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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디모데후서

딤후 4장 9-22절(외롭지만 주께서 주시는 힘으로!) - 권율

by Preacher 2024.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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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후4장 9-22

외롭지만 주께서 주시는 힘으로!

권율 목사 2019. 5. 16.

부곡중앙교회 청년부 https://blog.naver.com/ryulkwon0616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9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20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

21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22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

 

순교를 앞둔 노(老)사도의 마지막 목소리가 오늘 본문에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그의 평생에 마지막으로 남긴 서신입니다. 이 서신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더욱이 이 본문은 디모데후서의 마지막 부분이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더욱 애잔함을 느끼게 합니다. ​

 

첫 문장부터 한번 보기 바랍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9절). 이 서신을 받는 디모데에게 속히 내게로 오라고 말합니다. 21절에서 또 언급하는데,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왜 그렇게 말하고 있겠습니까? 제아무리 성령 충만한 사도라고 해도 인간적인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 흔히들 우리 존재의 내면에는 하나님만이 채워 주실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말합니다. 영적으로 느끼는 내적 공허함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아무리 사교성이 뛰어나고 사람들과 잘 지내더라도, 거듭난 우리 영혼에는 하나님만이 채우셔야 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

 

그런데 그 반대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내면에는 사람을 통해 채워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사람만을 통해 채워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내 영혼에 채우시는 특정 부분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채워지는 내 영혼의 만족감이 바로 그런 부분입니다. 함께하는 동역자를 통해 같은 비전을 공유하며 하나 됨을 느끼는 부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부분은 제아무리 성령으로 충만할지라도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결코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영역입니다. ​

 

본문의 사도 바울에게 바로 그러한 공허함이 찾아온 것입니다. 곧 이어지는 10절을 한번 보기 바랍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바울이 느꼈을 인간적인 섭섭함이 밀려옵니다. 처음에는 바울 자신과 함께 뜻을 같이하다가 어느 순간에 자신을 버리고 갔다는 섭섭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

 

물론 여기 세 사람이 똑같은 목적으로 그의 곁을 떠난 것은 아닙니다. 데마의 경우에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사도를 버리고 떠나가 버렸습니다. 물론 그도 처음에는 바울과 함께 감옥에서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했습니다(골4:14; 몬1:24). 그러다가 어느 날 “이 세상을 사랑하여” 더 이상 복음 사역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을 완전히 저버렸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 고난 받기를 거부하고 세상의 가치와 쾌락을 더 사랑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

 

오늘날에도 데마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부터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명히 이전에는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교회보다 이 세상을 더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

 

그런데 데마와는 달리 또 다른 사역을 위해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10절에 나오는 그레스게와 디도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바울은 이들이 자신을 떠나는 이유를 특별하게 언급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이 추정하듯이 그 둘은 바울과 함께한 복음 사역을 위해 각각 다른 지역으로 파송된 것으로 보입니다. ​

 

여하튼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 함께 일하다가 어느 날 그렇게 가버리면 참으로 외로울 것 같습니다. 11절에서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는 사도의 말을 곰곰이 묵상해 보기 바랍니다. 누가 말고는 이제 아무도 자기 옆에 없다고 외로움을 표출하는 것입니다. 누가는 그야말로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입니다. 저는 올해 초에 봤던 영화 바울의 한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힌 누가가 바울을 쳐다보며 했던 말입니다. “저는 당신에게서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내 가족을 두고 당신을 따라온 겁니다!” ​

 

계속해서 사도 바울은 서신을 받을 디모데에게 부탁합니다.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11절b). 여기에 나오는 마가(요한)가 누구입니까? 1차 선교 여행 때 바울과 바나바를 저버리고 떠난 인물입니다(행13:13). 그 후에 마가를 데려가는 문제로 바울은 바나바와 싸우기도 했습니다(행15:36-41). 바울의 복음 사역에 한때 불화를 일으켰던 인물인데도, 이제는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말합니다. 데마와는 달리 마가는 그 후에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 또다시 충성했고, 더욱이 사도 베드로의 동역자로서 그의 진술을 토대로 마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

 

여하튼 바울은 자신의 동역자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계속 표출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순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특별히 디모데와 마가를 간절히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신의 궁극적인 위로자를 의지하고 있습니다. 비록 인간적인 외로움과 섭섭함이 엄습해 오지만, 모든 악한 일에서 자신을 건져내시는 주님을 굳건히 붙들고 있습니다(18절). ​

 

16절을 보기 바랍니다. 자기가 처음 법정에 섰을 때 모두 자신을 버렸지만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었겠습니까? 17절 처음에 나오듯이,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제아무리 극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심지어 모두가 배신하고 다 떠나가더라도 주님이 끝까지 함께하시기 때문에 바울이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의 흔들리지 않는 신앙고백이 느껴집니까? 주께서 그에게 힘을 주셔서 그 어떤 외로움과 섭섭함까지 극복하게 하시는 그분의 은혜가 마음에 울립니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인간적인 외로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 주께서 주시는 그 힘에 의지하려고 합니다. 여러분과 저도 이러한 태도를 본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멈출 수 없습니다.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힘을 주시는 이유를 또한 깨달아야 합니다. 17절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

 

주님이 바울 곁에 서서 힘을 주시는 이유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자신을 통해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시려고 바울에게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 제가 보기에 17절 말씀은 사도 바울의 일평생 사역과 그의 소명을 요약한 것입니다. 주께서 처음 그를 부르실 때 부여하신 사명을 마지막으로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기 위해 자신이 주님의 택한 그릇이라는 그 말씀(행9:15)을 순교 전에 생각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의 인생은 참으로 극적입니다. 회심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고 함께 교회를 박해했는데, 주님을 만나고 일평생 복음을 전하다가 이제는 자기 옆에 아무도 없습니다. 누가만 남았습니다. 인간적인 깊은 외로움 가운데 이제는 주님의 힘에 의지하여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의 열정으로 시작된 복음 전파 덕분에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져서, 오늘 우리도 동일한 신앙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 복음의 말씀을 주께서 주신 힘에 의지하여 오늘 하루도 증거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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