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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민수기

민 32장 1-9절(이스라엘을 낙심케 말라) - 배혁

by Preacher 2023.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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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32장 1-9

이스라엘을 낙심케 말라

배혁 목사 10.20.2019

샌안토니오한인연합감리교회 http://shttp://sakumc.org

 

신앙 생활을 하면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내가 속해있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혼자 믿는 것이 아니라,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모여 신앙의 공동체, 교회를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지혜로운 신앙인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신앙공동체가 견고하게 설 수 있도록 힘을 씁니다. 만약 공동체가 흔들리게 된다면 결국은 그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신앙도 흔들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공동체는 내 개인의 신앙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이 신앙적으로 잘 설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가지고 행하게 됩니다. 신앙의 공동체가 분열되지 않고 견고하게 서도록 하는 것이 구성원들의 과제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가 관심하는 것 중에 하나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의 믿음 공동체로서 하나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에게 주어진 과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의 신앙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모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공동체의 위기를 감지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낙심케 만드는 말이 이스라엘 안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40년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땅에 들어가도록 이스라엘을 준비시키십니다. 모세에게 인구조사를 하도록 시킵니다. 그리고 모압과의 싸움에서 완승을 거두게 하십니다. 모압의 왕, 시혼과 옥은 강력한 왕이었는데 그들을 물리쳤습니다. 가나안 사람들도 이 소식을 듣고서 잔뜩 놀랐습니다. 이스라엘도 이 승리를 통해서 가나안에 들어갈 자신감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또 실패할까봐 염려하며 진노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위험을 감지한 것입니다. 그것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들의 말 때문입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와서 자신들은 요단강을 건너지 않고, 모압평지에 있는 목초지에 머무르고 싶다고 했을 때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두 지파는 심히 많은 가축 떼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늘 가축을 먹일 목초지에 관심했고, 모압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그 땅에 목초지가 좋아서 그곳에 머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르우벤과 갓 지파사람들이 모세를 찾아가 “요단 동편을 우리에게 주신다면 이곳에서 우리를 짓고 양을 키우며 자녀를 위해서 집을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5절, 후반에 보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 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들이 하는 말이 단순히 좋은 땅에 자신들이 머무르는 일로 끝나지 않고,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지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서 말합니다. 민수기 32:7,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느냐” 모세는 그 두지파의 말이 다른 지파를 낙심하게 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만들 수도 있음을 경고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로 약 38년전에 가데스바네아에서 처음으로 가나안 땅을 들어가려고 준비했던 때를 말합니다. 민수기 32:9, “그들이 에스골 골짜기에 올라가서 그 땅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갈 수 없게 하였었느니라”

 

가나안 땅을 들어가려고, 정탐꾼을 보냈는데, 10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낙심하게 되었고 그 결과 그 당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을 메뚜기와 같이 별볼일 없는 존재로 말했던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낙심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함으로, 결국 낙심한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출애굽 초창기에 이미 사람들을 낙심케 하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를 체험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말이 다른 사람의 신앙이나, 공동체 전체에 영향력을 미침을 인식해야 합니다. 사실 10명의 정탐꾼의 믿음없는 말을 통해서 200만명이나 되는 많은 이들이 낙심하고 하나님을 원망함으로, 바로 앞에 있었던 가나안 땅을 들어가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의 말 한마디는 다른 신앙인들과 공동체에 영향력을 끼침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 신앙공동체안에 있을 때에, 어떤 말이 서로의 신앙을 세우고, 공동체를 세우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견고한 신앙공동체로 세워나가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말하고 행해야 할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우리가 때로는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고, 나만의 유익만을 생각하다가 다른 이들을 낙심케 하기가 쉽습니다. 모세는 두 지파들이 와서 이야기 하는 말을 들으면서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한 말이 다른 지파들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끼칠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낙심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주신 땅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낙심하게 하다.’ 라는 뜻에는, ‘방해하다. 저지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두 지파의 말은 다른 지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두지파가 그러한 말을 할 때에는 다른 지파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낙심하게 하고자 의도적으로 했던 말이 아닙니다.

 

사실 두지파의 관심은 자신들의 지파에만 관심했습니다. 좋은 목초지에서 가축들을 기르며, 좋은 집을 짓고 가족들과 함께 살면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이미 땅을 차지했으니,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에 대한 이기적인 생각이 다른 이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했고, 다른 이들을 낙심케 하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말을 할 때에 조심해야 할 것은 우리의 말이 내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하고, 다른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입니다. 두 지파가 모세에게 자신들의 뜻을 말하기 전해 더욱 생각해야 했던 것은, 자신들의 말을 들을 다른 지파들의 형편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지파들은 가나안과의 전쟁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작은 힘이라도 아쉬운 때인데, 두지파나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다른 지파들은 낙심하고 사기가 떨어져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경험한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반역할 것이 뻔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의 영향력에 대해서 경시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공동체 전체에 영향력을 끼칩니다. 때로 다른 이들을 낙심하게 만들때에 낙심이 공동체 안으로 퍼져서, 그 신앙의 공동체를 낙심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하기도 합니다.

 

지난 부흥회때에 오신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신은 전화를 잘 안받는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한 교회에서 사역하시면서 건축을 세번하셨는데, 건축을 할 때마다 부담을 느끼셔서 교회를 떠나는 분들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시기 전에 그분들은 목사님께 전화를 주셔서, 긴히 드릴 말씀이 있으니 식사한번 하자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십중팔구 교회를 떠나겠다는 말씀을 하셔서, 그 이후로 전화오는 것에 대해서 긴장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일들이 빈번하면, 뭔가를 해보려고 했던 다른 사람들도 힘이 빠지고 낙심하게 마련입니다.

 

신앙의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관계들입니다. 신앙적으로 서로 잘 성장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라고 맺어주신 공동체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낙심하게 하는 일들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2. 모세의 경고를 들은 갓, 르우벤지파는 그제서야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도 자신들의 말이 이토록 심각한 일을 야기할지는 몰랐을 것입니다. 이제 이 두지파는 다른 지파들을 낙심케 하는 것이 아니라, 격려할 방법을 모세에게 제시합니다.

 

르우벤과 갓지파는 모세에게 약속을 합니다. 자신들이 요단강을 건너가지 않겠다는 말을 취소하고, 자신들도 다른 지파와 같이 요단강을 건너가겠는데, 다른 지파들 앞에서 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앞장서서 가나안 땅에서의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받기까지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단강 동편의 기업을 받았으니, 서편의 땅을 기업으로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모세는 갓과 르우벤 지파의 말을 듣고서 만족케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라고 허락합니다. 르우벤과 갓지파는 이제 더 이상 다른 형제를 낙심케 하는 자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격려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자신들은 이미 땅을 얻었어도, 요단강을 건너가 이제 다른 형제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앞장서서 싸우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위해 싸우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갓과 르우벤 지파는, 자신들의 풍요와 편의를 위해서 형제를 낙심시킬 만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도리어 하나님과 형제를 위해서 싸우는, 격려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할 때에 상대방을 격려하고 공동체를 세우는 말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말을 들을 때에 격려가 됩니까?

 

1)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격려하실 때에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처음 나타나셔서 사명을 주시면서 그를 격려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12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말씀을 여호수아를 비롯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는 것은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우리도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고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10명의 정탐꾼처럼, ‘우리가 우리를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은데, 그들이 보기에는 어떠하랴’ 라면서 낙심케 하는 말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격려하며 믿음의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강한 팔로 붙잡아 주시고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2) 그리고 또 격려할 말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우리도 서로 함께 할 것을 말하며 격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좋은 땅을 차지했으니, 당신들이 할 일은 당신들이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지파는 말을 바꿨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공동체이니, 내가 함께 돕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먼저 앞장 서겠습니다. 우리 힘을 합해서 주님을 뜻을 이루어 봅시다." 라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격려를 바라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안에서도 자녀가 부부가, 부모가 우리의 격려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나도 늘 당신곁에 있을테니 힘을 내세요”라는 말로 격려해야 합니다. 샘터안에서, 교회안에서 따뜻한 격려의 한마디를 통해서 교회가 믿음안에서 굳건하게 서게 되고, 그것이 또한 각 성도들이 신앙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나의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게 한 것은, 서로가 믿음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온전한 공동체로 세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향한 격려가 필수적인 것입니다.

 

3. 그런데 믿음의 공동체가 견고하게 서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신앙의 자세가 있는데, 그것은 낙심할 만한 상황을 만났을 때에도 낙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서로 낙심하게 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지만, 낙심케 하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악의가 없더라도, 상대방을 알지 못해서, 때로는 실수로 상대방을 낙심케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나를 낙심시킨다고 해서, 낙심하여 믿음을 잃어 버리게 되면, 그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돌릴 수 있지만, 결국 손해는 당사자의 몫입니다.

 

10명의 정탐꾼이 사람들을 낙심케 했지만, 그렇다고 정탐꾼들이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낙심케 된 모든 이들이 그 낙심의 결과로 광야에서 죽었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낙심하는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을 핑계할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6:9절에서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선한 일을 할때도 낙심이 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도 우리를 낙심케 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 주위의 환경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낙심치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탄은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우리를 낙심하게 합니다.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도 그렇게 합니다. 모르는 사람을 통해서도 그렇게 합니다. 때로는 내 스스로가 낙심하게 되는 일들도 있습니다.

 

요즘 어떤 말을 듣거나 사람을 보고서, 환경으로 인해서 낙심하는 일이 있습니까? 그래서 믿음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고 포기할까하는 마음이 생기십니까? 그럴 때에 우리가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과 행동에 사로 잡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모든 낙심된 일을 능히 이길 소망과 힘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 낙심할 일이 생길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낙심을 이기는 사람들이 많을 수록 믿음의 공동체는 더욱 강건하게 세워져 나가는 법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신앙공동체인 교회는 우리의 신앙의 터전과도 같습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건강할 때의 우리의 믿음생활도 강건해지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 또한 흔들리고 연약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신앙공동체가 든든히 서는 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신앙 공동체가 든든히 서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낙심하는 말이 아니라, 격려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위기는 외부에 있지 아니하고, 그 내부에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은 가나안 백성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낙심하게 하는 사람들의 말에 의해서, 공동체 전체가 낙심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믿음을 잃어 버렸던 것입니다.

 

나에게 유익이 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형편과 어려움을 살피지 않고, 그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낙심케 만든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공동체에 대한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내가 좀 손해를 보는 것같아도, 다른 형제들과 연합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들을 격려하는 일에 힘쓴다면 그 공동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이들로 말과 행동으로 인해서 낙심하지 않는 신앙의 자세도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의 말과 행동에 기초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말씀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낙심케 하는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소망가운데 살 때에 내 믿음도 살고, 공동체도 살아나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이들을 모아서 교회를 이루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오늘날, 믿음의 공동체들이 낙심할 만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를 비판하고 낙심케 하는 세상적인 소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도 낙심케 하는 소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신앙공동체가 건강하게 성장하여, 주님의 일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서로를 믿음으로 격려하며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서로에게 허락하신 믿음의 공동체를 잘 세워감으로, 각자의 믿음으로 잘 성장하여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고 영광돌리는 성도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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