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전5장 4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웁시다!
이삼규 목사 20160508
딤전 5: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웁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강론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어버이 주일의 유래를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유난히도 아이들을 사랑했던 주일학교 교사 애너 자비스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1903년 미국 필라델피아주 웨스터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아이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병으로 세상을 뜨게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습니다. 특히 딸 안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몹시 슬퍼하며 묘소주위에 평소 어머니가 좋아하던 카네이션을 심었습니다.
그 후 어머니의 추모식 모임에 참석한 안나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갔는데 참석자들은 그녀를 보고 감동을 받아 눈시울을 붉혔다고 합니다. 그 뒤로 안나의 이야기는 계속 퍼져 갔으며, 이것이 어머니를 잘 모시자는 운동으로 승화돼, 1914년 미국의회는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날로 정해 어머니가 생존한 사람은 붉은 카네이션을,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기념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정해 기념해 오다 1974년부터 어버이날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도 둘째 주일을 어버이주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일제시대 이흥렬(李興烈)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일본에 음악공부를 하러 갔는데 피아노가 없어 공부가 잘되지 않자 어머니께 편지를 썼습니다.
“어머니, 피아노가 없어서 음악공부를 잘 할 수 없으니 피아노를 한 대 사주십시오.”
그러나 어머니는 혼자의 몸으로 아들 뒷바라지를 하고 있어 피아노를 살만한 돈을 마련하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산에 가서 솔방울을 모아 팔기 시작했습니다. 수 십 만개, 수백만 개의 솔방울을 주워서 팔아 당시 돈으로 400원을 만들어 아들에게 부쳤습니다. 이흥렬은 그 돈으로 피아노를 사서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은혜와 사랑에 마음 깊이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제일 처음 작곡한 노래가 ‘어머니의 마음’ 이라는 노래입니다. 같이 불러봅니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엔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 하리요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어버이날이면서 어버이주일인 오늘을 맞이하여 우리가 부모님에게 어떻게 보답해야 할 것인지를 배워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효도가 무엇입니까? 어려운 정의를 생각할 것 없이 오늘 본문에 나온 대로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이 효도입니다. 이 말씀은 과부의 가정 자녀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은 아니고 이 세상 자녀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버이주일,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부모에게 어떤 보답을 하셨습니까?
효도는 배워서 하는 것입니다
딤전 5: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미국의 한 가난한 홀어머니가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았습니다. 빨래품도 하고 바느질도 해서 근근이 아들의 학비를 보내주었습니다. 아들은 홀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밤새워 공부해서 마침내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졸업식장에서 일등상으로 금메달을 탄 아들은 누더기 옷을 입고 한 귀퉁이에 앉아 있는 어머니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머니! 이 금메달은 어머니 것입니다. 어머니가 받으셔야 합니다.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이 기쁜 날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들은 어머니의 목에다 번쩍번쩍하는 금메달을 걸어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그저 감격하여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아들의 눈에서도 환희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를 본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눈시울을 적시며 아들과 어머니를 부러워했습니다. 이 착한 아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그가 후에 미국을 다스린 윌슨 대통령입니다. 이것은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잘 배운 케이스에 해당합니다.
시골에 사는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여윈 채 외아들을 정성껏 키웠습니다. 자신은 헐벗어도 아들에게는 좋은 옷을 입히려 했고, 자신은 굶어도 아들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고 애썼습니다. 아들이 공부하고 자라면서 점점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기쁨이요 보람이었습니다. 그 아들이 마침내 서울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보고 싶어 어머니는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하숙집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는 아들이 다니는 대학의 교문 앞에서 한나절이나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많은 학생들 틈에 아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아들은 여자 친구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문을 나오고 있었습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갔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로부터 고개를 돌렸습니다. “저 사람은 누구예요?” 여자 친구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집 식모야.” 남루하고 초라한 시골 아낙네를 어머니라고 하기가 부끄러웠던 모양입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를 피했다고 합니다.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잘못 배운 케이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 때부터 효자로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효도는 배우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잘 배운 사람은 효자가 되지만, 잘못 배운 사람은 불효자가 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을 배우게 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보답하는 길(효도)은 무엇입니까?
1)부모를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잠 23:22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신 27: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창세기에 보면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흉년이 들어 아버지와 가족들을 애굽으로 초청합니다. 애굽에 내려온 아버지 야곱을 누구에게 소개합니까? 바로에게 소개합니다.
창 47: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그 당시 애굽은 세계 최강대국이었습니다. 그 나라의 왕 앞에 자기 아버지를 서게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요셉이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 존경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런 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부모를 왜 존중해야 합니까? 무엇보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엡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엡 6: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자기 부모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모를 경히 여기는데 어떻게 부모를 공경한다고 하겠습니까? 부모는 우리 존재의 뿌리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합니다. 뿌리가 없는 나무가 있습니까?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에 존재합니까? 부모가 잘 났든지 못 났든지 자식의 존재의 근원입니다. 부모를 존중하지 않고 경히 여기는 것은 근본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2)부모를 즐겁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잠 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 무엇일까요?
①부모님의 기대를 만족하게 해드리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에 대한 기대치가 있습니다. 내 자녀가 이런 자녀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치입니다. 그 기대에 부응하는 자녀가 되면 부모는 즐겁습니다. 기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②부모님이 좋아하는 것을 해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시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드리고,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면 여행을 시켜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좋아하는 것보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 위주로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③부모님의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연세가 드신 분들은 몸에 아픈 데가 자꾸 생깁니다. 그래서 병원에도 자주가고 약값도 장난이 아니게 많이 들어갑니다. 우리 부모님은 강철로 만들어진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러기에 자녀들은 부모님의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힘이 듭니다. 만약 부모님이 앓아누우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쓰러지신 다음에 신경 쓰지 말고 쓰러지기기 전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④나이가 들면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데 외롭지 않게 해드려야 합니다.
우리 권사님들 보니까 외로움을 많이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특히 혼자되신 분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그것을 잘 모릅니다. 바쁘기도 하지만 혼자되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잘 모릅니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해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자주 찾아뵙고 연락드리는 방법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옛날 시골에는 닷 새 만에 장이 서고는 했습니다. 장날이 되면 아들은 그 동안에 해서 모은 나무 단을 지게에 잔뜩 지고서 아침 일찍 장에 나가서 그것을 팝니다. 저녁이 됩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밥상을 준비해 놓고 이제나저제나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립니다.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넘어가는 데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걱정이 되어서 가만히 집에 머물러 계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동구 밖까지 나가서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립니다.
드디어 한 사람씩 두 사람씩 멀리 산모퉁이를 돌아서 마을로 되돌아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애틋한 심정이 되어서 좀 더 멀리, 좀 더 자세하게 보기 위해서 동구 밖에 서있는 나무 위에 올라갑니다. 그 모습을 한자에서는 어버이 친(親)자로 묘사를 했습니다. 어버이 친자를 어떻게 씁니까? 설 립(立)자 밑에 나무 목(木)자, 그리고 오른쪽에 볼 견(見)자를 씁니다. 나무 위에 올라서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그리워하면서 바라보는 그 어머니의 애틋한 심정이 바로 어버이 친(親)자입니다. 한편 아들은 준비해 간 나무를 시장에서 모두 팔고서 그 돈을 가지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반찬도 사고 또 어머니에게 드릴 선물들을 사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어머니가 집에 계시지 않고 동구 밖까지 나와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아들은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어머님! 왜 여기까지 나오셨습니까? 다리도 불편하실 텐데, 집에 가만히 계시지 않고요!”
그러면서 아들은 등에 지고 있는 지게를 내려놓습니다.
“어머님! 어서 이 위에 올라앉으세요. 제가 어머님을 업어서 집에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한자에서는 효도 효(孝)자로 표시를 했습니다. 효도 효자는 어떻게 씁니까? 늙을 노(老)자 밑에 아들 자(子)자가 있습니다. 아들이 연로하신 어머님을 등에 업고 가는 모습이 효도 효(孝)자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이와 같은 친(親)이 있고, 효(孝)가 있는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3)부모의 근심거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눅 15: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탕자는 아버지의 근심거리였습니다. 미리 유산을 물려 달라고 한 것도 그렇고 그 유산을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여 다 낭비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스코틀랜드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식이 어릴 때는 그 재롱으로 부모의 두통을 없애주고, 자라서 성인이 되면 부모에게 근심 걱정을 끼쳐 오히려 두통거리를 만들어 준다.” 프랑스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녀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자녀가 없는 사람도 불행하지 않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이 있지 않을까요?
옛날에 행실이 아주 나쁜 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어렸을 때 너무 귀여워하며 키웠기에 버릇도 없고 안하무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몹시 걱정을 하며 후회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식을 위하여 기도하던 중에 문득 좋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집 기둥에 못을 박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둥의 못은 날이 갈수록 점점 많아져갔고 또한 어머니의 가슴도 몹시 아팠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자기 집 기둥에 수없이 많은 못이 박혀 있는 것을 보고 그 까닭을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대답하였습니다.
“네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나는 이 기둥에 못을 박았단다.”
아들은 이 말씀을 듣고 가슴이 찔렸습니다. 기둥에 무수히 박힌 못만큼 자신이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착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고, 좋은 일을 할 때마다 기둥의 못을 하나씩 뽑기로 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마침내 기둥의 못이 거의 다 뽑히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마음은 이제 흐뭇해졌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기둥에 남아있는 못 자국을 어루만지며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얘야, 네가 기둥에 못을 박을 때마다 내 가슴이 얼마나 쓰리고 아팠는지 네가 아느냐?”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부모의 자랑거리입니까? 근심거리입니까? 여러분은 근심거리가 아닌 자랑거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자녀 됨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잠 23:24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스위스 비엔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곳에서 죄수를 일정 기간 거리 청소부로 일하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곳 수상이 창밖을 내려다보다가 기이한 장면 하나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의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젊은 학생이 눈을 쓸고 있는 죄수 한 사람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때 묻은 까만 손에 정성껏 입맞춤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잠시 조용히 담소를 나누던 그들이 헤어지자 수상은 그 죄수가 아마도 위험한 정치적 지도자이며 그 청년은 그의 추종자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즉시 그 젊은 청년을 잡아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거리에서 죄인에게 키스하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으며 웬만한 추종 세력이 아니면 감히 공손한 표정으로 대화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수상은 굳은 표정으로 학생에게 조금 전에 만난 죄수와는 어떤 관계이며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각하, 그 사람은 바로 저의 아버지입니다.” 그 학생은 자랑스럽게 대답하였습니다. “아버지라고?” “네, 날씨가 춥기에 잠시 제 입김으로 손등을 녹여 드렸을 뿐입니다.” 뜻밖의 사실을 알고 할 말을 잃은 수상은 곧 이 사실을 적어 국왕을 비롯한 관계 장관에게로 보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잠시 죄를 지었다고 하나 자식을 저렇듯 훌륭하게 교육시키고 뜨거운 애정을 그 마음속에 심어 주었다면 그는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얼마 후 국왕은 편지에 대한 답신을 보냈고 청년의 아버지는 즉시 석방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 즉 효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분의 자녀 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개의 자녀입니다.”라고 소개하며 부모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는 것이 진정한 보답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부모님에게 보답하는 길 네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1)부모를 존중하십시오.
2)부모를 즐겁게 하십시오.
3)부모의 근심거리가 되지 마십시오.
4)자녀 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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