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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디모데전서

딤전 6장 7-12절(선한 싸움) - 조성노

by Preacher 2023.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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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6장 7-12

선한 싸움

조성노 목사 20140223

푸른교회 [분당 불정로] http://thegreen.or.kr/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혹 첫사랑에 성공하신 분 계십니까? 대개 첫 사랑은 실패합니다. 남자들은 군대 가기 전에 첫 사랑을 경험하는데 아무리 약속해놓고 가봐야 고무신은 거꾸로 신습니다. 남자들은 완벽히 격리되어 있고, 여자들은 현실적이니까 서둘러 배신합니다. 남자편에서 보면 경쟁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힘 있는 다른 사람에게 애인을 빼앗기는 겁니다. 지고지순한 첫 사랑조차도 치열한 싸움입니다. 첫 사랑도 약육강식의 싸움입니다.

 

우리 시간으로는 내일 새벽 소치 동계올림픽이 폐막합니다. 어느 종목 하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치열한 싸움이었습니다. 출전한 대표선수들뿐만 아니라 배후의 국민들도 메달을 놓고 싸운 그야말로 국가 대항전이었습니다. 이제는 성지순례도 살벌한 테러와의 싸움입니다. 자기 나라를 성지라며 순례하는 사람을 자살테러로 해칩니다. 싸움 아닌 게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니 믿음도 싸움이라고 합니다. 11절 이하를 보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합니다. 물론 믿음은 세상 싸움처럼 악한 싸움은 아니나, 본질은 싸움이요 투쟁입니다. 심지어 12절을 보면, ‘네가 그것 때문에 부름을 받았다’고 합니다. 주님도 마태복음 11장 12절을 보면,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하십니다. 침노한다는 말은 그야말로 침략해서 차지한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바에 의하면 천국은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가 천국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천국이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합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피터지게 싸워 침노해야 할 세계입니다.

 

가나안을 보십시오. 분명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요단강만 건너면 자동으로 이스라엘의 수중으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원주민들과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차지해야 하는 그야말로 침노해야 할 땅이었습니다. 구원은 은혜다, 천국은 하나님의 선물이다는 사실을 가장 강조한 바울도,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에서는 선한 싸움을 싸웠으니 이제 나를 위해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나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가야 완성됩니다. 그래서 구원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시제상으로 말하면 미래완료형의 구원이 있고, 과거완료형의 구원이 있습니다. 과거완료형의 구원은 이미 받았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야 받은 구원이 완료됩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이미 이루어진 구원과 아직 아님의 구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실존은 바로 이 사이, 이 긴장 가운데 놓여있습니다. 이미 받은 구원을 굳게 붙잡고 아직도 종결되지 않은 구원을 붙잡기 위해 지금도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가는 존재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끊임없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12절을 다시 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얼마나 명료합니까? 그러면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믿음의 선한 싸움에 얼마나 성실하고도 진지하게 임하고 계십니까?

 

물론 세상적인 싸움에는 우리가 다 목숨을 겁니다. 본문 7절 이하에서 부와의 싸움에는 정말 눈에 불을 켜고 임합니다. 그러나 그런 싸움은 결국 우리를 이렇게 만듭니다. 9절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과의 싸움은 결국 우리를 파멸하게 합니다. 이것은 궁국적으로 악한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조용기 목사님과 그 아들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교회돈 횡령 혐의로 조용기 목사님의 경우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에 벌금 50억이 선고되고, 아들은 같은 혐의로 징역 3년이 선고되어 법정구속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교회 재산, 교회권력의 세습이 또 한 번 논란이 되면서 이 지구촌에서 단일교회로 가장 크다는 교회와 조용기 목사님 그리고 도매금으로 한국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본문 그대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이 아니라 믿음의 선한 싸움에 정진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아직 아님의 구원을 위한 싸움이고, 천국을 쟁취하기 위한 영적 투쟁입니다.

 

믿음의 싸움은 금메달보다 훨씬 더 값지고 숭고합니다. 빅토르 안이 이번에 3개의 금메달을 땄고, 지난 15일에 딴 것은 값을 매길 수 없다고 합니다. 운석 메달이어서 그렇답니다. 희소가치로 따지면 굉장하다는 건데, 그런 값진 메달도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절대 못 가지고 갑니다. 7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그러므로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싸움은 바울이 말하듯이 천국에 가서 받을 영원한 면류관을 위한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전에 신자들이 그런 서원을 많이 했습니다. 부자만 되게 해주시면 신앙생활 잘 하겠노라고 말입니다. 우리 아이 서울대학만 붙여주시면 꼭 하나님의 종으로 바치겠다고 말입니다. 우리딸 삼성에만 들어가게 해주시면 반드시 십일조 바치고 새벽기도에 안 빠지겠다고 말입니다. 이 지긋지긋한 월세방 신세를 면하게 해주시면 정말 헌신하겠습니다. 순진하신 하나님이 속아서 다 복을 주셨습니다. 지금 다 잘 삽니다.

 

그러면 지금 그들의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배부르고 등 따뜻한데 신앙생활 잘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요즘은 신앙보다 아이들의 성적, 건강, 주가, 아파트값, 취직, 결혼이 더 무섭습니다. 이런 것들과 싸웁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영생을 취하기 위한 선한 싸움은 안중에 없습니다. 이게 우리의 위기입니다. 엉뚱한 싸움에 몰두하느라 믿음의 선한 싸움에 관심이 없습니다. 목회자도 약아서 성도에게 쓴소리 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말만 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나, 바울처럼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라는 말을 절대 안 합니다. 금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성도는 신앙고백은 금고 속에 감추고 싸우는 것은 세상편에 붙어 완벽히 안 믿는 사람 행세하며 삽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포기하며 사는 겁니다. 그렇다고 안 믿거나 아예 교회를 떠날 배짱도 없습니다. 그것도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이 다들 큰 교회로 몰립니다. 큰 교회 그늘에 숨어 적당히 지내기 위함입니다. 큰 교회에서는 마냥 객으로 지낼 수 있습니다. 요즘은 어느 교회나 목사들만 설치지 신자들은 거의 안 움직입니다. 신자들에게 맡겨진 사명이 있다면 오직 헌금하는 것입니다. 헌금만 하면 목사가 다 대신해줍니다. 기도도 해주고 다 해줍니다.

 

바야흐로 용병시대가 왔습니다. 이번에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의 용병이 되어 금메달을 3개나 땄습니다. 우리는 70여 명의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해 금메달 3개를 땄습니다. 이번에 88개국이 소치에 모였다고 합니다. 이번에 금메달을 하나라도 딴 나라는 27개국이라고 합니다. 호주나 이태리 같은 나라도 금메달이 하나도 없습니다. 영국이나 일본은 1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현수 선수는 러시아의 용병이 되어 혼자서 3개를 땄습니다. 그래서 러시아가 1위입니다.

 

그러나 착각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선한 싸움에는 절대 용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 싸움에는 안현수가 러시아에 가서 러시아의 명예를 위해 싸울 수 있지만, 믿음의 싸움에는 그럴 수 없습니다. 대형교회에 적을 둔다 해도 그 교회가 내 대신 믿음의 싸움을 싸워주지는 않습니다. 교계 방송에서 아무리 유명한 설교를 들어보십시오. 영적 싸움에는 누구도 내 대신 싸워줄 수 없습니다. 내가 싸움의 주체입니다. 내가 부단히 기도하고 경건을 연습하고 내가 더 많이 남을 용서하고, 하여간 내가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싸워야 할 가장 호전적이고 역동적인 싸움이 믿음의 싸움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흔히 세상 싸움도 힘들어 죽겠는데 언제 믿음의 싸움까지 하란 말이냐고 합니다. 절대 엄살이나 과장이 아닌 것 맞습니다. 주일성수나 공예배 참석이 쉽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시간도 없고, 시간이 나도 피곤으로 마음만큼 잘 안 되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피곤하다고 회사에 지각하거나 결근하는 분 있습니까? 왜 주일 낮예배 오전 11시일까요? 거기에 심오한 뜻이 있는 게 아닙니다.

 

성경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도 아닙니다. 왜냐면 주일만큼은 마음껏 늦잠자고 천천히 교회 오시라고 배려해서 그렇게 정한 겁니다. 그런데도 늦잠 자고 피곤해서 예배에 못 나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믿음은 선한 싸움이지 심심풀이 땅콩이 아닙니다. 내 삶의 구색이 아닙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문화생활이 아닙니다. 피곤한데 어떻게 숨을 쉬십니까? 바쁜데 어떻게 밥을 드십니까? 시간 없는데 화장실은 어떻게 가십니까?

 

믿음의 싸움은 숨쉬고 밥 먹는 일보다 더 중요합니다. 주일도 잊은 채 얻으신 게 무엇입니까? 돈, 지위, 명예 같은 것들일 것입니다. 그래봤자 몇 년 후에 이 세상을 떠날 때는 하나도 갖고 가지 못합니다. 세상 싸움에 너무 악악대지 마시고, 돈 버는 싸움에 너무 올인하지 마시고, 더 늦기 전에 믿음의 싸움에 분발하십시오. 세상 싸움은 아무리 치열해도 우리의 운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믿음의 싸움에서 영생이 보장됩니다. 이것만 영원한 것이고, 다른 것은 한시적입니다.

 

여러분의 영원한 행복과 아직도 아님의 구원을 위해 다시 당부합니다. 세상 싸움에 목숨 걸지 말고 믿음의 싸움에 투신하십시오. 그게 훨씬 더 실용성이 높고, 영원한 이익을 보장합니다. 모두가 선한 싸움에서 이겨서 진정한 최후의 승자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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