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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룻기

룻 1장 15-17절(시어머니 나오미와 며느리 룻) - 허창수

by Preacher 2023.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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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1장 15-17

시어머니 나오미와 며느리 룻

허창수 목사 17.05.14

동성교회 [창원시] https://https://cafe.daum.net/huhcs48/

 

룻기서는 베들레헴의 한 가정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한 가정의 일이라면 성경이 될 수 없지만 한 가정을 통해서 구속사적인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에 성경으로 인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자 하는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정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하나님은 왕이시다’란 뜻을 가진 ‘엘리멜렉’과 ‘은혜스러움’이란 뜻을 가진 ‘나오미’ 부부가 두 아들 ‘말룐, 기룐’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1). 팔레스틴 지방에 가끔 비가 오지 않으므로 흉년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때에도 흉년이 들어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갔던 때가 있고(창12:10), 야곱도 흉년이 들어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러 갔다가 총리가 된 요셉을 만나기도 했습니다(창42:6).

 

‘떡 집’이란 뜻을 가진 ‘베들레헴’에도 흉년이 들었다는 것은 매우 심한 흉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나 야곱은 흉년이 들면 애굽으로 내려갔던 것과는 달리 엘리멜렉은 모압으로 갔습니다. 왜 엘리멜렉은 모압으로 갔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에 말씀이 없어 알 수는 없습니다. ‘모압 지방’은 요단 동편, 여리고 맞은 편 평지입니다(민22:1).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가던 중에 르우벤 지파는 요단 동편의 땅을 보고 ‘요단을 건너지 않겠다’(민32:5)고 모세에게 말했던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점령한 후에 르우벤 지파에게 그 땅을 주었습니다. 그때 엘리멜렉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물이 많고 초원이 좋았던 모압지방을 보았고 그 후손들이 베들레헴에 살면서도 그 땅을 사모하고 있었던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을 때 엘리멜렉은 모압으로 옮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엘리멜렉이 모압으로 가서 ‘거류하였다’(1)고 했습니다. 그런데 4절에는 ‘거주하였’다고 했습니다. ‘거류’와 ‘거주’는 다릅니다. ‘거류’는 얼마동안 있다가 다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거주’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살겠다는 말입니다.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는 두 아들이 남았습니다. 두 아들이 모압 여자와 결혼하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주하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룐과 기룐이 죽었습니다(5).

 

나오미는 모압 땅으로 이주한 지 10년 만에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고 재산마저 다 탕진한(21) 비참한 형편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을 돌보시사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6). 그제야 나오미는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났습니다.

 

두 며느리는 모압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가는 데 있어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나선 것은 평소에 애정과 존경심으로 다져진 고부 관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오미와 두 며느리와 다 같이 남편 없는 과부로서 서로 의지하며 잘 지냈던 것으로 봅니다. 오늘날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이 본 받아야 할 모범적인 인간관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압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가던 길에서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재혼하여 평안히 살도록 권합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자기 집으로 돌아가도록 권하는 것은 실로 뜨거운 애정의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가 아직 젊기 때문에 재혼을 해서 남편으로부터 위로 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두 며느리가 떠나면 나오미는 의지할 사람도 없는 인간적으로는 혼자 남은 외로운 처지가 되지만, 그러나 나오미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지 않고 낯선 땅에서 과부로서 생활해야 할 두 며느리를 불쌍히 여기 그들에게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한 것입니다. 당시 고아와 과부는 대개 사회에서 소외당하였기 때문에 젊은 두 며느리가 재혼해서 평안하게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여호와께서 선대하시기를 원한다’고 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 하였습니다(8). 이 말을 들은 두 며느리는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두 며느리가 소리 높여 울었다는 것은 그 동안 시어미와 며느리 사이가 어떠했던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같은 과부로서 서로 어려움을 이기며 위로하고 살았던 것으로 보아집니다. 그리고 두 며느리는 돌아가라고 권하는 시어머니에게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도 돌아가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10).

 

이스라엘의 결혼 제도를 따르면 자식을 남기지 않고 남편이 죽은 오르바와 룻은 남편의 형제들과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려면 나오미가 재혼을 해서 다시 아들을 낳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남편 없이 사는 것을 원하지 않고 돌아가서 재혼해서 남편과 함께 살라고 했습니다.

 

시어머니의 이러한 권면의 말을 들은 오르바와 룻의 대조적인 행동을 볼 수 있습니다. 오르바는 시어머니와 입맞추고 모압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따르려고 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붙좇았다고 했습니다(14). ‘붙좇다’란 말은 ‘굳게 잡고 늘어지다’란 뜻으로 뗄레야 뗄 수 없는 치밀한 관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붙좇다’란 말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창2:24)는 뜻으로,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시63:8) 등에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롯이 나오미를 붙좇았더라’고 한 것은 룻이 시어머니에 대한 충성스러운 믿음과 사랑의 모습을 나타내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룻에게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15)고 말합니다. 오르바는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신에게로 돌아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르바가 시어머니의 품을 떠난 것은 곧 하나님의 품을 떠나 우상에게로 돌아갔다는 말입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여호와를 향한 룻의 신앙을 확인해 보기 위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룻에게 있어서 시어머니를 따르는 것은 마치 아브람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 이상으로 그들이 조상 대대로 섬겨 내려온 부족신을 버리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고 한 것은 룻의 태도가 단순히 시어머니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아니면 여호와를 향한 신앙 때문인지를 시험하기 위한 것으로 봅니다. 오르바 역시 시어머니에 대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봅니다. 오르바처럼 룻이 돌아갈 것인지 그 신앙을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놀라운 신앙고백을 합니다. 룻은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16)라고 말했습니다. 룻은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따르고자 결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룻이 이러한 결심을 한 것은 무엇보다도 어머니에 대한 인간적인 책임감이나 인간적인 정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룻의 결심에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또한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룻은 하나님을 공경했던 어머니의 깊은 영향을 받아 하나님을 공경했을 뿐만 아니라 룻 역시 어머니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간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룻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16,17)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룻의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고백입니다.

 

룻이 어머니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따르겠다고 결심한 몇 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룻은 어머니와 함께 가려고 결심한 것입니다. 둘째는 룻은 어머니와 함께 기거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셋째로는 어머니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넷째로는 룻은 어머니의 신앙을 따르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섯 번째로 룻은 어머니와 죽음도 기꺼이 같이하려고 결심했습니다. 여섯 번째는 룻은 어머니와 같은 무덤에 장사되어 묻히기를 결심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맹세로 끝까지 어머니를 따르려는 롯의 결심은 확고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나오미가 시어머니로서 이방 며느리들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심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두 며느리는 이방인으로서 대대로 모압의 신들을 섬겨 왔습니다. 그리고 나오미의 주변에는 모압 사람들로서 이방신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고수하며 변함없이 잘 지켰던 것입니다. 두 며느리는 시어머니 나오미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섬기는 이방신들과는 다른 신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르바는 자기 신들에게로 돌아갔지만, 룻은 끝까지 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지만, 인간적으로는 나오미의 모범적인 신앙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어떤 모습의 믿음을 보여 주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믿음을 보고 배웁니다. 자녀들의 신앙생활은 부모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가문에 복음이 들어온 것은 제가 태어나던 해부터였습니다. 할머님이 이웃집 장로님으로부터 전도를 받았습니다. 할머니는 그분들로부터 교회에 가자고 할 때 손자를 낳으면 가겠다고 약속을 했답니다. 그런데 손자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할머니는 13살인 삼촌과 함께 교회를 다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할머니의 품에 안겨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글을 모르지만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셨습니다.

 

당시 거창교회에 시무하시던 주남선 목사님은 거창과 함양 합천까지의 여러 교회를 맡아 관리를 하였습니다. 지방교회연합사경회를 할 때면 철저히 개혁주의 신앙을 가르치셨습니다. 할머니는 집회가 있을 때마다 양식을 가지고 가서 한 주간을 밤낮으로 집회에 참석하셨던 것을 어려서 보았습니다. 새벽기와 철야기도를 열심히 하셨던 할머님이셨습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할머니를 따라 철야기도회에 가서 난로 옆에서 방석을 덮고 잠들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영향을 받아 삼촌은 한국교회에 개혁주의 신학을 가르친 교수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보수적인 신앙을 배워 오늘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 예배와 수요 기도회를 빠진 일이 없습니다. 저의 신앙은 할머니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서재에는 할머니의 사진을 걸어놓고 그분을 사모합니다.

 

어떤 교인이 하는 말이 ‘천국이 아무리 좋아도 우리 시어머니가 가는 천국에는 가기 싫다’고 했답니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말입니다. 시어머니의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며느리보기에 믿음 좋은 신앙의 시어머니가 되지를 못했다는 말입니다. 시어미와 며느리와의 앙숙관계인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모압으로 돌아간 오르바에게와 룻에게 시어머니로서 인간관계가 좋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고부관계가 좋았기에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돌아가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10)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르바는 나오미를 떠나 그의 백성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갔지만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따르기로 굳게 결심하였습니다. 오르바와는 달리 룻은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섬길 것을 결심하고 나오미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가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가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고, 어머니가 묻히는 곳에 나도 묻히겠다’고 했습니다. 죽어도 어머니를 떠나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우리는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모범을 보여 줄 수가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보고 배웁니다.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모범적인 믿음을 보여 주었음에도 오르바는 자기 신들에게로 돌아갔지만 룻은 끝까지 나오미가 섬기는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나오미는 룻에게 베들레헴에 유력자인 보아스와 결혼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룻은 모압 여자, 이방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로 인하여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고 오벳을 낳았는데 오벳은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아버지였습니다(4:17).

 

이방 여인 룻이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입니다. 시어머니 나오미가 아니었다면 룻은 이러한 믿음의 조상이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룻에게 나오미는 믿음의 어머니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믿음의 부모가 되어 합니다. 믿음의 모범을 보여주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뿐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장차 하늘나라에게 가서 온 가족이 함께 만나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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