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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마가복음

막 16장 9-18절(믿음 없는 제자들) - 허창수

by Preacher 2023.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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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6장 9-18

믿음 없는 제자들

허창수 목사 16.10.23

동성교회 [창원시] https://https://cafe.daum.net/huhcs48/

 

11절 下에 ‘믿지 아니하니라’. 14절 下에도 ‘믿지 아니하니라’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14절에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이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후에’란 부활하신 후 40여 일이 지난 후, 십여 차례 이상 제자들에게와 무리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보여 주셨음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믿지 아니하였기에 예수님이 열한 제자들이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 나타나셔서 ‘어찌하여 내가 살아났음에도 너희들은 믿지 아니하느냐’고 꾸짖으셨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보다도 가장 믿어야 할 사람이 믿을 수 있는 것을 믿지 않고 있을 때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어린 딸이 엄마에게 ‘나 어디서 낳았냐?’고 묻습니다. 엄마는 ‘누군가 버린 것을 다리 밑에서 주었다’고 농담으로 말 합니다. 아이도 농담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사춘기가 되어 엄마가 밉고 싫어질 때 자기를 낳은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럴 때 엄마는 내가 너를 낳았다고 말해주어도 믿지 않는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의 살아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를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믿음 없는 제자들을 크게 꾸짖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죽음에서 살아나신 후 40일 동안 지상에 머물러 계시다가 이제 하늘로 올라가실 때가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로 올라가셔야 할 날은 다 되었는데도 누구보다도 가장 믿어야 하고 믿을 수 있는 부활을 제자들이 믿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이다, 믿어라, 믿어라 하는데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그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죽음에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이요 종말론적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다 이루셨습니다. 죽음과 살아나심으로 예수님께서 하실 일은 다 했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살아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예수님이 하실 일이고, 죽음과 부활을 믿는 것은 제자들이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열한 제자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곳에 나타나셔서 내가 살아난 것을 왜 믿지 않느냐고 책망하시고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왜 부활을 의심하느냐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어야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부활을 믿어야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제자들이 믿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병을 고치시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부르게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게 하신 예수님으로 믿는 믿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나병 환자를 말씀 한 마디로 깨끗하게 고치신 예수님으로 믿는 것으로 온전한 믿음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 한 마디로 성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예수님으로 믿는 것으로는 구원을 얻을 만한 믿음이 되지 않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분으로 믿는 믿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많은 사람들을 비롯한 제자들도 이 모든 것을 보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으로 완전한 믿음이 되지를 못합니다. 기독교는 구원이 있습니다. 구원은 죄사함을 받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다시 살아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믿지 않았을 때 예수님은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은 죽음에서 살아나셔서 제일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셨습니다(9). 마리아는 죽음에서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고 곧 바로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리아의 말을 듣고서도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믿지 않았습니다(11).

 

그리고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의 살아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살아나신 예수님을 본 두 제자들도 남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13). 누구보다도 가장 믿어야 할 제자들이 믿지 않았다는 것은 다시 살아난다는 부활을 믿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믿기 어렵다고 해서 믿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의 교인들에게도 과연 얼마나 부활을 믿을까요? 예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3년을 따라다니며 배운 제자들도 부활을 믿지 못했다면 오늘 우리들도 부활을 믿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직분도 가진 자가 아직도 부활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답답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 오셔서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고 믿도록 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꾸짖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으라고 가르치십니다.

 

‘믿음이 없는 것’은 근본적인 불신앙이 아니라 믿음이 대단히 약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약한 믿음을 가진 제자들에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완전한 믿음으로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완악한 것’은 확실한 증거를 보았음에도 거절하는 굳은 마음입니다. 확실한 증거에 순종하지 않고 거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확실하게 보여주셨음에도 의심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꾸중을 듣는 불신앙의 뿌리는 완악한 마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완악한 마음을 가진 자는 마땅히 믿어야 할 것을 거절하고 신뢰하지 말아야 할 것을 신뢰하는 자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손에 못자국을 만져보고 창에 찔린 허리에 손을 넣어보고야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도마에게 손과 허리에 손을 넣어 보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교인들에게도 믿음이 약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음이 완악한 제자들처럼 말씀을 듣고서도 마음을 열지 않고 믿지 않는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니 믿는 것도 아닌 교인들을 보면 정말 답답합니다. 좀 마음을 열고 말씀을 잘 듣고 믿음이 성장했으면 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잘 믿어보라고 권면도 하고 책망도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그러한 교인들에게 찾아오셔서 꾸짖으시고 믿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믿어야 합니다.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꾸중을 듣고서야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믿었습니다. 더 이상 부활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활을 믿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복음 전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15)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을 믿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부활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을 믿는 제자들에게 지상명령을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 이루셨습니다. 마음 놓고 하늘로 올라가실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9절에서 13절까지와 14절 이하의 말씀은 장소와 날자가 다릅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날은 부활하신 후 첫날이고 예루살렘입니다. 그리고 14절 이하는 하늘로 올라가시기 바로 직전이므로 부활하신 후 약 40여 일이 지난날이며 갈릴리입니다.

 

부활을 믿는 성도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과 살아나심이 복음입니다. 내가 복음을 믿고 확신하므로 구원을 얻게 되었으니 다른 사람도 복음을 믿어 구원을 얻도록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복음 전파의 범위는 ‘온 천하’입니다. 대상은 ‘만민’입니다. 복음 전파에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없습니다. 세계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살아나심을 믿는 자는 반드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은 전한 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까지는 내가 하지만 그 사람을 믿게 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는 것은 전한 자에게 책임이 없습니다. 듣고 믿던지 아니 믿든지 들은 그 사람이 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소를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일 수는 없습니다. 물을 먹는 것은 소가 할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가 하지만 그 사람을 믿도록 하는 일을 우리가 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을 들은 그 사람이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믿도록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택한 자라면 하나님께서 그를 믿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불택자라면 복음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을 통해서 일어나는 양극상이 있습니다. 구원을 얻는 자와 정죄를 받는 자가 있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을 정죄를 받으리라’(16)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복음을 듣고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아 육에 속한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듣고서도 믿지 아니하는 자는 정죄를 받게 됩니다. ‘정죄’는 종말론적인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심판주로부터 정죄를 받아 죄값으로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것과 안 믿는 것의 차이는 구원이냐 저주냐 입니다. 믿음과 믿지 않음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 입니다. 영생이냐 영멸이냐 입니다. 복음을 듣고도 아직도 믿지 아니하는 자는 속히 믿어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자에게는 표적이 따릅니다. 17,18절 말씀에 믿는 자에게 이런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7절 말씀에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는 것’은 전도자로 파송하는 제자들에게도 주어진 권능입니다. 부활을 믿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큰 권세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전도하면서 죽은 자도 살렸고 귀신들린 자에게 귀신을 쫓아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8절에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은 해석하기 어려운 난해입니다. 바울이 멜리데 섬에서 독사에게 물렸으나 아무 일이 없었던 것은 있지만 독을 마셔도 해를 입지 않았다는 기사는 성경에 없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고 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병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도 기도하여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었고, 오늘까지도 많은 교인들이 기도하여 병 고침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이러한 권능을 받았음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을 보시고 안심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올려지사’란 하늘로 들림이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늘로 그대로 빨려 올라가셨습니다. 마치 지남철에 끌려가듯이 하늘로 올리워져 가셨습니다. 장차 우리도 하늘나라로 올라 갈 때에 예수님이 하늘로 올리워져 가셨던 것처럼 하늘로 올리워져 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리워져 가심으로 더 이상 육적인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관계로 예수님은 성령 하나님으로 제자들과 그리고 예수를 믿는 성도들과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신앙고백에도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은 것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로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26:64)고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다는 말씀은 성자 하나님으로 회복하심을 의미합니다. 성자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사역을 다 마치시고 하늘로 올리워져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하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그 예수님은 다시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 구원이 완성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늘로 올리워 가셨듯이 다 함께 하늘로 올리워져 갈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자는 정죄를 받아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부활을 믿어 구원을 얻어 하늘로 올리워져 가서 천국에서 영원복락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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