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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사사기

삿 19장 22-30절(짐승으로 변해가는 신앙인) - 권율

by Preacher 2023.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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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19장 22-30

짐승으로 변해가는 신앙인(?)

권율 목사 2017. 12. 16

부곡중앙교회 청년부 청년회 [부산시] https://blog.naver.com/ryulkwon0616

 

22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23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24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25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26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27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28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29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30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오늘 본문은 읽어 내기가 참으로 부담스럽습니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극도의 타락 행위와 잔인함이 소개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이 본문은 여호와를 모르는 이방인들에 대한 기사가 아니라, 신약의 교회를 예표하는 이스라엘 공동체에 관한 내용이라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은 지상의 모든 교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음의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라도 비신자들보다 더욱 타락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본문을 찬찬히 읽어가야 합니다.

 

어제까지 살펴봤듯이, 첩을 둔 그 레위인은 기브아의 어느 노인을 만나 그 집에 들어가서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저녁을 함께 먹고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갑자기 들이닥쳤습니다. 그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마구 다그치기 시작했습니다.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22절).

 

지금 기브아 성읍 불량배들이 뭘 하겠다는 것입니까? 이 집에 들어온 레위인과 성관계를 가지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같은 남자들끼리 수치스러운 짓을 하겠다고 당당하게 위협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동성애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들의 모습은 마치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롯의 집에 쳐들어와서 너무나 당당하게 두 손님(천사)을 강간하려고 한 그 동성애자들과 정말로 닮았습니다.

 

이것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극도로 타락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유황불로 진멸하신 소돔 사람들의 악행을 똑같이 재현하고 있습니다. 아니 본문 전체를 볼 때는 오히려 그들보다 더욱 타락해 있었습니다. 집 주인이 그 불량배들을 만류해도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을 “형제들”이라고 칭하면서 “이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고 해도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23절).

 

그래서 집 주인은 급박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 가지 묘책을 제안합니다. 자신의 처녀 딸과 레위인의 첩을 불량배들에게 끌어내 주겠다는 것입니다(24절). 이것도 참으로 해괴망측한 생각입니다. 그들의 동성애적 욕구를 잠재우기 위해 무고한 여성들을 그들의 성노리개로 내어 주겠다니요! 당시의 철저한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를 고려한다고 해도 그런 해결책은 참으로 반인륜적입니다.

 

불량배들이 전혀 말을 안 들으니까 레위인은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 버렸습니다(25절). 희한하게도 그들은 그 여자와도 관계하였습니다. 남자들하고만 수치스러운 짓을 하는가 싶었는데, 여자들과도 부끄러운 욕정을 채우는 일에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은 양성애자(bisexuals)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적 자극을 부추기고 성욕을 채울 수만 있다면, 남자든지 여자든지 닥치는 대로 관계를 가지는 불량배들입니다.

 

레위인의 첩은 그 불량배들에 의해 밤새도록 능욕을 당하였습니다. 새벽 미명이 되어서야 겨우 풀려나서 동틀 무렵에 자기 주인이 있는 그 집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극심한 학대로 기력이 다하여 문 앞에 그냥 쓰러져 있었습니다(26절). 첩의 주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가려고 집 문을 열었습니다. 그 순간 자기 첩이 문 앞에 엎드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녀의 두 손은 문지방에 고이 놓여 있었습니다(27절).

 

첩이 쓰러진 자세를 보아하니, 마지막 힘을 다해 문을 열어 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밤새 계속된 학대 때문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죽기 직전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그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면 이 여인이 집 안의 사람들에게 자기 상황을 알리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쏟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비참하기 그지없습니다.

 

어쩌면 레위인이 조금만 더 일찍 나섰더라면 자기 첩을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상황은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레위인도 불량배 못지않게 도덕성이 엉망입니다. 첩을 취하는 것부터가 이미 레위인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자기 첩이 밤새도록 불량배들에게 온갖 수치를 당하는데도 한번 나가보지도 않았다는 것이 참으로 이해 못할 일입니다. 제가 볼 땐 레위인도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첩을 들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인간적으로 사랑했다면 자기 첩의 그런 처참한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척이라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레위인은 자기 첩을 한 인격체로 조금도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어서 소개됩니다. 첩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는, 도무지 입에 담을 수 없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짐승을 잡을 때 쓰는 ‘도살용 칼’(מאכלת)을 가지고 첩의 시체를 찍어내어 열두 덩이로 나누었습니다. 그러고는 그 시체 덩어리들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기까지 합니다.

 

지금 상황을 영상으로 보면 누구나 경악할 것입니다. 아무리 시체라도 도살용 칼을 가지고 열두 덩어리로 도려내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가히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야말로 사람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집에서 개를 잡고 돼지를 칼로 죽일 때도 너무나 끔찍해서 잠을 설치곤 했습니다. 한낱 짐승을 칼로 죽이는 것도 그렇게 충격적인데, 사람의 몸을 칼로 마구 도려내는 것은 뭐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한 만행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의 중심에 레위인이 있다는 것이 가장 충격적입니다. 구약에서 레위인이 어떤 사람입니까?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성별된 자들이며, 성막과 성전 임무를 수행하는 구별된 자들입니다. 가장 거룩하게 자신을 가꾸어야 할 레위인이 오늘 본문에서는 가장 반인륜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악인으로 등장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충격적인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언약 백성이라도 율법의 말씀을 뒤로하고 죄악을 계속 탐닉하다 보면 어느새 짐승처럼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의 레위인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입에서 “여호와의 집”이라는 표현도 나오고(19:18), 이스라엘 자손은 이방 사람과는 구별되는 언약 백성이라는 그의 이해도 발견됩니다(12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레위인은 성읍 불량배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오히려 더 심각한 수준의 도덕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에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면서도, 그 신지식이 자기 신앙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자기 죄성을 그대로 방치하면, 심지어 세상의 그들보다 더욱 잔악한 범죄도 서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간(世間)에 보도되는 뉴스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갈수록 교인들의 중범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본문의 레위인처럼 일부 목회자들이 버젓이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경우가 실제로 있습니다. 이들이 과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그런 죄악을 저질렀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레위인들처럼 누구보다도 탁월한 ‘신지식’을 소유했지만, 자기 죄성을 끊어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탐닉하다 보니 자기 모르게 어느새 범죄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일부 목회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도 예외가 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았기 때문에, ‘오직 믿음의 순종’(성화적 행위)을 나타내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믿음의 순종은 무엇보다 우리 몸에 잔존하는 죄악과 끊임없이 싸우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의 구원을 끝까지 보증하시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는 성령의 이끄심에 반응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나의 죄성에 일시적인 노예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경각심을 가지지 않고 계속 나의 죄성을 방치하면, 주께서 당신의 얼굴을 감추시고 한동안 우리가 짐승처럼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실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없이 죄악에 찌든 인생이 얼마나 처참한가를 제대로 맛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심지어 세상 사람들이 합세하여 교회를 무자비하게 욕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끔찍한 죄악을 한동안 내버려 두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질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또다시 나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상의 가십(gossip)거리가 되더라도, 그 모든 수모를 주님이 계속 감당하시면서, 나락으로 떨어진 그 영혼을 온전히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누구보다도 탁월한 도덕성을 가지도록 사력을 다해야 합니다. 범사에 주님을 닮으려는 거룩한 몸부림을 날마다 힘써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의 능력으로 죄악과 싸워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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