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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베드로전서

벧전 2장 1-3절(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라!) - 이삼규

by Preacher 2023.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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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2장 1-3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라!

이삼규 목사 20160710

낙양교회 http://nakyang.onmam.com

 

벧전 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벧전 2:2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로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썩지 않을 씨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풀은 시들고 꽃도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습니다.

 

우리에게 최초로 주어진 성경은 하나님께서 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참된 진리를 담고 있는 믿을 만한 원전(元典)입니다. 이 원전에 있는 모든 것은 참됩니다. 하지만 참된 모든 것이 이 원전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성경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구원과 관계된 것을 가르쳐줍니다! 성경이 관심을 갖는 것은 죄와 죽음에서의 구원, 도덕적 회복, 그리고 영적 중생(重生)입니다.

 

성경의 목적은 우리를 유용하고 옳은 사람으로 만들고, 장성한 그리스도인의 성숙함까지 이끌어주며, 영원한 천국에 이르는 영적 여정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벧전 2:2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갓난아기들은 젖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젖도 좋은 젖이 있습니다. 좋은 젖을 먹는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 얻고 거듭나고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회복되고 주의 날에 대비하기 위하여 알아야 할 진리가 성경에 들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우리 삶을 위한 유일한 원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과학이나 수학이나 정치 같은 것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과 관계있는 것들에 대해 최종적이고 참된 정보를 제공하는 유일한 원천입니다.

 

발견 가능한 진리와 발견 불가능한 진리

 

우리가 성경에서 보게 되는 진리들 중에는 ‘계시로서의 진리’들이 있습니다. ‘계시’는 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진리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전에 알려지지 않았다가 계시를 통해서 알려진 진리들을 ‘발견 불가능한 진리’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발견이 가능한 것들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원자(atom)를 발견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1세기 전에 루크레티우스라는 사람은 그의 책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원자’라는 것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모든 물질의 구성요소가 되는 작고 단단한 조각이 있는데, 예를 들어 콘크리트 건물을 구성하는 작은 모래와 시멘트 같은 이것이 원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물질을 분해하면 작은 입자들이 생깁니다. 루크레티우스는 현대적 과학 기술과 정보의 도움을 받지는 못했지만 원자에 관한 진리에 근접하는 개가를 올렸습니다. 이와 같이 분자 구조나 분자 구조의 성질을 가진 물질은 발견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진리들 중 일부도 발견 가능한 것들이 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 사실이고, 성경의 등장인물들이 그분의 감동으로 예언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의 일부 예언들은 발견 가능한 것들이었습니다.

 

시 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시 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물론 이것은 다윗이 영적 감동을 받아 기록한 시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계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 말은 누구라도 자연을 보고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라도 하늘을 쳐다보고 “저 끝없는 우주를 보니 인간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무신론자나 공산주의자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한편 시편 8편에서 밤하늘을 묵상했던 다윗이 한낮의 하늘을 묵상의 소재로 삼아서 쓴 시도 있습니다.

 

시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시 19: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이 땅에서 태양을 올려다보면 태양이 이런 다윗의 묘사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태양은 화려한 빛을 마음껏 발하는 세상의 멋진 신랑입니다. 이 두 편의 시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지만 계시를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누구라도 이런 얘기는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발견 가능한 진리입니다.

 

발견 불가능한 진리와 발견 가능한 진리 사이의 구분이 공연히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구분은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발견 가능한 진리도 영감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리가 담긴 정경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발견 불가능한 진리가 어떤 것입니까?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 진리는 아무나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로서의 진리”는 발견 불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발견 가능한 진리와 발견 불가능한 진리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밤하늘의 달과 별을 올려다보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시8:4)라고 말했습니다. 자연을 볼 때 나올 수 있는 이런 반응은 누구에게나 가능합니다. 자연을 관찰하고 사리에 맞게 사색하면 누구라도 이런 말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라는 진리도 그럴까요? 이것은 영감된 말씀일 뿐만 아니라 계시된 진리입니다. 계시된 진리는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우주의 영광과 쓰레기

 

우리가 이미 살펴본 시편 중 하나에서 알 수 있듯이 다윗은 그의 인간의 눈으로 ‘인류’를 관찰하였고, 그 다음에는 예언자의 시각에서 ‘인자(人子)’를 보았습니다. 일종의 이중적 계시에 의해 다윗은 인류와 인자를 보여 주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한쪽으로는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된 인류를 보여주었고, 다른 쪽으로는 인류 가운데서 살기 위해 여자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실 위대한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준 것입니다. 다윗의 말에 의하면, 인류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인자(人子)도 그 짧은 기간 동안에는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시 8: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개역개정)

시 8:5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개역)

 

프랑스의 위대한 수학자요 철학자인 파스칼은 그의 책 ‘팡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자연에서 제일 연약한 존재인 갈대와 같다. 하지만 생각하는 갈대이다. 우주가 인간을 으스러뜨리기 위해 일어설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한번 내뿜는 독가스나 물방울만으로도 인간을 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가 인간을 으스러뜨려 죽인다 해도 인간은 우주보다 고결하다. 왜냐하면 인간을 죽이는 우주는 자기의 능력을 모르지만,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 알기 때문이다.

 

파스칼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키메라(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자의 머리 염소의 몸 뱀의 꼬리를 하고 불을 뿜는 괴물)같지 않은가! 인간이 얼마나 희한한 존재인가! 얼마나 이상한 괴물인가! 얼마나 혼돈스러운 존재인가! 얼마나 모순덩어리인가! 얼마나 경이로운가! 만물을 판단하는 자아가 연약한 지렁이이며, 진리의 보고이자 불확실성과 실수로 가득찬 웅덩이며, 우주의 영광이며 수치! 이것이 인간이다! 파스칼의 이런 지적이 기분 좋은 것은 아니지만 사실이기 때문에 차라리 이것을 직시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주의 영광이며 동시에 우주의 쓰레기입니다. 만일 우리가 시궁창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우주의 쓰레기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고 우리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우주의 쓰레기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분의 속량 사역을 완성하시면 우리는 다시 우주의 영광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때 그분이 오시어 그분의 성도들에게 찬양을 받으실 것이고, 그분을 찾는 모든 이들 안에서도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인간은 알 수 없고 가엾고 멋있고 약하고 신비로운 존재지만, 자기가 바로 이런 존재라는 것을 아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인간은 죄를 짓는 유일한 동물이지만, 동시에 자기가 죄를 짓는다는 것을 알고 슬퍼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인간은 웃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지만,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고 모순된 존재인지를 알고 자신을 비울을 수도 있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현재의 자신보다 더 나은 존재로 발전하기를 갈망하는 동물은 인간뿐입니다. 오직 인간만이 현재의 자신에 불만을 갖고 더 나은 존재로 변하려고 발버둥 칩니다. 이런 사실이 무엇을 암시합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분의 형상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갖고 있지만 다른 동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챔팬지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없습니다.

 

또한 인간은 기도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예배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예배를 통해 그분과 교제하도록 지음 받은 지구상의 유일한 동물이 인간입니다. 사자는 먹잇감을 찾아 포효하고, 새는 수풀에 둥지를 짓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눈이 내리지만 눈이 기도하지는 못합니다. 새도 사자도 기도하지는 못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 우리는 자연이 기도한다고 상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머릿속의 상상일 뿐입니다. 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 우리는 “바람이 탄식하며 하늘을 향해 기도한다.”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상상일 뿐입니다. 바람은 그냥 부는 것이고, 사실은 우리가 탄식하는 것입니다.

 

작은 새가 부리를 물에 담갔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을 마십니다. 그것을 보고 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 새는 물을 목구멍으로 넘기기 위해 턱을 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새는 본능적인 동작을 할 뿐입니다. 기도하는 새는 없습니다. 인간이 광대한 우주 안에 있는 아주 작은 동물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영적 동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인간은 세상의 모든 바람, 지구상에 솟아 있는 모든 산, 바다로 흘러드는 모든 강보다 더 큰 존재입니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와 우리 가운데 거하신 것입니다. 영원하신 아들이 왜 인간이 되셨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왜 사람의 아들, 즉 인자(人子)가 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가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우주의 영광인 동시에 쓰레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인류의 머리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체로 오신 것은 우리가 있는 곳까지 내려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 생명의 최초 단계부터 완전한 성인에 이르는 인간의 모든 성장과정을 거치시며 인간의 모든 것을 체험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있는 곳까지 내려오셨습니다. 만일 그분이 궁전에서 태어나셨다면, 오두막이나 작은 시골집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세상의 가장 가난한 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는 인류의 머리이십니다. 그분 아래에서 인류는 잃어버린 주권을 회복할 것입니다.

 

히 2:8 만물을 그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음을 맛보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기서 ‘맛보다’라는 말은 음식을 조금 먹어본 후 쓰다고 거부하는 어린애처럼 ‘일단 살짝 맛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맛보다는 것은 ‘체험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모든 인간을 위해 죽음을 체험하셨습니다. 태어나고, 성인으로 성장하고, 죽고, 그 후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교회를 구원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교회란 속량 받고, 거듭 나고, 보혈로 씻음 받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 즉 참된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입니다. 참된 교회는 가짜 교회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로 인정하시는 참된 교회는 그분이 거부하시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발아래 복종하는 것이 우리의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믿음의 눈에는 보입니다. 믿음은 일종의 시력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눈이 있다면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을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믿고 행동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말로는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믿음이 없다면 믿음 없이 행하게 됩니다. 우리는 계시를 믿는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영감으로 기록된 것을 믿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믿습니다. 인간의 형상에 따라 성자의 성육신이 이루어진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우주의 수치에서 다시 우주의 영광이 되도록 모든 이를 위해 죽음을 맛보신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이런 것들을 믿는다면 우리는 이런 것들을 눈으로 보듯이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행동으로 나타나기 전까지는 사실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삶을 믿음과 일치시키는 사람이 진정한 신자입니다. 하지만 삶이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참된 신자는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를 위해 죽음을 맛보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분이 만물에 대해 곧 승리를 거두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만물을 그분의 발아래 복종시킬 것이라고 믿습니다.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정결하게 하실 것입니다. 통치권을 가지신 그분이 오셔서 모든 피조 세계의 주님이 되시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히 2:8 만물을 그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히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만물을 예수님의 발아래 복종케 하셨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의 성취가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맛보기 위해 천사보다 잠시 낮아지신 예수님을 봅니다. 우리는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고 전능하신 아버지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을 봅니다. 그분이 다시 오시면 만물을 그분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모든 것이 성경에 계시된 말씀대로 이루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분의 재림의 날을 위해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가진 재물이 그 날을 위해 쓰이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진 재능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이 그때를 위해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시간도 그때를 위해 투자되기를 원합니다. 그 날이 당장 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날을 위해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예수님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다는 것을 전심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분이 다시 오셔서 그분의 능력으로 통치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계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말씀의 능력이 우리 삶 속에 풍성하게 나타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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