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1장 15~22
나오미의 논리, 룻의 논리
김준범 목사 201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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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1 장
15절: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16절: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18절: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19절: 이에 그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절: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1)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절: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22절: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 자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 말씀요약 ----
룻기는 총 4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책입니다. 룻기의 모든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사사 시대입니다. 그래서 룻기는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룻기라고 하는 책명은 룻(Ruth)이라고 하는 여인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룻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이방인, 곧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룻을 하나님께로 인도한 것은 그의 시어머니 나오미였습니다. 나오미는 본래 베들레헴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남편은 엘리멜렉이고, 그는 유다 지파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살던 땅에 흉년이 들게 되자,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거주를 옮겼습니다(룻 1:1).
신앙의 터전을 버리고 모압으로 이주한 나오미 가정
우리가 룻기의 전체 내용을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엘리멜렉과 나오미 가정이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땅으로 이주해 간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들이 베들레헴을 떠나게 된 배경은 거기에 흉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1절). 그러므로 이들이 모압 땅으로 이주한 것은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렵게 되었기 때문에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피난한 것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땅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독특한 재산이요 이 땅은 약속의 땅이요, 신앙의 터전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본적으로 땅을 영영히 사거나 팔거나 할 수 없었습니다(레 25장). 그 땅은 대대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주신 약속의 땅이요 신앙의 터전입니다. 물론, 아주 경제적으로 어렵게 되었다든지 하면 일시적으로 팔 수는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는 땅의 영구한 소유권을 파는 것이 아니라, 희년이 될 때까지 그 땅에서 얼마만큼의 소출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를 대략 예상을 해서 그것을 값으로 쳐서 땅을 판 것이고, 희년이 되면 원래 주인, 원래 그 땅의 가문에게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을 때에 엘리멜렉은 자기 가문의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서 그 땅값을 넉넉히 챙겨서(룻 1:21 참고) 경제적으로 볼 때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여겨졌던 비옥한 땅 모압으로 이주를 한 것입니다. 그냥 흉년을 피하여 일시적으로 베들레헴 땅을 떠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주신 신앙의 터전과 신앙공동체를 영영 떠나서, 모압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 용의가 있다는 큰 결정을 내리고 간 것입니다.
엘리멜렉이나 나오미는 인간적으로 볼 때 비전 없어보이는 박토인 베들레헴에 있는 것보다, 저 옥토 모압 땅으로 가서 더 부자가 되고, 더 잘 먹고 더 편안하게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도, 교회도, 예배도, 하나님도, 신앙의 터전과 영적 환경도 다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철저하게 경제 논리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신앙논리가 아니라 경제 논리를 가지고 모든 것을 따지고 판단하고 결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엘리멜렉과 나오미 가정이 정말 경제문제를 해결하고 성공하여 행복하게 되었습니까? 10년 만에 모든 것을 잃고 실패했습니다. 엘리멜렉은 일찍이 죽고,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차례대로 죽고 말았습니다. 빈손이 되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이삭을 주워먹으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그런 비참한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경제논리를 따라갔지만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실패도 결국은 경제논리를 따라간 것에 있었습니다. 입에는 신앙을 달고 살았지만,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는 경제논리를 따라간 것입니다. 신앙의 터전을 버리고서라도 잘 살 수 있게 된다면 그게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가면 성공할 줄 알고, 자기와 자기의 자녀들이 대대로 행복하게, 복된 인생으로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모든 것이 다 불타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앙 논리로 돌아온 나오미 가정
모든 것을 잃고 난 나오미는 다시 신앙 논리로 돌아왔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신앙인이었지만, 이전까지는 신앙논리가 아니라 세상 논리, 경제 논리를 따라 살았습니다. 모압 땅에 가면 다들 말하기를 잘 산다고 하니까, 땅이 비옥하다고 하니까, 신앙을 희생하고 신앙의 터전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오미는 지난 10년간의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밥을 잘 먹든 좀 못 먹든, 잘 살든 못 살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신앙의 터전을 지키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신앙을 우선해서 사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신앙논리를 발동시킨 것입니다.
모압 땅에서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려면 여러 가지 경제적인 손실이 컸을 것입니다. 자기를 보필하던 두 자부와도 헤어질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인간적인 수치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고향 사람들의 눈총과 비웃음과 멸시를 받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각오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신앙의 터전으로 결사적으로 돌아오고자 했습니다. 밥을 굶고 빌어먹는 한이 있더라도 신앙의 터전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살아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앙논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나오미의 며느리였던 모압 여인 룻도 신앙논리를 따랐습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에게는 이제 재산도 없고 아들도 없으니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경제적으로 아무런 소망도 없고 기대할 것도 없는 시어머니를 무모하게 쫓아오지 말고 친정으로 돌아가서 남은 인생이라도 조금 편안하고 넉넉하게 살라고 권면하였습니다.
하지만 룻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 1:16-17)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인간적으로 보면 나오미를 따라가는 것은 재앙 그 자체입니다. 그것은 고생길입니다. 룻은 왜 그런 무모한 선택을 한 것입니까? 그것은 신앙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모압에서 알려준 여호와 하나님, 그 하나님을 알고 만나게 되었는데, 이제 어머니가 안계시면 모압 땅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가난하게 살더라도, 하나님은 놓치고 싶지 않고 신앙면에서는 손해를 보고 싶지 않다, 그러니 어머니와 함께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실제로 룻은 베들레헴에서 이삭을 주워먹으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한번도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을 오히려 보람으로 여겼고 은혜로 여겼습니다.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룻 2:2).
그렇게 참으로 어리석게 신앙논리를 따라서, 신앙적인 관점에서 판단하고, 하나님과 어떻게 되겠나, 신앙적으로 어떻게 되겠나 하는 것만 생각하고 신앙 중심, 하나님 중심, 신앙논리를 따라 나갔을 때, 하나님이 나오미와 룻을 버려두시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신앙의 사람 보아스의 밭으로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경제문제도 해결해 주셨습니다. 자녀문제, 남편문제, 땅의 문제도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 가문은 땅위에서 곧 없어지고 말 가문이었는데, 나오미가 신앙논리로 돌아오고, 룻이 신앙논리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함께 따라갔을 때, 보아스가 신앙논리를 가지고 엘리멜렉의 땅을 무르고 룻을 아내로 맞아 기업을 이을 수 있도록 자녀를 낳아줌으로써, 그들은 놀라운 신앙의 명문 가문을 이루었습니다. 룻과 보아스는 다윗의 증조모, 증조부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어렸을 때부터 그런 자기 할머니의 스토리를 늘 듣고 자랐을 것입니다. 그것이 다윗에게 주었을 신앙적 영향력이 얼마나 컸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골리앗을 대적하여 물맷돌 다섯 개를 주머니에 넣고 나가서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 17:47)고 했을 때 할머니 룻의 신앙을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신앙적으로 생각하고 신앙적으로 판단하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실 것이고, 하나님이 맡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인들입니다. 신앙인의 논리는 경제 논리가 아닙니다. 신앙인은 신앙 논리를 따라서 살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세상 법도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법도를 따라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신앙인들이 세상의 논리와 법도를 따르기 때문에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멸시하고 비난합니다. 신앙인들은 그래도 신앙 논리로 사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그리스도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독특한 자태와 삶의 방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다 자기 논리가 있습니다. 세상 논리, 경제 논리, 정치 논리를 따라서 삽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면 가렸지 돈은 손해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신앙 논리로 살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겠는가, 나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겠는가, 교회와 복음에 어떻게 되겠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나, 하나님의 법도에 맞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다른 것은 다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해야 합니다. 신앙 논리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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