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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룻기

룻 2장 1~3절(이삭을 줍겠나이다) - 김준범

by Preacher 2023.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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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2장 1~3

이삭을 줍겠나이다

김준범 목사 2013.11.17

양의문교회 http://whttp://www.asheep.org/

 

룻기 2 장

 

1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

2절: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찌어다 하매

3절: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 말씀요약 ----

 

룻은 참으로 힘든 현실을 견뎌야 했다 룻은 모압 족속의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었는데, 하나님의 기이한 섭리로 나오미를 모압 땅으로 보내주셔서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룻은 하나님을 만나고 가치관과 세계관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있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룻은 비록 남편과 사별하여 홀로 되었지만,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룻이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가게 되면 고생길이 훤했습니다. 빈털터리가 된 나오미를 따라가면 가난과 외로움과 문화적인 충격으로 고생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인간적인 즐거움이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룻이 나오미를 결사적으로 따라간 것은, 나오미를 따라가야만 창조주와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계속 섬기는 생활을 잘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룻은 신앙생활만큼은 손해 보지 않으려는 중심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베들레헴으로 따라 온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만을 바라본 채 베들레헴으로 온 룻은 곧바로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혔습니다. 참으로 현실은 냉정하고 혹독했습니다. 순전히 신앙을 잘 지키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높이고자 하는 중심 하나로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 결정 때문에 룻이 견뎌야 하는 현실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했습니다. 그의 형편은 모압 땅에 살 때보다 오히려 악화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도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뜻대로 살아보려고 신앙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좁은 길을 걸어가려고 애를 써봅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을 의지하여 신앙적 선택과 결단을 하면서 살아가보지만, 현실은 오히려 점점 더 악화되는 쪽으로 바뀌곤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만 놓고 보면 별로 감사할만한 일들이 없어 보일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감사가 힘겹게 느껴지고, 자주 감사를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룻은 불평하지 않았다

 

바로 지금 룻이 이런 현실을 만났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이런 현실을 만나게 되면 보통 크게 세 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첫째 반응은,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불평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라도 이럴 때에는 하나님을 원망하곤 합니다. ‘하나님, 당신이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제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저의 간절한 기도와 헌신과 충성과 하나님만을 바라는 믿음과 신앙적 결단에 대하여 어떻게 이렇게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대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저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왔는데, 저희 집에는 다음 끼니가 없으니, 참 너무 하십니다. 제가 무슨 죽을 죄를 지었다고 제게 이렇게 가혹하게 하십니까? 하나님, 제게 너무 하십니다. 너무 불공평하십니다!’ 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과 분통을 터트릴 수 있었습니다.

 

둘째 반응은, 남 탓하고 환경 탓을 하면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괴로운 일들을 만날 때에 자기를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다른 사람을 원망하면서 분통을 터트리기 쉽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 탓을 잘 합니다. 룻도 나오미에게 얼마든지 이렇게 불평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다 어머니 때문이고 어머니 집안 때문이에요!’ 하면서 나오미 탓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룻은 자신을 향해서 수군대고 떠들었던 베들레헴 사람들을 원망하면서 분통을 터트릴 수도 있었습니다. 환경도 문제였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만난 환경은 최악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은 떡의 집이라는 뜻인데, 떡은커녕 이삭을 주워 먹어야 하니 실망이 컸을 것입니다. 룻은 환경 탓을 하면서 분통을 터뜨릴 수도 있었습니다.

 

셋째 반응은, 자신의 미래를 비관하면서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생각하고 선택했지만 현실이 자꾸 악화될 때에, ‘이러다가 내 인생 어떻게 되는 건가? 내가 계속 베들레헴에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건가? 나는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은 나를 돌보시지 않는 것은 아닌가?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라도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해서 사는 편이 훨씬 빠르겠어.’ 하면서 비관하고 불안해 할 수 있었습니다.

 

룻은 현실적으로 보면 아주 총체적인 재앙 수준의 형편에 지금 처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룻은 그러한 속에서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원망하지도 않았고, 남을 탓하거나 환경을 탓하면서 분노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며 불안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에 대한 룻의 대처는 어떠했습니까?

 

룻은 모든 것을 은혜로 여기고 감사하면서 삶에서 최선을 다했다 이런 상황에서 룻은 나오미에게 말했습니다;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룻 2:2).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은혜라는 말입니다. 이게 룻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자기에게 임한 현실에 대처했던 방식이었습니다. 온 세상을 다 준다고 하더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섬기면서 예배하면서 살 수 있게 해주신 것을 큰 은혜로 알면서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룻은 어떤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룻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은혜와 사랑과 도움을 많이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하면서 감사했습니다. 룻은 자신의 환경에 대해서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룻의 신앙은 “이삭을 줍겠나이다”의 신앙이었습니다. 자기 처지에 대해서 은혜로 여기고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룻은 이삭을 주울 수 있다면 그것을 큰 은혜로 알고 감사했습니다. 힘든 일이었지만 그것을 은혜로 여기면서,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룻은 아침부터(7절) 저녁까지(17절) 쉬지 않고 이삭을 주우면서 최선을 다해서 성실히,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래서 룻은 말도 은혜롭고 아름답게 잘했습니다.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룻 2:3). 룻기에 기록된 룻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말 신앙적이고 은혜롭고 아름답습니다(룻 1:16-17; 2:10,13; 3:5,9). 그녀의 말에서는 언제나 은혜로운 태도와 겸손과 감사와 품격이 배어나옵니다. 이것이 룻이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여러분의 말은 어떠합니까? 말이 은혜롭고 감사가 배어나오고 있습니까? 룻은 얼굴도 아주 밝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감사가 아니면 불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얼굴에서 다른 사람들이 넘치는 감사를 발견하고 있습니까? 그녀는 비관할 줄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면서 그의 얼굴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했습니다(시 43:5 참조).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알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처지에 대해 감사할 줄 알았던 룻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주셨습니까? 그녀의 발길을 그녀의 구속자가 될 친족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룻 2:3). 보아스는 유력한 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실한 성도였습니다. 룻으로 하여금 밭에서 보아스를 만나게 하셨고, 보아스를 통해서 호와의 은혜를 얻게 하셨고, 결국 그 비참한 처지에서 룻을 구속해서 그 모든 기업을 되찾고 자녀를 낳아 그 가문을 잇게 하셨는데, 그 아들이 바로 오벳이었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습니다. 룻이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뢰하여 여호와의 날개 아래 피하고, 모든 것을 은혜로 여기면서 감사하고, 자기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여 나아갔을 때, 하나님이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고, 많은 감사가 더 넘칠 수 있도록 선대하여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날개 아래에서 이삭을 주우십시오. 당신이 줍는 이삭은 우리의 기대와 상상을 초월하는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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