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32장 1- 15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허창수 목사 14.07.22
동성교회 [창원시] https://https://cafe.daum.net/huhcs48/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바로왕의 학대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넘실거리든 홍해가 갈라져 마른 땅 같이 건너고 따라오는 애굽의 군대가 물에 빠져 죽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며 좋아했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광야를 40년을 걸어 요단강 건너 가나안이 멀리 보이는 곳까지 왔습니다.
요단강 가까이는 물이 풍부하고 넓은 푸른 초원이 였습니다.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축들도 초장에 풀을 뜯으며 맑은 물을 마시며 뛰며 좋아하는 것을 보니 마치 지상 낙원과도 같았습니다. 특별히 가축이 많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들에게는 목축할 장소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모세에게 ‘이 땅은 목축할 만한 장소요 우리에게는 가축이 있기 때문에 이 땅을 우리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5). 이 말을 들은 모세는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 하느냐”라고 크게 책망하였습니다(7).
약속의 땅 가나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냥 들어가서 살면 되는 비어있는 땅이 아닙니다. 가나안에는 이미 여러 족속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다는 말을 듣고 가나안 사람들은 성을 쌓고 무장을 하고 단단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과 싸워 가나안을 빼앗아야 합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은 오늘까지도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르우벤과 갓 자손들이 ‘우리는 요단을 건너지 않겠다’고 한 말은 싸우려고 준비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낙심케 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아 있고자 하느냐”고 하며 책망을 했습니다(6).
모세는 38년전에 가네스바네아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습니다. 당시 모세는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 두 사람을 가나안을 탐지하고 오라고 보냈습니다. 그래서 열두 명의 정탐꾼들은 40일 동안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와 이스라엘 회중 앞에 보고를 했습니다. 그때 열 명의 정탐꾼들은 가나안 사람들은 키가 크고 그들 앞에 우리는 메뚜기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들과 싸우면 우리는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열 명의 이와 같은 부정적인 보고를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낙심하여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그때 열 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말을 듣고 모세를 원망하였던 사람들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유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원망했던 사람들 모두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14절에 “보라 너희는 너희 조상의 대를 이어 일어난 죄인의 무리로서 이스라엘을 향하신 여호와의 노를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라고 하며 르우벤과 갓 자손들을 크게 책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만일 돌이켜 여호와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다시 이 백성을 광야에서 버리시리니 그리하면 너희가 이 모든 백성을 멸망시키리라”고 말했습니다(15).
르우벤과 갓 자손들은 단순하게 생각하여 자신들에게 가축이 많으므로 목축할 만한 장소라서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지만 그들의 말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낙심케 하는 것이라는 것까지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기들만을 위하는 생각으로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 백성들을 멸망시키게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짧은 생각이 공동체 전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가를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 좋은 것을 하고자 할 때가 있습니다. 자기 좋은 대로 하므로 다른 사람들을 낙심케 하여 멸망케 하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요단강만 건너면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가나안 땅을 밟을 수 있는데 이들이 낙심케 하는 말을 하므로 해서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게 한다면 지난날 가네스바네아와 같은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낙심케 하는 말은 공동체 전체를 망하게 하는 무서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내 한 사람의 잘못이 공동체 전제에 큰 불행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싸구려 옷만 입던 사람이 큰맘 먹고 백화점에서 비싼 옷을 한 벌 사서 입고 친구들의 모임에 갔더니 친구들이 ‘어디서 삿느냐?’ ‘얼마짜리냐?’ ‘옷이 날개라고 한 인물 난다’. 모두 한 마디씩 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색깔이 촌스럽구만’, 그리고 옷을 이리 저리 뒤지며 ‘바느질이 왜 이래’하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부터는 그 옷을 더 이상 입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칭찬의 말 보다 한 사람의 낙심하는 말을 듣고 더 이상 그 옷을 입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 것입니다.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합니다. 별로 나아지지도 않았는데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잘 잡수시고 운동을 하면 회복 되겠습니다’는 말을 하면 환자들은 자기의 병이 많이 나은 것으로 생각 합니다. 건강한 사람이 어떤 전문의로부터 ‘요즘 얼굴이 안좋은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면 자신에게 어떤 병이 있는가보다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의사에게 갔더니 ‘좋지 않다’고 하였다면 그날부터 잠이 오지 않고 밥맛도 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큰 병원에 이름있는 의사에게 진찰을 했더니 ‘조심하셔야 합니다’는 말을 들었다면 그때부터 중환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큰 병이 있다는 말은 듣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이 환자에게 주의하라고 하는 평범한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낙심하게 되면 건강한 사람도 중환자가 되는 것입니다.
낙심케 하는 말은 건강한 사람도 중환자로 만듭니다. 낙심케하는 말은 희망과 용기를 꺾습니다. 믿음 좋은 사람도 낙심케 하는 말 한 마디로 믿음을 떨어지게 됩니다. 봉사 잘 하던 사람도 낙심케 하는 말 한 마디를 들으면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잘 다니던 사람도 교회를 떠나게 만듭니다. 낙심하게 하는 말은 다른 사람들을 멸망케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르우벤은 이스라엘의 장자입니다. 장자인 르우벤이 한 말은 백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큽니다. 특별히 중직자는 성도들에게 신앙생활에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혹 농담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낙심케 하는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는 자세가 다른 성도들을 낙심케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광야에서 많은 가축들을 돌보기가 매우 힘들고 어렵다가 푸른 초원을 보았을 때 목축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가축들이 풀을 뜯고 맑은 물을 마시며 좋아하는 것을 보니까 요단을 건너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 기업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입니다.
르우벤과 갓 자손들도 광야에서는 가나안을 바라보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물이 풍부하고 넓은 초원을 보고 마음이 바퀴어진 것입니다. 많은 가축 떼가 있기 때문에 가축을 키우기에 좋은 목초지를 보았을 때 더 이상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 기업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 요단 저 쪽에서는 기업을 받지 아니하겠나이다”(19)라고 말을 했습니다. ‘요단 저 쪽’,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 맺은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에 들어가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애굽에서 부러 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요단을 건너지 않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 맺은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신앙적으로 이해를 한다면 죄악 세상에서 불러내신 것은 천국에 들어가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좋아 천국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가 전쟁 후 살기 어려울 때 한국교회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교회가 멀어도 아침 저녁으로 걸어 다녔습니다. 이웃 교회에 부흥회를 하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모여 은혜를 받았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교회가 가르치는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때 성도들은 ‘주님 고대가’를 많이 불렀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를 고대합니다’는 눈물을 흘리며 불렀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요즘 성도들은 주님 고대가를 잘 부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이 천천히 오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살기가 좋다는 것입니다. 지난날에는 먹고 살기가 어려울 때는 주님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주님 오시지 않아도 좋다는 것입니다.
살기가 편하고 좋으니까 천국에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 것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것이 미련해 보이는 것입니다. 시간이 있을 때 한 번씩 예배드리는 것이지 매 주일, 오전 예배드리고, 오후예배를 드려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기도는 문제가 있을 때 하는 것이고 문제가 없기 때문에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교회마다 오후 예배드리는 숫자가 급속도로 줄어듭니다.
전도해라, 십일조해라, 특별새벽기도 하라는 소리를 교인들은 듣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교회들은 교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힘들게 믿지 않아도 잘 살고, 자녀들 잘 자라고, 별 걱정되는 일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꼭 주일 지켜가며 믿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르우벤 자손이 자신들처럼 가축이 많은 갓 지파와 함께 모세에게 말 한 것입니다. 혼자 욕심대로 무엇을 요구하기가 멋쩍을 때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용기가 나는 법입니다. 그래서 자신과 형편이 비슷한 사람을 찾아 함께 하자고 합니다. 그래서 르우벤 자손은 자신들과 같이 가축이 많은 갓 지파에게 모세에게 가서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모세는 ‘요단을 건너지 않게다’는 말은 여호와를 떠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만일 돌이켜 여호와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다시 이 백성을 광야에 버리시리니 그리하면 너희가 이 모든 백성을 멸망시키리라”고 말했습니다(15). 너희가 요단을 건너지 않으면 모든 백성을 멸망시키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낙심케 하는 말은 많은 사람들을 멸망케 하는 독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낙심케 하는 말을 하여 다른 사람들을 멸망케 하지는 않았는지, 다른 성도의 믿음을 떨어지도록 하지는 않았는지, 혹 교회를 떠나도록 하지는 않았는지 한 번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로부터 책망을 듣고 자신들의 잘못을 즉시 깨닫고 모세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 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서 가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받기까지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겠”다고 말했습니다(17,18). 자신들은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가서 싸우겠으며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 땅을 각기 기업으로 받기까지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모세는 “그 땅이 여호와 앞에 복종하게 하기까지 싸우면 여호와 앞에서나 이스라엘 앞에서나 무죄하여 돌아오겠고 이 땅은 여호와 앞에서 너희의 소유가 되리라”고 말했습니다(22). 그러나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고 하며 다시 주의를 주었습니다(23).
모세로부터 책망을 듣고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무장을 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요단을 건넜습니다(수4:12). 가나안을 쳐서 빼앗을 때 다른 지파들보다 앞서 싸웠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을 다 빼앗고 이제 땅을 분배할 때 여호수아는 모세가 주리라고 약속한 요단 동편을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 주었습니다(수13:15,24).
르우벤과 갓 자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들과 싸우는 일이였습니다. 요단을 건너지 않겠다든 르우벤과 갓 지파의 자손들은 요단을 건너 가나안을 빼앗기 위해 앞장 서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요단 동편 푸른 초원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어렵고 힘들게 고생하다가 형편이 좋아지면 믿음이 떨어지고 다른 사람들까지도 낙심케 하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동성교회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과 언약 맺은 백성으로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셔서 요단 건너편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원하는 대로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부탁합니다.
'구약 -------------------- > 민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 25장 1~13절(이스라엘의 음행과 비느하스의 질투) - 김준범 (0) | 2023.05.30 |
---|---|
민 27장 12~23절(목자 없는 양과 같이) - 김준범 (0) | 2023.05.16 |
민 27장 15-20절(구원자) - 이백민 (1) | 2023.05.16 |
민 30장 1-5절(서원과 성도의 책임) - 안효관 (1) | 2023.05.16 |
민 32장 1-9절(이스라엘을 낙심케 말라) - 배혁 (1) | 2023.04.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