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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마가복음

막 15장 16-23절(억지로 진 십자가) - 신만교

by Preacher 2023.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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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5장 16-23

억지로 진 십자가

신만교 목사

화평성결교회 [의정부시] http://whttp://www.hpehc.org

 

(막 15: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막 15: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막 15: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하고

(막 15: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막 15: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막 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막 15: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막 15: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 하시니라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순절 다섯째주일입니다. 다음주일이 주님의 고난주일입니다. 사순절은 기독교 절기 중에 가장 은혜롭고 경건한 절기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절기입니다. 우리 모두 남은 사순절 기간에 더욱 주님의 고난 길에 동행하므로 새봄과 함께 새 생명이 넘치는 부활절을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총독 빌라도의 재판을 받으신 후에 사형장인 골고다로 올라가는 장면입니다. 이때 3년 동안이나 주님과 동거동락 했던 제자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 도망갔습니다. 죽는 길이라도 같이 가겠다고 큰소리치던 베드로도 어린 소녀 앞에서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다른 제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을까요? 유대인들과 로마 군병들은 이런 예수님을 비웃고 조롱하였습니다.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예수님은 지쳐서 쓰러지셨습니다. 주님은 빌라도 법정에서 채찍질을 많이 맞으셨습니다. 모진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은 살가죽이 마치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찢어지셨습니다. 골고다 언덕까지 600m를 십자가를 지고 가야하는데 도저히 올라갈 수 없어 보였습니다.

 

이때 로마 군병들은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옆에 따라가던 장정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습니다. 그 장정이 바로 오늘 말씀의 주인공 구레네 시몬입니다. 멀리 구레네에 거주하는 유대인으로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순례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시몬은 자기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엉겁결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골고다 언덕까지 지고 갔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한 순간에 일어났습니다. 그러기에

 

1.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막 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시골로부터 와서’라는 말은 시몬이 시골 촌사람임을 가리킵니다. 군병들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할 때 대항하거나 뿌리치지 못한 것을 봐서 어리숙하고 순진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갑자기 죄수가 지는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구레네 시몬의 기분이 어땠을까요? “왜 하필이면 나지? 오늘 정말 재수 없다.”고 몹시 기분 나빴을 것입니다. 그 누구라도 십자가형틀을 대신 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정말 기분 나쁜 것입니다.

 

성경에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했습니다(갈3:13). 이 나무가 바로 십자가 나무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사람은 정말 저주 받은 사람입니다. 그만큼 악한 죄를 지은 사람을 사람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입니다. 시몬은 그 기분 나쁜, 저주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골고다까지 갔습니다.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을 다 받았습니다.

 

시몬은 멀리 아프리카 북쪽 트리폴리(Tripoli)라는 구레네에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예수에 대해서 잘 몰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사람이고 무슨 죄를 지어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었는지 알지를 몰랐을 것입니다. 그냥 십자가를 지고 가는 죄수들 구경하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도여러분, 따지고 보면 시몬이 지고 간 이 십자가가 보통 십자가인가? 보통 죄수들의 십자가라면 정말 기분 나쁘지요. 그러나 이 십자가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십자가입니다.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죄 없는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입니다. 그 대속의 십자가를 오로지 시몬이 졌던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시몬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억지로’, 정말 지고 싶지 않은 십자가를 지고 갔던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도 이런 십자가 진적 없나요? 지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십자가를 진적 없나요? 혹시 이 가운데 예수를 억지로 믿는 분이 있나요? “언제까지 교회를 다녀야 하나, 이 억지로 진 십자가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신가요? 혹시 지금 예배드리는 분 중에 억지로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앉아 계신 분 계신가요? 그렇게 보니 지금도 억지로 십자가 진 사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사순절 특새를 하는데 새벽에 단잠을 깨고 새벽기도 하는 것, 억지로 십자가 지는 심정은 아닌가요? 혹시 금년에 원치 않았는데 어떤 직분과 책임을 맡아 억지로 감당하는 분이 계신가요? 이게 바로 구레네 시몬이 졌던 억지로 지는 십자가입니다. 성도여러분, 그렇더라도 그 억지로 지는 십자가 포기하지 마십시오. 내려놓지 마십시오. 끝까지 지고 가십시오. 왜냐고요?

 

2. 십자가는 억지로 져도 놀라운 축복이 됩니다.

 

(다 같이) “십자가는 억지로 져도 복이 된다.” 정말입니다.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시몬이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그의 가문이 복을 받고 그의 자손들이 잘됐습니다. 십자가에 놀라운 축복의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믿으십시오. 성경을 보면 예수의 십자가를 졌던 시몬이 후에 예수 믿고 신자가 됐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그의 아내와 자녀들도 다 예수 믿고 초대교회에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21절을 다시 봅니다.

 

(막 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여기 보면 마가가 후에 마가복음을 기록할 때 ‘시몬’의 이름뿐만 아니라 두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의 이름을 소개합니다. 십자가를 진 당사자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이해가 가나, 두 아들의 이름은 왜 소개될까요? 두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가 이미 초대교회에 알려진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시몬의 이름을 빛나게 할 만큼 그 자녀들이 잘 되었음을 말합니다. 또한 사도바울이 로마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롬 16:13)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

 

여기서도 ‘루포’가 소개 됩니다. ‘알렉산더’라는 이름도 성경에 여러 군데 나오지만 이 이름은 흔한 이름이기 때문에 그가 시몬의 아들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루포’가 시몬의 아들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 ‘루포’를 사도바울도 잘 알고 있었으며, 문안의 대상이 될 정도의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에게 문안 받을 만한 인물이라면 신약교회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의 아들들이 신앙생활에 성공한 것을 봅니다.

 

또한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루포의 어머니’라면 누구인가? 시몬의 아내지요. 시몬의 부인도 예수를 믿을 뿐만이 아니라 바울로부터 문안 받을 만한 인물이 됐습니다. 그런데 문안 받을 정도가 아닙니다.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 위대한 사도바울이 ‘내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라면 시몬의 부인이 어느 정도 인물이었을까요? 보십시오. 시몬의 가족들 모두가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존귀하게 쓰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십자가는 억지로 져도 놀라운 축복을 받는 다는 말이 맞아요? 틀려요? 맞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복을 받게 됐을까요? 이런 추정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시몬이 나중에 자기가 대신 지고 간 예수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물어봤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아무 죄 없이 억울하게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온 가족과 함께 그 예수 믿고 그분을 위해서 충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잘못 걸려들어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됐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비록 억지로 지게 된 십자가였지만 이 십자가가 시몬의 가정에 놀라운 복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도 구레네 시몬처럼 십자가가 지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꾹 참고 끝까지 그 십자가를 지십시오. 반드시 구레네 시몬의 가정처럼 큰 은혜 받고 큰 축복 받게 될 것입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지다가 복 받은 사람이 많지만 그 중에 한 사람을 소개하면, 순천 순동교회 박병선 안수집사가 있습니다. 이 박 집사는 일생동안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만 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아내에게 이끌려서 처음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처음 교회 온 날 새로 신축한 예배당 빈자리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이 빈자리를 채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는 곧 후회를 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한 약속이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 다음 날부터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의원에 출마한 선거운동을 뒷전으로 두고 전도에 몰두했는데 그렇게 쉬울 것만 같았던 전도가 너무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토록 잘 따르던 사람들도 신앙만큼은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끝까지 전도하리라 결심하고 전도한 결과 그해 1년 만에 무려 700명을 전도했습니다. 그가 말한 대로 그가 예배당 빈자리를 채웠습니다. 그가 바로 진돗개 전도왕 박병선 안수집사입니다.

 

정말 얼마나 억지로 진 십자가가 아닌가? 그러나 억지로라도 십자가 졌더니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을 전도하게 해주셨고 압도적으로 순천시의회 의원이 되게 해주시고 20여 가지가 넘는 큰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지금 방방곡곡 전 세계를 다니며 전도 간증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늘의 상이 클 줄 믿습니다.

 

(단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여러분도 억지로라도 전도해서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3. 이제 우리는 자원해서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왜요?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라도 지면 복을 받는데 자원하여 지면 얼마나 더 큰 복이 되겠는가? 구레네 시몬은 자기가 억지로 진 십자가가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가시는 대속의 십자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도 똑같은 죄수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재수 없다고 불평을 하며 억지로 지고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십자가는 죄 없으신 예수님 외에는 누구도 질 수 없는 대속의 십자가였습니다. 자신의 죄를 포함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피 흘리신 속죄의 십자가였습니다. 알지 못했을 때는 억지로 십자가를 졌고 창피하기도 하고 피하고도 싶었습니다.

 

하지만 후에 그 십자가가 자기의 죄를 대속하신 십자가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한 십자가임을 알고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그런 십자가를 잠시나마 지게 된 것을 영광으로 알고 자기는 물론, 아내와 자녀들까지 모두 예수 믿고 복음을 십자가를 지겠다고 헌신하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억지로 지고 가는 그 십자가, 그 십자가의 의미를 알았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감사 감격하며, 그 십자가를 질 것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안다면 누구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지게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음에도 우리에게 지라고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고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내려놓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가령 임직을 위한 부르심, 그 부담감도 있을 것입니다. 30주년 사역들을 추진하는 일들 또한 부담 될 것입니다. 그 십자가 내려놓고 싶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면 안됩니다.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라도 지고 가야 합니다. 십자가는 억지로 져도 놀라운 축복이 됩니다.

 

만약에 구레네 시몬이 그 십자가를 내려놓고 도망을 쳤다고 가정해보세요. 그 가정적인 구원의 은혜, 그 가문의 영적인 축복을 받았겠는가? 참고 인내하면서 끝까지 지고 간 것이 얼마나 잘 한 것인가? (옆에 분에게) “우리도 끝까지 지고 갑시다.” “억지로라도 지고 갑시다.” “기왕 져야하는 십자가라면 즐거이 지고 갑시다.” 반드시 축복이 보장돼 있습니다.

 

옛날 평안도 산골에 백사겸이란 분이 살았는데 소경으로 점쟁이였습니다. 그는 점을 잘 보기로 유명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어느 날 김제옥이라는 전도자가 백사겸을 찾아가서 이렇게 전도했습니다. “당신의 영혼과 후손의 장래를 생각하여 점치는 생활을 청산하고 예수를 믿으시오.” 백씨는 전도자를 야단치면서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백씨는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잠을 자려고하면 전도자의 말이 귀에 쟁쟁합니다. “자식 멸망 받을 짓 그만두고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 결국 그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교회를 찾아가서 회개하고 예수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점치는 것은 그만 두고 농사를 지으면서 전도도 하고 열심히 교회 봉사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선교사가 예배당을 짓겠다고 땀 흘리면서 벽돌을 손수 찍고 온갖 고생을 다했지만 예배당을 완성하지 못하고 중단을 했습니다. 이것을 보자 백사겸이 너무 안타까워 자기 전답 1천 평을 팔아서 건축 헌금을 드렸습니다. 자기가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그리고는 농사도 못 짓고 시골에서 어렵게 살았습니다.

 

이때 선교사가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백씨 가족을 본부 선교사 집에 사찰로 일하도록 해주었습니다. 그에게는 총명한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선교사가 그 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후에 미국에 유학까지 시켰습니다. 그 아들이 박사 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서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이 되고 후에 문교부 장관을 지냈는데 그 분이 바로 한국 기독교계의 거물인 백낙준 박사입니다. 바로 이분입니다. 지금 연세대 중앙 도서관 옆에는 백낙준 박사의 동상이 있습니다.

 

주를 위해 십자가 지는 사람을 결코 하나님이 축복해 주심을 믿으십시오. 하지만 처음부터 십자가를 자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누가 고난의 십자가를 좋아하겠는가?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도 처음에는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

 

이 말했다가 예수님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호된 책망도 들었습니다. 그랬던 베드로가 오순절 부흥회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능력이 임했습니다.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놀랍게 변화 됐습니다.

 

베드로가 쓴 베드로 전서를 보십시오. 베드로는 고난 예찬론자가 됐습니다. 십자가라는 것이 주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후에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위해 십자가를 지는 의미를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받을 때는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벧전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4: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종말에는 베드로가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했습니다. 베드로의 순교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점점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로마를 떠나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죽느니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자.” 그리고 그가 로마의 언덕을 넘어가려는 순간 주님이 옆으로 지나가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물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쿼바디스 도미네’). 그때 주님은 “나는 네가 등지고 떠나가는 로마로 가서 다시 십자가를 지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즉시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로마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였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베드로로 쓰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억지로가 아닌 자원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성도여러분, 십자가를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결코 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십자가 지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골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하나님께서는 큰 복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눅 9:23)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우리 모두 그 복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주님이 남기신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장 큰 십자가를 지고 가신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를 앞두시고 마지막으로 한 설교 중에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이제 내가 피하였다가 이다음에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욕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으로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 너는 내가 준 고난의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성도여러분, 십자가 없이는 상급도 없고 면류관도 없습니다. ‘No cross, No crown!’ 그렇다고 일부러 고난을 불러들이지는 않지만 내 몫의 십자가는 피하지 맙시다. 자원하므로 감당합시다.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면 복이 됩니다. 장차 주어질 영광을 바라보며 그 어떤 십자가라도 감당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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