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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사사기

삿 2장 11~17절(다른 것을 보지 않는 믿음의 자존감) - 김창진

by Preacher 2023.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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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2장 11~17

다른 것을 보지 않는 믿음의 자존감

김창진 목사 2019.2. 2.

https://https://blog.naver.com/hinsem/

 

● 사사 시대의 대략

 

본문은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 전반에 대한 흐름을 언급해 주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가장 혼란한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의 상반된 두 가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고, 하나님은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에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노략질하는 이방인의 손에 넘기시고, 괴로워하는 이스라엘을 보시고 사사를 보내 구원하시지만, 구원받은 이스라엘은 사사들에게 순종하지 않고, 여전히 다른 신들을 좇아 섬기며 선대들이 걸었던 믿음의 길을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사사 시대 전반에 사이클처럼 반복됩니다

 

●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다.

 

지금의 신앙적 관점으로 보면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은 어리석어 보입니다. 선대의 신앙이 온전히 전수(傳受)되지 못하고, 선대들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직접적으로 그러한 경험을 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방 족속의 노략질로 인한 고통에서 사사들을 통해 구원하심은 직접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300년이 넘도록 같은 모습을 반복하여 보인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들을 구원한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이란 우상을 섬긴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이 빌미가 되어 결국 멸망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왜 바알과 아스다롯을 버리지 못했을까? 그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를 말 할 수 있지만 두 가지 정도만 생각해 보고, 우리가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처럼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부족입니다.

 

여호수아 이후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은 출애굽 3세대이며, 가나안 정착 1세대입니다. 이들이 선대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정착하여 농사를 짓는 농경 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주로 유목 문화에 살던 선대들과는 다르게 여호수아 이후의 이스라엘은 농경 문화 속에 살므로 기본적인 사고의 틀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신(神)에 대한 개념이 한 지역을 다스린다고 생각합니다. 열왕기상 20장을 보면 아람이란 나라가 이스라엘을 침략할 때 이런 표현을 씁니다.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이 아니다.’(왕상20:28)

 

이러한 신(神) 개념은 당시의 과학적 수준과 신학의 발달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1543년경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오기 전까지 중세시대는 지구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돈다는 천동설이 진리처럼 자리를 잡고, 천동설을 부인하는 자는 성경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으로 간주하며 죽이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말하는 논문 때문에 재판정에 서게 되고, 지동설을 철회하는 것으로 풀려나게 되지만 갈릴레오가 재판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이 아니다.’(왕상20:28)라는 말처럼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그 정도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을 정복하고 정착하여 살 때,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가나안 족속들이 섬긴 바알과 아스다롯입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은 농경신으로 비와 바람과 천둥을 지배하고, 풍요와 다산을 주는 우상입니다. 반면에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물과 풀이 있는 산을 지배하는 유목의 신(神)으로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사는 환경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신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선대들이 섬겼던 하나님이기에 완전히 버리고, 떠나지는 못하면서도, 비와 풍요와 다산을 준다고 생각하는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과 선대들이 경험했던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의 의미, 홍해와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너며, 광야 40년의 동안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를 주신 사실과 자신들과 비교하면 전략적으로 강한 가나안 족속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가나안 땅 차지한 사실들을 바라보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현실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려고 하기에 바알과 아스다롯이 더 크게 보이고, 능력있게 보이고, 자신들이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에게는 지금처럼 완성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는 모세 오경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며 믿기보다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삶의 윤택함을 줄 신(神)을 찾으며 하나님을 보려 했기에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어리석음을 선택합니다. 이러한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해하며, 믿고 있는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두 번째 이유는 물질적 탐심에 있습니다.

 

사사 시대 이전의 과거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삶은 끊임없이 떠돌아야 하는 삶이었습니다. 비록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창13:9)고 하던 아브라함의 시대나, ‘농사하여 백 배나 얻었던’(창26:12) 이삭의 시대나, 에서의 출병이 두려워 재산을 ‘두 떼로 나누었던’(창32:7) 야곱의 시대에는 비록 물질적 풍요가 있었지만 정착하지 못한 불안한 삶이었습니다. 요셉 이후에는 애굽에서 430년간의 노예 생활, 출애굽 후의 40년은 광야 생활,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겪었던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불(不) 안정적이었고, 불편하고, 나그네와 같은 삶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놓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였습니다. 물론 순간순간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우상을 취했던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버리고 전적으로 우상을 섬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사 시대는 가나안을 정복하고 정착하여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던 시대이고, 선대들의 삶처럼 불안하지 않았고, 계속 방황해야 하는 나그네의 삶도 아니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먹고, 살만하니 다른 곳에 한눈을 팝니다. 지금보다 더 윤택하게, 지금 보다 더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 위한 육체적 탐심이 낳은 결과입니다.

 

어느 일본 선교사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일본에는 오전에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절에 가서 법회에 참석하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하고, 장례식은 절에서 치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더 나은 신(神)을 찾는 겁니다. 자신들을 삶에 복 줄 신(神)을 찾는 겁니다. 학사겸 제사장인 에스라가 에스라 1:3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오직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신(神)을 없습니다. 다른 신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우상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계명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라고 하십니다.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출20:4)라고 하십니다.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은 그것을 자꾸 잊어버립니다.

 

▶ 우리에게는 이런 모습은 없는지요? 지금의 삶보다 더 윤택하게 하고 풍요롭게 할 것에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고,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며 자족하지 못하고, 탐심을 부리며 하나님을 잊어버리지는 않는지요?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3:5)

 

● 하나님의 징계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14~17절 ‘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15.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16.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17. 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노략자의 손에 넘겨 주겠다고 하십니다. 사사 시대에는 이스라엘을 무너지고, 점령당하고 전적으로 지배당하는 모습은 없지만, 수고하고 애써서 추수할 때쯤에 이방 족속들이 몰려와서 그 모든 소유물을 빼앗아 가는 수모를 당합니다. 한 해의 농사가 헛수고가 됩니다. 사사기 6장에 보면 기드온이 포도주 틀에 숨어서 밀을 타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삿6:11). 왜냐하면, 미디안 족속이 타작하는 것을 알면 몰려와서 그것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며 이스라엘을 괴롭힙니다. 그 괴로움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이스라엘에게 내린 하나님의 재앙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의 모습을 15절c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다.’라고 합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고, 자기 백성이기에 사사들을 보내셔서 이방 족속의 압제와 고통에서 구원 해 주십니다. 하지만 그 고통이 어느 정도 사라지면 그들은 사사들에게 순종하지 않고 또다시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섬깁니다. 그것을 성경은 ‘음행’이라고 표현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간음’입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몸을 팔았다.’라고 번역합니다. 이러한 단어는 분명히 자기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체적 욕망을 참지 못하고 저지르는 죄악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단순한 족속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한 족속이고, 하나님은 친히 이스라엘의 남편 되심을 말씀합니다. 그런 관계를 보여 주는 것이 호세아서입니다(호2:16).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순결과 절개를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음행의 모습을 보이고 결국 반복적인 이방 족속의 노략질에 괴로움을 심하게 겪는 것이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입니다.

 

● 우리의 자존감

 

이러한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을 보면서 똑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굳게 지켜야 할 자존감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신 자기 백성이며, 죄악 가운데서 불러냄을 당한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잊으면 우리도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같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며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완성된 계시인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성경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배우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애씀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2-17)

 

▶ 더불어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골1:6)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삶 속에서 날마다 일어납니다. 문제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깨닫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함으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은 일들을 자행합니다.

 

▶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주신 것에 감사하며 자족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보며 불평하지 않고 주신 것을 바라보며 감사하며 자족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디모데전서 6:6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빌립보서 4:11-13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하나님을 바로 알고, 날마다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고 자족하는 삶을 통해 온전히 하나님만 섬김으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존감으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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