청하겠습니다. (제목 : 태국판 바울 두왕짠 전도사) 두왕짠 전도사는 마약 사범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35년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16년 동안 형무소 생활을 하면서 매홍쏜교도소에 교회를 세웠고, 빵꽝교도소로 이감된 후에 거기에도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지금은 치앙마이교도소에 이감되어 열심히 전도하고 있으나 아직 교회를 설립하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두왕짠 전도사는 일명 태국판 바울로 불려지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긍휼을 입은 자의 고백이 나타납니다. 바울 사도가 왜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려고 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그가 긍휼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긍휼을 입기 전 바울
딤전 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바울은 자신이 긍휼을 입기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과거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를 당할 때 증인들의 옷을 지키던 청년이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행 7: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행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박해 주동자가 누구였을까요?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습니다. 사울이 교회를 어떻게 핍박하였습니까?
행 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울은 교회를 잔멸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각 집에 들어가 남녀들을 끌어다가 옥에 넘기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은 사울이었습니다.
행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행 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은 외국까지 원정을 가서 그리스도의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하여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대제사장에게 요청하였습니다. 사울이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습니다. 바울이 긍휼을 입기 전의 모습을 다시 정리해봅시다.
1)비방자- '욕하는, 중상적인, 비방하는, 모독적인'을 의미하며, 그런 행위나 행위자의 성질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2)박해자-'박해자, 핍박자' a persecutor를 의미합니다.
3)폭행자-'난폭한 사람, 방종한 사람, 오만한 사람'을 의미하며, 호머이후에는 동물에 대하여 '다루기 힘든 동물, 반항적인 동물'을 의미하였습니다.
4)죄인 중의 괴수-죄인 중에 첫째가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긍휼을 입기 전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습니까? 바울이 목회서신을 쓸 때는 목회 말년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자신이 과거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자신의 지난 모습을 바로 알지 못한다면 현재 자만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긍휼을 입은 바울
바울은 자신이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입은 긍휼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긍휼’이란 ‘엘레에오’라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은 ‘동정(연민)을 느끼다, 불쌍히 여기다 feel compassion, 자비나 동정을 베풀다 show mercy or pity.’란 의미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크신 긍휼의 신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긍휼을 입은 까닭이 무엇입니까?
1)바울이 알지 못하고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딤전 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바울이 예수님을 믿지 아니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살기가 등등하여 예수 믿는 남녀들을 무차별적으로 검거하여 옥에 가두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잘못된 열심이 작동한 것입니다. 교인들을 핍박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것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행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행 9: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박해하는 것은 바로 주님을 박해하는 것입니다. 범죄 가운데도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모르고 지은 죄는 정상 참작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지만 알고 지은 죄는 정상참작이 되지 않습니다.
바울에게 긍휼이 임하는 것은 그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 당시 유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과 성전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바리새파가 성경을 중심으로 유다이즘을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바울도 바리새인이었으므로 유다이즘을 좇았습니다. 당시 유다이즘은 성경을 두 방향으로 해석하였습니다. ‘할라카와 하가다’입니다.
‘할라카’는 ‘걸음’을 의미하고, ‘하가다’는 ‘이야기, 설명’을 말합니다. 당시 성경을 법적으로 해석하는 할라카적 방법(법과 행위 중심)과 이야기로 풀어가는 하가다적 방식이 있었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성경을 할라카식으로 해석한 후 하가다식으로 풀어 유대교 최대 경전인 “탈무드”를 완성하였습니다. 탈무드는 성경(토라)과 유전(미쉬나)을 게마라로 해석한 책입니다.
바울도 처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이 그들의 법인 유전(미쉬나)에 맞지 않아서 완전히 부인하고 핍박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뒤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예수님이 성경을 푸는 방식인 하가다식으로 생각의 틀을 바꾼 것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오래 참으심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벧후 3: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이 구원받은 사실은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참고 기다리십니다. 예수님은 바울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고 오래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바울의 비방과 박해와 폭행을 인내하지 않으셨다면 바울이 과연 이렇게 훌륭한 사도가 되었을까요? 바울에 대한 한두 가지, 한두 번이 아니라 ‘일체’ 오래 참으셨기 때문에 그는 충성스러운 일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믿는 자의 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왜 그토록 바울에 대하여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여주셨을까요? 그것은 후에 주를 믿어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도 바울에게 본을 보여 주셨고,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셨습니다.
요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히 5: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이제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 바울이 뭐라고 말합니까?
고전 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고전 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중요한 것은 어떤 본보기를 만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본보기가 되는 사람을 ‘멘토’라고 하고 본을 따르는 사람을 ‘멘티’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멘토는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진정 신앙의 멘토를 두고 계십니까?
영국에 토마스 무어경이라는 믿음 좋은 귀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무고하게 중상모략을 받고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사형 선고를 받는 재판정에서 남긴 유명 한 말이 있습니다. 재판관이 사형 언도를 했습니다. 참 억울하게 죽는 것입니다. 그 때 무어경이 재판관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판관님, 오늘만은 내가 당신을 친구라고 부르게 해주세요. 친구여, 당신과 나와의 관계는 바울과 스데반의 관계처럼 되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스데반을 미워해서 돌로 쳐 죽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바울이 예수 믿고 나서 지금은 하나님 나라에서 스데반과 가장 가까운 친구로 손잡고 영원히 살고 있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사형을 언도했지만, 당신도 예수 믿고 나중에 저 하늘나라에서 나와 함께 손잡고 영원토록 기뻐하고 행복하게 사는 친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말을 듣자 재판관이 충격을 받고 '나는 당신에게 사형을 언도하는데 당신은 어찌해서 이렇게 선한 말을 합니까?'라고 물었더니 토마스 무어경이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나에게 먼저 긍휼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본이 될 수 있는 까닭은 먼저 긍휼을 입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의 힘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헌신과 봉사도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에서부터 비롯됩니다. 바울은 자신이 큰 죄인임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우리의 공로와 행함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거저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직분은 아무에게나 거저 주시지 않습니다. 오직 그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할 수 있는 자에게만 주십니다. 충성스럽게 감당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며 필요한 물질과 사람도 붙여주십니다. 우리를 충성 되이 여겨 주신 주님께 감사합시다. 이것이 주님의 긍휼입니다. 주님이 베풀어주신 긍휼로 우리가 구원받고 귀한 직분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직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겠습니까?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도록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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