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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룻기

룻 1장 1-7절(인생의 궤도를 수정하라) - 신만교

by Preacher 2023.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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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1장 1-7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라

신만교 2016.05.22

화평성결교회 [의정부시] http://whttp://www.hpehc.org

 

본문내용

(룻 1: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룻 1: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룻 1: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룻 1: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룻 1: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룻 1: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룻 1: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우주 비행선이 우주를 탐험하고 지구로 귀환할 때까지 한시도 소홀함이 없어야 하는 것은 바로 궤도를 수정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궤도수정’이란 자동차로 말하면 차선변경과 비슷하지요. 우주선은 계획된 항로를 따라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매 순간 수많은 궤도 수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이때 작은 오차라도 생긴다면 귀환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고 우주선과 비행사는 순간 숯덩이로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주선의 궤도수정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아폴로 13】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짐 러벨 선장이 지휘하는 아폴로 우주선이 달 착륙을 앞두고 사고를 당합니다. 무리하게 착륙을 강행하다가는 살아 돌아 갈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달 착륙 대신, 지구로의 무사귀환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웁니다. 까딱 잘못해 궤도를 이탈하면 전혀 다른 쪽으로 날아가 버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수차례 겪으며, 마침내 무사히 지구로 귀환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선장과 승무원이 있더라도 궤도 수정을 제때 못하면, 엉뚱한 방향을 향해 날아가 버리고 결국에는 돌아올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시로 발생하는 오차를 줄이기 위해 반복해서 궤도를 수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길은 어떤가요? 인생길에도 궤도 수정이 필요하지 않는가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마디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습니다. 도처에 온갖 위험과 사고와 죽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어떤가요? 평탄한 길만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거친 광야의 여정이 바로 인생길이요, 신앙의 길이 아닌가. 이런 길을 갈 때 궤도 수정 없이 갈 수 있겠는가. 그러다가는 필경 사망 길에 빠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잠 14:1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문제는 인생길에서 수십 년 궤도수정을 하지 않고 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궤도수정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그렇게 살면 되겠는가. 영생의 길을 가는 사람이 궤도 수정 없이 신앙생활을 하면 되겠는가? 잘못 가다가는 지옥으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영원히 우주의 고아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인생의 궤도를 수정해서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칭찬도 듣고 상급도 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인생의 궤도를 어떻게 수정하는가?

 

1. 하나님께서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기 위해 시련과 위기를 주십니다.

 

인생을 살다가 시험과 위기를 만날 때가 있는데, 그때가 바로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대부분 하나님이 쓰신 인물들이 시련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쓰임을 받게 됐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오늘 본문, 룻기의 주인공 엘리멜렉 가정입니다. 이 가정은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이방 지역 모압 지방으로 이사를 갑니다. 사사 시대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 소견대로 행하였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궤도를 이탈한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룻 1: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룻 1: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룻 1: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흉년과 기근을 벗어나기 위하여 ‘떡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들레헴을 떠났지만, 그곳에서 집안의 가장인 엘리멜렉이 죽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 기룐과 말론이 또 죽습니다. 큰 아픔과 슬픔이 나오미의 가정에 휘몰아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은, 인간적인 판단 착오로 몰락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나오미의 가정이 여기서 끝났는가? 그건 아닙니다. 이 시련과 위기를 궤도수정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어떻게요? 나오미와 룻이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룻 1: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룻 1: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나오미와 룻 두 여인이 이렇게 궤도 수정을 했을 때 그 집안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두 여인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는 마침 보리 수확 철이었습니다.

 

(룻 1: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이방 여인 룻이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이삭줍기에 나섰다가 그 지방의 유지 보아스의 눈에 들어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의 결혼에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보아스의 아내가 된 룻은 아들 오벳을 낳습니다.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게 됩니다. 모압 출신 룻이 이스라엘 최고의 임금 다윗의 증조모가 된 것입니다.

 

그 뿐인가요? 아닙니다. 외국인 룻과 보아스 가문에서 다윗 왕을 낳게 해주신 하나님께서, 그 다윗의 후손에게서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하십니다. 결국 룻은 메시아의 족보에 들어가는 복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궤도 수정하기를 잘 한 것인가. 이때 이들이 그냥 모압땅에서 눌러 살았다면 어찌됐을까요. 시련과 위기를 당할 때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돌아서야 합니다. 과감하게 궤도수정을 해야 합니다.

 

성도여러분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혹시 시련과 위기 가운데 있는가? 지금 힘든 인생길을 걷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기 위해 시련과 위기를 주심을 깨달으십시오. 그리고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십시오. 빨리 수정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나는 사관학교 떨어지고 궤도수정을 해서 목사가 됐습니다. 가장 잘한 궤도수정은 고난 가운데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그 고난이 없으면 예수 믿었겠는가? 감사하지요?

 

인생의 궤도를 어떻게 수정하는가?

 

2.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기 위해는 나의 관점을 버려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내 고집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감히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있는 그래도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들만의 색안경을 끼고 자신들의 식견대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라온 환경이 그렇고, 이런 일, 저런 일에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자신만의 안경,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관점이 다분히 비뚤어지고 죄로 물들고 오염된 시각이고 그릇된 습관인 것입니다. 그런 관점으로는 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보거나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엘리멜렉은 그런 잘못된 관점으로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땅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기 위해서 너의 관점을 버려라, 너의 생각, 너의 뜻과 너의 경험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의 관점을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안경을 벗고 하나님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인생의 궤도를 수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집과 건물, APT, 빌딩들이, 땅에서 볼 때는, 그렇게도 크고 멋져 보입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 내려다보면 어떻게 보이는가? 성냥갑보다도 더 작게 보입니다. 무슨 얘기인가? 지금 내가 보는 관점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 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사 55: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오늘 죽을 것 같은 고민들과 문제들이 하루 이틀 지나고 나면 대부분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저절로 풀어지거나 축소되거나, 해결되는 것을 봅니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사소한 문제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도무지 풀리지 않고,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문제들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겁날 것도, 두려워 할 것도 아닙니다.

 

세찬 비바람이 불고 거센 파도 속에, 곧 뒤집어 질것 같은 배안에서도 예수님께서는 평안히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모시고 그분께 기도하고 맡기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에도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그게 바로 궤도를 수정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기 위해는 나의 관점을 버려야 합니다. 나의 관점이 변화되고, 가치관이 달라져야 합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제한된 시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관점이 바뀌면 옛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어떤 의사가 큰 빚을 내어 병원을 개원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환자들이 많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빚은 점점 늘어나고 마음은 조급해지고 초조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급하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손님은 없고 빚은 늘어만 갑니다. 많은 환자들을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자기 기도가 잘못되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많은 환자를 보내달라고 하는 것은, 멀쩡한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을병이 걸리고 아파서 병원을 찾아오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바른 기도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성령께서, 마음에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환자들을 대하라! 그리고 돈을 벌려는 생각을 버리고 건강을 주고 기쁨을 주고 마음의 평안을 주도록 노력해라! 그리고 네 병원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하여라.”

 

이런 감동을 받고 난 다음부터 그는, 돈은 일체 생각지 않고, 환자들이 찾아올 때마다, ‘어떻게 하면 건강을 회복하게 할까? 어떻게 하면 환자가 불안해하지 않고 평안한 마음이 들게 할까? 어떻게 따뜻하게 보살펴 줄까?’ 이것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이 친절한 병원에 대한 소문이 금방 퍼지고 수많은 환자들이 몰려왔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관점을 바꾼 것입니다.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기 위해는 나의 관점을 버려야 합니다. 내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꾸십시오. 어떤 사람이 낚시로 고기를 잡고 있는데 큰 고기를 잡으면 버리고 작은 고기를 잡으면 망태 속에 넣습니다. 하도 이상해 이유를 물으니 막대기 하나를 보여주며 이게 자기 집에 있는 후라이판에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나의 관점, 나의 고집, 자아라는 막대기를 꺾어버리십시오. 언제까지 그런 잘못된 관점에 묶여 살겠는가?

 

어느 중학교 미술 시험에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조각품을 누가 조각했느냐 하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한 모범생이 ‘로뎅‘이라고 답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 모범생 뒤에 앉아있던 아이가 그 답을 훔쳐보았는데, 잘못 봤는지 ’오뎅‘이라고 써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지독히도 공부 못하는 놈이 앉아있었는데, 그놈 역시 컨닝을 하지 않고는 정답을 쓸 수 없는 녀석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뎅’이라고 써넣으면 선생님이 틀림없이 컨닝을 했다고 몰아칠게 뻔해서 ‘오뎅’을 유식한척 하느라 ‘덴뿌라’라고 고쳐 적어 넣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뒤에 앉아있던 녀석이 ‘덴뿌라’라고 써 넣자니 너무 싱거운 것 같아서 한글말로 풀어 적어 넣기로 하고 ‘어묵’이라고 적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로뎅’이 ‘오뎅’이 되고 ‘오뎅’이 ‘덴뿌라’가 되고 ‘덴뿌라’가 ‘어묵’이 되어 결국은 ‘로뎅’이 한국에서 와서 ‘어묵’이 되어버렸답니다. 그래도 ‘어묵’이라고 적어 넣었으니 점잖은 말이 되었지 ‘어묵’이라 하지 않고 ‘묵사발’이라고 했더라면, 정말 ‘로뎅’이 한국에서 와서 ‘묵사발’이 될 뻔 했습니다.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가 되겠는가? 비록 컨닝을 하긴 했지만, 아이들은 ‘틀린 답’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를 않고, ‘틀림없는 정답’이라는 생각을 하고 적었을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귀로 들었다고 해서 다 들은 것이 아니요, 눈으로 보았다고 해서 다 본 것이 아닌 것입니다. 내 관점, 내 고집, 내 습관, 내 자아가 ‘틀림없는 정답’이라는 생각하겠지만 결코 정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기 위해는 여러분의 관점을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궤도를 어떻게 수정하는가?

 

3.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으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른 아침에 갈릴리 호숫가를 찾으셨습니다. 그때 어부들이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는 표정을 보니, 지난밤에 허탕을 친 분위기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를 빌려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한동안 말씀을 전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눅 5:4)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지만 지금 베드로는 다시 고기를 잡으러 나갈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상식에도 맞지 않습니다. 지금 시간은 깊은데 고기가 있을 때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누구인가? 노련한 어부입니다. 갈릴리 바다 속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말씀을 어떻게 순종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베드로는 어떻게 하였는가?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눅 5:5) 우리들이 밤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관점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지시를 따름으로 새로운 삶의 방향으로 궤도수정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술과 경험 그리고 별의 별 수단, 방법 다 써도 고기를 못 잡았는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번 해보겠다고 결단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내 관점을 내려놓고 말씀에 순종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으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말씀의 지시대로 행하면 반드시 복이 옵니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을 서울로 유학 보내면서 여러 가지 권면을 하다가 정히 힘들 때 성경말씀을 펴 보거라, 당부했습니다. 아들의 유학생활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밥도 굶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참다못해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성경책을 펴보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들은 “예” 대답했습니다. 아버지가 ‘다시 자세히 보거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그제 서야 성경을 펴보니까 거액의 수표가 들어 있었습니다. 말씀을 보지 않고 살았던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가? 말씀 묵상을 하는가?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가? 매일 새로운 삶의 방향제시를 받는가? 그게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를 하고 말씀묵상을 하는 성도들은 매일 말씀으로 궤도 수정을 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놀라운 생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눅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런 경험이 있는가? 말씀의 지시에 순종하십시오. 위대한 설교자 스펄전은 말했습니다. “나침반 없이 선장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성경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항해 지도이며, 위험 지역에서 벗어나게 하고 우리를 구원의 항구로 인도하는 지도다. 모든 길을 아시는 하나님이 작성해 주신 것이다.”

 

말씀은 나침반과 지도와 같습니다. 낯선 곳을 찾아 갈 때 꼭 필요한 것이 나침반과 지도입니다. 나침반이 방향을 제시해 주고 지도는 가야 할 길을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말씀은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가야 할 길을 보여 줍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그 방향은 어떻게, 무엇으로 잡을 수 있을까? 바로 말씀입니다.

 

(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망망대해의 쪽배와 같은 인생입니다. 어찌 말씀의 나침반이 없이 순항을 할 수 있겠는가? 말씀만이 여러분의 가는 길에 등불이 되고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궤도 수정에 성공한 아폴로 13호에서 “휴스턴! 여기는 아폴로 13호, 궤도 수정 성공! 우리는 무사히 지구로 귀환 중!” 아폴로 13호가 궤도 수정을 계속하면서 지구로 무사히 돌아온 것처럼, 우리 역시 인생의 궤도수정을 통해서 주님의 품에 무사히 안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영혼의찬양 156장입니다(‘주님 말씀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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