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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이사야

사 53장 4-6절(십자가에 달리신 예수1) - 신만교

by Preacher 2024.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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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53장 4-6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신만교 2016.03.20

화평성결교회 [의정부시] http://whttp://www.hpehc.org

 

본문내용

(사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오늘은 종려주일이며, 고난주일입니다. 금 주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주간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끔찍하고 치욕적인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셨습니다. 오늘 종려주일에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수난의 마지막 주간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금주 금요일 오전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오후3시 운명하십니다.

 

의학적으로 본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에 대한 영상을 약 10분 동안 보겠습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yNHXxtLJEDc).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왜 이런 끔찍한 십자가 형틀에 달려 죽으셨는가? 예수님이 무슨 몹쓸 죄라도 지었는가? 예수님이 무슨 반역죄라도 저질렀는가? 예수님은 의로우시고 진실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런 고난과 고통을 당하실 이유가 전혀 없으십니다. 그럼에도 왜 이런 수난을 당할 해야 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의 의미는 무엇인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1.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나의 죄를 대신하여 받은 징계입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700여 년 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이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작은 죄라도 용납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죄는 반드시 응징하시고 죄 값은 반드시 치러져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요, 정의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지었습니다. 모두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 죄 값으로 죽음이 왔습니다.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요, 심판의 결과는 저주와 지옥의 형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롬 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법입니다. 이 율법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범법자이며, 사형수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입니다. 이것이 죄를 지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범죄 한 인간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멸망시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공의의 속성과 함께 사랑의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일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만약에 하나님께서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해서 죄인을 모두를 멸망시켜버린다면, 하나님은 야비한 폭군과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김정은이 같겠지요. 반대로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해서 죄인을 무조건 용서한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좋은가? 죄인을 용서하자니 공의가 울고 공의로 심판하자니 사랑이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는 묘책을 찾으신 것입니다. 죄는 벌하되, 죄인은 구원하는 방법을 찾으셨습니다. 마치 암병에 걸린 사람에게 있어서, 암균은 죽이고 암 환자는 살리는 방법을 찾으신 것입니다. 이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암균을 죽이려고 항암제를 쓰다 보니 사람이 견디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드디어 하나님께서 그 비책을 찾으신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입니다.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죄 값을 대신 받게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양이나 염소에게 죄를 전가시켜 대신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 사람의 죄를 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희생양 되심을 예표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처음 보았을 때에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요 1:29)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 말을 여러분의 자녀나 손주들을 가리키며 했다면 기절할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가진 희생양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에 의해 정죄를 받고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의 죄 값을 예수님으로 하여금 대신 담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 죄인들을 구속했습니다. ‘구속(救贖)’이란 말은 ‘값을 치르고 샀다.’는 뜻입니다. 그때 지불한 돈이나 물질을 속량물, 대속물(代贖物)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그 대속물이 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구원 받는 믿음입니다. 내가 지은 죄는 예수님에게 전가시켜 십자가를 지게 하셨고 예수님의 의는 나에게 전가시켜 나를 의인 되게 하셨습니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의를 힘입어 의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죄 없는 사람이나 들어가는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옆에 분에게) “의인이 되셨음을 축하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고난은 나의 죄를 대신한 하나님의 징벌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예수님에게 담당 시켜 해결하신 것입니다. 이게 복음의 진수입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믿는가? 확신하기를 바랍니다. 증거 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2.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나를 무서운 지옥불에서 건져냈습니다.

 

죄에 대한 형벌은 무서운 것입니다. 공의의 법대로 죄인이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죽음 후에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롬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쫓아 나타나나니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결과는 지옥불입니다. 과연 지옥이 있을까? 예, 지옥은 분명 있습니다. 지옥이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거짓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입니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집니다. 그 진리의 말씀이 지옥을 증거합니다.

 

(마 13:42)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막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 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계 21:8)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우리는 말씀대로 믿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 생각에는’ 하면 안 됩니다. 지옥에 대한 증언들 가운데 가장 구체적인 증거가 눅16장에 나옵니. 거지 나사로가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고 부자는 죽어 지옥 불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고통 중에 있는 부자가 멀리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자 애원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눅 16:24)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만약 지옥이 없다면 왜 하나님이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겠는가? 지옥이 없다면 복음의 진수가 예수 십자가와 부활이 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 심판과 지옥의 형벌을 해결한 것입니다. 이제 예수 믿는 우리 앞에는 지옥문이 닫혀 진 줄 믿습니다. 죄 사함 받고 심판에서 면제받고 영원한 천국문이 열렸습니다.

 

예수 믿는 여러분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절대로 지옥 갈 수가 없습니다. 사해 바다에 빠져 자살 할 수 없는 것과 똑같습니다. 예수 피로 속죄함을 받은 성도는 지옥이 받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건물에 매달은 피뢰침과 같습니다. 천둥, 번개가 치는 날 피뢰침 밑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피뢰침이 대신 벼락을 맞아주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이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이 당할 지옥의 심판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요 5:24)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는 지옥이 있음을 믿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 믿지 않는 우리 부모님과 아들딸이 지옥 가지 않도록 눈물로 기도하며 전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우리를 무서운 지옥불에서 건져냈음을 믿고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3. 우리는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증인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신 분 ‘아멘’ 하십시오. 그러면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있는 분 ‘아멘’ 하십시오. 구원 받은 기쁨과 감격은 사형수가 사형집행 직전에 무죄석방 받은 것보다 더 기쁜 것입니다. 사형수가 무죄석방 받으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요? 포로였다가 해방을 맞았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시 126: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시 126: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시 126: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그런데 여러분은 기쁘지 않으세요? 이런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구원 받은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웬 은혜인가요? 웬 선물인가요?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순전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구원의 선물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그 대가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도살할 짐승처럼 찢겨지고 노예처럼 모욕을 당하고 걸레처럼 짓밟히셨습니다. 살이 찢겨지고 피 한 방울 남김없이 쏟으셨습니다. 나를 살리려고 그리 하셨습니다. 우리 때문에 그리 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생각하면 눈물이 안날 수가 없습니다. 가슴이 저려오는 것입니다.

 

󰁖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이 은혜를 갚은 길은 다른 것 아닙니다. 구원 받은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 하는 증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전도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이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함께 찬양합시다. 찬미예수 117장입니다(‘얼마나 아프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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