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 --------------------/마가복음

막 15장 1-5절, 사 53장 1-9절(대답하지 아니하신 예수님) - 허창수

by Preacher 2023. 6. 23.
728x90
반응형

막15장 1-5 (사53장 1-9)

대답하지 아니하신 예수님

허창수 목사 5.03.29 1

동성교회 [창원시] https://https://cafe.daum.net/huhcs48/

 

한 여인이 버려진 아이를 데려다 자신이 낳은 딸처럼 잘 키웠습니다. 딸은 자신이 버려진 아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어머니의 사랑만 받고 자랐습니다. 결혼을 해서 어머니를 떠나 신랑과 행복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후 나이 많아 죽게 되었을 때 딸이 간호를 하면서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자신이 정말 어머니가 낳은 딸이냐고? 그러나 어머니는 딸의 눈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했습니다. 버려진 아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딸의 마음에 상처를 줄까봐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대답을 하면 그 사람에게 해가 될까봐 대답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은 새벽에 공회를 열어 예수를 죽이고자 의논을 하여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겼습니다. 빌라도는 로마 황제로부터 파송을 받은 유대 총독입니다. 유대인들에 대한 일반적인 재판은 유대인의 공회에서 할 수 있었지만, 사형만은 로마 총독의 권한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긴 것입니다.

 

빌라도는 유대 공회로부터 넘겨받은 예수를 재판을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소문을 들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병든 자들을 고쳐주고, 배고픈 자들을 먹이고, 죽은 자도 살리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악한 사람이 아니라 선을 베푸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빌라도는 재판을 위해서 공식적으로 예수님에게 죄를 찾아보았습니다. 역시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눅23:22) 고 하며 예수님을 놓아 주고자 애를 많이 썼습니다.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고 예수님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라고 소리 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고 하며 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셨습니다(5). 빌라도는 예수님의 입에서 ‘저들의 말은 다 거짓말이다’ 라고 말해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시므로 빌라도는 놀랍게 여겼습니다.

 

간첩이 잡혀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을 때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묵비권을 합니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하면 비밀이 탄로가 나기 때문에 입을 열지 않습니다. 대답을 하면 숨은 여러 사람들이 잡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북한에 살고 있는 자기 가족들이 다 죽게 되기 때문에 입을 열지 않은 것입니다. 고문을 받고 매를 맞으면서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 한 마디만 하면 고문도 받지 않을 수 있지만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으면서 말하지 않는 것은 참기 어려운 심적 고통입니다.

 

사람들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를 모릅니다. 만약 내일 일을 안다면 좋을 것 같지만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대로 살고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뜻을 모르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일 일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점쟁이에게 묻기도 하고 점도 칩니다. 그런다고 해서 내일 일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내일 일을 알지 못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죽는 날도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아무도 모릅니다. 만약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을 안다면 좋을까요?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을 안다면 상당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내일 죽을지라도 모른 것이 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미래를 다 아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을 다 아십니다. 대제사장들에 의해 잡혀 끌려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 다는 것을 다 아셨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처럼 어떻게 죽을지를 모르셨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날이 새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다 아셨습니다. 그렇다면 빌라도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하면 죽음을 피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답을 하지 않으면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죄가 없다’는 것을 여러 번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난 죄가 없소’라는 한 마디만 대답해도 무죄 석방이 될 수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으로부터 말 한 마디만 해도 무죄 석방 해 주려고 했습니다.

 

빌라도가 묻는 말에 아무것도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물었을 때 예수님은 “네 말이 옳도다”(2)라고 대답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과 빌라도와 대화를 여러번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라도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고 빌라도에게 물었습니다. 빌라도는 ‘내가 유대인들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라고 다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념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다시 빌라도는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요19:33-38).

 

이처럼 예수님과 빌라도가 묻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그런데 그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그에 대한 대답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몰라서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대답만 하면 무죄 석방할 수 있는 데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잘못이 없기 때문에 얼마든지 대답할 수 있는 데도 예수님은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말 한 마디만 하면 가이사 황제의 이름으로 무죄 석방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의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대답하지 않으면 죄인이 되어 죽게 되지만 대답하면 무죄로 석방되는 것입니다. 다른 죄수들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변명을 해서라도 풀려나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 대답을 하셨더라면 예수님은 무죄 석방 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예수님은 구세주가 되실 수가 없게 됩니다. 더 이상 죄인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대답을 하시지 않으시므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인간인지라 대답을 하지 않으실 때 상당한 심적 고통을 느꼈을 것이라고 봅니다. 잘 아는 것을 말하라고 했을 때 말하지 않고 참는다는 것은 심리적인 고통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답을 하지 않으신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는 군인들에게 베드로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1: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는 이 말씀은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대답하지 않으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대답을 하면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마시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신 뜻이 무너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창3:15)는 원시복음이 죽은 복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어기는 불순종이 되기 때문에 예수님은 대답을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의 예언된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대답을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약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아주 자세하게 예언하였습니다. 이사야는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떨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라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는 예언된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입을 열지 않으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대답을 하셨더라면 이사야가 예언한 말씀을 비롯한 성경에 예언된 모든 말씀이 물거품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생명력을 잃게 되는 죽은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찍 예언된 말씀대로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하셔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림을 당하고 상하고 징계를 받으셔야 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습니다. 우리 모두의 죄악을 예수님께서 담당하시므로 죄인 아닌 죄인처럼 징벌을 받으셔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이 대답을 하지 않으신 또 다른 이유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대답을 하셨더라면 우리의 구원은 이룰 수가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하여 우리는 지옥 형별을 면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예수님은 대답을 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입을 여시고 대답을 하셨더라면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 대답을 하시지 않으시므로 우리는 속죄함을 받아 거룩한 백성, 성도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대답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그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답하지 않은 더욱 중요한 이유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셨기 때문에 대답을 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대답을 하시면 예수님 자신은 무죄로 풀려날 수 있지만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십자가에 목 박으라고 외치는 많은 유대인들은 죄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판 가룟 유다까지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마지막 밤에 떡과 잔을 나누실 때 예수님은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마26:2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몹시 근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을 뻔 하였느니라’(마2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가룟 유다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자들과 조롱하고 비난하는 자들을 비롯한 서서 구경하는 관리들 모두 유대인들입니다. 소리치는 유대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대답을 하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상칠언’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라”(눅23:34)입니다. 무엇보다도 십자가에 달려서 제일 먼저 자신을 고발하고 죽이는 유대인들을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 대답을 하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빌라도 앞에 예수님이 대답하지 않으시므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지옥불 속에 던져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속죄함을 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빌라도 앞에 대답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입을 열지 않으시므로 십자가에 달려 살찢고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기억하시면서 나와 여러분은 떡과 살을 먹고 마시기를 바랍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