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16장 15-31
결함투성이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
권율 목사 2017. 12. 9.
부곡중앙교회 청년부 청년회 [부산시] https://blog.naver.com/ryulkwon0616
15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16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17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18들릴라가 삼손이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19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20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21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22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23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24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25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26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에게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27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들도 거기에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 가량이라 다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28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29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30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31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오늘은 삼손 이야기의 마지막 본문을 다루고 있습니다. 삼손은 사사기 본문에서는 마지막 사사로 등장합니다. 물론 이스라엘 전체 역사에서는 사무엘과 그의 아들들이 마지막 사사로 언급됩니다(삼상7:15; 8:1-2). 잘 아시다시피 ‘사사’(שפטים)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는 재판관입니다. 단순한 재판관이라기보다 통치자의 성격을 띤 재판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그분의 율법대로 살아야 하는 자질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사기에 언급된 12명의 사사들을 보면, 거의 한결같이 ‘결함투성이’였습니다. 예를 들면, 기드온은 소심한 성격에 이성적으로 납득이 안 되면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입다는 우상숭배자들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인신 제사’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무남독녀로 말입니다. 심지어 오늘 본문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삼손은 아마 결함투성이의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삼손의 출생 과정은 신비롭고 화려하지만(13장), 출생 이후에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혈기와 육신의 정욕에 사로잡힌 삶이었습니다. 평소에 ‘정욕’으로 충만해서 그런지 여자들을 사랑하는 일에 열을 올렸습니다. 사실 이것 때문에 그의 화려한(?) 인생이 막을 내렸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육체적인 힘으로는 어떤 대적도 맞설 수 없는 ‘위대한’ 사사였지만, 한낱(?) 여자 앞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인생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삼손의 그런 모습이 여실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소렉 골짜기의 이방 여인 들릴라에게 삼손의 마음이 빼앗겨, 그의 엄청난 힘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들이닥친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치듯이 단호하게 들릴라의 미혹을 거부하고 나실인의 비밀을 지켜야 했음에도, 집요하게 계속되는 그녀의 추궁에 서서히 그의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사랑하면서 왜 그렇게 계속 속이냐는 말로 사나이의 마음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이 강한 것 같아도 예나 지금이나 여자들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입니다. 그 여자가 요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머리로는 아는데도, 마음에서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에는 그 여자의 청을 들어주는 것이 남자의 연약함입니다. 힘으로는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는 것 같지만, 정서적으로는 이미 여자의 지배를 당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들릴라가 날마다 그 말로 삼손을 집요하게 재촉하니까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고 말합니다. 들릴라 자신을 진짜 사랑한다면 나실인의 비밀을 실토하라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 신앙의 상식으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말할 나위 없이 단호하게 거부하고 그녀와의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그런데 들릴라를 사랑하는 삼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야 함을 알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관계를 단절하면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더 이상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삼손은 진심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지켜야 했던 나실인의 비밀을 실토해 버렸습니다. 17절입니다.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나실인의 규정 중의 하나가, 서원한 기간 동안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절대로 자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나실인의 표가 자기 머리에 있기 때문입니다(민6:7). 그래서 머리카락이 잘리는 순간 더 이상 하나님께 대한 구별성이 소멸되어 버립니다. 특히 삼손의 경우에는 그것이 자기 사명과도 직결된 육체적인 힘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잘린다는 것은 사사로서의 생명을 완전히 잃는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이때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삼손의 머리카락 자체에 그 엄청난 힘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힘의 근원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있는 것이며,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외형물이 ‘자르지 않는 머리카락’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삼손의 머리카락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한 나머지, 이것을 소유하면 마치 삼손처럼 될 거라는 미신까지 부추길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삼손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엄청난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소중하게 여겨야 했습니다. 그 어떠한 것과도 나실인의 비밀을 바꾸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사랑하는 여자가 재촉하더라도 하나님과의 ‘서원’만큼은 지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한낱 이방 여인에게 자기 힘의 근원을 누설해 버렸고, 그 여자는 삼손을 자기 무릎 위에 잠재우고는 그의 머리털을 밀어 버렸습니다(19절). 이때 들릴라는 이전처럼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20절)고 소리치며 삼손의 잠을 깨웠습니다. 그 순간 삼손은 사태 파악을 전혀 하지 못하고, 이전과 같이 블레셋 사람들을 쓰러뜨리려고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이미 삼손을 떠나셨기 때문에, 도리어 그들이 삼손을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잔인하게 끌고 가서 그를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습니다(21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여기까지가 삼손의 이야기라면 우리는 완전히 절망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의 사사가 한낱 이방인들의 집요한 공격에 종말을 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22절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이것은 단지 삼손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고 있음을 말해 주는 구절이 아닙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머리카락은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엄청난 힘의 상징물이기 때문에,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키시어 그에게 이전과 같은 힘을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당장은 삼손의 모습이 비참해 보여도, 이제 곧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스라엘의 승리를 보여 주실 거라는 암시로 이해해야 합니다.
23절 이하에 나오는 삼손의 모습은 비참하기 그지없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이겼다(?)는 기쁨에 “그들의 신 다곤에게” 제사를 드리며 아주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삼손을 감옥에서 불러다가 자신들을 위해 재주를 부리게 하였습니다(25절). 더욱이 그는 두 눈을 잃었기 때문에 혼자서는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했습니다. 이전의 천하무적 용사가 이제는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삼손은 그런 비참함 속에서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두 눈이 있을 때는 한낱 이방 여인만 보았지만, 두 눈을 잃고 나니까 그 여인이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이제는 자신과 함께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삼손은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28절).
그는 이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자신의 소망대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삼손이 그 집을 버티고 있는 두 기둥을 필사적으로 끌어안고 밀었는데, 놀랍게도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건물 전체를 무너뜨려 버렸습니다.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30절)는 그의 기도에 여호와께서 응답하셨습니다. 그 집 안에 블레셋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눈에는 삼손이 육체적인 욕망을 이기지 못한 결함투성이로 보입니다. 마지막 그 순간에 드린 기도에도 자기중심성이 묻어나는 어설픈 간구 내용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나를 생각하시고,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갚게 해 달라”는 그의 말에서 그런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두 눈이 있을 때보다는 여호와의 언약을 자주 묵상하며, 이스라엘 공동체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의식했을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가 보기에는 어떤 사사보다도 결함이 많아 보이는데도, 성경은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31절)고 말씀합니다. 입다가 겨우 6년 동안 사사로 활동한 것에 비하면, 삼손은 꽤 오랫동안 사사로 활동한 것입니다. 심지어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조상들 중의 한 명으로 보란 듯이 그가 언급되고 있습니다(11:32).
이 모든 사실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결함투성이의 사람이라도 당신의 주권적인 은혜로 그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인간이 가진 결함들을 이용하셔서 당신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분입니다. 삼손이 가진 혈기를 이용하시어 블레셋 사람들을 괴롭게 하시고, 그의 마지막 어설픈 기도에도 응답하셔서 삼손 개인의 원수를 갚게 하심으로, 마침내 이스라엘 전체에 큰 승리를 가져오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삼손이 먼저 나실인의 서원을 어겼음에도, 그의 머리털을 다시 나게 하심으로 이전과 같은 힘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 우리는 삼손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대한 사사로 사용하시는 여호와께 우리의 눈을 고정시켜야 합니다. 사람의 연약함과 결함들까지 당신의 영광을 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시는 주님의 위대하심을 우리가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을 사사로 세우시어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신 것처럼, 오늘 우리 중에도 여러 직분자들을 세우셔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보존하시는 그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결함투성이인 우리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구약 -------------------- > 사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삿 16장 15-21절(시험에 무너진 삼손의 비극) - 이준원 (2) | 2024.04.07 |
---|---|
삿 19장 22-30절(짐승으로 변해가는 신앙인) - 권율 (0) | 2023.12.24 |
삿 2장 11~17절(다른 것을 보지 않는 믿음의 자존감) - 김창진 (0) | 2023.08.20 |
삿 2장 6-10절(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 - 안효관 (0) | 2023.07.30 |
삿 3장 31절(제한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 - 김창진 (0) | 2023.07.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