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1장 1-5
잃은 것과 찾은 것
허창수 목사 21.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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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두 권의 책이 있습니다. 룻기서와 에스더서 입니다. 두 권은 극적인 장면들이 있는 단편 소설과 같은 책입니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동족인 유대인을 살린 것을 기록한 책이 에스더서 입니다. 룻기서는 모압 여인 룻이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다는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룻기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미가 본서의 주인공처럼 소개되었기 때문에 나오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족의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인간사적으로 이해를 한다면 성경이 될 수 없습니다. 구속사적인 목적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룻기서라고 합니다.
우리는 먼저 ‘룻’이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자라는 것을 알고 본서를 이해를 해야 합니다. 룻이 택함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알면 본서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모르면 그 모든 사건들이 우연히 일어나 것으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잃은 자를 찾는 구속사적 선교학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도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 중에 누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았는지를 모르듯이 ‘룻’이 택함 받은 자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이 사는 나오미의 가족을 통해서 룻을 찾아 구원 받게 하는 일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잃는다는 것을 누구나 좋아하지 않습니다. 재물을 잃고, 건강을 잃고, 남편이나 아내를 잃고, 사랑하는 아들이나 딸을 잃었을 때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오미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을 뿐 아니라 부유했던 재산도 다 잃었습니다.
그런데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찾은 것도 있습니다. 잃고 찾은 것이 없다면 불행한 일지만, 잃고 찾은 것이 있으면 축복입니다. 직장을 잃고 사업을 하므로 더 크게 성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을 잃고 믿음을 찾고 구원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잃었다면 찾은 것도 있어야 합니다.
오래 전에 소륵도에 가서 나병환자인 모 장로님을 만나 소록도에 관한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부인 권사님께서 꼬부라진 손으로 끊어 주신 라멘을 맛있게 먹었던 것을 기억 합니다. 그 장로님은 부자로 살았고, 일류 대학도 졸업하고, 좋은 직장도 있었지만 나병으로 그 모든 것 다 잃었습니다. 나병환자가 되므로 해서 소록도에 오게 되었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간증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병환자가 되지 않았다면 자신은 예수 믿을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잃은 것이 있다면 찾은 것도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잃은 것만 생각하고 자신을 저주하며 불행하게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잃었을 때 찾은 것이 있으면 잃은 것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잃었기 때문에 다른 것을 찾고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룻기서는 나오미가 많은 것을 잃고 이방 여인 룻을 찾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나오미는 재산을 잃었고, 남편을 잃고, 두 아들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찾은 것은 이방 여인 룻 입니다. 나오미가 찾은 것은 천금을 잃고 동전 한 닢을 찾은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룻기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나오미가 찾은 룻은 다윗 왕조에 증조모가 되었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룻을 찾기까지 나오미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떡집’이라고 하는 베들레헴은 물이 풍부하고 초원이 넓은 곳 입니다. 엘리멜렉은 ‘하나님은 왕이시라’는 이름처럼 온 가족이 하나님을 왕으로 받들어 섬겼으며 베들레헴의 상당한 유력한 자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습니다.(1) 왠만한 흉년도 베들레헴은 이겨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사사들이 치리 하던 때에 흉년이 들었다는 것은 자연적인 재해라기보다는 백성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내린 징계입니다. 엘리멜렉은 가족과 함께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지방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어쩌면 흉년을 나오미 가족을 모압으로 이사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가족을 모압으로 옮긴 것은 단순하게 먹고 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 입니다. 그러나 엘리멜렉이나 나오미는 선교사적인 사명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3) 엘리멜렉의 죽음은 나오미에게는 매우 충격적이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두 아들을 결혼을 시켰습니다. 모압 여자 중에서 오르바와 룻을 두 아들 말룐과 기룐의 아내로 맞아 들렸습니다.
유대인인 나오미가 두 아들을 모압 여인과 결혼을 하도록 한 것은 모세의 율법으로서는 위법입니다. 신7:3에는 이방인들과 우상과 관련해서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당시 모압과 암몬의 우상을 다른 어떤 우상보다도 더 가증하므로,(왕상11:7)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신23:3) 이렇게 볼 때 모압 여인들과의 결혼은 당연히 율법에서 어긋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며느리 룻과 오르바도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섬겨온 사람들로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두 아들을 모압 여인들과 결혼을 한 것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모압 여인들과 결혼하여 거주한지 십여 년쯤 되어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남은 것은 나오미와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 모두 남편을 잃은 과부들 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비참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룐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5)는 말씀은 나오미의 기구한 운명을 잘 말해 줍니다.
이제 나오미에게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었을 그때 나오미는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습니다.’(6) 나오미는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나오미가 모압을 떠나고자 할 때 두 며느리도 함께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나섰습니다.(7)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8)고 했습니다.
그런데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에게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10) 시어머니의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며느리는 ‘어머니의 백성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당시 유대인의 율례를 따라서 두 며느리의 남편 될 두 아들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며 ‘여호와께서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치신 이야기를 하는 것은 며느리들의 믿음을 시험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르바는 시어머니의 말을 듣고 ‘그의 백성과 그의 신으로 돌아갔습니다.’(15)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오르바에 대한 말씀이 없습니다. 오르바는 자신의 행복을 찾아 돌아갔지만 구원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룻은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의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은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고 말했습니다.(16,17)
룻이 이렇게 말한 것은 시어머니를 따를 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다’(13)는 시어머니의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자라는 증명이 됩니다. 룻이 스스로 이러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룻에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이와 같은 신앙고백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비로소 잃은 자를 찾았습니다.
룻을 찾기까지는 나오미가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룻을 찾기에는 너무나도 멀리 너무 깊은 곳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룻을 찾기에는 많은 것을 잃어야 했고,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전 재산을 잃고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이사야는 ‘네가 내 눈에는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사43: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바와 구스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사43:3)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기 백성의 생명을 대신하여 스바와 구스까지도 내어 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만큼의 많은 사람의 생명을 대신 내어주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나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대신 내어 주고 찾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대대로 우상과 귀신 섬기던 나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선교사들을 보내시고 그들이 죽기까지 해서 나를 찾아 주셨고, 여러분을 찾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물며 사랑하는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내어 주시고 나와 여러분이 구원하셨다는 말씀 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복음이 들어갈 수 없는 너무나도 멀고 깊은 곳에 버려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누구를 보내서라도, 또 많은 생명을 내어주고서라도 반드시 찾으실 것입니다. 선교사를 보내시든지, 아니면 사업가를 보내든지 하셔서 그를 찾아 구원 받도록 하십니다.
그를 찾아 구원하기까지는 많은 것을 잃어야 합니다. 선교사들과 그의 가족들이 건강도 잃기도 하고 또는 생명까지도 잃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 둘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선교사를 후원하는 것도 잃은 자를 찾는데 협력하는 것 입니다.
나오미는 모든 것을 다 잃고 찾은 것은 겨우 이방 여인 룻 하나였습니다. 잃은 것과 찾은 것은 비교를 할 수 없습니다. 손익계산을 따질 수 없습니다. 나오미는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1:20)고 말하며 그래서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19)고 말했습니다. 과거에 나오미의 생활과 환경은 온화함과 기쁨이 넘쳤으나, 현재는 이름조차 마라라고 불러야 할 만큼 큰 슬픔의 소유자가 되었다고 나오미는 말 했습니다.
그러나 구속사적으로 보면, 나오미는 잃은 것보다 더 큰 것을 찾았습니다. 룻을 단순한 시어머니를 잘 섬긴 여인으로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나오미가 찾은 룻은 베들레헴의 유력자인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고,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되었을 뿐 아니라,(4:22)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뱃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마1:5,6)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심을 받은 ‘나’(여러분)를 찾기 위해서 내가(여러분) 알 수 없는 많은 생명을 주고 바꾸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많은 것을 잃고 나(여러분)를 찾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것을 내어 주고 찾아 주신 나와 여러분은 룻과 같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을 찾고 구원받도록 하는 사명감을 느끼고 충성해야 합니다. 오늘도 많은 선교사들이 잃은 자를 찾기 위해서 선교지에서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잃은 자를 찾기 위해서 기도하고 협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장차 낙원에 들어가서 나(여러분)를 찾기 위해서 많은 것을 잃고, 하물며 생명까지 잃어버린 그분들과, 그리고 내(여러분)가 찾아서 구원받은 자들과, 룻을 찾기 위해서 생명을 대신 내어준 엘리멜렉과 두 아들과 나오미와 룻을 만나서 위로하며 영생복락을 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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