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 --------------------/레위기

레 23장 39-43절(수장절, 초막절) - 강대식

by Preacher 2023. 5. 14.
728x90
반응형

레23장 39-43

수장절, 초막절

강대식 목사 2020.11.17

한가족교회 http://ahttp://afamily.ijesus.net/

 

하나님은 구약에서 세 절기(유월절, 맥추절, 수장절)를 지키라고 하셨다.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출23:14) 그래서 우리 교회는 성탄절, 부활절, 추수감사절, 세 절기만을 지킨다. 교회력을 가득 채우는 많은 절기들은 타락과 부패의 상징이었다. 바울 사도는 말씀한다.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4:9-11)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도 중세 카톨릭의 절기를 다 없앴다. 그러나 교회들은 지난 500년 동안 다시 절기를 꽉 채운 교회력을 자랑한다. 다시 교회에 참다운 개혁이 일어나야 함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성경은 세 명절에는 예루살렘 성전까지 와서 “주 여호와께 보이라”(출23:17)고 하였다. 이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함이요,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기 위함이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신14:23)

 

주일마다 교회 와서 예배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 일에 매였던 마음을 돌이키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기 때문이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4계명은 1,2,3 계명을 지키고 있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현대의 추수감사절은 17세기에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첫 농사의 수확에 대해 감사 예배를 드린 것에서 유래가 되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은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의 명령으로 지켜 온 절기이다.

 

성경에 의하면 추수감사절은 수장절로 지켜야 하고, 또한 초막절로 지켜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추수를 결산하는 대심판 날을 대비하는 절기가 되어야 한다.

 

1. 추수감사절은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는 수장절이 되어야 한다.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 여호와의 절기를 지킬지니”(레23:39)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출23:16)

 

그리스도인은 자기 힘으로, 자기 소유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자기 소유로, 그리고 우상 신의 도움으로 산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선물(복)로 사는 사람들이다.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롬5:15,17)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리고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곧 영생으로 영원한 천국에서 왕 노릇 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와 생수로 살았다.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아 가나안을 향해 갔다. 이스라엘의 그 모든 노정은 바로 우리 믿음생활(인생)의 노정인 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항상 범사에 하나님께 그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들이다. 추수감사절은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수장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는 절기이다.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해주신 것에 대해서 연말에 감사하고 결산하는 것이다.

 

수장절은 이레 동안 지켰고, 시작하는 첫 날에도 여덟째 날에도 성회로 모였다. “여호와를 위하여”, “거룩한 대회”로 지켰다.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성회가 되어야 한다. 절기를 지키며 감사하는 방법도 하나님은 정해 주셨다.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신16:16-17)

 

한 해 동안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으로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 은혜를 인정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리라고 하신다. 예물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 드리는 예물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훈련하고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그러나 교회들이 타락하면 이를 악용하는 일들이 항상 있어 왔다.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는 것보다, 예물에만 탐욕을 부리고 착취를 일삼았다. 종교가 타락하면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정신이 팔리게 되어 있다. 성도들도 탐욕으로 드리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공의로, 드려야 한다. 교역자들도 탐욕으로 예물을 강요하거나 협박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예물을 탐욕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공의로 사용해야 한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시119:36)

 

예물은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드리지 말라고 하신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7-8)

 

왜 내게 하나님의 은혜가 능히 넘치지 못하고 있느냐? 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지 못하느냐? 왜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지 못하고 있느냐? 그 해답이 이 말씀에 나와 있다. 예물을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지 못하고, 그 마음에 정한 대로 드리지 못하고, 마지못해, 인색하고, 억지로 드리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예물은 교회 운영과 교역자들의 생활과 하나님 나라의 일에 쓰게 하신다. 보상으로, 은혜를 넘치게 하시고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게 하는 복을 주신다. 구약시대에 성도들의 십일조와 예물이 인색할 때 제사장들이 흩어지고 성전도 무너지게 되었다. 결국은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과 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하나님께서 복 주셨음을 인정하면 명절에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리라고 하시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마음이 자라게 될 것이다. 은혜가 넘치고 항상 넉넉하고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굳건해지고 더욱 아름답게 성장하고 성숙하게 될 것이다. 2. 추수감사절은 ‘구원의 복’을 감사하는 초막절이 되어야 한다.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이레 동안 --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레23:40-43)

 

모든 수확물을 저장하고서 지키는 명절을 수장절이라 하면서도, 왜, 초막절이라 이름하셨으며, 왜, 명절기간 동안 초막생활을 하게 하셨을까?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로 이를 지키라 하셨을까? 그 첫 번째 뜻을,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해 주신다. 43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을(를)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그 때를 알라는 것이다. 초막절 때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 구원의 복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구원의 위대한 역사가 있었기에 오늘 한 해의 수확이 있게 된 것이다. 풍성한 수확 가운데 잊기 쉬운 것이 구원의 복이다. 추수감사절을 수장절이라고 하면서, 동시에 초막절이라고 하는 뜻이 여기에 있다.

 

구약에서 구원에 대한 표현은 항상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는 것이다. 교회도 세상(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불러낸 자들의 모임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흑암의 권세에서 구별해내어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이 구원을 위하여 성자 하나님은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제물이 되셨다. 이로 인하여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우리는 추수감사절에 한 해 동안의 수확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고 즐거워 하면서, 동시에 우리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고난 받으신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초막절을 지키는 두 번째 뜻이 있다. 좋은 집, 정든 집, 편리한 집 다 버리고 초막 안에서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신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대대로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신다.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초막을 짓고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하라고 하신다.

 

왜, 추수를 감사하는 수장절에 집도 아닌 초막생활을 하며 초막절을 지키게 했을까? 초막은 구원받은 이스라엘이 실제로 겪은 광야생활의 고난을 상징하는 것이다.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구출해 내신 후, 곧장 가나안 기업(복)을 주시지 않고, 광야에서 훈련과 연단을 받은, 고난(초막)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구원 받은 후 광야의 초막생활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구원(회심)은 너무 귀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고 출발일 뿐이다. 구원 받은 후 우리는 자라야 하고 성숙해야 하고 대장부같이 믿음이 견고해져야 한다.  

 

갖난 아이로만 머물러 있을 수 없고, 광야 초막 생활을 통해 자라고 굳건해져야 한다.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8:14-16)

 

광야 초막생활의 목적은 우리를 온전케 하여 “마침내 (가나안) 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모든 선한 일에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다(히13:21).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이다(롬8:29).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으로 살게 하기 위함이다.

 

유행하는 형통신학, 기복신앙은, 광야 초막생활 없이 복을 받는다는 속임수이고 미혹의 영이다. 광야, 초막생활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숙하고 성장해야 한다. 진리의 말씀과, 진리의 성령을 따라, 새롭게 변화되어야 한다. 몸에 밴 어린 시절들과, ‘조상이 물려준 헛된(망령된) 행실들’(벧전1:18)을, 버려야 한다.  

 

이 변화와 순종의 삶이 우리 스스로 되지 않기 때문에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통과하게 하시고, 다윗의 표현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통과하게 하시는 것이다.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면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성품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초막생활은 세상으로부터 구원 받은 자가 광야생활의 훈련과 연단을 거침을 상징한다. 우리 주님이 당신의 귀한 몸을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로 바친 것처럼 우리도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삶의 훈련을 해야 한다.  

 

그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는 것이요,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하는 것이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여’ 사는 길로 가는 것이다.  

 

초막생활의 목적을 알면, 우리는 고난 중에도 ‘그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할 수 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면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를 통과하면서도, 모든 것을 잃게 하는 ‘시글락 위기’를 겪으면서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수 있다.

 

초막생활 중에도 우리 주님은 우리 목자가 되셔서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 만나도 주시고, 생수도 주시고, 옷도 헤지지 않게 하시고 발도 부르트지 않게 하신다. 이레 동안 초막에서 살며 초막절을 지키게 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추수감사절은 마지막 추수를 준비하는 절기가 되어야 한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0)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3)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맞을 때마다 기억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생을 마치는 날 우리에게는 최종적인 추수감사절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일생동안 초막하며 수장한 것을 내어놓고 결산하는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있다. 해마다의 추수감사절은 초막생활의 은혜를 통해서 수확한 것을 ‘우리가’ 결산하지만, 최종적인 추수감사절은 일생 동안의 초막생활을 통해서 우리가 수장한 것을 ‘주님이’ 결산하시고, 상급을 결정하신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그분이 상주시는 분임을 믿고 믿음으로 산 사람은 상을 받을 것이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푯대로 삼아 달려간 사람은 상을 받게 될 것이다.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않고 하늘에 쌓아둔 사람은 그 보물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둘 것이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게 될 것이다. 해마다 추수감사절을 잘 지낸 사람들은 마지막 추수감사절을 즐겁고 복되게 맞이할 것이다.

 

일생 동안 과연 무엇을 수확하고 수장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착실히 준비하자. 광야의 초막생활을, 믿음과 인내로 살고, 우리 성품의 온전함을 이루어 가자. 이 영원한 수확을 위해, 오늘 우리의 일상생활을 과감히 조정하고 결단하자!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