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 --------------------/디모데전서

딤전 4장 6~16절(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 - 김광일

by Preacher 2023. 7. 28.
728x90
반응형

딤전4장 6~16

(교사임명주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

김광일 목사 2014-01-25

벧엘교회 [서울, 독산동] http://www.kmbethel.or.kr/

 

2010년 4월 방영된 KBS 휴먼 다큐드라마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는 모두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신부는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 복무를 마친 후에 광주 카톨릭대학을 거쳐 사제 서품을 받고 2008년 11월까지 8년 동안 아프리카 남부 수단의 톤즈 마을에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나이로비에서 2,800km 떨어진 남수단의 톤즈 주민들을 보고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이 바로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사람이 저렇게도 가난할 수 있는가, 저렇게 죽음 가까이서도 살 수 있구나”를 느끼면서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남수단에서 선교활동을 펼쳤으며 말라리아와 콜레라로 죽어가는 주민들과 나병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흙담과 짚풀로 지붕을 엮어 병원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병원을 오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척박한 오지마을을 순회하면서 진료하였습니다. 그의 사역이 알려지자 환자들이 모여들었고 원주민들과 함께 벽돌로 병원을 지어 확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염된 톤즈 강물을 마시고 콜레라가 창궐하자 여러 곳에 우물을 파서 식수난을 해결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루 한 끼를 겨우 먹는 열악한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서 농경지를 일구기 시작했고, 학교를 세워 원주민 계몽에도 나섰습니다. 평소 음악을 좋아하던 이신부는 전쟁으로 상처받은 원주민을 치료하는데 음악이 좋은 효과가 있다고 믿고 치료의 목적으로 피리와 기타를 가르쳤습니다. 예상을 넘는 효과가 있자 학생들을 선발하여 브라스밴드(brass band)를 구성하였습니다. 밴드는 수단 남부에서 유명세를 탔으며 정부행사에도 초청되어 연주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태석 신부는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2008년 11월 한국에 귀국하였다가 대장암 판정을 받고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였습니다. 투병생활을 하던 중 2009년 12월 17일에는 ‘자랑스러운 의사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렇지만 암세포가 전이되어 증세가 점차 나빠졌으며 2010년 1월 14일 새벽 5시 48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이렇게 훌륭한 종을 어찌하여 일찍 불러 가십니까?” 라고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방송하던 나레이터의 “그는 죽어서 더 큰 일을 한 사람”이라고 멘트를 듣고서야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태석 신부의 죽음을 통해 많은 의료 선교사들이 지원을 하였고 더 많은 이들이 선교에 동참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태석 신부야말로 그리스도 예수의 가장 좋은 일꾼이 아닙니까?

 

본문 6절입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말씀으로 형제를 깨우치는 사명을 감당할 때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따르는 교훈이 중요합니다. 누구의 교훈을 따릅니까? 바로 예수의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일꾼은 예수를 따르는 제자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자는 택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따르는 예수를 닮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예수 닮는 존재가 되었을 때 비로소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어졌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영혼을 세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연소한 디모데에게 가르치는 사명을 맡긴 사도 바울은 누구에게나 업신여김 받지 아니하도록 실력을 갖추라고 당부합니다. 즉 영적 실력을 갖춘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교사들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형제를 깨우치며 가르치는 사명을 감당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임명만 받았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르치는 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려면,

 

첫째로 경건에 이르러야

 

항상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있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의사가 진단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심장마비의 위험이 따르고 있습니다. 조심하여야 합니다. 비상시에는 빨리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심장이 두근거리면 하던 일을 멈추십시오. 그리고 머리가 아닌 마음의 소리를 듣도록 하시오.” 그래서 그는 매일 오후가 되면 조용한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20여분씩 하나님과 기도의 시간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연애할 때처럼 종종 거닐던 숲 속을 함께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라고 있는 밤나무들의 열매를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이같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경건의 연습으로 건강을 찾았습니다. 제2의 생을 아름답게 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프로는 없습니다. 꾸준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특히 경건의 연습을 하여 경건에 이르는 자가 되라고 바울은 권면합니다.

 

본문 7절입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신을 연단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디모데에게도 이같은 삶을 살도록 교훈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연단하는 철저한 훈련을 통해 경건에 이르러야 가능합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돈이나 권력이 아니었습니다. 참된 경건을 요구하셨습니다. 경건에 이르기 위한 연단과 훈련은 육체의 연단보다 낫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몸이 건강하면 세상에서 도움이 되나 그것으로 끝입니다. 죽으면 건강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경건하면 죽어서도 천국에 갑니다. 경건은 세상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천국에까지 연결됩니다. 결국 경건을 위해 연단을 받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가꾸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를 가르치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바른 마음을 가지는 경건에 이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믿음의 본이어야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Juan Carlos Ortiz)의 저서‘주님과 동행하십니까’ 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볼만한 묘기 가운데 하나는 공중그네 타기입니다. 숨을 죽여가면서 곡예사들이 한 그네에서 다른 그네로 옮겨가며 천막의 가장 높은 곳에서 묘기를 펼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한 사람을 다른 곳으로 밀어 보냅니다. “저러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하며 보는 이들은 조마조마합니다. 한 번은 곡예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그처럼 완벽하게 공연을 할 수 있습니까? 한 번도 떨어지는 것을 못보았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도 떨어집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공연할 때마다 떨어집니다. 하지만 눈치를 못 채는 거죠. 왜냐하면 우리는 떨어졌을 때 어떻게 만회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거든요. 떨어졌을 때 재빨리 다시 뛰어 오릅니다. 그래서 보는 이들은 그것도 공연의 일부라고 생각하지요.” 곡예사들은 밑에 그물을 치기 때문에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안전하다는 신뢰감이 모든 일을 성공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본이 된다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행동을 보고 계심을 강력히 믿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 믿음 안에서 행동이 결정되고, 모습이 결정되기에 본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여기의 ‘본’은 ‘튀포스’ 인데 어떤 것을 만드는데 필요한 ‘모델, 본보기’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행실이 복음 전파에 합당하여야 하고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이 말과 행동에 일치하지 아니한다면 복음이 바르게 전파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가르치는 자의 권위는, 외부적 치장이나 연령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삶으로부터 나옵니다. 특히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떠합니까? 기도를 말하면서 기도를 소홀이 여깁니까? 예배를 말하면서 예배를 소홀이 여깁니까? 봉사를 말하면서 봉사를 하지 않습니까? 섬김을 말하면서 섬기지 않습니까? 가르치는 자가 말과 행실과 성품이 본이 될 때 배우는 자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말로 하는 교육보다 본을 보이는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믿음의 본으로 감화를 끼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로 성숙을 나타내야

 

류슈쿠니는 중국의 피아니스트입니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세계적인 찬사를 받을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중국인들은 중국의 자존심이라고 치켜세우며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그가 정치적 음모에 연루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무려 6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를 치켜세우던 언론들은 그의 음악 인생이 끝났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 그가 형기를 마치고 바로 피아노 연주회를 연다고 하였습니다. “6년 동안 피아노를 치지 않았는데 잘할 수 있겠습니까?” 연주회 소식을 접한 주위 사람들이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6년 동안 연습을 하지 않았기에 연주회가 제대로 될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었을 때 모두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의 실력이 예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류슈쿠니, 6년 동안이나 피아노를 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똑같은 실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류슈쿠니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고요? 천만에요. 나는 6년 내내 하루에 6시간씩 머릿속에 건반을 그려놓고 연습을 했습니다.” 피나는 연습과 훈련을 통하여 녹슬지 않는 기량을 보여준 것입니다. 훈련을 거듭한 결과 그 성숙함이 나타난 것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원문은 현재시제이며 능동태 명령형입니다. “너는 지금, 스스로, 믿음의 성숙함을 위하여 힘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숙함을 개역은 ‘진보’라고 번역하였으며 표준 새번역은 “그대가 발전하는 모습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게 하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은 “그대가 발전하고 있음을 모든 사람이 보고 알 수 있게 하시오”로 번역했습니다.

 

신앙은 진보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 다닌 지 오래 되었는데도 신앙이 제자리이거나 퇴보하고 있다면 죽은 신앙입니다. 자라지 않는다면 죽은 것입니다. 신앙이 살아있다면 반드시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아야 합니다. 가르치는 직무를 맡은 이들은 믿음이 성숙하는 가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느껴야 합니다. 교사의 믿음이 성숙해야 학생들의 믿음도 성숙합니다. 교사의 믿음이 성숙한 분량만큼 학생들의 믿음이 성숙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완성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향해 성숙하려고 애쓰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쓰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역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신경직의 저서 “꿈의 사람들”에 나오는 멜린데일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이 린드(Roy Lind)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미국의 멜린데일이라는 가난한 농촌에서 일하던 의사였습니다. 마을의 젊은이와 아이들 대부분이 린드 박사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을 정도로 오랫동안 마을 사람의 건강을 돌보아왔습니다. 허름한 자동차 정비소 2층에 위치한 진료소는 새벽까지 불이 밝혀져 있었는데, 그것은 “지금 얕은 잠을 자고 있으니 누가 아프면 연락하시오’ 라는 뜻이었습니다. 린드 박사는 쉬는 날이 없었습니다.

 

한 겨울 눈사태 속에서도 만류하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제설차를 동원해 환자를 진찰하러 나갔습니다. 아무리 멀고 험한 곳이라도 환자가 있으면 즉시 달려가는 린드 박사, 사람들은 그를 보는 것만으로 벌써 병의 절반은 나은 것 같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일가 피붙이가 전혀 없는 독신이었습니다. 자식도 없고, 아내마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남을 위해 일생을 살아온 린드 박사가 일흔 번째 생일을 맞았을 때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평소의 고마움을 보답하기 위해 박사 몰래 마을 강당에 생일상을 마련했습니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강당에 들렀던 린드 박사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떠나갈 듯 큰소리로 생일 축가를 불러준 것입니다. 뜻하지 않은 생일 파티에 눈시울을 붉히는데 누군가 말을 했습니다. “이런 날 린드 박사의 자녀라도 하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꼬마가 일어나 소리치듯 말했습니다. “제가 박사님 아들이에요!”그러자 이번에는 다시 그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일어서며 말했습니다.“제가 박사님 딸입니다!” 뒤에서 또 누군가가 소리치며 일어섰습니다. “저도 박사님 아들입니다!” 마침내 강당 안의 모든 사람들이 린드 박사의 자식임을 자처하며 우뚝우뚝 일어섰습니다. “아니, 이 사람들이...”감격에 이미 눈시울이 뜨거워진 린드 박사는 자신을 향한 수많은 자식들을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았습니다. 진정한 일꾼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모습이 아닙니까?

 

부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믿음과 사랑에 본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전심전력으로 성숙을 나타내는 복된 교사들과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